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신 클리닉-13화 (13/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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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다음날

또 다시 하루가 지나갔다. 이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 지도 벌써 6일째다. 거의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사태의 심각성과 달리, 세상이 크게 바뀐 것은 없었다. 여전히 정부와 히어로 협회, 헌터부대는 이 현상에 대한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고, 일반 사람들은 더 이상 임신을 못한다는 점에서 좌절하기도, 때로는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늘 그랬듯이 평상시처럼 지내기도 했다.

그리고 여기 한 남자는 그들과 달리 하루하루를 복잡한 고민 속에서 보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성준. 다른 남자들과 달리 성적 기능이 멀쩡했던 그는 오늘도 불안과 긴장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내일까지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편이 좋겠지. 지은이 누나가 어떤 선택을 내릴 지는 모르겠지만, 따르는 수밖에...’

어제 그는 고민 끝에 옆집에 사는 신지은을 도와주기 위해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막상 비밀을 털어놓고 나니, 시원한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초조함을 느끼는 그였다.

특히나 그녀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했기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내일까지 기다려야 된다는 사실에 상당히 불안하고 긴장이 되었다. 누나를 자신의 힘으로 임신 시켜야 된다는 사실도 마음에 걸렸지만, 혹시라도 비밀이 다른 곳으로 새나가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그녀의 의견이 중요했기에 그녀가 결정을 내릴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잘 알고 있었던 그는 하루 동안은 최대한 그 생각을 잊고 마음을 비우고자 노력했다.

다행히 학교 수업이 시작되면서부터 어제 있었던 일들을 조금씩 잊을 수 있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신지은과의 일을 비워낼 수 있었고, 수업시간에도 최대한 그 생각을 떠올리지 않으면서 버티고 버텼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그는 한 가지 주의사항 마저도 비워내고 말았다.

바로 발기에 대한 것이었다.

‘자면 안 되는데...안 돼...안 돼...안...도....ㅐ....’

5교시 체육수업을 마치고 6교시가 되었다. 6교시는 영어시간. 영어는 헌터부대에서도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었기에 그는 수업에 집중하고자 했다.

하지만 문제는 5교시에 있던 체육시간이었다. 오늘따라 체육선생님이 공부를 위해서는 체력단련이 중요하다면서 전체적으로 애들을 굴리는 바람에 체력이 바닥나버린 것이었다. 그 바람에 6교시가 시작되자마자, 잠과의 전쟁이 펼쳐졌고, 성준의 그 싸움에 패배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성준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이 싸움에서 패배하고 말았다는 점이었다. 영어 선생님은 그런 애들을 이해해주었고, 다행히 성준이 자리에서 강제로 일어날 상황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문제는 영어수업이 끝난 그 이후에 일어나고 말았다.

“준아! 준아, 일어나! 이제 미술실 갈 시간이야!”

달콤한 꿀잠을 자고 있던 성준을 깨운 것은 그의 짝궁, 박수아였다. 그녀는 성준의 몸을 흔들면서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으으...벌써 7교시야?”

“얼른 일어나! 지금 바로 안 가면 늦을 것 같아!”

그녀의 다급한 외침에 성준이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깼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7교시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벌써 반 아이들은 미술실로 이동한 상태였고, 교실에는 성준과 그녀만이 남아있었다.

“왜 먼저 안 가고? 설마 나 때문에?”

“오늘 내가 주번이잖아. 네가 너무 깊게 자고 있어서 바로 깨우기가 좀 그랬어.”

“아아, 미안. 나 때문에 너까지. 7교시가 미술이었지?”

“책은 필요 없으니까 바로 일어나서 가자. 얼른!”

그녀가 끝까지 남아서 성준이 일어나길 기다렸던 이유는 문단속을 해야 되는 주번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전히 다급한 목소리로 성준에게 소리쳤고, 그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이동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성준은 순간적으로 자신에게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긴 시간동안 꿀잠을 잤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자x는 단단하게 커진 채로 교복 바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중이었다.

“뭐하고 있어? 이러다 정말 늦겠어! 빨리 가자!”

다시 한 번 그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하지만 성준은 그녀의 목소리를 전혀 들을 수가 없었다. 그의 심장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요동치기 시작했고,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야 될까.

“머, 먼저 가. 잠깐...할 게 있어서...”

“뭐라고? 지금 늦었다니까! 도대체 교실에 혼자 남아서 뭘 할 건데? 그리고 내가 주번이란 말이야!”

“아...그러니까...열쇠주고 먼저 가. 내가 알아서 갈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그러지 말고 얼른 일어나! 빨리!”

도저히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던 성준은 막무가내로 그녀에게 먼저 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통할 리가 있겠는가. 그녀는 답답한 표정으로 성준에게 다가왔고, 다짜고짜 그의 팔을 잡아당겨 억지로 그를 일으켜 세웠다. 애써 힘을 주며 버텨봤지만, 끝까지 그럴 수 없었던 성준은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자, 잠깐...안 되는데...”

“늦었다니까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그리고 그가 일어서는 순간, 그녀는 볼 수 있었다. 성준의 바지가, 그것도 중심부위 쪽이 상당히 튀어나와있음을 말이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그녀는 할 말을 잃은 듯이 멍한 표정으로 그곳을 바라보았고, 성준은 마른 침을 삼키며 크게 당황했다.

“그, 그러니까...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그녀에게 들켜버린 이상 더 이상 감추는 것은 무리였다. 아무리 그녀가 순수하고 조용한 성격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18살이면 벌써 성에 대해서 알 건 다 아는 나이였다. 더군다나 최근에 벌어진 현상으로 발기가 무엇인지는 필히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어쩔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린 성준은 솔직하게 그녀에게 사실을 얘기하고자 했다. 사실을 말하면서 간절히 부탁한다면 비밀을 유지해줄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우, 우선!! 미, 미술실...미술실부터 가자!”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그녀는 크게 놀란 나머지 성준의 말을 듣지도 않고 고개를 돌려 미술실로 향했다. 동작이나 말투가 상당히 딱딱하고 어색해진 것으로 봐서는 성준만큼 당황한 것으로 보였다.

“저, 저기...문 잠그고 가야지.”

“아...그, 그러니까...빨리 나오라고 했잖아!!”

“미, 미안...”

심지어 그녀는 문도 잠그지 않은 채 바로 미술실로 이동하려고 했다. 성준이 그런 그녀를 붙잡자, 도리어 화를 내기도 했다. 성준은 발기가 된 상태에서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걸어서 교실을 빠져나왔고, 그녀는 바로 문을 닫았다.

“느, 늦을 것 같으니까...뛰어가자. 나 먼저 갈게!!”

문을 잠근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미술실을 향해 뛰어갔다. 굳이 지금 상황을 벗어나려는 그녀를 붙잡을 수는 없었기에 성준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가 할 수 있는 건 길게 한숨을 내쉬는 것뿐이었다.

‘또 다시 고민이 늘었어. 요즘따라 왜 이러냐. 왜 자꾸만 고민이 늘어나는 건데...이제 하나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가 더 늘어버리다니...그것도 엄청난 문제가...’

그 사건 이후로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그녀는 7교시 내내 성준하고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심지어 7교시가 끝나고 교실로 돌아가서도 성준에게 말을 걸기는커녕 눈길도 한 번 주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자신을 피하고 있음을 느꼈던 성준은 그녀에게 사실을 얘기해야 되나 고민이 되었지만, 차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이 조심하지 않으면서 발생한 일이었기에 그는 자기 자신을 원망했다.

결국, 모든 수업이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성준은 그녀와 한 마디 말도 나누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그녀를 붙잡고 얘기해보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그녀를 더 자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심스러웠다.

‘에휴, 한심하다, 한심해. 그렇게 조심하자고 다짐해놓고선 이런 상황을 만들다니...나 같은 놈은 그냥 생체실험 당하다가 죽어도 싸.’

지금 상황에서 그는 철저한 을이었다. 그녀의 마음이 안정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또 다시 복잡해진 마음으로 집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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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집안, 한 여자가 매우 결연한 표정으로 집안일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올해 32살로 2년 전에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보내고 이 집을 혼자 지키고 있다. 거의 2년 가까이 슬픔에 갇혀서 폐인처럼 지내왔던 그녀는 다시 한 번 크게 마음을 먹고 새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새출발이 그리 마음먹은 것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새출발을 다짐하는 그녀가 견뎌내야 될 것들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우선, 사람들의 그릇된 시선부터 참아야했으며, 그동안 같이 해오던 일을 혼자서 해내야 된다는 점도 문제였고, 무엇보다 그녀의 마음을 억누르고 괴롭히는 공허함과 외로움이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큰 적이었다.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옆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결혼한 지는 올해로 5년 째였다. 2년 전에 남편이 죽기 전까지 그녀는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 둘은 언제나 함께였다. 서로에게 힘든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기쁘거나 행복한 일이 있어도 함께 받아들이면서 남부럽지 않게 지내왔다. 불과 3년 만에 끔찍한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행복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불행한 현실은 그녀를 찾아오고 말았고, 그녀는 그대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다. 그녀는 그 안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했다. 남편을 잃은 슬픔은 계속해서 그녀를 갉아먹었고, 고아원에서 자란 그녀를 감싸줄 가족은 한 명도 없었으며, 남편과 만나면서 친구들마저 대부분 정리를 했기에 그녀를 위로해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꾸만 작아져갔고, 그 과정에서 유산까지 겪으면서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렇게 그녀는 집에 갇힌 채로 아무도 들이지 않고 밖에 나가지도 않은 채로 약 2년 동안 폐인의 삶을 살아왔다. 우울증에 대인기피증까지 찾아온 그녀를 반겨주는 사람도 없었고, 그녀 또한 다른 사람들을 믿지 못했다. 남편 사망 보험금과 국가에서 지원해준 보상금의 액수가 상당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이를 노리고 접근하기까지 했기에 그녀의 입장에서는 더욱 집 안에 갇혀 살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삶은 그대로 절망으로 끝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신은 그녀를 버리지 않았다. 계속해서 방에 갇힌 채로 살아가던 그녀는 어느 날 문득,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갑작스럽게 아이를 간절히 바랐다. 비록 남편이 없이 혼자 살아가게 되었지만, 돈도 충분했고,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도 그대로였기에 충분히 키울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는 다시 일어서게 되었다.

물론, 아이는 가지고 싶다고 해서 바로 바로 생길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었다. 현실적인 문제부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서 포기한다면, 정말로 자신의 삶이 완전히 무너질 것만 같았기에 마지막으로, 이것이 정말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버텨냈고, 마침내 일어설 수 있었다.

힘을 내서 일어선 그녀는 차근차근 아이를 가지기 위한 준비를 했고, 폐인생활을 하나씩 정리해갔다. 아직까지 주변의 시선이 두렵고, 혼자 지내는 게 외로웠지만, 견디고 또 견뎌냈다. 이 상태로 아이만 생긴다면, 자신의 문제 따위는 충분히 극복해낼 수 있으리라 그녀는 믿었다.

그렇지만 신은 상당히 잔인했다. 두 번의 기회를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용기를 내서 하나씩 극복해나가던 그녀에게 또 다른 시련이 주어지고 말았다. 갑자기 전 세계적으로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면선 남자의 씨가 말라버린 것이었다. 이제 막 용기를 내서 일어난 그녀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다시 한 번 그녀를 절망으로 빠트리는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녀가 섣불리 포기를 외치고 절망에 빠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녀는 이대로 어렵게 일어선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이런 현상이 발생한 지 고작 6일째였다. 정부와 히어로 협회, 헌터부대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기에 곧 현상이 해결되리라 믿었다. 만약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냉동정자를 구해서 아이를 가질 생각이었다. 거의 집착에 가까운 그녀의 생각은 그녀를 나락에 빠트리지 않고 견뎌낼 수 있도록 힘을 주었고, 그녀는 매일매일 집안일을 하고,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임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오늘도 그녀의 삶은 아이를 위해서 바쁘게 돌아갔다. 혼자 사는 집에서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싶었지만, 그녀는 매일 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으며, 요리를 만들었고, 남은 시간에는 공부나 책을 보며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조금이라도 여유를 부렸다가는 절망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기에 계속해서 몸을 움직인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그녀의 몸은 이상하게도 무거웠다. 최근 들어서 스트레스가 심한 상태에서 너무 무리를 해서 그럴까. 청소를 마치고 막 요리를 하던 그녀는 순간 심한 두통과 함께 어지럼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순간적으론 눈이 번쩍이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가 쓰러짐과 동시에 요리를 위해 올려두었던 냄비에는 어느새 물이 펄펄 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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