〈 122화 〉 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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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한 것과 달리 연회는 놀고먹는 걸로 끝나지 않았다. 차차 분위기가무르익었을 때황제가 진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가지. 다들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황제는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각국의 수뇌부인 수인이나엘프 들도술이나 마시면서띵까띵까놀던 모습은 전부거짓말이었다는 듯이생생한 눈으로 황제를 바라봤다.
"우리 엘프는 마왕 교단이 무언가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지만던전과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와 활쏘기 대회 결승에서 마주치고 사냥 대회에서도 마주친 로브를뒤집어쓴엘프가 대표로 나서서 말했다. 이에 질세라수인 측에서도늑대 수인으로 추정되는 자가한 손에술병을든 채앞으로 나섰다.
"우리아마존 왕국도 마찬가지다.요즈음마족 놈들하고 그놈들의 연합으로 추정되는 이단자들이 함께 다니며 활발하게움직이는 게포착됐다."
"특히던전에서나타나마석을가져가더군. 그리고 고서에서나 봤던 순위를 가진 마족들도 마주친 적이 있었다. 우리 엘프의 힘 앞에 금방무릎 꿇고숨을 거뒀지만..."
"오! 우리도 마찬가지야! 그놈들던전에서발견되는 데다가 밖에서 발견되더라도 어째서인지던전으로도망치더라. 던전에 도망을 위한 장치가있는 것같은데...찾을수가 있어야지."
"거기엔 우리 제국도 동감한다. 주기적으로 기사들을 통해 청소를할 때면대부분의 마족과그 똘마니들은던전으로도망치더군. 이건엘프 측도마찬가지인가?"
"우리도 마찬가지다.똘마니는던전에 닿기도 전에 죽이는 편이지만 마족들은 이야기가 다르다. 그놈들은 대부분 던전에 어떻게 해서든지도망가는 데성공한다...결국에는 죽지만."
"당연한 일이야. 던전 내부는우리한테는안마당이나 다름없어.그 정도는수월하게 잡아 죽여야지! 참고로우리 쪽에서사살한 마족은 91위랑 77위였어."
"엘프 측은83위와 100위였다."
"우리제국 측도죄다 자잘한녀석들뿐이다. 예전에 용사가 9위의 마족을 처단한적이 있고, 용사의 마을은 공격하기 위해 마찬가지로 10위권의 마족으로 추측되는 자가 덤벼들긴 했지만..."
황제가 묘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마을이 파괴되고 용사인 내가습격받았기에분노하고 슬퍼하면서도 묘하게 기쁨이섞여 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종족들이 부러워하는 기색을 보이자 황제는 아주 조금 입꼬리를 올렸다.
"미안해유진아, 우리 아버님은저런 식으로자랑하는 걸 좋아하셔."
"응? 뭐가 미안해? 나 화안 났어."
루진이 어깨를 끌어안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근데 기분 나쁘거나 불쾌하지는 않다. 황제의방금전 발언으로 내 중요성과용사로서의 공신력이더 올라갔으니까.
다른 종족들도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조금 전보다신뢰와 기대가 더 들어가 있었다. 부담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쉽게 이름값을 올리니 기쁘기도 했다.
루진은이런 내 심정을 깨달았는지 피식 웃었다.
"필요없는 사과였네. 하긴네가이 정도일로 눈 하나깜빡할 리가없지."
"후후후, 당연하지."
나와루진은끈적하게 시선을 교환했다. 그 사이에도 황제의면담은계속되었고목격담과 정보는 끊임없이 튀어나왔다.
황제가 독자적으로 소탕과 정보 수집을 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이 정도로 많을 줄이야.
그리고 아발론과 아마존 왕국에도 상당한 양의 정보가 쌓여있었다. 그들은 거침없이 정보를 풀었고개중에는쓸모없는 것들이 많았지만 내가 듣고 정리하여 가설을 세우기에 충분한 정보도 많았다.
우선 가설을 세우기 전에 나도 정보를 풀었다. 숲에서 마주친 고대몬스터와천마에관한 것을적당히 각색해서 말해주었다. 천마와 나의 싸움은 오늘방송됐기에다들 수긍하는 눈치다.
이제 정보들을 정리하자면...
"마족들과 사이비 교단 연합의 목적은던전의마석 혹은 던전에 존재하는 무언가. 이게제1차목적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수집된마석은던전이없는 러빌 왕국에서 활발하게 밀무역 중. 정황상 러빌 왕국도 그들과 한통속으로 봐야겠어."
그들은 무언가를 위해마석을모으고 있고 그걸 거래 중이다.엘프 들의말에 따르면마석을주로거래하는 건사이비교단 쪽이라고했지.
"만약 여기서 마족과 사이비의 목적이 서로 다르다면? 그렇다면 마족의 목표는 에너지. 사이비의 목적은 돈과 러빌 왕국과의 친분으로정리할 수있겠네요."
나는 내가 쓰러뜨린 9위의 마족파이로스를떠올렸다. 나한테 밀리자 던전에 존재하던 에너지를 흡수하여 강해진 그녀를 생각하면 이 가설은 충분히일리 있다.
다만 문제는.
"어째서, 무엇을 위해 에너지를 수급하려는가. 그걸 알아내야 한다는 거군."
황제는 좋게 뒤를 이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추측을 말했다.
"그렇습니다, 황제 폐하. 그리고 던전 내부에 그들만의 이동장치가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수많은 사람, 종족이 모이는 던전 도시라 할지라도 마족을 비롯한 똘마니들이숨는 건불가능해요."
내 말에 다들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던전은그 자체로많은 이득과 강력한 국력을가져다주지만동시에 원하지 않더라도 강제로 마족과 깊게 엮이게 된다.
"하아~ 지금으로선 답은없는 거나마찬가지겠군요. 던전 내부를 아무리 뒤져도 여태껏그런 걸 찾지못했으니. 현재로선 형상 유지가 답이에요."
"크릉~! 분하군, 당분간은마석의밀무역을 최대한막는데 주력해야겠어."
다들 혀를 차며 현 상황에 대해 이런저런 해법을 내놓으려 했지만 결국 답은 현상유지가 최대다. 아마 천마와 나의 싸움 때문일 것이다.
천마만 생각해도 무척이나 골치 아픈데 마족의 전력이 그걸로 전부일까?예상하건대다른 마족들, 특히 상위의 마족들은 슬슬 힘을 되찾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위권 마족을 방패막이로 내세우고 천마를 직접 이번 일에 투입하는 여유를부릴 수있을 리가없다. 그리고 고대 몬스터, 이것도골 때린다.
"정확히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고 어떤몬스터인지도모르는 존재. 그런 존재도나타날 거라니…. 생각할게너무 많군요."
"그냥 전부다부숴버리는 게편한데."
"짐도 마찬가지다. 마족, 이단자, 고대 몬스터...발견되는 즉시박살 내버릴 거다."
황제가 호기롭게 외쳤다.
?
?
?
이번 연회에서 정해진 방침은 크게 3가지다.
첫째,마석의밀무역을 최대한 막는다.
둘째, 마족과 사이비에 관한 정보를 주기적으로 공유한다.
셋째, 고대몬스터에관한 정보가 존재하지 않으니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예비 전력을 만들고언제든지 지원할 수 있도록3국 끼리동맹을 맺는다.
셋째의 경우 어디까지나 정식 동맹이 아니고 나중에 따로 공식적인 만남을가질 거란다.
그나저나 고대몬스터라...3국은 현재 고대몬스터가마족의 편이거나 혹은 마족의 하수인일것으로 추측하고있다. 나도 이 추측이맞다고생각하는데 직감이 자꾸다르다고외쳐댔다.
뭐랄까, 거슬리는 기분이다. 고대몬스터의탄생만 마족과 관련이 있지그 후까지관련이 있을까? 같은 가설이 자꾸만 떠오른다.
"됐다, 됐어. 지금 생각해서 뭐하냐! 머리만 복잡하지..."
나는 생각을 그만뒀다. 방침도 정해졌고 회의도끝났지만, 연회는아직 끝나지않은 채여러 종족이 어우러져 즐기고 있다.
평화로웠다. 단 하나의 적만이 존재하고 강대국인 3국은 화기애애하여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지금으로선 없었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아마존의 전사들이 배신할지도 모르고,엘프들이타락하여세계수와함께 적들의 손에넘어갈지도모른다. 그렇게 되면 수많은 피가 흐르고 제국에는 다시 한번 혐오가만연해지겠지.
물론 이건 엄청난 비약이자말도 안 되는가정이다. 수많은 수라를 거친 나이기에 가능한 최악에 최악을상정한다. 그래야만살아남을 수있었다.
'지금은 그럴필요 없지만.'
테라스로 나가 차가운밤바람을쐬며 두 눈을 감았다. 이러고 있으니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뭐해?"
루진이 테라스를 열고 나를 뒤에서부터 껴안았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이 내 등에 밀착하였다.
딱딱해진 돌기가 느껴진다.루진은가슴을 살살 문지르며 나를 유혹하려고 했다. 그렇게나 박아줬는데도 부족한가.
"섹스하고 싶어?"
"아니~네가궁상맞게 여기에서 이러고 있길래 위로차 나왔지."
내 말을 부정한루진은내 손등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저기,유진아. 나 한가지물어볼 게 있어. 물어봐도되?"
"...뭔데, 말해봐."
그녀의 손이 부드럽게 손등을 쓰다듬는다. 그녀는 내 등에 얼굴을 비볐다.
"난 말이야.유진이,네가참 좋아. 용사라서 좋고, 섹스를 잘해서 좋고, 잘생겨서 좋고, 유쾌해서 좋아."
"나한테 푹 빠졌군. 뭐, 당연한 일이지."
"그걸 자기 입으로말하는 거야? 역시유진이는 뻔뻔하다니까."
"뭐가 어때서. 난 진실을 말했을 뿐이야. 아니면, 나한테 푹 빠지지 않았다는 거야?"
"그럴 리가. 나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 다만...그래, 아주 단순한미혹 같은 게나한테 존재해."
나는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루진은애써 미소 지으며 나를 올려다봤다. 처음으로 보는 어색한 미소였다.
"유진. 너는 정확히 누구야? 정체가 뭐야?"
조금 떨리는 목소리. 나에 대한 애정과 신뢰는조금도바뀌지 않았다. 그것만큼은 정확하게알 수있었다. 다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자그마한 의문이 담겨 있었다.
"분명 너는 용사야. 그에걸맞은힘과 재능을 갖췄지. 하지만 오늘의 싸움을 보고 깨달았어.유진이너는 내가생각한 것이상으로 대단하고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걸."
그녀의 눈에 담긴 의문은 확고했다. 그녀는 내 손을꼬옥쥐며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정도 기량은 인간이쌓을 수있는 게아니야. 100년의 인생을 영원히 투쟁과 전쟁 속에서 보낸다 해도 그런 기량을쌓을 수는 없어. 그러니 사실대로 말해줘. 너의 진짜 정체를..."
루진의말에 나는 침묵했다. 딱히 화가 나거나당황한 게아니다. 그래,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그런 게아닌 순수한 감동과 기쁨이었다.
어째서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지? 의아하지만 뛰어난 내 머리는 금방 결론을 내렸다. 지금 나와 함께하는, 나에게모든 걸바친 미녀는두 명이다.
아리스는 맨 처음 내 동행자가 되었으며유벨은훈련 중에여차여차하다가등록되었다. 여기서루진까지등록된다면?
3명이 나와 함께하게되는 거다. 정말 기대된다, 그녀들이 나와 함께하며 차원을넘나드는 게. 그렇기에 나는루진의마음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기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아리스한테그랬듯이 그녀에게도 내 이야기를 해준다. 물론 중요한 부분은 제외하고서.
그녀의 표정은 내 이야기가바뀔 때마다시시각각 바뀌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자 나를꼬옥껴안았다.
"그런가...그렇기에 그런 기량을 쌓고 그런 기술이 가능했던 건가.창세신님은정말이지 얄궂구나. 이런 불쌍한 소년을 그렇게나 괴롭히다니."
띠링~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나에게는 들릴 경쾌한 알람이 울렸다. 아마 그녀가 내 동행자로설정된거겠지. 이걸로 3명. 마찬가지로루진을껴안아주었다.
이걸로 새 동료가 생겼다!
"흐음~ 애정 행각을 하는건좋지만, 동생앞에서그러는 건좀 그렇지 않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껴안은 채고개를 돌렸고못 볼걸봤다는 듯한 표정의 루비가 눈을 비비고 있었다.
"뭐야, 루비인가. 어쩐 일이지?"
루진이 슬며시 몸을 떼며 묻자 루비가 혀를 찼다.
"아버님께서부르셔. 덕분에 용의 과일을 어디에 쓸지도못 정하고아버님께 빼앗겨 오늘 온 다른 나라 사람들한테 뺏겼어. 쳇!"
"그거 때문에 기분이 나빠진 거였나. 근데 왜 그걸 내 여자한테 풀려고하는 거지?"
루진의허리에 팔을 두르며 말해주니 그녀의 눈이썩어들어간다.
가슴 크기도 크고 엉덩이도 튼실한 주제에 가면과 뭐든 속이려 드는 저성격 탓에아마 남자를 못 만나 봤겠지.
심지어 지금도 가면으로 본심을 숨기고 있다. 그래서 본심이 뭔지 나도 모르겠다.
과시하듯루진의매끈한 허리를 주물렀다. 이러면 반응을 보일까?
루비는 나를 노려보지만 역시나 가면이다. 저러니까 괜히 더 저 가면을 부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뭐해. 황제 폐하가 부르신다며?앞장서."
"알았어, 알았어."
나는앞서 가는루비를 빤히 바라봤다.
씰룩씰룩 거리며 남자를 유혹하는 엉덩이와인제 보니가슴과 허리는 물론이요 등의 맨살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야릇한 옷을입은 게보인다.
이건...유혹하는 건가? 아니지.루비 같은여자가그럴 리가없다. 나는 음란한 생각을 지우고 대신루진의몸을 만졌다.
"흐읏♥이런 데서는…"
"조금만 만질게."
우리의 애정 행각에 루비의 몸이 움찔, 떨렸다. 재미있다, 무슨 속셈인지는 몰라도 내가 꼭 저 가면을 부수고 만다. 다시 한번 그리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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