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신 클리닉-36화 (36/193)

<-- 임신시키기 -->

“지은이 네가 왜...왜 여기...왜 우리 집에 있는 거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신지은의 등장에 성하은은 말을 더듬을 정도로 크게 놀랐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녀는 성준이 몰래 집에 여자 친구를 데리고 왔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조금 오바해서 505호 여자가 반찬을 주러 온 게 아닐까 싶었는데, 설마하니 자신의 친구이자 바로 옆집에 사는 신지은일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다.

“그러게...미안, 어쩌다 보니까...”

“아니, 그러니까 왜 우리 집에 있냐고 묻잖아.”

“누가 보면 내가 있으면 안 될 곳에 와있는 줄 알겠네. 나름 사정이 있었어.”

심지어 신지은은 성하은의 질문에 굉장히 어이없는 답변만 할 뿐이었다. 그녀는 굉장히 당당한 자세로 성하은에게서 물러서지 않았다.

성준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더욱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그녀에게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지금 봐서는 딱히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그녀는 최대한 뻔뻔한 자세로 이 상황을 무마시킬 생각으로 보였다.

“사정은 무슨 사정? 네가 이 집에 나 말고 올 이유가 뭐가 있는데?”

성하은 역시 그녀의 뻔뻔한 태도를 그냥 지켜보지 않았다. 그녀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선 신지은을 노려봤다.

“네가 아니더라도 준이하고 나도 충분히 특별한 사이거든? 네가 바쁠 때마다 대신 나한테 떠맡길 때는 언제고.”

“그, 그건...그때는...”

“남편하고 싸워서 집 나왔는데, 친구들이라고는 다들 바쁘다고 하고, 갈 데는 없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잠깐 있었던 거야. 딱 한 두 시간만 있다가 집에 들어가려고 했다고.”

“아...”

하지만 성하은은 그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애초에 마음의 준비를 하고선 성준의 방을 나섰던 신지은은 나름의 변명도 생각했던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그녀의 변명은 조금 억지가 강했지만, 이미 기세는 그녀 쪽으로 기운 듯 했다.

“그, 그러니까...갈 곳이 없어서...여기에 왔다고?”

“잠깐만, 아주 잠깐만 머물다가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어.”

“그러면 처음부터 나한테 연락을 했어야지.”

“너도 요즘 많이 힘들 텐데, 굳이 너한테까지 폐 끼치고 싶지 않았단 말이야.”

“그래도...하아...”

성하은은 신지은과 매우 친한 친구였다. 그리고 최근에 그녀가 겪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그 문제로 남편과 싸워서 잠시 머물 곳을 찾았다는데 어찌 친구인 입장에서 나무랄 수 있겠는가.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긴 했지만, 더 이상 추궁할 수는 없었다.

“지은이 누나 말이 맞아. 그냥 잠깐 있었던 거야. 이웃이기도 한데, 고작 이 정도 부탁을 매정하게 거절할 수는 없잖아.”

여기에 쐐기를 박기 위해 성준이 나섰다. 성준이 신지은의 편을 들자, 성하은이 도끼눈을 뜨고 그를 노려보긴 했지만, 딱히 뭐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너는 처음부터 말했으면 좋았잖아. 왜 거짓말을 해가지고...”

“이 시간에 갑자기 누가 집에 덜컥 찾아오니까 놀라서 나도 모르게...”

“하...정말이지?”

“내가 이런 걸로 굳이 누나를 속일 이유는 없잖아.”

“...알았어, 믿어야지, 뭐.”

그렇게 성하은은 의심할 곳이 엄청나게 많은 상황이었음에도 그냥 넘어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어차피 상대는 자신의 동생과 친한 친구였다. 지금까지 이들이 그녀를 크게 실망시킨 적도 별로 없었으며, 의심을 한다고 해서 둘이서 무언가 엄청난 일을 저지를 것으로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이만 집에 돌아갈게.”

상황이 자신들에게 좋게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한 성하은은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더 이상 성준과 섹스를 하지 못한다면 여기보단 차라리 남편이 있는 집이 낫다고 생각했다.

“지금 집에 간다고? 남편하고 싸웠다면서?”

“어차피 10분, 20분 뒤에 가볼 생각이었어. 그리고 이런 분위기에서 내가 굳이 여기에 더 머물 이유도 없잖아. 남편은...어쩔 수 없지.”

“아...조금만 더 있다가 가도 되는데...”

“됐어. 애초에 너한테 연락도 안 하고 불쑥 찾아온 내 잘못이기도 하니까.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응, 미안...다음에 얘기하자.”

성하은은 집에 돌아가겠다는 신지은의 말에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그녀를 붙잡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신지은은 성준의 집을 무사히 나와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신지은이 집에 돌아간 이후, 누나와 둘만 남게 된 성준은 엄청나게 어색한 분위기 속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자꾸만 자신의 방 상태가 신경 쓰이는 것은 물론이었고, 혹시라도 누나가 눈치 챘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샤워라도 하려고 했지만, 들고 온 반찬통을 누나의 모습에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505호 여자하고는 요즘 어떻게 지내? 아직도 반찬 만들어주는 거야?”

정적을 깨고 그녀가 성준에게 질문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성준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그녀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어느새 반찬통을 다 정리하고는 성준을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아...저번에 누나가 매주 반찬을 만들어준다고 얘기해서...요즘에는 거의...”

“그래? 잘됐네. 그런 사람하고 굳이 엮일 필요는 없으니까.”

“그, 그렇지.”

“아까는 왜 거짓말 한 거야?”

“...으응?”

“아까 말이야. 집에 지은이가 있으면 있다고 말하면 되는데, 왜 굳이 거짓말 했냐고. 거짓말만 안 했어도 상황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거 아니야.”

그녀는 처음에 505호에 대해서 성준에게 물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역시나 조금 전의 일로 돌아왔다. 아직 그 부분에 대해서 의심이 더 풀린 것인지, 그녀는 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성준에게 따져 물었다.

“그, 그러니까...나도 갑자기 밤늦게 지은이 누나가 찾아와서 놀랐어.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누나랑 친한 친구이면서 이웃이기도 하고, 나하고도 친했던 사람이니까 되돌려 보낼 수가 없겠더라고...거짓말을 했던 건...아까 말했듯이 누나가 올 거라고 전혀 생각을 못해서 너무 당황하기도 했고, 혹시라도 누나가 지은이 누나에 대해서 안 좋게 생각할까봐...미안...그래도 거짓말은 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성준은 최대한 그녀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지금은 변명을 할 때가 아니었다.

“하...그래...알았어. 다음부턴 그런 일 있어도 절대 거짓말 하지 말고. 내가 설마 동생을 잡아먹기라도 하겠니. 지은이는...결혼 전에는 우리한텐 가족과도 같았으니까...내가 이해해야지.”

다행히 그의 마음이 잘 전달되었는지, 그녀는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알겠다고 말하며, 성준에게 다가왔다. 이제 더 이상 그 부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것 같지는 않았다.

“오늘 갑자기 찾아온 건...아니, 갑자기는 아니지. 내가 문자를 몇 번이나 보냈는데, 보지도 않고.”

“아...미안...집에 있을 때는 보통 진동으로 해서...”

“아무튼 이번 주에, 그러니까 내일부터 남자친구랑 2박3일로 제주도 여행을 갈 것 같아서 온 거야. 반찬통도 가져다 줄 겸, 이것저것 할 얘기도 있고 해서.”

그녀는 자신이 갑작스럽게 집에 온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성준은 그제야 그녀가 주말이 아닌 평일 늦은 시간에 불쑥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제주도 여행을?”

“응,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네.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최근에 하영이 소식 들었어?”

“하영이? 하영이한테 또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역시 아직 못 들었구나. 하영이가 또 사고를 쳐버렸지, 뭐야.”

그녀가 급하게 성준의 집에 온 것은 반찬통을 가져다주기 위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동생, 성하영에 대한 이야기 때문이었다. 현재 중학교 기숙사에서 생활 중이었던 성하영이 말썽을 일으킨 것이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데? 걔는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네.”

“그동안 몰래 기숙사 빠져나가서 외박했던 게 여러 번이었나 봐. 아직 징계가 결정되진 않았는데, 퇴출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

“아...설마 집에 온다는 건 아니겠지?”

“퇴출되면 아마도 그러겠지?”

“젠장...”

그녀의 이야기에 성준이 굉장히 짜증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동생이 집에서 생활하는 건 그에게 최악이었다. 시종일관 성준을 귀찮게 할 것은 물론이었고, 어떤 사고를 칠지 알 수 없었기에 벌써부터 성준의 고생길이 훤히 보였다.

“너무 그렇게 생각하진 마. 그래도 동생이잖아. 그것도 하영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좀 과할 정도로 좋아해서 탈이지. 올해 공부는 틀렸나보다.”

“퇴출 확정되면 아마도 다음 주나 그 다음 주쯤에 올 거야. 공부하는데 조금 신경 쓰이겠지만, 그래도 잘 챙겨줘. 부탁할게.”

“...알았어. 너무 걱정하지 마. 귀찮지만 어떻게든 해봐야지.”

고생길이 보였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도 아닌 가족이었다. 그것도 누나가 이렇게까지 부탁하는데, 걱정을 끼칠 수는 없었기에 그는 동생을 잘 챙기겠다고 말했다.

“이제 앞으로 하영이가 먹을 반찬도 만들어야겠네.”

“너무 그렇게 무리하지 마. 누나도 요즘 마음고생이 심하다면서. 우리는 괜찮으니까 자신부터 챙겨.”

“내가 무슨 마음고생이야. 혹시 지은이가 그러든?”

“아니...여기서 지은이 누나가 또 왜 나와. 누나 얼굴만 봐도 알겠는데. 누나도 어떻게 보면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잖아. 이제 우리도 스스로를 챙길 수 있는 나이니까, 굳이 우리 때문에 무리할 필요 없다는 뜻이야.”

“치이, 누가 보면 네가 내 오빤 줄 알겠네. 아무튼 알았어. 그래서 이번에 이렇게 여행도 가는 거잖아. 그러니까 너도 내 걱정은 마.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

“벌써 가려고? 오늘 자고 가는 거 아니었어?”

“내일 아침에 잠깐 회사도 가봐야 되고, 해야 될 것들도 있어가지고. 그래서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 거였어. 반찬통도 주고, 하영이 얘기도 미리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아아...그래. 제주도 잘 다녀오고...남자친구랑 재미있게 놀다와.”

“응, 알았어. 다음 주에 봐. 주말 잘 보내고.”

그것으로 그녀와의 대화가 끝이 났다. 아직 남아있는 일이 있었던 그녀는 그대로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렇게 성준은 혼자가 되었다.

‘하...이게 대체 뭔 일이람.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겠네.’

성하은이 집에 와서 머문 지는 고작 30분이 채 되지 않았다. 고작 이 30분 때문에 그녀가 집까지 찾아왔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고 미안했지만, 한 편으로는 30분 때문에 개고생을 했다고 생각하니,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는 조금 전에 자신에게 벌어졌던 일들이 모두 꿈만 같았다.

‘다시 연락하기에는 조금 무리겠지? 괜히 또 남편하고 싸움날 수도 있으니까 오늘은 좀 조심해야겠다. 그리고 또 갑자기 누나가 돌아올 수도 있는 일이고...’

특히나 제대로 섹스를 해보지도 못하고 끝났다는 점이 그는 가장 아쉬웠다. 마음 같아서는 성하은이 떠났으니, 다시 한 번 신지은을 불러서 섹스를 이어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신지은에게 많이 미안하기도 했고, 혹시라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또 펼쳐질 수도 있었기에 그는 애써 끓어오르는 성욕을 꾹 참아냈다. 어차피 이제 그녀와의 섹스는 언제라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오늘은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다음을 기약하고자 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