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신 클리닉-37화 (37/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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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다음날

“혹시 주말에 시간 가능해?”

“주말에?”

“응, 전에 내가 말했잖아. 너 알바 하는 모습 보고 싶다고.”

“아...정말 올 생각이야?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줄 알았는데...”

“이번 기회에 제대로 서로에 대해서 알아보자. 계속 내 얘기만 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라...너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싶어졌어.”

오늘도 성준은 학교에서 박수아와 함께였다. 점심시간이 되어서도 둘은 단짝처럼 붙어서 대화를 나누었다. 특히나 그녀는 2일 전에 성준과 진지한 대화를 나눈 이후에도 계속해서 성준에게 바싹 달라붙어서 그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는데, 때로는 지나치게 친한 척을 하기도 했으며, 중간 중간 어처구니없는 섹드립을 날리기도 했다.

결국, 더 이상 그녀를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성준은 주말을 이용해서 그녀와 단 둘이서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최대한 빨리 그녀와 친해져서 그녀에게 조금 더 편하게 대할 수 있도록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그녀의 약점을 알아내는 것도 하나의 계획이었다.

“나에 대해서 알고 싶다고? 갑자기...그건 왜?”

“나는 아직 수아, 너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잖아. 전학 왔다는 사실이랑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에 최근 들어서 관심이 많다는 것 말고는 들은 게 하나도 없는데?”

“아...그랬었나? 그럼...어떻게든 시간 내볼게. 사장님이 허락해주실지 모르겠네.”

“알바가 많이 바쁜 거야?”

“으응, 주말에는 특히...그래도 최대한 빼볼게.”

성준의 제안에 그녀가 겉으로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성준은 그녀의 표정에 자신이 괜한 이야기를 꺼냈나 싶었지만, 사실, 그녀의 속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원래는 다음 주쯤에 자신이 먼저 예전 이야기를 꺼내며 제안을 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성준이 먼저 다가와주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었다.

“내일은 힘들겠지? 일요일이 좋으려나?”

“오히려 내일이 더 좋을 것 같아. 토요일에는 점심에도 사람이 많으니까 낮 시간으로 조금 당겨달라고 부탁하면 가능할 것 같은데...”

“그래? 나는 언제든지 가능하니까.”

“그런데...그냥...알바하는 거 구경만 할 건 아니지?”

“알바 끝나면 같이 영화라도 볼래?”

“아...당연히 좋지. 알바하는 곳 근처에 엄청 분위기 좋은 카페도 있는데, 같이 갈까?”

“그래, 그렇게 하자.”

심지어 그녀는 미리 알아봐둔 카페까지 그에게 역으로 제안을 할 정도였다. 그녀의 말에 그제야 성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뭔가 이제 너랑 진짜 친구가 된 것 같아서 기분 좋다. 근데 나에 대해서는 왜 알고 싶은 거야?”

그녀가 성준에게 물었다. 최근에 그녀는 이런 식의 질문을 자주 하고는 했다. 마치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주길 바라는 것처럼 말이다.

“저번에 말했잖아. 너랑은 조금 더 친해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가까워지려면 서로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야 되는 거 아니야?”

“그런가? 하지만 나는 너처럼 특별히 말해줄 건 없는데...”

“특별한 걸 알고 싶다는 게 아니야. 그냥 친구 사이에 알 수 있는 평범한 것들이 궁금하다는 거지. 알바하는 모습도 그 중에 하나고.”

“그렇구나...알았어. 그렇게 하자.”

하지만 성준은 그녀의 질문에 숨어있는 의도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오로지 질문에 대한 답을 말하기만 할뿐이었다. 그녀는 그런 성준에게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인내심이야 말로 그녀의 특기였다.

그녀는 자신이 직접적으로 말하기 전에 성준이 먼저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용기를 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너무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내일 그와의 데이트를 통해서 어떻게든 그에게 호감을 얻을 속셈이었기에 그의 둔한 성격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위잉

그녀와의 대화가 끝나는 타이밍에 성준의 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신지은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성준은 재빨리 문자를 확인했다. 하지만 문자를 확인한 그의 표정은 금세 굳어져 버렸다. 문자를 보낸 이는 전혀 뜻밖의 사람이었다.

‘과외...아니, 보건쌤이잖아. 하...귀찮은데...’

문자를 보낸 주인공은 과거 성준의 과외 선생님이자, 지금은 그가 다니는 학교의 보건교사로 있는 유은정이었다. 그녀는 성준에게 잠깐 시간을 내달라고 부탁을 했다. 갑자기 만나자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 잠깐...어디 좀 다녀올게.”

“응? 어디...? 어디 가는 건데? 나도 같이 가자.”

“아니, 잠깐 친구가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

“아...으응, 다녀와.”

상당히 귀찮고 짜증났지만, 그렇다고 선생님인 그녀의 문자를 씹을 수는 없었다. 성준은 박수아에게 잠시 친구를 만나고 온다고 말한 뒤, 한숨을 내쉬며 보건실로 향했다.

‘하필이면 과외...아니, 보건쌤이랑 같은 학교라니...박수아 하나 신경 쓰는 것도 엄청 머리 아파 죽겠는데...학교생활이 점점 꼬여가는구나.’

그는 보건실로 가는 내내 인상을 찌푸린 채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유은정이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성준에게 상당히 귀찮고 까다로운 존재였다. 나이도 훨씬 많고, 선생님이다 보니까 함부로 대할 수 없는데, 상대는 자꾸만 짓궂은 장난을 친다면, 얼마나 성가시겠는가. 오랜만에 그녀를 만나서 반갑기는 했지만, 자꾸만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제발 또 이상한 짓이나 안 했으면 좋겠네...’

보건실에 도착한 성준은 문 앞에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뒤, 그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보건실 안으로 들어가자, 저번처럼 열심히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한 눈에 봐도 보건교사임을 알 수 있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치마가 상당히 짧다는 것과 옷이 상당히 타이트해서 안 그래도 큰 가슴이 더욱 눈에 띈다는 점이었다.

보건실 안에는 다른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를 부를까 고민하던 그는 일부러 그녀가 들을 수 있도록 발소리를 크게 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 준이 왔구나. 점심은 맛있게 먹었어?”

“네, 뭐...”

“너는 내가 연락을 해야지만 찾아오는 거야? 먼저 찾아올 마음은 없었어?”

“아...그게...제가 있는 반은 본관이다 보니까...”

고개를 돌려 성준을 확인한 그녀가 웃으며 인사를 했다. 이어서 그녀는 비꼬는 말투로 성준을 나무랐고, 그 덕에 성준은 처음부터 기가 죽은 채로 그녀를 상대하게 되었다.

“나는 오랜만에 봐서 엄청 반가웠는데, 너는 아니었나 보네?”

“그럴리가요. 그냥...조금 바빠서...”

“치이, 우리가 어떤 사이였는데, 너무해.”

“어떤 사이긴요. 그냥 과외 선생님과 제자 사이였죠.”

그녀의 옆에 앉은 성준은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매우 장난 끼가 가득한 얼굴로 성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에 당하고만 있을 수 없었던 그는 상당히 진지한 표정으로 맞섰다.

“그냥 과외 선생님과 제자라고? 그렇게 말하면 조금 서운한데...벌써 그때 일 까먹은 거야?”

“그, 그때가...도대체 언제 적인데요...벌써 3년이나 지났다고요.”

“3년이나 지났어도 나는 아직도 생생한 걸? 어떻게 보면 첫 경험이니까, 후훗.”

하지만 그녀는 역시나 만만치 않았다. 성준은 그녀의 놀림에 얼굴을 붉히며 당황스러워 했다. 특히나 그녀는 저번에 박수아와 함께 만났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예전 일을 들먹이면서 성준을 놀렸는데,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오해하겠어요.”

“오해하면 어때서? 오해할 짓을 하긴 했잖아, 우리가.”

“...한 건 아니잖아요. 할 뻔한 거지...”

“그게 그거지, 뭐.”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은 과연 무엇일까. 계속되는 그녀의 과거 이야기에 성준의 얼굴은 더욱 붉게 물들어갔다.

“아무튼...왜 불렀어요? 갑자기 무슨 일인데요?”

“우리 사이가 꼭 무슨 일이 있어야만 부를 수 있는 거야?”

“자꾸 이러실 거예요?”

“후훗, 그냥 너무 반가워서...그동안 잘 지냈어?”

“...뭐...그럭저럭이요. 선생님은 잘 지내셨어요?”

“글쎄...잘 못 지낸 것 같기도 하고.”

성준이 계속해서 부끄러워하자, 그녀는 그제야 다른 주제를 꺼냈다. 특히나 그녀는 마지막 말과 함께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요?”

“조금...안 좋은 일이 있긴 했지. 이제는 다 지난 일이라서 괜찮아. 그나저나 너는 헌터부대 준비한다면서?”

“어떻게 알았어요? 제가 전에 말했었나?”

“하은이 언니 통해서 알았지.”

“아...누나...”

“오랜만에 연락하니까 진짜 좋더라. 오늘인가 제주도 간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오늘. 조금 전에 비행기 탔다고 연락 왔었어요.”

“너도 그렇고, 언니도 그렇고 다들 잘 지내서 다행이네. 하영이도 잘 있지?”

“음...그럭저럭요?”

두 사람의 대화는 서로의 근황을 묻는 식으로 평범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성준은 그녀에게 있었던 안 좋은 일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스스로 말해주기 전까지는 물어보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결혼은 아직 안 하셨죠?”

“왜? 결혼 안 했으면 좋겠어?”

“그런 뜻이 아니라 선생님을 감당할 남자가 존재할까 싶어서요.”

“하긴...나를 감당할 사람은 준이 너밖에 없지?”

“하하...선생님은 여전하시네요. 근데 간호사는 왜 관두신 거예요? 원래 간호사가 꿈이라고 하셨잖아요.”

성준이 그녀를 만난 이후로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성준이 알고 있는 바로는 그녀는 과거부터 간호사가 되는 걸 간절히 바랄 정도로 좋아했다. 공부 머리가 썩 좋지 못한 상황에서도 죽어라고 공부를 해서 간호학과에 들어간 것도 바로 그 이유였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보건교사가 된 것일까.

“당연히 보건교사가 훨씬 꿀이니까 그렇지. 간호사라는 직업이 내 생각하고는 거리가 멀더라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랄까.”

그녀의 대답은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했다. 그녀의 말이 틀리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성준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고, 그것이 아마 조금 전에 그녀의 얼굴에서 드러난 심각한 표정과 관련이 있음을 말이다.

하지만 성준은 끝내 그녀에게 그것과 관련된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다. 어차피 전학을 가지 않는 이상, 당분간은 그녀를 계속 마주쳐야만 했기에 기회가 될 때 분위기를 봐서 물어보고자 했다.

“지금 일은 할 만하고요?”

“당연하지. 지금까지는 너무 좋은걸. 덕분에 이렇게 오랜만에 준이도 만나고.”

“집도 이 근처인거죠?”

“응, 맞아. 그러고 보니까 그것 때문에 부른 것도 있어.”

또 다시 대화가 다른 주제로 넘어갔다. 이제는 그녀의 집과 관련된 부분이었는데, 그녀는 이것과 관련해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그녀의 표정이 상당히 밝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네? 왜요?”

“준이는 전에 살던 곳 그대로 산다고 했지?”

“네...그렇죠. 그게 왜요?”

“어쩌면 준이가 사는 곳 바로 위층에 들어갈 것 같아서.”

반면에 그녀의 대답을 들은 성준의 표정은 굳어졌다. 잘하면 그녀를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마주쳐야 된다는 생각에 그는 앞으로 상당히 귀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정이 왜 그래? 나랑 이웃이 된다니까 그렇게 좋아? 막 설레고 그래?”

“아니...왜 하필이면 많고 많은 집 중에 거긴데요?”

“내가 고른 것도 아니야. 같이 생활하는 룸메가 있는데, 좋은 곳 나왔다고 해서 이번에도 같이 살기로 했어.”

“하...참...누나랑 저희 집이 인연은 인연인가 보네요.”

“그러게. 엄청 신기하지?”

“뭐...그래도 위층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네요.”

“가끔 놀러가...”

“절대 안돼요! 공부하느라 바쁘단 말이에요, 요즘.”

“치이, 너무해.”

“아무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까, 예전처럼 잘 지내요, 우리.”

“예전처럼? 그럼 엄청 뜨거운 사이로 지내자는 거야?”

“...그런게 아니라...아무튼...저는 이만 가볼게요. 조금 있으면 종치겠네요.”

“히잉...벌써? 아쉽네. 그래도 곧 있으면 집에서도 볼 수 있으니까.”

“아니, 집에 오지 말라니까요. 에휴, 아무튼 다음에 또 봐요. 갈게요.”

“응, 잘 가. 다음에 또 보자.”

그것으로 그녀와의 모든 대화가 끝이 났다. 5교시 수업시간이 시작하기 겨우 3분밖에 남지 않았기에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수는 없었다. 그녀는 상당히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성준은 조금이라도 빨리 그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가볍게 인사를 하고 보건실을 빠져나왔다.

‘하...젠장...반갑기는 하지만, 지금은 좀 그런데...혹시라도 쌤이 내 능력을 알게 되면 진짜 곤란해질 거야...’

보건실을 나온 그는 복잡한 머리를 이끌고 빠르게 교실로 향했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그의 머리는 뜨거워져 갔다. 그녀가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최근에 신경 쓸 곳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그녀까지 자신을 괴롭히게 된다면 상당히 피곤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예전 일도 엄청 신경 쓰이고...’

특히 그는 3년 전에 그녀와 있었던 일이 가장 마음에 쓰였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혼자서만 간직하는 추억이라고 여겼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또한 다른 때였다면 전혀 아무렇지 않았겠지만 하필이면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지금이라서가 문제였다.

과연 3년 전에 두 사람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가까스로 교실에 도착한 그는 바로 수업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는 5교시 내내 여태까지 혼자서만 간직해오던 그때의 추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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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성준과 유은정

3년 전, 두 사람은 과외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였다. 성준의 누나의 고등학교 후배였던 유은정은 대학생 시절, 성하은의 부탁으로 잠시 성준의 공부를 맡게 되었다. 중고등학교 때 워낙 성하은에게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던 터라, 매우 적은 금액에도 특별히 과외 선생님이 되었고, 대략 반년 정도를 담당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부당한 알바였지만, 그래도 불만은 없었다. 애초에 그녀가 공부를 하게 된 것도, 대학에 들어가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전부 성하은의 도움 덕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성준을 담당하는 내내 최선을 다했다. 단순히 과외만 해준 것이 아니라 어머니 없이 집에 동생과 단 둘이 지내는 그를 정성껏 보살펴줬으며, 사랑으로 대해주었다. 그것이 성하은에게 입은 은혜를 갚는 일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과외를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그녀는 몰랐다. 자신과 성준에게서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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