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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다음날
성준은 지난날의 아픈 기억들을 모두 잊고 일요일을 맞이했다. 토요일에는 시작과는 달리 마무리가 썩 좋지는 못했고, 크게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일요일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로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긍정적인 마음 덕분인지 그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원래라면 일요일에는 하루 종일 공부를 하며 보내는 날이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불타는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할 계획을 세웠지만, 그의 공부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중간에 신지은이 그의 집을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지난번에 성하은 때문에 중간에 포기했던 일을 아직도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성준의 누나가 제주도에 있는 오늘만큼은 마음껏 즐기자는 생각으로 성준의 집을 찾아왔고, 성준과 그녀는 오전부터 오후까지 뜨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섹스는 이제 농밀함 그 자체였다.
두 사람의 섹스는 그녀가 저녁시간이 되어서 집에 돌아가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체력을 다 소모한 뒤에야 섹스를 마친 두 사람은 휴식을 취하면서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었는데, 성준은 그 중에서도 그녀로부터 꽤나 중요한 이야기 하나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 그러면 그동안 누나도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었던 거야?”
“준이, 너를 못 믿었다기보다는 그래도 그전까지 알아보던 것들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투자한 돈이 있다 보니까 계속 관심이 가더라고.”
“당연히 이해해. 나도 아직 내 능력에 대해서 확신이 없는 걸.”
그녀는 성준과 관계를 가지면서도 한편으로 임신과 관련된 정보들을 모으고 있었다. 이는 성준과 만나기 전부터 했던 일들로, 이곳에 꽤나 많은 돈들을 투자했기에 이제 와서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성준의 능력을 100% 신뢰할 수도 없었으며,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무언가라도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줄 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성준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이라도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한 사람에게 의지하기보다는 다른 방법도 알아봤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그녀가 걱정하는 것처럼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그녀도 505호 하서윤과 비슷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런 정보들은 어디서 구한 거야? 거짓이면 모를까 대부분 사실들이잖아. 구하기 힘들었을 텐데.”
“인터넷으로 구한 것도 있고, 임신과 관련해서 만나게 된 사람들이 있거든. 그 사람들한테 받은 정보이기도 해. 근데 이것들은 대부분 특정 사이트에서 구한 거야.”
“사이트라면...혹시 100만원 주고 구입한 거야?”
“어머, 어떻게 알았어? 벌써 소문이 퍼진 건가? 여기 아는 사람 거의 없을 텐데. 정말 임신을 원하는 여자들한테만 접근해서 정보를 파는 사이트거든.”
“임신을 원하는?”
“나도 소문만 들어서 자세한 건 몰라. 나도 이 사이트에 대해서는 정말 우연히 알게 되었거든.”
그녀 역시도 하서윤과 마찬가지로 100만 원을 주고 정보를 구입했다고 말했다. 도대체 그 사이트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녀는 자신 말고도 임신을 원하는 여자들은 대부분 이 사이트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했다.
“근데 준이 너는 어떻게 알았어? 설마 하은이가 말해준 거야?”
“아니, 그냥...아는 친구한테 들어서...그때는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정말 사실이었구나. 혹시 거기서 다음 주에도 정보를 하나 준다고 말하지 않았어?”
“응, 맞아. 다음 주에는 진짜 큰 정보를 준다고 했었어.”
“그럼, 누나도 다음 주에 또 구입할 거야?”
“글쎄, 조금 끌리기는 하지만 솔직히 별로긴 해. 계속 돈을 요구하는 걸 보면, 사기일 확률도 조금 높아 보여서. 저번에 만났던 사람 중에는 이런 비슷한 사이트에 속아서 500만원을 사기 당했다는 사람도 있었거든. 참, 못된 사람들이지.”
“진짜 나쁜 놈들이네. 그래도 지금까지 그 사이트에서 제공했던 정보들은 대부분 사실이었잖아. 그러면 100만 원 정도면 해 볼만 하지 않을까?”
“다음 주에 공개할 정보는 가격이 훨씬 비싸다는 말도 있더라고. 현재 내 형편에 100만 원이 가벼운 돈은 아니잖아.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조건도 엄청 까다롭다고 해서 조금 고민 중이야.”
그녀는 그 사이트에 대해서 하서윤보다 조금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래봤자 일부분이긴 했지만, 성준은 매우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조건? 조건도 있는 거야? 지금까지는 돈이 전부였잖아.”
“응, 아직 확실한 건 아닌데, 이번 정보는 돈을 입금한 뒤에 핸드폰 번호랑 주민등록번호를 공개해야 된다고 하더라고. 소문에 의하면 직접 전화를 걸어서 알려준다는 말도 있고, 직접 만나서 알려준다는 말도 있고, 정확한 건 모르겠어.”
“특이한 사람이네.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건 없어? 아니면 누나한테 사이트를 알려준 사람에 대해서라도.”
“딱히 아는 건 없어. 들리는 말로는 정부쪽 사람이라는 얘기도 있고, 헌터부대랑 관련이 많다는 소문도 있는데, 다 소문일 뿐이지.”
“흐음, 그렇구나.”
아쉽게도 그녀가 아는 정보들은 대부분 사람들의 추측에 불과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이 임신을 간절히 원하는 여자들에게 정보를 팔고 있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도대체 그 사람은 누구일까. 성준은 그 사람에 대해서 더욱 궁금해졌다.
“준이 너도 이쪽에 관심이 많구나. 하긴, 그럴 수밖에 없지. 우리도 우리지만, 너도 나름 고민이 많을 것 같아.”
“뭐, 그렇지. 여러모로 자꾸만 신경이 쓰이네.”
성준의 입장에서 그 사이트가 신경 쓰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곳에서 판매한 정보들은 하나 같이 사실들이었다. 그는 어쩌면 그들을 통해서 이 현상과 능력과 관련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럴수록 더 조심해야 될 것 같아. 준이 너도 갑자기 끌려가면 어떡해.”
“끌려가더라도 누나 임신은 시키고 가야 되는데.”
“후훗, 그전까지 엄청 열심히 달려야겠네?”
“누나만 갑자기 집에 불쑥 찾아오지 않으면 좋을 텐데, 그나저나 아직 임신 소식은 없는 거지?”
화제를 돌려 신지은의 임신여부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벌써 그녀와 관계를 가진지 일주일이 훌쩍 넘은 상태였다. 성준은 하루라도 빨리 그녀가 임신을 하길 바랐다.
“응, 아쉽게도. 사실, 가장 좋은 게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기 전에 남편하고 마지막으로 가졌던 관계로 임신이 되는 건데, 아쉽게 어제 오늘 계속 한줄 밖에 안 나오네. 그거 때문에 요즘 시어머니 눈치 보여서 살 수가 없어. 계속 시간을 끌고 있긴 한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네.”
임신 테스트기는 보통 관계를 가진지 2주의 간격을 두고 사용한다. 그녀는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약 2주 전,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기 전에 남편하고 가졌던 관계에 희망을 걸어봤지만, 역시나 실패였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희망은 오로지 성준밖에 없었다.
“나하고 처음 관계 가진 게 거의 10일 전 아닌가? 그러면 이제 슬슬 결과가 나올 시기도 되었네.”
“그치. 근데 그거 한 번으로는 아마 힘들 거야. 일주일에서 2주 정도는 더 있어야 되지 않을까 싶어. 그 사이에 열심히 달리는 수밖에.”
“그런데 말이야.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그녀가 임신과 관련해서 성준에게 기대는 것은 당연했다. 성준은 그 부분은 크게 부담이 없었다. 어차피 본인이 선택한 일이었고, 결과적으로 어쩌다보니까 임신뿐만 아니라 성적으로도 만족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그에게 아직 한 가지 고민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성준이 그 판단을 내리기 전부터 했어야 되는 고민이 아닐까 싶었다.
“누나 남편 말이야. 처음에는 누나를 제대로 돌보지도 않고,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누나는 욕하고 내팽개쳐 놓는다는 사실에 열 받아서 신경도 안 쓰고 있었거든. 근데 어쨌든 누나 남편이잖아. 임신을 하게 되면 아이의 아빠가 될 사람인데, 이렇게까지 신경을 안 써도 되는 걸까? 혹시라도 남편이 자기 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그가 걱정하는 것은 신지은의 남편이었다. 그의 남편은 기이한 현상 이후로는 썩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이혼을 해도 될 정도로 매정한 사람이었는데, 어쨌든 그녀의 남편이었고, 가족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임신에 대한 문제인데, 그녀의 남편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으이구, 그거 때문에 고민이었던 거야? 아무 문제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다 내가 알아서 할게. 준이, 너는 신경 쓸 필요 없어.”
“하지만...나라도 내 아내가 다른 남자를 통해서 임신했다고 하면 엄청 이상할 것 같은데...”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 이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 애를 가지는 게 뭐가 어때서. 이렇게 우리 둘이 헐벗은 채로 다정하게 껴안고 있는 모습만 들키지 않으면 될 거야.”
하지만 성준과 다르게 그녀는 이 문제에 대해서 크게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본인이 저지르고 있는 잘못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긴 했지만, 합리화를 통해서 마음의 짐을 덜었으며, 앞으로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심정이었다.
“임신하고 나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면 어떻게 할 건데...”
“그것도 괜찮아. 어차피 이젠 그 사람이나 시댁이나 그 사람 핏줄의 애를 낳지 못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일 거야. 지금 그들한테 필요한 건 단순히 애거든. 그리고 준이, 너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과연 그 사람들이 믿을까?”
“내가 이렇게 임신에 대해서 찾아보는 건 정말 궁금해서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보여주기 쇼이기도 하거든. 심지어 전에는 친구를 통해서 냉동정자를 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거짓말까지 해둔 상태야. 미리 밑밥을 설치했으니까 끝까지 추궁하진 않겠지. 만약 임신을 했는데도 뭐라고 그러면 확 이혼해버려야지, 뭐.”
물론, 그녀가 완전히 대책 없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이런 상황을 고민했었는지 자신의 생각들을 말해주었다. 이혼까지 얘기하는 걸로 봐서는 각오를 단단히 한 것으로 보였다.
“그 사람들이 임신한 나한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준이, 너에 대해서만 들키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없을 거야. 너는 오로지 임신에만 신경 썼으면 좋겠어. 임신한 이후부터는 오로지 나 혼자서 감당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해.”
“으응, 알았어. 아직 임신을 한 것도 아니니까 너무 복잡하게 생각 말아야지.”
그녀의 말에도 성준의 걱정은 완벽히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미 선택은 내려졌고, 그동안 그녀와 너무 많은 관계를 가진 뒤였다. 지금 이 선택을 그만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기에 이대로 직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판단을 내릴 수도 없었기에 우선은 그녀의 말대로 잠시 고민을 뒤로 미뤄야겠다고 생각했다.
“에이, 왜 마지막에 그런 얘기 해가지고. 너무 걱정하지 마.”
“미안, 내가 괜히 분위기만 망쳤네.”
“그렇다고 미안할 건 없지. 아무튼 내일 저녁에 괜찮겠지?”
“아마도 그럴 거야.”
“그래, 그럼 내일 보자. 저녁 맛있게 먹고.”
“으응, 내일 봐.”
그렇게 그녀와의 만남이 끝났다. 그녀는 남편의 저녁을 차려주기 위해 집으로 돌아갔고, 성준은 혼자 남게 되었다. 혼자 남은 그는 이것저것 고민을 하다가 이내 공부를 시작했는데, 오늘따라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신지은의 남편과 그녀와 나눈 임신과 관련된 대화들이 신경 쓰였고, 어제 있었던 박수아와의 일, 지하철에 겪은 일도 함께 머리를 짓눌렀다.
결국, 참다못한 그는 오늘 공부를 포기했다. 현재 시간은 저녁 7시. 때마침 슬슬 배가 고팠던 그는 이럴 때는 역시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며 바로 505호, 하서윤에게 문자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