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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클리닉-47화 (47/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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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진짜 걱정이네...마음이 너무 불안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겠어. 요즘 들어서 왜 이렇게 일이 꼬이냐...’

하서윤에게 문자를 보낸 성준은 그녀의 집에 갈 준비를 했다. 다행히 그녀는 시간이 된다고 말하며, 1시간 정도 뒤에 집에 와달라고 말했고, 그는 그녀를 만나기 전에 샤워와 함께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했다.

그렇지만 신지은의 이야기부터 박수아하고의 일, 그리고 무엇보다 어제 지하철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리면 도저히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특히나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은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너무나도 쉽게 발기가 되고 흥분이 되는 자신의 몸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었고, 혹시라도 그녀가 신고를 하거나 인터넷에 글을 올려서 자신의 능력이 발각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었다. 불안한 마음에 오늘 하루동안 자꾸만 베란다를 통해서 헌터부대가 이곳에 들이닥치지 않을까 수시로 내다보던 그였다.

‘서윤 누나가 없었으면 오늘 머리 아파서 고생 좀 했겠어. 그나마 바로 옆에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이럴 때는 복잡한 생각들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이 좋았다. 어차피 지금 당장은 어느 것 하나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에 굳이 붙잡고 매달리기보다는 내려놓는 것이 답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잠을 자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성준은 조금이라도 빨리 하서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성준은 바로 옷을 갈아입고 하서윤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가 말한 한 시간에는 아직 15분이나 부족했지만, 참지 못하고 그녀의 집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에게는 미안했지만 빨리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었다.

“어머, 아직 멀었는데...”

“미안해요. 조금 미리 왔어요...”

15분이나 일찍 도착한 성준의 모습에 그녀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성준은 그녀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뒤, 그녀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고, 그녀는 이내 성준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면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거야? 표정이 별로 안 좋아 보이네...”

“그냥 좀...기분이 그러네요. 집에 혼자 있기 보다는 누구랑 같이 있고 싶었어요.”

하지만 성준은 그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줄 수 없었다. 그녀에게 자신의 짐을 나누어주는 것도 싫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에게 어떻게 이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그녀와 사이가 나빠지면서 걱정거리가 한 가지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나한테 말할 수 없는 일인가보구나.”

“지금은 말해줄 수 없지만, 누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해서 온 걸요. 누군가 옆에 있어줬으면 싶었어요. 그것도 누나처럼 같이 있기만 해도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이 생겨나는 사람이면 더 좋죠.”

그녀에게 짐을 덜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성준에게 그녀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해준 요리를 먹으면 모든 스트레스를 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으며, 그녀와 함께 있으면 마치 가족처럼 따뜻하고 편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그를 자꾸만 505호로 이끄는 가장 큰 이유였다.

“후훗, 준이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뭔가 기분 좋다. 조금만 기다려줘. 맛있는 저녁 차려줄게.”

소파에 앉은 성준은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성준의 말에 기분이 좋았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저녁을 차렸다. 성준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기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성준의 집은 주로 아버지와 누나, 그리고 성준이 돌아가면서 주방 일을 담당했다. 그리고 누나가 회사에 들어간 이후로는 따로 담당하는 사람 없이 그때그때 달라졌으며, 지금은 모두 흩어져서 그마저도 남아있지 않았다. 가끔 누나가 집에 찾아와서 밥을 차려주기도 했지만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는 하서윤의 모습에서 어머니가 있었을 때의 편안함과 그리움을 떠올릴 수 있었다.

“다 됐다. 얼른 앉아. 조금 급하게 하긴 했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야.”

“고마워요, 정말. 잘 먹을게요.”

저녁은 금방 완성되었다. 맛있는 냄새가 성준을 식탁으로 이끌었고, 그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잘 먹겠다고 인사를 한 뒤, 그야말로 폭풍 흡입을 했다. 배가 고픈 것도 있었지만, 그녀가 해준 음식은 그의 입에 딱 맞았기에 맛있게 먹을 수밖에 없었다.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누나도 얼른 드세요.”

“나는 요리하면서 중간 중간 먹어서 괜찮아. 그리고 요즘 자꾸 살이 찌는 것 같아서...”

“남들이 들으면 욕먹기 딱 좋은 말이네요.”

“겉으로 보기에는 몰라도 군데군데 숨어있는 살이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두 사람은 평소처럼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었다. 그 과정에서 성준은 복잡했던 마음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었고, 그의 표정은 한결 밝아지게 되었다.

“오히려 누나는 살 좀 찔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 안나요? 그때 빈혈 때문에 쓰러졌으면서...지금도 너무 말랐어요.”

“옷 때문에 가려져서 그렇지. 여기저기 장난 아니야...”

최근에 그녀는 다이어트에 때문에 고민이 있어보였다.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성준을 위해서 자주 요리를 했던 그녀는 요리를 할 때마다 간을 보기 위해서 본인의 요리를 맛보고는 했다.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평소보다 먹는 양이 증가하게 되었고, 체중 역시도 증가하게 된 것이었다.

“전혀...그렇게 안 보이는데요?”

하지만 성준의 눈에는 그녀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그녀의 몸매는 완벽 그 자체였다. 비록 그녀의 말대로 옷을 입고 있기는 했지만, 그녀가 자주 입는 옷들은 대부분 몸매를 어느 정도 드러내는 옷들이었다. 오늘만 하더라도 몸에 상당히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옷 때문이래두. 그리고 내 나이에 살 한 번 찌기 시작하면 빼기가 얼마나 힘든데. 이십대 때 몸하고도 차이가 얼마나 심한데, 십대 때는 상상도 못하지.”

“그래요? 으음, 저는 잘 모르겠지만 누나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원래 여자들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는 각자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몸무게가 있다고 들었거든요.”

“후훗, 그런 건 또 어디서 들었니?”

“그냥 인터넷에서 본 것 같아요.”

“틀린 말은 아니지. 나도 지금 여기서 3~4kg만 더 빠졌으면 좋겠거든.”

잘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성준은 그녀의 말에 딱히 반박하진 않았다. 그녀가 여기서 살을 더 뺀다고 한들, 그하고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그가 그녀를 좋아하게 된 것은 그녀의 몸매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성격과 함께 그녀로부터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편안함 때문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럼, 말 나온 김에 오늘도 산책할까요? 걷는 것만큼 살 빠지는 게 없거든요.”

반박대신에 그는 오히려 그녀에게 산책을 나가자고 제안을 했다. 산책이야말로 살도 뺄 수 있고, 소화도 시키면서 그녀와 이것저것 진지하게 대화도 나눌 수 있었으니, 지금 상황에서 딱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생각인데? 밥 먹고 바로 나가면 되겠다.”

다행히 그녀는 성준의 제안에 찬성했다. 처음에 산책을 제안했을 때만 하더라도 조금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옆에 성준이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조금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저녁을 마친 뒤, 근처에 위치한 공원으로 산책을 나가게 되었다. 어차피 집 근처 산책이었기에 두 사람은 밥을 먹던 복장 그대로 밖을 나왔다. 벌써 9월 중순이 되었지만, 아직도 날씨는 여름과 같았기에 딱히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오늘은 사람이 별로 없네요.”

“그러게. 오히려 좋다.”

산책하기에는 정말 딱 좋은 날씨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공원에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차피 그녀도 성준도 사람이 많은 것보다는 없는 걸 더 선호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며 천천히 공원을 돌았다.

공원을 돌면서 두 사람은 저녁을 먹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 둘은 마치 친남매처럼 거리낌 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비록 연인분위기는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둘 사이가 더욱 가까워지는 것은 당연했다.

투둑 투둑 솨아아아

하지만 안타깝게도 둘의 즐거운 산책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꽤 많은 양의 비가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두 사람은 집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흠뻑 젖은 채로 공원 한 가운데 위치한 정자에 몸을 맡기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저녁부터 내일오후까지 비 온다고 들었던 것 같아요. 이래서 사람들이 별로 없었네요.”

그제야 성준은 오늘 아침에 봤던 일기 예보가 떠올랐다. 그 생각이 왜 이제야 떠올랐는지는 자신의 기억력이 원망스러웠지만, 이미 상황은 벌어진 뒤였다.

“후우...다 젖어버렸어...어떡하지...”

집에 가지 못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옷이 다 젖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성준의 옷은 물론이고, 그녀 역시도 머리부터 옷까지 전부 물에 젖어있는 상태였다.

“죄송해요. 제가 미리 확인했어야 했는데...”

성준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는 안 그래도 몸이 약한 그녀가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비에 젖은 원피스 위로 비치는 그녀의 몸매였다.

‘젠장...하필이면 저런 옷을 입어서...’

안 그래도 몸에 어느 정도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던 그녀였다. 그런데 여기에 비에 흠뻑 젖기까지 했으니, 더욱 몸매가 부각되는 것은 당연했다. 심지어는 그녀가 입고 있던 속옷 라인까지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성준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몸매는 생각이상으로 뛰어났다. 그동안 그녀의 몸매가 좋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특히나 비에 젖은 원피스가 찰싹 달라붙어있는 골반과 엉덩이 라인은 예술 그 자체였다.

“어떻게 할까요? 기다려볼까요?”

하지만 성준은 애써 그녀의 몸매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남자의 본능에 의해서 자꾸만 시선이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그는 일부러 그녀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에게 오해받는 것도 싫었지만, 최근 들어서 자꾸만 작은 자극에도 반응을 일으키는 자신의 몸이 더욱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그치만 이건 소나기가 아니니까...내일까지 비 온다고 했으면 기다려봤자 소용없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러면...제가 빨리 다녀올게요. 집까지는 조금 거리가 있고, 근처에 편의점이 있으니까 빨리 가서 우산 사올게요.”

“괜찮겠어? 그러다가 감기 걸리면...”

“괜찮아요. 제가 데리고 나왔는데, 제가 책임져야죠. 잠시 동안 혼자 있을 수 있죠? 금방 다녀올게요.”

“으응, 어차피 사람도 없어서 혼자 있는 건 무리가 아닌데, 준이가 비 맞으니까...”

“저는 걱정마세요. 그럼, 잠시만 있어주세요.”

그렇기에 그는 최대한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했다. 비에 젖은 그녀의 모습을 계속 바라보는 것은 그에게는 상당히 고욕이었다. 그녀는 환상적인 몸매뿐만 아니라 머리가 비에 젖자, 이전에는 몰랐던 섹시한 모습을 풍기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자칫 그녀에게 성욕이라도 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차마 그녀를 상대로 그런 마음을 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폰을 꺼내서 지도앱을 통해 대략적인 위치를 계산한 그는 집보다는 편의점이 훨씬 가깝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 그녀를 두고선 재빨리 편의점으로 뛰어갔다. 비 오는 날에 고생하는 것이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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