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신 클리닉-56화 (56/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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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집에 가서 공부해야 되는...”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인간관계야. 새로운 이웃이 이사 왔으면 당연히 인사도 하고,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지.”

“어차피 쌤하고는 아는 사이잖아요. 더군다나 학교에서도 볼 수 있는데...”

“토 달지 말고 얼른 따라와.”

성준은 그녀에게 억지로 이끌려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녀가 팔을 워낙 강하게 붙잡고 있는 바람에 도저히 떼어낼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아까부터 자꾸만 팔에 그녀의 가슴의 감촉이 느껴졌다.

‘젠장, 다른 일들 때문에 이걸 깜빡하고 있었어.’

그녀의 가슴이 굉장히 신경 쓰였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없었다. 그녀의 막무가내 성격은 그가 이겨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속으로 짜증을 내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다.

“오늘 이사 왔으면 정리하느라 많이 바쁠 텐데, 내일 오며 안 될까요?”

“전에는 안 그러더니, 요즘에는 말이 많아졌다? 이제 고등학생이라는 거야?”

“아, 아니...그게 아니라...그냥 쌤 바쁜데 제가 방해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방해는 무슨, 오히려 너 부려먹으려고 데려가는 건데?”

“네? 그럼...설마...”

“응, 아직 짐 정리할 게 많아서 네가 나 좀 도와줘야겠어. 친구랑 둘이서 정리하기에는 너무 양이 많단 말이야. 더군다나 우린 둘 다 여자고.”

“하하...너무 남녀차별 발언 아니에요?”

“어쩌겠어.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강한걸.”

그녀가 성준을 집으로 데려가는 것은 초대도 초대였지만, 남은 짐을 정리하는 게 목적이었다. 그녀의 말에 성준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강제로 그녀에게 이끌려 집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집안은 그녀의 말처럼 아직 정리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가구들은 제 위치에 배치가 되어있었지만, 물건들은 여전히 박스에 담겨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을 정리하기 전까지 집에 갈 수 없다는 사실에 성준의 표정은 절망으로 물들어갔다.

“왔어? 어머, 이 젊은 남자는 누구야?”

집안에는 유은정의 룸메이트로 보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상당히 짧은 반바지와 나시티를 입고 있는 그녀는 문이 열리자마자 짐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유은정과 성준에게 인사를 했다. 특히나 그녀는 성준을 바라보며, 놀라기보다는 매우 흥미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내 파트너야. 인사해.”

“파, 파트너라니요...저는 바로 아래층에 살고 있어요. 쌤하고는 예전에 과외하면서 알게 된 사이고요.”

유은정은 그녀에게 성준을 파트너라고 소개를 해주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파트너라니, 성준은 크게 당황하며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을 해주었다.

“과외를 했었다고? 뭔가 엄청 야릇한 관계인데?”

하지만 그녀도 유은정과 비슷한 과인 모양이다. 성준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과외한 게 어때서요...”

“그냥 과외선생님과 제자하면 조금 야하지 않아?”

“전혀요...”

“아무튼 만나서 반가워. 나는 이소영이라고 해. 은정이랑은 대학교에서 만난 친구 사이고.”

“네...반갑습니다.”

끼리끼리 만난다는 말처럼 이소영의 외모는 상당히 뛰어난 편에 속해 있었다. 유은정에 비해서는 한 단계 다운그레이드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밖에서 마주쳤다면 한 번쯤은 뒤돌아서 확인했을 만큼 아름다운 몸매와 얼굴을 소유하고 있었다. 특히나 뿔테 안경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이 상당히 귀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 이제부터 네가 해야 될 일들이 있어. 거실은 우리가 정리할 테니까, 저쪽 방에 있는 물건을 정리해줬으면 좋겠어.”

그렇지만 성준에게 그런 것은 크게 상관없었다. 어차피 앞으로 유은정과는 자주 만날 생각이 없기도 했고,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바로 그녀가 일을 시켰기 때문이었다.

“네? 하지만...제 마음대로 정리할 수는 없잖아요.”

“저기 방은 어차피 창고 같은 거니까 대충 정리해도 괜찮아.”

“그래도...”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랑 소영이 속옷 정리하게 만드는 수가 있어.”

“...네, 바로 정리하겠습니다.”

유은정에 말에 성준은 한숨을 내쉬며 그녀가 말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작은 방으로 바로 아래층에 성준의 방이 위치하는 장소였다. 두 사람은 이곳을 책과 컴퓨터와 함께 기타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곳으로 쓸 생각으로 보였다.

“일단 책부터 정리할게요. 그냥 마음대로 넣어도 되는 거죠?”

“될 수 있으면 아주 깔끔하게 정리해줬으면 좋겠지만, 굳이 부탁하진 않을게.”

“하하...알겠습니다...”

강제로 왔어도 이곳에 들어온 이상,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성격상 무언가를 대충 처리하는 것도 맞지 않았기에 그는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며 열심히 짐들을 정리했다. 제법 양이 많았지만, 과거에 그녀가 적은 돈으로 과외를 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다.

“엄청 열심이구나. 역시 데려온 보람이 있다니까.”

“딱 이 방만 정리하고 보내주는 거예요. 다른 일까지 시키면 그대로 도망 갈수도 있어요.”

“후훗, 나머지는 우리가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이거 먹으면서 쉬엄쉬엄해.”

유은정이 가져다준 과자와 주스를 마시면서 성준은 짐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그냥 아무 곳에다 쑤셔 박아놓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의 방이라고 생각하며 꾸며갔다. 꽤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점점 짐이 줄어가면서 방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좋아, 이제 두 박스만 정리하면 끝이네. 컴퓨터도 설치가 끝났으니까, 나머진 문제없겠어.’

시간이 흘러 이제 그가 정리해야 될 짐도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딱 두 박스만이 방에 남아있었는데, 그는 빨리 끝내자는 생각으로 곧장 박스 하나를 열었다.

‘이게 뭐지? 앨범인가?’

상자를 열자 가장 맨 위에 앨범 하나가 놓여있었다. 호기심이 생긴 그는 그대로 앨범을 열어서 안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유은정과 이소영이 찍은 사진들이 붙어있었다.

‘둘이 꽤 친한 사이인 모양이네. 하긴, 그러니까 집도 같이 쓰는 거겠지.’

성준은 앨범을 한 장씩 넘겨가며 사진들을 구경했다. 사진들 대부분은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사진이었다. 여러 가지 컨셉을 잡고 찍은 사진도 있었고, 코스프레를 한 사진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앨범의 뒤로 갈수록 사진의 수위가 높아졌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심지어 누드 사진까지도 있었다. 수위가 그리 높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가슴정도는 확인이 가능했다.

’하...이런 사진은 왜 굳이 여기에 붙여서 보관하는 거야...여자들끼리 이런 사진 찍는 게 전에 유행이었다고는 하지만 왜 나한테 이걸 보여주는 건데...’

마지막 누드 사진을 보는 순간, 성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사람의 몸매는 옷을 입으나 벗으나 환상적이었지만, 그래도 성준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는 바로 앨범은 덮은 뒤, 남은 짐을 확인했다.

‘젠장...이게 뭐하자는 거야, 도대체...’

그렇지만 박스에 담겨 있는 남은 짐들 역시도 그를 더욱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 안에는 그가 전혀 상상도 못했던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왜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는 건데...더군다나 이런 물건 있는 방을 나보고 정리하라고? 이거 의도적인 거 맞지? 하...어쩐지 짐 정리하는 내내 아무런 터치가 없나 했더니 이런 속셈이었구나.’

그 물건들은 단순히 바라보기에도 민망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남자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자위기구는 물론이고, SM플레이를 위한 각종 도구들과 함께 심지어 남성용 자위기구도 들어있었다. 이런 짐들이 있는 방을 굳이 성준에게 정리하라고 말한 걸로 봐서는 확실히 유은정의 의도라고 생각했다.

‘어떡하지...그냥 모르는 척 구석에 정리했다가는 어차피 나중에 놀리면서 물어보겠지? 그럴 바에 지금 부딪히는 게 좋을 거야.’

성준은 어차피 유은정에게 놀림을 당하게 될 것이라면 매도 지금 맞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는 앨범과 함께 도구들을 그대로 상자 안에 넣어 둔 채로 거실에 있는 그녀에게 가져갔다. 한창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두 여자는 정리는커녕 각자의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왜 여긴 짐이 다 그대로 남아있어요? 지금까지 정리하던 거 아니었어요?”

“그러려고 했는데, 너무 귀찮아서.”

“나는 오늘까지 해야 될 일이 있어서.”

“아...이 집과 전혀 관련 없는 저는 죽어라고 일하고 있었는데, 두 분은 각자 할 일을 하고 계셨군요.”

유은정은 주방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중이었고, 이소영은 노트북을 하고 있었다. 두 여자의 모습에 성준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거는 도대체 뭡니까. 이거 때문에 저한테 일부러 저 방 정리하라고 시킨 거죠?”

상자를 내려놓은 성준이 유은정을 나무라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상자를 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자신은 전혀 모른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게 뭔데? 저기 방에 있는 건 대부분 책 아니야?”

“책이요? 이게 어딜 봐서...하...책이 하나 있긴 하죠. 아주 엄청난 책이. 아무튼 이건 제가 정리 못하니까 알아서 하세요.”

그녀의 태도에 성준은 더욱 짜증이 났다. 아무리 장난이라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삿짐까지 도와주는 입장에서 이런 장난을 당해야 된다는 사실이 그는 못마땅했다.

“이게 뭔데 그래? 지금 이거 때문에 짜증난 거야? 도대체 뭐길래...”

그렇지만 그녀의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박스 안에 들어있는 물건이 뭔지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성준은 그녀의 그런 표정마저도 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반응은 상당히 진지했다.

“아앗! 그거 내 건데! 그게 왜 그 방에 있었지?”

그리고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물건들의 주인은 유은정이 아니라 바로 이소영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네? 누나 물건이에요?”

“어, 얼른 이리 줘!”

상자를 확인한 이소영이 재빨리 다가와 상자를 열려고 했던 유은정을 밀쳐내고는 자신의 물건들을 챙겼다. 그녀는 다소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너 설마...이것들 그거냐?”

그리고 그런 그녀의 반응에 유은정은 단숨에 눈치를 채고 말았다. 그녀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유은정이 그녀의 물건을 모를 일은 없었다.

“왜 이게 저 방에 있었던 거지...분명히 밖에 빼놨었는데...설마 열어 본 건 아니지...?”

“얘가 열어봤으니까 이렇게 짜증을 냈지. 너는 그러니까 그런 걸 왜 아직도 들고 다니냐? 설마 거기에 우리 앨범도 들어있어?”

“...으응...”

이소영이 빨개진 얼굴로 상자를 들고선 거실 구석에 숨겨놓았다. 유은정은 그런 그녀를 보며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저었다.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다 본 거지?”

유은정이 성준에게 물었다. 성준은 아무 대답 없이 고개를 위 아래로 끄덕였다.

“설마 앨범도 다 봤어?”

“뭐...어쩌다 보니까요...”

“변태.”

“아니...앨범이라면 보통 누구나 궁금해 하잖아요. 저는 당연히 평범한 사진이 있으리라고 생각했죠.”

“가족이나 친구라도 여자 앨범은 함부로 보는 거 아니야.”

“네...죄송합니다...”

성준과 유은정의 말에 이소영은 더욱 어쩔 줄 몰라 했다. 도대체 그녀는 왜 그런 물건들을 가지고 다니는 것일까.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은 바로 유은정이 대답해주었다.

“우리 소영이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 얘가 직접 쓰려고 모은 게 아니라, 직업 때문에 구입해 놓은 거라서.”

“직업이요?”

“얘 직업이 섹스 칼럼니스트이면서 야설 작가거든.”

“아...”

그녀의 직업에 대해서 들은 성준은 겉으로는 무덤덤해도 속으로는 상당히 놀랐다. 설마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을 직접 만나게 될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그래도 한 편으로는 그녀가 그런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게 조금은 이해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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