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신 클리닉-22화 (2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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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많은 걸 바란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삶을 원했던 건데...하...한심하다, 신지은...’

사랑 공원 내에 위치한 카페 안에서 신지은이 홀로 커피를 마시며 연신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녀는 매우 추레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집에서 급히 빠져나온 것처럼 보였다.

‘나만을 사랑한다고 했던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다니...역시 결혼은 사랑만으로는 안 되는 거였나. 친구들 말을 들었어야 했어...’

그녀가 이런 차림으로 이곳에 오게 된 이유는 남편하고의 갈등 때문이었다. 임신 문제로 남편하고 크게 다툰 그녀는 도저히 분이 풀리지 않아서, 억울함을 속으로 달랠 수가 없어서 밖으로 뛰쳐나온 것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공원에서 산책을 하면서 마음을 조금이라도 달래고자 했지만, 아쉽게도 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고작 2년도 되지 않았던 결혼생활 자체를 후회하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부족함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녀였지만,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 이후부터는 180도 삶이 달라지게 되었다. 임신을 못한다는 게 사람을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 줄은 상상도 못했던 그녀였다.

무엇보다 그녀가 가장 실망한 것은 남편의 태도였다. 그녀의 남편은 다른 남자들에 비해서 겉으로 드러나는 능력은 부족한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과 가정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전혀 부족하지 않아서 그동안 행복한 신혼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임신 문제로 이렇게까지 달라진 모습을 보일 줄은 그녀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녀를 괴롭히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기만 하던 그였지만, 오늘은 술을 잔뜩 먹고 와서는 그녀에게 막말을 내뱉는 수준에 이르고 말았다. 갑자기 달라진 남편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아내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결국, 그녀 역시도 참지 못하고 이렇게 집을 나와서 방황하게 되었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분이 풀리지 않아...너무 답답해...하지만...그래도 내 문제고...가족 문제인데...이래도 되는 걸까...내가 너무 이기적인 거겠지? 지금이라도 문자를 보내서 괜찮다고 말할까...하지만...너무 외롭고...힘들어...’

문제는 집을 나와서도 그녀의 마음이 풀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공원을 돌며 산책을 해도, 그녀가 좋아하는 커피와 달달한 디저트를 먹어도, 아무리 생각을 정리하고 또 정리해도 그녀의 억울한 마음은 여전했다. 결국, 참다못한 그녀는 자신의 이 감정을 풀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한 사람을 불러내기에 이르렀다.

다만, 자신이 너무 그 사람에게만 의존하는 기분이 든다는 점이 살짝 걸렸다. 특히나 그하고는 저번 일로 상당히 어색해진 사이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친한 친구의 동생이고, 미성년자이기까지 했기에 그녀의 마음이 상당히 불편한 것은 당연했다.

그럼에도 그녀가 그 사람을 불러낸 것은 그만큼 그가 자신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으리라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재 그 사람은 그녀의 마음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도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기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번만...이번 한 번만이야. 딱 이번 한 번만 기대자.’

그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에 마음이 아파왔지만, 그것은 그녀가 남편과 시댁에서 당하는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이번 한 번만 자존심과 죄책감을 내려놓고 그에게 의지하고자 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자, 그녀는 마음이 조금은 풀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위잉

마음의 결심을 내린 그녀에게 누군가가 문자를 보내왔다. 그 사람이었다. 사랑 공원에 도착했다는 그 사람의 문자에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그에게 안기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누르며, 그녀는 침착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그를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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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

사랑 공원에 도착한 성준은 입구 근처에 위치한 벤치에 앉아서 그녀를 기다렸다. 일요일 저녁 늦은 시간이었지만, 공원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직까진 밤에도 날씨가 더운 편이었기에 저녁임에도 산책을 나오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편이었다. 성준은 그들을 바라보며, 자신도 가끔씩은 공부를 마치고 밤에 나와서 운동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준아!”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멀리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준이 고개를 돌리자, 집에서 입는 것이라 생각되는 편안하면서도 허름한 복장을 하고 있는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두 사람은 근처에 위치한 카페 안으로 들어가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지은은 카페에서도 가장 구석에 위치한 자리로 성준을 데리고 갔다. 아마도 중요하면서도 은밀한 대화를 나눌 생각인가 보다.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데, 이 시간에...?”

“미안, 나 때문에 공부도 못하고 나왔지? 정말 미안해.”

“아니야, 공부하던 중 아니었어. 집에 누나가 와서, 밥 먹고 쉬고 있던 중이었거든.”

“아, 하은이가 왔었어?”

“응, 오늘 하루는 집에서 자고 간다고 하더라고. 원래 일주일에 한 번씩은 들러서 반찬 채워주고 가거든.”

“아아...그랬구나. 그러면...일찍 들어가야겠네?”

“12시 전에만 들어가면 될 거야.”

“12시면 얼마 남진 않았지만, 그래도 다행이네.”

성준의 집에 그의 친누나, 성하영이 왔다는 말에 그녀가 살짝 당황하면서도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래도 12시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기에 그녀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성준을 이곳에 부른 이유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인데? 옷차림은 또 왜 그렇고? 집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실은...남편하고 조금 다퉈서...”

“남편하고? 어쩌다가...”

“당연히 그 문제 때문에...”

그녀가 이런 옷차림으로 급하게 집에서 나온 이유는 당연하게도 임신 문제 때문이었다. 성준은 짐작은 했었어도 그녀의 입으로 직접 이유를 듣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랬구나...남편이라도 누나 편이 되어줬으면 훨씬 좋았을 텐데.”

“그러게...자꾸만 임신 얘기를 꺼내면서 나무라니까...참지 못하고 무작정 밖으로 나와 버렸어. 근데 깜빡하고 지갑을 안 들고 나오는 바람에...다행히 주머니에 약간의 돈이 있긴 했지만, 이걸로 카페 말고는 들어갈 곳이 없더라고. 친구들은 대부분 멀리 살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준이 너밖에 없었어. 무엇보다 준이, 너는 내 상황을 가장 잘 이해해줄 수 있으니까...”

“누나가 지금 상황에서 제일 힘들어하고 있는데, 가족이라는 사람까지 나서서 뭐라고 한다면, 당연히 억울하고 서운할 수밖에...”

“정말 고마워, 준아. 너밖에 없다...”

그녀는 이어서 성준을 부르게 된 이유와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성준은 저번 일로 상당히 신경이 쓰이고, 걱정이 되었는데, 그녀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믿어주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녀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도 더욱 굳어졌다.

“아니야, 누나야말로 나를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워. 누나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있다는 점에서 기분 좋은 걸? 그럼, 지금 돈이 한 푼도 없는 거야?”

“으응...”

“집으로는 들어갈 생각이 없고?”

“...응...오늘은...들어가기 싫어.”

“그러면 어떡하지? 찜질방이라도 가야되나? 내가 그 정도 돈은 줄 수 있거든.”

“찜질방도 괜찮지. 지금은 집만 아니면 어디라도 상관없어.”

현재 그녀를 돕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될까. 성준은 가장 먼저 자신의 지갑을 살피면 돈을 계산했다. 아직까지 누나가 준 용돈이 충분했기에 그녀에게 줄 돈은 충분했다. 다만, 그녀를 어디로 데려가느냐가 중요했다.

“찜질방은 조금 불편하려나? 마음 같아서는 호텔이라도 잡고 싶지만...누나도 알다시피 나도 용돈을 받고 사는 입장이라...”

“아니야, 호텔은 무슨. 이렇게 나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걸. 그냥 찜질방에서 자면 되니까 괜찮아.”

“그래도 찜질방은 좀 그런데...으음...그러면...모텔은 어때?”

그는 최대한 그녀가 오늘 하루를 편하게 보내길 바랐다. 자신은 집에서 기다리는 친누나 때문에 내일까지 그녀를 보살필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렇기에 찜질방보다는 마음 편하게 보낼 수 있는 곳을 원했다. 처음에는 호텔을 떠올리던, 그는 이내 우리나라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숙박업소인 모텔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미성년자라 아직까지 그곳에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봐왔던 야동들을 통해서 모텔이 얼마나 시설이 좋은지 알고 있었던 그였다.

“아...나야 좋지. 모텔이면 찜질방보다는 아무래도 훨씬 좋으니까...사람도 없고, 침대도 있고, 샤워실도 있어서 편할 거야.”

“맞아, 모텔 정도면 그리 비싸지도 않아서 괜찮을 것 같아.”

“으응, 그래. 고마워, 정말. 나중에 꼭 갚을게.”

“에이, 이 정도야 뭐. 누나가 전에 나한테 해준 거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지.”

그녀도 모텔에 대해서 거부감은 딱히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아도 은근히 모텔을 바랐던 눈치였다.

“저기...그리고 말인데...”

그리고 드디어 그녀가 아직까지 감추고 있던 속내를 성준에게 꺼내고자 했다. 그녀가 성준을 부른 것은 그로 하여금 잘 곳을 구하고, 그에게 정신적인 위로를 받는 것도 있었지만,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었다.

“응? 왜? 또 필요한 거 있어? 뭐든지 다 말해줘. 내가 돈은 별로 없지만,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아니, 그러니까...저번에 말이야...”

“아...응...”

“저번에 내가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당황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제대로 못한 것 같아서...”

“아...아니야, 나야말로 최대한 누나를 배려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해. 사실, 그 이후로 걱정 많이 했거든. 괜히 나 때문에 누나가 불편해진 게 아닐까 싶어서.”

“절대 준이 탓이 아니야. 내가 이상했던 거지...아무튼 그래서 말인데...부끄럽긴 하지만...그래도 우리 계획이 아직 끝난 건 아니니까...”

그녀가 꺼내든 것은 역시나 임신과 관련된 것이었다. 최근에 그녀가 성준에게 의지하게 된 것은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저번에 임신을 시도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흥분을 절제하지 못했던 게 상당히 창피고 신경 쓰였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계획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방금 전만 해도 임신 문제 때문에 남편하고 크게 다투고, 결혼까지 후회하지 않았던가. 그녀의 입장에서는 부끄럽더라도 더욱 성준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맞아, 임신이 한 번으로 되는 건 아니니까 계획대로 진행해야지. 걱정 많이 했는데, 누나가 괜찮다고 하니까 정말 다행이다. 다음부터는 더욱 조심할게.”

그녀의 이야기에 성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그녀하고의 관계가 어색해질 것이라 생각했던 그였기에 이렇게 그녀가 먼저 다가와준 것이 고맙기도 했다. 그는 다시 한 번 계획을 진행시켜서 임신이 성공해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랐다.

“그래서...내가 생각해봤는데...그 계획을...오늘...하는 건 어떨까? 어차피 말이 나온 김에...해버리면...”

“오늘? 지금 당장 말하는 거야?”

“응...아무래도 힘들겠지? 힘들면 억지로 안 해도 괜찮아...그냥...남편 때문에 최대한 빨리 하고 싶어졌나봐...미안...”

그런데 그녀는 지금 당장 계획을 실현시키길 원했다. 그 말은 즉, 지금 당장 성준과 섹스를 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물론, 성적 만족이 아니라 오로지 임신을 위한 것이겠지만, 성준은 그녀의 말에 살짝 당황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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