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신 클리닉-51화 (51/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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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

‘슬슬 올 시간이 된 것 같은데...’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성준은 저녁까지 헌터부대와 관련된 공부를 이어갔다. 그리고 그는 저녁이 되어서 한 사람을 애타게 기다렸다. 과연 그가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일까.

‘남편하고 대화가 길어지고 있나? 왜 이렇게 안 오지?’

그가 기다리는 사람은 옆집에 살고 있는 신지은이었다. 저녁 전에 그녀하고 미리 문자를 주고받았던 그가 다시 한 번 폰을 열어서 문자를 확인했다. 분명히 저녁 먹고 남편한테 친구네 놀러간다고 말한 다음에 바로 성준의 집으로 넘어오기로 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그녀는 오지 않았고, 심지어 연락도 없었다.

바로 옆집이라서 조금 늦더라도 크게 상관은 없었지만, 성준은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라도 남편하고 싸운 것이 아닐지, 아니면 또 다른 무슨 일이 발생한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몸속에 가득 쌓여있는 이 성욕을 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약간 초조해하기도 했다.

‘요즘 들어서 자꾸만 성욕이 폭발한단 말이야. 이것도 기이한 현상 때문인가?’

성준의 성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단순히 시도 때도 없이 발기가 잘 되는 것을 넘어서서 요즘에는 그의 마음까지도 성욕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자꾸만 야한 생각이 드는 것은 물론이었고,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미친 듯이 섹스가 하고 싶어졌다. 그렇기에 오늘은 기필코 신지은과 섹스를 하고 싶었던 그였다.

그런데 그녀가 오지 않으니 그의 마음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이 성욕을 혼자서 풀자니 그녀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었고, 남편과 싸우고 있을지 모르는 그녀에게 전화를 하거나 그녀의 집으로 갈 수도 없었다. 지금은 그저 그녀를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복도에라도 나가 있을까?’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집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그녀를 기다리던 성준이 현관문 쪽으로 이동했다. 그녀의 집 앞을 서성이다보면 혹시라도 그녀와 남편의 대화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며 복도로 나갈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는 현관문을 나가기도 전에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설마 방금 나와서 그의 집으로 오고 있는 것일까.

‘누구지? 누구랑 대화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만 성준의 집으로 오는 것이라면 굳이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 가까운 거리동안 혼잣말을 중얼거릴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특히나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굉장히 익숙한 목소리가 하나 더 들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누군가와 대화중으로 보였다.

호기심이 생긴 성준이 더욱 현관문 쪽으로 이동했다. 그는 아예 현관문에 귀를 대고 복도에서 들려오는 대화소리에 집중했다. 대화 내용이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나머지 한 명도 여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삑 삑 삑 띠리리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니던가. 깜짝 놀란 성준은 재빨리 방으로 뛰어 들어갔고, 곧 철컥하며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제야 성준은 신지은과 대화하는 사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그의 가족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누나 왔어? 어...? 지은이 누나는 왜...?”

집으로 들어온 사람이 누나임을 알게 된 성준은 마음속으로는 짜증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누나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친누나뿐만 아니라 신지은까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뭐지? 왜 지은이 누나도 함께 들어오는 거지?

그가 짜증이 난 이유는 당연히 누나 때문에 신지은과 만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신지은과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 것일까. 그는 신지은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지만, 신지은은 별다른 반응 없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오늘 지은이, 우리 집에서 자고 갈 거야. 그래도 괜찮지?”

신지은 대신 그의 누나가 먼저 말했다. 그녀는 신지은이 오늘 하루 이곳에서 머물 거라고 했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성준은 당황스러웠지만 애써 억누르며 대답했다.

“아...으응...나야 뭐...그런데 누나는 무슨 일로 갑자기...?”

“내가 내 집에 오겠다는데, 무슨 일이 있어야 되는 거야? 그냥 준이도 보고 싶고, 지은이 만나서 할 얘기도 있고 해서 왔어.”

집에 들어온 신지은과 성하은이 함께 거실 소파에 앉았다. 성준은 차와 주스를 내주면서 두 사람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신지은은 생각보다 무덤덤한 편이었고, 그의 누나는 겉으로는 별일 없다고 말해도 표정에는 심란하다고 쓰여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성준은 그녀에게 그 이유를 직접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차피 말해주지 않을 것임을 잘 알았기에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이건 뭐야? 술? 설마 누나가 사온 거야?”

“그냥 지은이랑 가볍게 먹으면서 대화하려고 샀어.”

“아...그럼...나는 방에 들어갈까?”

“그래줄 수 있어? 미안해. 대신, 내일은 누나가 맛있는 거 사줄게.”

“괜찮아. 어차피 공부 중이었거든.”

“그럼 부탁할게. 오늘은 절대로 몰래 엿듣지 말고.”

“으응...나 신경 쓰지 말고 대화 나누고 있어.”

심지어 그녀는 평소에 잘 먹지 않았던 술까지 사왔다. 성준은 그녀답지 못한 모습에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지금은 자리를 비켜주는 게 우선이라 생각하며 다시 자신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하...답답해...’

방 안으로 들어간 성준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답답해했다. 성욕을 풀지 못한 것도 짜증이 났지만, 누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는 고민 끝에 신지은에게 문자를 하나 보냈다.

[혹시 우리 누나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이제 막 성준이 자리를 비켜줬기에 벌써부터 진지한 대화를 이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자를 확인할 시간 정도는 충분할 것이기에 성준은 그녀의 답장을 기다렸다. 다행히 1분도 지나지 않아서 그녀에게서 답장이 날아왔다.

[나도 아직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어. 갑자기 만나자고 연락이 오는 바람에...남친하고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 같은데?]

[남자친구랑? 제주도 가서 싸운 건가?]

[그랬을 수도 있지. 아무튼 갑자기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아쉽지만 관계는 다음에 해야 될 것 같아.]

[그건 괜찮아. 누나는 남편한테 말하고 온 거야?]

[응, 하은이가 우리 집으로 직접 찾아왔었거든.]

[그랬구나. 그럼, 우리 누나 좀 잘 부탁할게.]

문자를 통해서 대략적인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아직 성하은이 심란해하는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은 확실해보였다.

‘답답하네...오늘도 몰래 엿들어야 되나?’

대략적인 상황은 알게 되었지만, 성준의 답답함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지금 이 상태로는 당연히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성욕까지 여전히 말썽이라서 그의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다.

‘조금만 들어보자. 지금쯤이면 둘 다 어느 정도 술에 취했을 거야.’

결국, 참다못한 그는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기로 했다. 방에 들어온 지 약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기에 지금쯤이면 타이밍이 딱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소리를 내지 않고 문을 열었고, 곧 두 사람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무슨 그런 사람이 다 있어? 진짜 너무한다.”

가장 먼저 들려온 목소리를 신지은의 것이었다. 그녀는 누군가를 욕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성하은의 남자친구로 보였다.

“이번에 제주도 여행가면서 서로 쌓였던 감정, 다 풀기로 했는데...오히려 악감정만 잔뜩 쌓인 것 같아...‘

“진호씨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너무해.”

“하지만 그 사람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야. 내가 그 사람이라도 지금 상황에 갈등이 될 수밖에 없었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 지금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그건!”

두 사람은 성준이 몰래 듣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대화에만 집중했다. 특히나 술이 약간 들어갔는지 점점 더 목소리는 커져갔다.

“그렇겠지?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건 아니겠지?”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하...그렇지만 이 현상이 언제 끝날지 알 수도 없고...”

“그 방법이 아니더라도 분명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성하은의 고민은 기이한 현상과 관련이 있어보였다. 남편의 이야기도 나오는 것을 보아하니, 그렇다면 역시나 저번처럼 임신 때문에 고민인 것일까. 성준은 조금 더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귀울였다.

“그치만 아직까지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잖아. 살아있는 정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은 나도 들었어. 하지만 고작 소문일 뿐이잖아. 그 소문을 얻는데만 해도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갔는데, 앞으로 임신을 하려면 또 돈이 필요할지 상상도 할 수 없어. 무엇보다 그러렇게 낳은 애도 결국에는 그 사람 애가 아니고...”

“진호씨 애는 아니지만, 네 배 아파서 낳은 아기잖아. 그게 중요한 거지. 그리고 진호씨랑 진호씨 부모님도 그 부분은 전혀 상관없다고 했다면서.”

“말만 그렇고 어쩌면 핏줄이 필요한 것일 수도 있지.”

“그래, 그 부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다른 여자가 낳은 아기를 키우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여자는 어떻게 할 건데?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성하은이 겪고 있는 문제는 임신과 관련된 게 맞았다. 하지만 그녀의 고민은 단순 임신만이 아니었다. 마지막에 신지은이 한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성준은 계속해서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무슨 말이지? 다른 여자가 낳은 아이? 그 여자는 또 누구고?’

아무리 되풀이해서 생각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알게 된 바로는 그의 누나의 남자친구와 시부모가 임신을 강력히 원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다른 여자랑 그 여자가 낳은 아기가 등장하는 것일까. 그는 조금 더 그들의 대화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여자가 절대 아기만 넘겨줄 수는 없다고...”

“그 여자도 진짜 또라이네. 그래서 정말로 재결합을 원한다는 거야?”

“딱히 진호씨한테 마음이 있지는 않다더라고. 다만, 아기를 위해서 재결합을 원하는 것 같아. 듣기로는 요즘 상황이 많이 어렵다고 하던데.”

“하...차라리 진호씨하고 헤어지는 건 어때? 너라면 진호씨말고도 좋은 남자 충분히 만날 수 있어.”

“그치만 진호씨는 절대 재결합 안 한다고 했는데...아기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그렇게 너를 위하는 사람이 그딴 식으로 말을 해?”

“하...어쩌면 좋을까...헤어지는 건...안 되는데...”

“둘 중 하나겠네. 어떻게든 임신 할 방법을 찾던가. 아니면, 마음 단단히 먹고 헤어지던가.”

“둘 다 너무 어렵다...”

이어진 두 사람의 대화는 충격적이었다. 성준은 방금 자신이 들은 내용들이 모두 사실인지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말도 안 돼. 누나가 만나는 사람이 이혼남이었어? 그것도 과거에 자식까지 낳았던?’

가장 큰 충격은 역시나 성하은의 남자친구의 정체였다. 그동안 성준은 누나에게서 누나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듣지 못했다. 그저 회사에서 만난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고, 그 사람과 동거를 하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자세한 내용은 몰랐다. 하지만 그의 정체가 이혼남이었다니, 당연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번째 충격은 현재 그 사람하고의 상황이었다. 현재 누나의 상황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남자친구와 남친의 부모님은 아이를 간절히 원하고 있지만, 임신을 할 수 없는 세상이 찾아왔다. 그 가운데 과거 이혼했던 와이프가 재결합을 바라고 있는 중이다. 당연히 성하은의 입장에서는 곤란하고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었으면서 가족들한테 말 한마디 안 하다니...우리 누나도 참 고집불통이네.’

이런 어마어마한 고민을 자신한테 얘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감도 들었지만, 성준은 그녀가 더욱 걱정되었다. 그동안 이 일로 얼마나 속이 썩었을까. 오죽했으면 술을 좋아하지 않는 그녀가 술까지 먹고 있을 정도이니, 그녀의 아픈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임신이라...내가 도와줄 수는 없겠지...?’

그리고 그와 함께 고민이 한 가지 더 들었다. 바로 그녀의 임신과 관련된 문제였다. 임신 능력이 있는 성준의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그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임신만 하면 되는 거라면 문제가 간단하겠지만...내가 나설 문제는 아닐 거야. 근친 자체도 말이 안 되는 일이고, 무엇보다 누나가 임신한다고 해서 바로 해결될 문제로 보이진 않으니까. 우선 지켜보는 수밖에...에휴...’

그렇지만 누나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다.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기에 임신을 하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였다. 지금으로선 그가 나설 차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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