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신시키기 -->
*
*
*
-15일
-다음날
“오늘따라 왜 이렇게 예쁘게 하고 왔어? 안경까지 벗고 올 정도면 남자친구라도 만나러 가는 건가? 그래도 덕분에 손님들은 더 좋아하네. 가끔씩은 그렇게 하고 오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수아도 나중에 대학가면 남자들 꽤나 울리겠어.”
평소와 달리 진한 화장에 화려한 차림을 한 박수아에게 그녀가 일하는 음식점 사장님이 연신 칭찬을 해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그녀의 모습에 손님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녀 역시도 사람들의 좋은 반응과 사장님의 칭찬에 기분이 상당히 업된 상태였다. 항상 학교와 알바에 치여 살면서 제대로 꾸미고 다녀본 적이 거의 없었던 그녀는 오랜만에 받아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남자친구는 아니고, 그냥...”
“그러면 남자 소개라도 받은 거야? 요즘에는 우리 때하고는 다르게 SNS로 소개받고 그런다면서? 나 때는 여자 한 번 소개 받기가 그렇게 어려웠는데, 요즘에는 참 좋아졌단 말이야.”
“그냥 친구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에이, 친구 만나러 간다는 애가 그렇게 꾸미고 나왔다고? 썸인지 뭔지 그거야? 아니면 짝사랑?”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지금은 그냥 친한 친구에요.”
“어떤 녀석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막 그렇게 좋아하는 티를 내면 안 돼. 원래 남자들한테는 적당히 밀당을 해줘야 되는 법이거든.”
오늘 그녀가 이렇게까지 꾸미고 알바를 나온 이유는 바로 성준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드디어 그와 학교 밖에서 만나게 된 그녀는 어제부터 너무 설렌 나머지 잠을 설칠 정도였다. 그 정도로 성준과의 만남을 기대했던 그녀였기에 이렇게 티가 날 정도로 꾸미고 나온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원래 그녀는 주말에도 저녁 타임에 알바를 했다. 하지만 오늘은 성준과 만남을 위해서 오전에 나와서 점심 타임에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알바가 끝나게 될 것이고, 그 전에 성준이 가게로 찾아올 것이다. 어제 저녁에는 물론이고, 방금 전에도 그와 문자를 주고받았던 그녀는 아까부터 자꾸만 가슴이 쿵쾅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왜 이렇게 떨리지...사장님 말대로 너무 티 나면 안 되는데...’
알바를 하는 내내 그녀의 마음은 자꾸만 콩밭에 가있었다. 매번 하는 일이라서 실수를 하지는 않았지만 평소와는 다르게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원래는 한창 일에 집중하고 있으면 금방 시간이 흘러가 끝날 시간이 되곤 했는데, 오늘따라 시간도 더럽게 느리게 흘렀다. 그 덕에 그녀의 불안과 긴장은 더욱 증폭되었다.
‘오늘은 어떻게든 말할 거야. 그가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녀가 이토록 성준과의 만남을 긴장하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그를 마음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그와 처음으로 데이트를 하는 만큼 그녀는 직접적이지는 않아도 간접적으로나마 자신의 마음을 그에게 어느 정도 전달할 계획을 세웠다.
딱 여기까지만 본다면 그녀의 마음은 영락없는 10대 여고생의 순수한 마음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사랑은 조금은 비뚤어져 있었다. 그를 향한 그녀의 사랑은 조금은 과한 면이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의 친절에 호감을 느꼈던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과거의 일로 친구를 전부 잃었던 그녀에게 먼저 다가와준 성준은 특별한 존재였고, 학교에서 항상 함께 다니다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이었다. 거기에다가 그의 약점을 자신이 지니고 있다는 사실도 그와의 관계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만약 안 된다면...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많이 슬프겠지? 하지만 나한테는 최후의 카드가 있으니까...절대 놓치고 싶지 않아...어떻게든...강제로라도 나를 좋아하게 만들겠어...’
하지만 그 특별함 때문인 것일까. 그의 약점을 쥐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가 자신을 쉽게 버리거나 떠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점이 그녀를 더욱 성준에게 집착하도록 만들었다.
그녀는 성준만큼은 자신의 인생에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친구로 지내는 것도 좋았지만, 그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고 싶어 했다. 그동안 그녀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가족이든, 친구든, 사소한 물건조차도 제대로 소유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그를 반드시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만약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그의 약점을 이용해서라도 말이다.
그녀의 그런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성준은 오랜만에 친구와 밖에서 논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알바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그는 알바 끝나기 30분 정도 일찍 와서 구경을 하고자 했다.
“어서오세...어?”
“안녕? 뭔가 이런 곳에서 보니까 엄청 어색하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
원래 두 사람은 그녀의 알바가 끝나기 10분 전에 만나는 걸로 약속을 잡았다. 그렇기에 30분이나 일찍 온 성준의 모습에 그녀는 상당히 당황스럽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럼에도 그를 보자마자 자연스럽게 지어지는 눈웃음은 감출 수 없었지만 말이다.
“그냥 알바하는 모습 궁금해서. 점심시간이 살짝 지나서 지금은 사람이 많이 빠져나갔나보네.”
“밥은 먹었어? 배고프면 뭐라도 먹을래? 간단한 것 정도는 줄 수 있는데...”
“아니야, 괜찮아.”
“그럼, 차라도 줄게. 사람 없으니까 여기 앉아있으면 될 것 같아.”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상태라 가게 안은 그리 북적이진 않았다. 가장 구석 자리에 자리를 잡은 성준은 그녀가 가져다 준 차를 마시면서 그녀의 모습을 구경했다. 중간 중간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와 다른 알바생들이 그를 보며 쑥덕대는 모습도 보였지만,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오로지 그녀의 모습을 관찰했다.
‘대단하네. 다른 알바들은 다 성인으로 보이는데, 고등학생이 벌써 이런 곳에서 알바를 하고...나도 헌터부대 준비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곳에서 일을 했겠지?’
그는 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감탄을 했다. 중고등학생 때 알바를 한다는 것은 사실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알바를 구하는 것도 힘들고, 그 속에서 인정받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자꾸만 그녀가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어른으로 느껴졌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이제 다 끝났어.”
시간이 흘러 알바가 끝난 그녀가 다시 성준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오전부터 알바를 했음에도 전혀 힘든 내색 없이 성준을 반갑게 맞이했다.
“오래 기다리긴, 오히려 일하는 모습 더 못 봐서 아쉬운 걸. 여기서 계속 지켜봤는데, 진짜 대단하더라. 손님 상대하는 것도 잘하고.”
“그냥...오래 하다보니까 익숙해진 거지.”
“엄청 멋있었어. 너에 비하면 나는 아직 애 같은 느낌이랄까. 뭔가 어른의 모습을 본 것 같아.”
“에이, 그 정도 까지는...”
성준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자신이 느꼈던 부분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그녀는 성준의 칭찬에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부끄러워했다.
“그럼, 이제 나가볼까? 너는 점심은 먹은 거야? 아직 안 먹었지?”
“으응, 아직.”
“그럼 밥부터 먹자. 여기서 먹는 게 좋으려나?”
“아니, 내가 막내인데, 여기서 먹으면 조금 눈치 보일 것 같아.”
“아아, 그렇겠네. 그럼 나가자.”
간단히 인사와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은 바로 가게를 나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두 사람 모두 점심을 먹지 않은 상태였기에 둘은 먼저 근처에 위치한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제 두 사람의 데이트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나저나 밖에서 보니까 확실히 많이 다른 것 같다. 항상 교복 입은 모습만 보다가 이렇게 만나니까 조금 이상하다. 내가 알던 박수아가 아니라 다른 사람 같아.”
식당으로 이동하던 중에 성준이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와 나란히 걸으면서 중간 중간 그녀를 살피던 그는 학교에서와는 달리 상당한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다. 뭔가 친구가 아니라 소개팅을 하는 느낌이었다.
“아...그러게...나도 조금 어색한 기분이야. 지금 내 모습...많이 이상하지?”
성준의 말에 그녀는 더욱 어색한 티를 내었다. 그녀는 혹시라도 성준이 화장하고 꾸민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바라볼까 걱정이 되었다.
“아니, 전혀. 그냥 학교와는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깜짝 놀랐어. 화장도 그렇고, 옷차림도 그렇고 내가 알던 박수아하고는 조금 다르니까.”
“아...그렇구나...”
“응, 학교에서 봤을 때는 그냥 친한 친구 느낌이라면 지금은 여자...친구? 마치 소개팅하는 기분이야.”
현재 그녀의 모습은 고등학생이라기보다는 대학생에 가까웠다. 진한 화장에 짧은 치마와 구두는 확실히 교복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거기에다가 그동안 그녀의 미모를 감춰주었던 안경이 사라지자, 확실히 그녀도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의 모습하고 지금하고 어떤 게 더 괜찮은 것 같아?”
“으음...나는 둘 다 좋은데? 학교에서 보던 박수아도 좋고, 지금 모습도 너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정말? 다행이다. 나는 조금 이상하게 볼까봐 걱정했는데.”
“하나도 안 이상해. 그냥 분위기가 전과 달라서 그렇다는 거지. 조금 예뻐지긴 했어도 박수아인 건 변함없는 거잖아.”
“헤...그렇지.”
성준의 말에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알바하는 내내 너무 지나치게 꾸미고 나온 게 아닐까 걱정을 했었는데, 이렇게 성준에게 칭찬을 듣자, 그녀는 긴장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기분 좋은 마음으로 본격적인 데이트를 시작했다. 두 사람의 데이트 코스는 매우 평범했다. 처음 가지는 만남이었고, 아직 미성년자였기에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항상 학교 끝나고 알바만 하느라 고생이었던 그녀에게도, 헌터부대 준비에 기이한 현상으로 인해서 고민이 많았던 성준에게도 쌓인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릴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원래 상대적인 것이다. 좋은 시간일수록 빠르게 흘러가는 것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안타깝게도 이 둘에게도 해당되었다.
두 사람의 바람과 달리 시간은 어느새 밤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늘은 어두컴컴해진지 오래였으며, 이제 둘은 그녀가 추천해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쉽지만, 오늘만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둘은 마지막까지도 즐거운 표정으로 데이트에 충실했다.
“오늘 진짜 재밌었던 것 같아. 사실, 요즘에 공부하느라 친구들도 거의 못 만났거든.”
성준이 먼저 그녀에게 오늘 데이트에 대한 감상을 말해주었다. 실제로 그는 오늘 데이트에 상당히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도. 원래 주말만 되면 알바하느라 정신없었는데, 오늘은 너무 좋았어.”
“이제 우리 정도면 이제 엄청 친해졌다고도 볼 수 있겠지?”
“응, 당연하지.”
“다행이네. 솔직히 네가 내 비밀을 알게 되면서 걱정이 많았거든. 우리가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도 아니었고, 이 비밀이 보통 비밀인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성준은 이어서 이 데이트를 통해서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가 주말에 시간을 내서 그녀와 만난 것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있었지만, 그녀와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녀와 가까워져야만 비밀을 유지하는 데 조금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는 나를 못 믿었구나.”
“으음...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그랬었지. 하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야. 이젠 너를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너는 내 소중한 친구니까.”
“너무 그렇게 방심하지는 마.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거니까.”
“마음 변하지 않도록 엄청 열심히 노력해야겠네.”
“훗, 어떻게 노력할 건데?”
“원하는 거 있으면 말해. 뭐든지 다 해줄게.”
다행히 데이트를 통해서 그녀와 성준은 더욱 가까워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사복 차림을 만났다는 사실에 어색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는 이런 식으로 그녀가 서슴지 않고 장난을 칠 정도로 둘은 가까워졌다. 내성적인 성격의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에 네가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많이 당황했었어.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가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그렇지. 그때는 막 친해지던 시기였지.”
“그래서 솔직히 무섭기도 했어.”
“무서웠다고?”
“으응, 이제 막 너랑 친해졌는데, 그걸로 인해서 멀어지는 게 아닐까, 두려웠어.”
“아...그랬구나...”
그리고 이 타이밍에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성준에게 해주고자 했다. 성준에게 느꼈던 솔직함 감정을 털어놓으면서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어느 정도 마음을 고백할 생각이었다.
성준은 갑자기 진지해진 분위기에 살짝 당황했지만,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