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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성준은 밤까지 집중력을 발휘하며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가 조금 복잡하긴 했지만, 고시원에서 집에 온 이후부터는 하루라도 편안했던 적이 없었기에 이제는 이런 상황이 오히려 더 익숙해진 그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공부를 하던 그는 밤 11시가 지나서야 책상에서 일어났다. 내일도 학교에 가야했고, 컨디션이 썩 좋지도 않았기에 그는 오늘은 딱 이정도만 하고 마무리 짓고자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매일 공부를 하다니...나도 참 대단하네. 예전에는 조금만 피곤해도 바로 포기하곤 했는데...많이 성장했다.’
책을 덮은 성준은 이제는 하루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샤워를 했다. 매일매일 공부를 거르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끼며 가볍게 샤워를 마친 그는 매우 상쾌한 기분을 느끼며 밖으로 나왔다. 마치 복잡하던 머리도 말끔히 씻어낸 기분이었다.
띵동 띵동
하지만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그런 그의 씻겨 진 마음을 또 다시 더럽혀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에 누가 찾아온 것일까. 그는 재빨리 옷을 입고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밤 11시 반에 찾아올 사람이 있던가? 누나였으면 굳이 벨을 누를 이유는 없고, 누구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가족이 아닌 이상 아무 말 없이 저녁 11시 반이 넘는 시간에 벨을 울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성준은 상당히 신경질적인 표정을 지으며 문을 열었다.
“지은이 누나? 누나가 이 시간에는 왜...?”
하지만 문이 열리는 순간,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 시간에 벨을 누른 사람은 바로 옆집에 사는 신지은이었다. 지금 시간이면 집에 돌아온 남편과 함께 있을 그녀가 어째서 그의 집에 들른 것일까. 그녀는 그 이유를 물을 새도 없이 문이 열리자마자 바로 집안으로 들어왔다.
“미안해, 준아...정말 미안한데...오늘 하루만...딱 하루만 부탁하면 안 될까?”
더 큰 문제는 그녀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공포에 떨고 있었다. 무언가가 그녀를 이토록 불안하게 만든 것일까.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최근 성준이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인 그녀의 이런 모습에 어찌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는 바로 그녀를 부축해서 거실로 이동했다.
“물이라도 줄까? 아니, 몸이 많이 차다. 잠시만 기다려봐. 내가 마시는 차라도 줄게. 수면에 좋은 차라서 괜찮을 거야.”
그녀를 소파에 앉힌 성준은 샤워를 마치고 먹을 예정이었던 차를 그녀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는 일단 그녀를 차분하게 진정시킨 뒤, 이곳에 온 이유를 묻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다.
“여기, 뜨거우니까 천천히 마셔.”
“고마워, 준아.”
차를 마시는 그녀의 표정이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마음을 추스르던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 불쑥 찾아온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성준은 그녀의 바로 옆에 앉아서 차분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 하나하나 경청하고자 했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 많이 놀랐지?”
“나보단 누나가 더 걱정이지.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실은...남편 때문에...”
“아...혹시 싸우기라도 한 거야?”
“...으응...”
그녀가 성준의 집에 찾아온 이유는 남편 때문이었다. 최근에 남편과 자주 다툰다고 하더니, 오늘은 진짜 크게 싸운 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녀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내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괜찮은 거야? 많이 놀란 것 같던데...”
“지금은 조금 괜찮아졌어. 처음에는 놀라기도 하고, 너무 무서워서...막상 집을 뛰쳐나왔는데 딱히 갈 곳이 없잖아. 생각나는 게 준이, 너밖에 없었어...”
“잘했어. 지금 이 시간에 갈 곳이 어디 있다고. 잘 찾아왔어.”
“고마워...네가 없었으면...정말 힘들었을 거야...정말 고마워, 준아...”
성준은 절대로 그녀의 행동에 대해서 나무라지 않고 진심을 다해서 위로해주었다.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편이 되어줄 사람이었다. 그녀를 도우주기로 결심한 만큼 그는 최선을 다해서 그녀의 편이 되어주었다.
“내 남편이지만...내가 한 때는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지만...이럴 줄은 꿈에도 몰랐어.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할 줄이야...너무 무서워...”
이어서 그녀는 남편과 싸우게 된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그녀가 남편과 싸운 이유는 당연히 임신과 관련된 문제 때문이었다. 특히나 오늘 같은 경우에는 남편이 술을 잔뜩 먹고 집에 들어왔다고 한다. 멀쩡한 상태에서도 자주 과거 일을 들먹이며 그녀에게 잔소리를 하곤했던 그였는데, 잔뜩 취한 상태에서는 어떻겠는가. 참다못한 그녀가 말대꾸를 하자, 큰 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이고, 중간중간 욕설에다가 신경질적으로 벽과 문을 걷어차고 그녀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남편의 폭력적인 모습에 두려움에 빠진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집을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 성격으로는 안 보였었는데...술이라는 게 참 무섭네. 많이 무서웠겠다. 혹시 전에도 그랬던 적이 있었어?”
“아니...이번에 처음이야. 원래는 화가 나더라도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는데...얼마나 나한테 실망을 했으면...얼마나 내가 싫으면 그럴까...너무 무섭고 떨려서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었어...”
“절대 누나 잘못 아니야.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누가 있겠어. 그리고 요즘 세상에 속도위반도 아닌데 결혼 1년차에 아기 가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술 때문에 순간적으로 욱해서 그런 거지, 절대 누나한테 실망했거나 누나가 싫어서 화낸 게 아닐 거야.”
“흑...그렇겠지? 요즘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아...너무 힘들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성준은 그녀를 가볍게 품에 안고는 어깨는 토닥여주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녀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성준과 그의 능력뿐이었다. 그 사실을 성준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너무 걱정하지 마. 임신만 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 다시 예전처럼 행복해질 수 있어.”
“흑흑...정말 그럴까? 임신만 하면...다 돌아갈 수 있겠지?”
“당연하지. 분명히 그럴 거야. 어쩌면 예전보다 더 행복해질 수도 있지.”
“임신...꼭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를 도와주기 위해서는 무엇을 하는 게 좋을까. 정신적으로 위로를 해주는 것이야 지금도 이미 하고 있다. 조금 더 현실적인 도움을 위해서는 역시나 성준만이 지니고 있는 그 능력을 활용하는 것이 좋았다. 성준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말을 꺼냈다.
“임신만 하게 된다면 행복질 수 있어. 그런 의미로 최대한 빨리 임신을 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거야. 그래서 말인데, 내 생각에는...조금은 힘들겠지만 그래도 무리해서라도 자주 관계를 가지는 게 어떨까 싶어. 물론, 누나가 원하지 않는다면 강제로 할 생각은 없지만...”
성교육을 통해 임신에 대해서 배웠던 성준은 임신이라는 게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가임기에 질 내 사정을 하더라도 안 될 가능성이 높은 게 바로 임신이다. 하물며 생리가 불규칙한 그녀라면 어떻겠는가. 더군다나 성준의 정자가 정상이라는 법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성준은 조금이나마 그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최대한 자주 관계를 가져야 된다고 생각했다. 많은 양의 정액들을 지속적으로 그녀의 자궁 안으로 집어넣는다면 그 중에 하나는 끝까지 살아남아 난자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아니야...맞아, 준이 네 말이 맞아. 임신을 위해서라면...힘들어도 노력해야겠지. 나만 운 좋게도 이런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제대로 활용해야지. 그동안 바쁘기도 하고, 워낙 정신이 없어서 시간을 못 냈던 것 같아. 이제부터라도 자주 시간을 내도록 노력할게.”
“하루라도 빨리 누나가 임신했으면 좋겠어.”
“고마워, 정말. 그나저나 갑자기 하은이나 하영이가 오지는 않겠지?”
“오더라도 이 시간에 갑자기 들이닥칠 일은 없을 거야. 누나야 말로 집에 안 들어가 봐도 되는 거야?”
“아내가 자기 때문에 충격 받아서 집을 나가는 데도 전혀 붙잡지도 않았는걸. 이미 저번에도 한 번 이랬던 경험이 있으니까 괜찮아. 아마도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오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
그녀 역시 성준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녀에게 성준은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는 임신을 시켜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나아가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은 공허함과 외로움을 채워줄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제안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는가. 애초에 그녀가 집을 뛰쳐나와 이곳에 온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저번에 남편이 뭐라고 안 했어?”
“별 말 없이 지나가더라. 원래 결혼이란 게 다 그렇거든. 괜히 지나간 일 끄집어내면 걷잡을 수 없이 싸움이 커질 수 있어.”
“흐음...이번에도 괜찮겠지? 혹시라도 우리 집에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은이 집이잖아. 나랑 하은이가 어떤 사이인줄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하은이한테 허락받아서 하루 동안 머물렀다고 하면 되니까.”
“그럼, 이제 아무 걱정 없이 누나 임신만 시키면 되는 건가?”
“후훗, 처음에는 엄청 부끄러워하더니, 가면 갈수록 과감해진다?”
“다 누나를 위해서 아니겠어?”
두 사람의 생각과 의견이 모두 통일된 상태에서 망설일 것은 없었다. 이미 그녀와 여러 번 관계를 가졌던 성준은 과거에 달리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달려들었고, 그녀는 그런 성준을 미소로 답하며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섹스는 일반적인 섹스하고는 달랐다. 일반적이 섹스처럼 성욕 해소가 아니라 단순히 임신만이 목적이었기에 과정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였다. 섹스에 기본 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키스를 생략하는 것은 당연했고, 사랑한다는 식의 끈적하고 뜨거운 멘트도 없었다. 두 사람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는 일종의 장치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런 장치들이 더 이상 의미 없어지기 시작했다. 저번에 모텔에서 뜨거운 섹스를 나눈 이후로 두 사람은 더욱 가까워졌다. 애써 지금은 섹스가 아니라 임신을 위한 과정이라고 말하면서 되뇌어보았지만, 속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욕망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내일 학교 가는 날 아니야?”
두 사람은 옷을 입은 상태로 서로를 껴안은 채로 애무를 이어갔다. 성준은 손을 이용해서 그녀의 가슴과 엉덩이를 살살 움켜쥐었고, 그녀는 성준의 품에 안긴 채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느꼈다. 그리고 그러던 중에 그녀가 고개를 들고 성준에게 물었다.
“내일도 평일이니까 당연히 학교 가야지.”
“히잉...그러면 오래는 못하겠네. 어쩔 수 없지.”
내일도 학교를 간다는 사실에 그녀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오늘 밤새도록 성준과 섹스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성준을 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괜찮아, 어차피 학교에서 자면 되는데, 뭐.”
“정말? 저번에는 안 피곤했어?”
“저번에? 아, 모텔에서. 그때도 피곤하지는 않았어. 누나한테 한 소리 들었던 게 짜증났지, 피곤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분도 좋고 개운했는 걸?”
“헤, 그럼 오늘은 저번보다 더 오래 해볼까?”
“좋아, 오늘은 기필코 누나 임신시켜야겠다.”
그녀가 이토록 바라는데 성준은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 역시나 그녀처럼 어느 샌가부터 단순히 임신 그 이상을 바라고 있었다. 애초에 성욕이 넘쳐나는 10대 청소년 남자가 이 정도 참은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