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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클리닉-9화 (9/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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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왜...왜 도와준 거지? 그리고 어떻게 알고...그냥...타이밍이 좋았던 건가?’

그렇게 성준은 짝궁, 박수아의 도움으로 무사히 6교시 수업을 끝냈고, 이어서 7교시 수업까지 마칠 수 있었다. 그 시간동안 그는 비밀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안도와 함께 한 가지 의문에 휩싸이게 되었다.

도대체 박수아는 왜 자신을 도왔던 것일까. 그 의문이 해결되지 않았던 그는 또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의문은 학교가 끝날 때까지 풀리지 않았다. 6교시에 보건실로 이동한 그녀는 정말로 몸인 좋지 않았는지, 조퇴를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성준은 그녀에게 자신을 도와준 이유를 묻지 못했다. 정말로 이 모든 게 우연의 결과인 것일까. 굉장히 찝찝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내일 물어봐야겠다.’

학교가 끝나는 대로 그는 바로 집으로 향했다. 담임선생님에게 어떻게든 박수아의 주소를 알아내서 직접 물어볼까, 고민도 해봤지만, 그것까진 너무 오버인 것 같았기에 그냥 애써 무시한 채 집으로 걸어갔다. 어차피 내일이면 알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그는 또 다시 복잡한 마음을 강제로 억누르고자 했다.

‘으응? 무슨 일이지?’

하지만 집에 도착한 그에게 또 다시 곤란한 상황이 닥치고 말았다. 계단을 따라 그의 집이 있는 5층에 도착하는 순간,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상황으로 보이진 않았다.

‘옆집 누나 같은데...한 명은 누구지?’

그는 복도식 아파트에 살고 있었기에 5개의 집이 한 층에 복도를 같이 사용하며 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 모두 친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다 같이 놀러 다녔던 기억이 있었다. 지금은 대부분은 이웃이라기보다는 남으로 지내고 있지만, 적어도 옆집에 사는 사람만큼은 아직까지도 친분이 있었다. 그렇기에 목소리 마저도 익숙했는데, 문제는 지금 들려오는 목소리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게 어디서 여자가 남편 내조를 안 하고 집밖을 나돌 생각을 해!? 내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알아먹질 못하고, 쯧쯧. 내가 분명히 말했지. 네 잘난 성격 때문에 언젠간 사고칠거라고. 이 문제 해결되지 않으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흑흑...죄송합니다...흑...”

“따라 나오지 마!! 너 같은 며느리 꼴도 보기 싫으니까!”

“어머님...흑흑...”

익숙한 목소리의 정체는 그의 옆집 누나였다. 그리고 옆집 누나 목소리 외에 다른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마도 그녀의 시어머니로 보였다. 상황을 보아하니, 옆집누나가 시어머니한테 크게 꾸중을 듣는 모양이었다.

'내가 끼어들 문제는 아니네.'

성준은 자신이 참견할 문제가 아님을 단번에 알아차리고는 자리를 피하고자 했다. 그는 시어머니란 사람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이동할 때까지, 그리고 누나가 다시 집으로 사라질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그렇게 약 10분에서 20분 정도를 기다린 끝에 마치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복도로 나와 집으로 걸어갔다. 다행히 옆집누나는 집에 들어갔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한 때 엄청 친하게 지냈던 누나가 우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렇지도 않구나. 결혼 생활이 쉬운 게 아니라더니, 누나마저도 저럴 줄이야.’

조금 전의 대화를 떠올리며, 성준은 괜스레 그녀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올해로 결혼 2년차, 신혼부부인 옆집 누나는 10년 전에도 성준의 옆집에 살고 있는 이웃이었다. 부모님이 시골로 내려가고 살고 있는 집을 받아서 지금의 남편과 같이 살고 있는 중인데, 그녀는 과거에나 지금이나 늘 한결같이 착하고 친절하고 다정한 성격으로 유명했다. 그 덕에 성준네 집하고도 사이가 좋았으며, 성준도 그녀하고 매우 가까운 사이로 남을 수 있었다.

그런 그녀가 결혼 이후로 시댁 때문에 이렇게 슬퍼하니, 성준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남편도 성격이 살짝 이상하다고 하니, 성준은 옆집을 지날 때마다 괜스레 안쓰러운 마음이 들곤 했다.

‘에이, 어차피 이젠 더 이상 신경 쓸 문제는 아니니까. 누나가 알아서 잘 하겠지...남의 집 일에 너무 참견 말자.’

과거 같았으면, 누나가 결혼하기 전이었다면, 문제가 발생했을 시 성준이 어느 정도 도움을 줬을 것이다. 전에도 누나가 혼자 살고 있을 때, 가끔씩 전구를 갈아주거나, 무거운 물건을 옮겨주는 것을 도와주거나, 가끔씩은 누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가족이란 존재가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참견할 필요가 없다고 그는 판단했다.

그렇게 성준은 방금 전에 들은 대화 내용을 싹 다 지우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당장 신경 써야 될 부분이 한 두 개가 아니었기에 저런 것에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집에 들어가서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 뜻밖의 상황을 목격하고 말았다.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으리라 생각했던 옆집 누나가 그의 집 거실에 있는 것이었다.

“준이 왔어? 과일 먹을래?”

“아, 아니...누나는 왜 지금 이 시간에...?”

물론, 옆집 누나가 성준네 집을 따고 허락 없이 들어와 있을 리는 없었다. 그녀의 옆에는 성준의 친누나인 ‘성하은’이 앉아있었다. 원래라면 회사에 있을 시간이었기에 성준은 뜻밖의 두 사람의 등장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 병원 진료 때문에 일찍 끝났거든. 병원이 이 근처라서 준이 보고 가려고 잠깐 들렀어.”

“아아...지은이 누나는 왜...?”

“지은이는 잠깐 나랑 할 얘기가 있어서 내가 불렀고. 미안한데, 준아. 잠깐 지은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런데 자리 좀 비켜줄 수 있어?”

“으응, 안 그래도 공부할 생각이었어. 계속 방에 있을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대화해.”

“고마워. 여기, 과일 가지고 들어가고.”

옆집 누나 ‘신지은’이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성준의 친누나 때문이었다. 신지은이 시어머니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것을 알게 된 그녀가 집 안으로 불러들인 것이었다. 그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었던 성준은 알았다고 말하며 누나가 건네준 과일 그릇을 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걱정됐는데, 그래도 누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나저나 별 일은 아니겠지? 신경 쓰지 말라고 해놓고선 오히려 내가 신경 쓰이네.’

방으로 들어온 성준은 교복을 벗고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공부 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자꾸만 거실에서 두 여자가 나누고 있는 대화가 궁금해졌다.

원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상황에서 궁금증이 피어나지 않던가. 결국, 참다못한 그는 그들 몰래 아주 살짝 문을 열어놓고 대화내용을 엿 들었다.

“진짜 너무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식으로 말하시면 안 되는데...”

“에휴,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내 잘못인 걸 어쩌겠어.”

“네 잘못이라고도 할 수 없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아무도 예상 못했잖아. 네가 애를 안 가지겠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성준이 사는 집은 방음이 그리 썩 좋은 집이 아니었기에 문을 살짝만 열어놔도 거실에서 말하는 소리가 다 들려왔다. 성준은 문 앞에 바싹 붙은 채로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신지은이 시어머니에게 그런 수모를 당한 이유는 애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어버렸으니까...내 책임이지...내가 일 때문에 계속 미뤘으니까...”

“아직 모르는 일이잖아.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4일 전에 관계를 가졌다니까 혹시 모르잖아. 4일 전이면 아직 이런 일이 발생하기 전이니까 가능성 있다고 생각해.”

“관계를 가지긴 했는데...안에다가 한 게 아니라서...밖에 싸고 나서 연속해서 넣긴 했지만, 솔직히 임신이라는 게 안에다가 했더라도 한 번에 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내가 최근에 생리주기가 불안정해서 가능성도 떨어지니까 문제야. 아마도 아닐 거야. 이미 체념하고 있어.”

“그래도 아직 가능성이 있으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

“그래그래, 나뿐만 아니라 너도 요즘 스트레스 많을 텐데,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했네.”

성준의 예상은 맞았다. 신지은이 조금 전에 시어머니한테 혼났던 이유는 임신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으로 추측하건데, 그동안 신지은이 자신의 일 때문에 임신을 미뤄왔을 것이다. 그러다가 이번 사건이 터지면서 애를 가지지 못하게 되면서 시어머니한테 욕을 먹었던 것이었다.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갑자기 손주를 못 보게 되었으니, 그 정도로 화가 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너처럼 욕먹고 있지는 않으니까...”

“그 사람은 뭐라고 해? 괜찮다고 해?”

“으응, 아직까진 내 편을 들어주고 있긴 한데...아무래도 어머님이 문제지.”

“너나 나나 비슷한 상황이구나.”

“그러게...진호씨 말로는 당분간은, 적어도 몇 년 동안은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걱정이야.”

“맞아, 우리 남편도 헌터부대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직접 알아봤는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비상사태라고 하더라도. 히어로 협회에서도 딱히 답이 없다고 하고. 이미 부자들은 정부랑 정자은행에 돈을 뿌려서 예약 받고 있다던데...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이야.”

“그래도 돈만 있으면 기증 받을 수는 있는 거야?”

“아마도 우리 같은 서민들은 힘들지 않을까? 일단, 최대한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고 있으니까 괜찮으 정보가 있으면 바로 말해줄게.”

“으응, 고마워.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같이 힘내자.”

그 밖에서 성준은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서 다양한 내용들을 알 수 있었다. 첫 번째로는 신지은뿐만 아니라 자신의 친누나도 이번 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두 번째로는 이번에 발생한 문제가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아기를 낳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치명적임을 알 수 있었다.

‘누나...남자친구하고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갑자기 이런 문제가 발생해서 요즘 고민이 많았구나. 어떡하지...지금 내 능력으로...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는 한 가지 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저들의 고민은 몬스터 때문에 갑자기 남자들의 씨가 말라버리면서 임신을 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우연히도 아직까지 발기가 가능하고 여자를 임신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 중이다. 그가 이 능력을 이용한다면, 두 여자의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것이다. 친누나야 근친 문제 때문에 조금 망설여지긴 했지만, 신지은만큼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있었지만, 오로지 그 자신만의 판단으로 결정할 수는 없었다. 신지은과 누나에게 허락을 받아야하는 것은 당연했으며, 그 과정에서 자신만 가지고 있던 비밀을 외부로 새나갈 수도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조금 더 알아보자. 아무리 급해도 사람의 목숨이 달릴 정도는 아니니까...조금 더 알아본 다음에 결정하자.’

결국, 그는 조금 더 고민하는 쪽으로 선택을 내렸다. 그의 누나나 신지은이나 목숨이 달릴 정도로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아기를 만들지 못한다고 해서 생명에 지장은 없었고, 지금 당장 급한 것이 아니었기에 조금 더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고자 했다. 여기에 섹스 경험이 전혀 없는 것도 그가 이런 판단을 내리는데 한 몫을 했다.

‘하...돌겠네...왜 하필이면 나한테 이런 일이...하아...’

그렇게 그 대화를 끝으로 신지은은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신지은이 돌아간 것은 확인한 성준은 다시 방문을 닫고 책상에 앉아 공부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머리로는 도저히 공부가 될 리가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져서 그의 마음을 억눌렀다. 그는 연신 한숨을 내쉬면서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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