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의 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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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다음날, 성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성준은 고시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잠을 잘 수 있었다. 꿈이 하나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너무나도 깊은 잠을 자버린 그는 아침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간신히 일어났다.
그가 일어난 시간에는 이미 가족들은 각자 자신들의 일을 위해 집밖을 나선 뒤였다. 그의 아버지는 일을 위해서 새벽에 순천으로 내려갔고, 누나는 출근을, 동생은 전날 밤에 이미 학교 기숙사로 이동을 한 상태였다.
오랜만에 자고 일어난 집 안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그는 쓸쓸한 기분을 느끼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그의 집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늘 쓸쓸했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기 위해 그가 거실로 이동했다. 거실에서 그는 식탁 위에 그의 누나가 차려놓은 밥과 반찬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맛있게 먹으라는 내용과 함께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내용이 적혀있는 쪽지 역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쪽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는 이내 자리에 앉아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간만에 먹는 집 밥은 생각 외로 꿀맛이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공부 준비를 해볼까?'
아침 겸 점심까지 해치운 그가 할 일은 정해져있었다. 친구들과 만나는 시간은 저녁이었기에 그 시간 전까지 공부를 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할 일이었다.
지난밤에 못했던 샤워를 가볍게 마친 그는 바로 책상에 자리를 잡고 공부를 시작했다. 한 달 동안 고시원에서 익힌 습관을 버리고 싶지 않았기에 오늘 같은 날에도 풀로 집중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었다. 아직 시험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하는 게 자신의 가족을 위한 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친구들과의 약속시간 전까지 계속해서 공부를 이어갔다. 고시원과 다른 분위기라서 중간 중간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도 했지만, 꿀잠을 잔 덕분인지, 포기하지 않고 계획을 실행할 수 있었다. 공부에 대한 그의 열정은 친구와의 약속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리는 알림 시간이 울린 끝에야 완전히 놓을 수 있었다.
삐- 삐- 삐-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후우, 어쩔 수 없지.”
정신없이 울리는 알람을 끄고 일어난 그가 크게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몸을 풀고선 바로 외출할 준비를 했다.
외출 준비를 하면서 동시에 폰에 설정해놓은 비행기 모드를 풀자, 친구들에게서 온 문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약속 시간까지 한 시간 가량 남았지만, 그의 친구들은 벌써부터 모일 생각에 들떠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성준 역시 오랜만에 친구들을 볼 생각에 괜스레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간단히 옷을 챙겨 입은 그가 집을 나섰다. 아직 여유가 많긴 했지만, 그는 미리 가서 친구들을 기다리고자 했다. 어차피 집에 있는다고 해서 딱히 할 일도 없었고, 오히려 공부 때문에 압박감만 받을 것 같았기에 바람도 쐴 겸 집을 나섰다.
“흐음, 특별히 달라진 건 없네. 그래도 뭔가 이상하다.”
약속 장소까지 천천히 걸어서 이동한 그는 마치 여행 온 사람처럼 흥미롭고 신기한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고작 한 달이었지만, 그에게는 꽤나 긴 시간이었기에 한 달 만에 본 자신의 동네에서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나 그는 아까부터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예전하고 무언가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강타했다.
신경은 쓰였지만, 굳이 억지로 그것에 매달릴 필요 없었다. 그는 공부에 대한 압박감과 스트레스로 인한 현상이라 생각하며, 애써 무시한 채 약속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약 20분 정도를 기다린 끝에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너는 씨발, 방학 동안 뭐하느라고 연락이 한 번도 없었냐?”
“정호한테 못 들었어? 나 고시원에 있었다니까.”
“진짜 헌터부대 준비 벌써부터 하는 거야? 아무리 사정이 있어도 벌써부터 준비하는 건 너무 무리 아니야?”
“뭐, 어쩌다보니까 그렇게 됐다. 빨리 밥이나 먹으러 가자.”
“그래, 일단 밥부터 먹자. 밥 먹고 바로 강성이네로 갈 거야. 아주 좋은 거 준비했으니까, 기대해라.”
성준이 만난 친구는 총 3명이었다. 박정호, 이강성, 민병석. 성준에게 있어서 이 3명의 친구들은 가족 다음으로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3명 모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은 곳을 나왔으며, 서로의 집안 사정까지 알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성준이 힘든 시기들을 잘 극복해낼 수 있었던 것도 다 이들 덕분이었다.
그렇게 친구들과 만난 성준은 오랜만에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고시원에서는 좋은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그와는 나이 차이가 있어서 어느 정도 세대 차이를 느꼈던 게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오랜만에 또래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자 한결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에서 만났다는 점 역시도 성준에게는 충분히 색다로운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으며, 친구들과 먹은 고기가 맛있었다는 점도 그의 즐거움을 배가시켜주었다.
“다들 강성이네 가봤었나? 성준, 너는 처음이지?”
“한 번 가보기는 했지. 엄청 오래 전에. 초등학생 때였나?”
“오늘 기가 막힌 거 준비했으니까, 기대해. 아, 너 아직 담배는 하지?”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한 달 동안 담배 참느라고 죽을 뻔했다고.”
저녁 식사를 마치고, PC방에 잠시 들렀다가 그들이 향한 곳은 미리 예고했던 이강성의 집이었다. 현재 이강성의 집은 그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이 일 때문에 지방으로 출장 간 상태였기에 아무도 없었다. 집이 제법 잘 살았던 이강성은 집의 크기도 상당했기에 친구들끼리 모여서 파티를 벌이기에는 최고의 장소라 할 수 있었다.
“담배는 베란다나 집 밖에서만 하고, 과자랑 술은 마음껏 먹어도 돼. 대신, 아빠 양주는 절대 건들지 말고.”
무엇보다 이강성의 집이 좋았던 점은 술을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술을 좋아하는 이강성의 형이 사놓은 술이 잔뜩 있었고, 그가 형한테 허락까지 받아놓았기에 청소년이었던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나는 술은 별론데. 다른 건 없어?”
“이 새끼는 담배는 존나 하면서 술은 안 먹더라.”
“그걸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냐. 나는 그냥 음료수로 줘. 될 수 있으면 콜라.”
물론, 성준은 유독 술을 싫어했다. 맛도 없었거니와 술 자체를 못하는 그는 항상 술만큼은 거부했다. 그래도 술자리 자체를 싫어하진 않았기에 항상 음료수라도 마시면서 술자리에 빠지지는 않고 참여하는 그였다.
“아무튼 빨리 모여 봐. 일단 맥주부터 한 캔씩 하자.”
그렇게 네 명의 청소년의 술 파티가 시작되었다. 술자리 경험이 그리 많지도 않았고, 남자들만 모여 있는 상황이라 분위기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나름대로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유일하게 술을 먹지 않는 성준 역시 특별히 분위기를 망치는 일 없이 친구들과 잘 섞여서 놀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성준은 몰랐다. 잠시 후에 자신에게 엄청난 일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나저나 우리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 안하냐?”
성준에게 발생할 엄청난 일의 시작은 그의 친구인 민병석의 이 멘트부터 시작이 된다. 그는 도대체 뭐가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일까. 술에 전혀 취하지 않았던 성준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갑자기 뭐가 그렇게 억울한데?”
“이제 더 이상 섹스도 못하잖아. 아직 얼마 해보지도 못했는데, 씨발.”
그는 뜬금없이 더 이상 섹스를 못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게 무슨 말일까. 그가 하는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성준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갑자기 왜 섹스를 못하...”
“근데 정말 확실한 거 맞지? 강성이 네가 그랬잖아.”
“확실하다니까. 그거 때문에 엄마랑 아빠랑 형까지 부산 내려간 거잖아.”
이해가 되지 않았던 성준은 재차 질문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박정호가 먼저 이강성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몬스터 짓이 확실한 거야?”
“씨발, 좆됐네. 대책이 있긴 한 거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몇 년은 걸릴 거야. 오늘 낮에 발표한 거 봤지? 엄마 말로는 혼란스러운 상황 막으려고 일부러 그렇게 발표했다고 하더라고. 아직까지 히어로 협회도, 헌터부대에서도 딱히 대책은 없는 것 같아. 그러니까 급하게 연구자들을 다 한 곳에 모으는 거겠지.”
“하...답답하네. 그럼, 앞으로 몇 년을 고자로 살아야 된다는 말이잖아. 대학가면 미친 듯이 클럽다니면서 여자 꼬시려고 했는데...다 물 건너갔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이틀 전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기이한 현상, 인류의 씨앗이 마르게 된 현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강성의 부모와 형은 헌터부대 내 HM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원이었기에 그는 그들로부터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현재 상황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다들 무슨...말을 하는 거야? 나는 네들이 무슨 얘기 하는지 전혀 모르겠는데?”
하지만 성준은 그들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고시원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한 번도 인터넷이나 TV를 통해서 이 이야기를 전달받지 못했다. 그는 지금 세상에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기에 당연히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알 수 없었다.
“이틀 전부터 발기 안 되는 거 말이야. 너 고시원에서만 지내느라 인터넷 검색도 안 했구나.”
“그게 무슨...소리야?”
“아직 정확히 보도된 건 없는데, 강성이네 부모님 말로는 몬스터와 관련 있대.”
“몬스터...?”
“그럼 너는 지금까지 왜 아침에 발기가 안 된다고 생각한 거야?”
“발기...?”
“산속에 있더니 완전 병신이 돼서 돌아왔네.”
친구들의 설명에서 성준은 아직까지도 어리둥절했다. 그는 친구들이 오랜만에 봤다고 자신에게 장난하는가 싶어서 폰을 켜서 인터넷을 확인해봤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인터넷은 지금 일어난 기이한 현상과 긴급발표로 난리가 난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까 어제 터미널에서 잠깐 인터넷을 봤을 때도 검색어에 발기 부전이 있었지...그러면 정말로 전 세계 남자들이 발기 부전에 무정자증에 걸렸다는 거야? 하지만...’
팩트를 확인한 후에야 성준은 대략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의문이 남아있었다.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자, 그의 머리는 다시 한 번 멈추고 말았다.
“그러니까...지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이 현상...발기 부전이랑 무정자증이 몬스터 때문이다?”
“그렇다니까. 물론, 확실한 건 아니야. 어디까지나 강성이네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니까. 확률로 따지면 90%정도랄까?”
“이게...정확히 언제부터 발생한 건데?”
“너 오늘 아침에 발기 됐어, 안 됐어?”
“어? 그...”
“어제랑 그저께는 됐어, 안 됐어? 너도 경험해봐서 알 거 아니야. 이 새끼 딱 봐도 고시원 생활한다고 성욕이 감퇴되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네.”
“그러니까 2일 전부터 그랬다는 거지?”
“그거 때문에 요즘 미치겠다. 여자 친구가 있으면 뭐해? 아무것도 못하는데.”
성준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바로 이 기이한 현상이 시작된 시점이었다. 친구들은 물론이고, 인터넷과 언론에서는 이 현상이 2일 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2일 전, 그의 행적을 떠올려보자. 그는 분명히 서울에 올라오기 전날 밤, 고시원에서 김소영과 섹스를 하려고 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분명히 발기가 이루어졌고, 삽입까지 마쳤다. 그런데 도대체 다들 왜 2일 전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그나저나 성준, 너는 진짜 큰일이다.”
“내, 내가?”
“그래, 너는 지금까지 한 번도 못해봤잖아.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영영 아다로 살아야겠네?”
“아...”
“아니야, 어쩌면 얘처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더 좋을 수도 있지. 그 느낌이 뭔지도 잘 모를 테니까, 그렇게 간절하지도 않을 거 아니야.”
“큭큭, 그럴 수도 있겠네.”
친구들이 농담을 하며 성준을 놀렸다. 하지만 친구들의 장난 섞인 말에도 그는 차마 웃을 수가 없었다. 그의 머리는 점점 복잡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