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신 클리닉-59화 (59/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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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다음날, 박수아

‘답답해...동생한테 방법을 들으면 뭐해, 나는 전혀 이런 성격이 아닌걸...’

학교에 있는 내내 박수아는 한숨을 달고 살았다. 생각만큼 자신이 바라던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는지 그녀는 시간이 갈수록 시무룩해졌으며, 제대로 기운조차 내지 못했다.

‘이대로는 안 되는데...빨리 뭐라도 해야 되는데...’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 답답함은 역시나 성준 때문이었다. 이제 그녀의 일상은 성준으로 시작해서 성준으로 끝났다. 성준은 하루에 그녀가 떠올리는 생각에 대부분은 차지했으며, 실제로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성준이 그녀에게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그녀의 기분은 좋아졌고, 성준의 사소한 행동도 그녀에게는 큰 효과로 다가왔다. 물론, 성준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얘는 무슨 애가 SNS도 안 하는 거지...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어 보이고...’

성준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집착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가정형편 때문에 알바를 하는 입장이라 하루 종일 그에 대해서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SNS를 검색해보거나 그와 관련된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그와 가장 친하다고 볼 수 있는 이강성, 민병석, 박정호의 뒷조사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터넷만으로는 성준에 대해서 알아보기가 너무 어려웠다. 성준은 요즘 학생들과 다르게 인터넷 세상에 그리 많은 발을 담그고 살지 않았다. 특별히 즐기는 게임도 없었으며, 음악도 한 가지 장르를 좋아하기보다는 여러 장르를 듣는 편이었고, 자주 들어가는 커뮤니티 사이트조차도 없었다. 그나마 축구에 관심이 많다는 점 하나는 알 수 있었지만, 축구를 본 적도 손에 꼽을 정도인 그녀에게 며칠 만에 축구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최근에는 오로지 헌터부대 공부만 하는 건가...얘나 나나 여유가 없는 건 똑같은 모양이네.’

그런 성준의 상황과 성격에 그녀는 답답함을 느꼈지만, 그래도 한 편으로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주변에 친구도 많고,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스타일보다는 성준 같은 스타일이 조금 더 자신과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 또한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기에 그와 사귀게 된다면 알콩달콩 좋은 커플이 될 수 있다고 김칫국을 마시기도 했다.

‘그치만...그 덕에 학교만 끝나면 연락도 제대로 못하니까...답장은 꾸준히 해주지만, 너무 느리단 말이야...너무해...’

매일같이 성준과 커플이 되는, 결혼을 하는 등의 달콤한 상상을 하는 그녀였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최대한 붙어 지내기는 했지만, 친구 그 이상이 되기는 어려웠고, 학교 밖에서는 그와 연락하기조차 힘들었다. 학교를 마친 이후로는 그녀는 알바를 했고, 성준은 헌터부대 공부를 했기에 그녀가 노릴 수 있는 기회는 오로지 학교에서였다.

그래서 오늘 그녀는 동생에게 들은 조언을 바탕으로 최대한 그에게 성적 매력을 어필해보고자 했다. 그렇게 마음먹고 교복치마를 확 줄이고, 화장까지 진하게 해봤지만, 한두 번 성준에게 관심을 받았을 뿐, 그 이후로는 오로지 그녀의 몫이었다. 조금 더 성준에게 들이대면서 어필을 해야만 했지만, 그녀의 성격으로는 감당해내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도대체 수진이 걔는 어떻게 성격을 확 바꾼 거지? 나는 도저히 못하겠어...이런 짧은 치마를 입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한데...’

소심하고 내성적인 그녀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힘들어보였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18년 동안 살아왔던 모습을 지우는 것은 어려웠다. 무엇보다 성준의 앞에서는 바뀐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마음대로 되지도 않았다. 한껏 꾸미고 왔어도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어제와 똑같이 그의 옆에서 그저 그를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바뀐 모습을 통해서 그나마 한 가지 효과를 가지고 왔다면, 성준이 아닌 다른 남학생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녀에게 다른 남자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지만, 이런 모습을 통해서 성준이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다. 혹시라도 그가 조금이나마 질투를 한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흐응...이젠 나한테 전혀 관심이 없구나...아까부터 무슨 문자를 이렇게 보내는 거야...평소에는 핸드폰은 잘 들여다보지도 않더니...그러고 보니까 어제부터 이상했어.’

하지만 그녀의 기대와 달리, 성준의 관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녀의 바뀐 외모를 칭찬하기도 하고, 그녀에게 다가오는 남학생들을 보면서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보이기도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 이후로는 평소처럼 그녀를 대했으며, 별 다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저번 쉬는 시간부터는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문자를 보내는 데에만 열중이었다.

‘설마...여자가 생긴 건가...? 에이, 설마...헌터부대 때문에 그럴 시간도 없을 텐데...더군다나 이민정을 좋아한다고 했었잖아. 설마 민정이랑 문자하는 건가? 아니야, 민정이는 지금 핸드폰을 만지고 있지 않아. 그러면...누구지...? 그러고 보니까 어제 1학년 교실을 어슬렁거리던데...’

자꾸만 누군가한테 문자를 보내는 성준의 모습에 그녀의 마음은 편치 못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친구들하고 주고받는 문자이겠거니 생각했지만, 그녀의 생각은 자꾸만 안 좋은 쪽으로 뻗어가기 시작했다. 특히나 그녀는 어제 있었던 일이 상당히 불편하게 다가왔다.

어제 성준은 점심시간 이후로 그녀를 놔두고 ‘최한결’에게만 매달렸다. 최한결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서 1학년 3반 교실을 둘러보기도 했고, 마치 스토커처럼 최한결의 뒤를 밟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박수아는 전부 다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뒤에서 몰래 성준을 쫓아다녔기 때문이었다.

‘그 애는 도대체 누구 길래...좋아하는 사람이라기엔 인사나 대화도 없이 멀리서만 바라봤을 리는 없잖아. 혹시 여자를 소개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까 같은 학교 1학년이었던 건가? 그래서 몰래 가서 확인해 본 거고? 설마...’

어제 일을 떠올린 박수아는 확실한 증거도 없이 자기 마음대로 소설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녀의 소설의 끝은 항상 성준이 자신을 두고선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면할수록 그녀의 마음은 불편함을 넘어서 짜증과 화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누구한테 문자를 보내는 거지? 한 번 몰래 살펴볼까? 하지만...이래도 되는 걸까? 하...모르겠다, 그냥 누구한테만 보내는 건지, 살펴보자. 만약 여자라면 어떡하지? 여자라면...아니야, 아닐 거야. 일단, 확인부터 해보자.’

도저히 이 답답함을 견뎌낼 수 없었던 그녀는 몰래 성준의 뒤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녀는 성준에게 하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행동들에 대해서 합리화를 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이런 행동들을 통해서 마음속 답답함을 해결해도 또 다른 답답함을 낳기 마련인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문자하는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었구나. 그래도 이민정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이민정이 있었더라면, 진짜 미쳐버렸을지도...’

성준의 뒤로 몰래 다가간 그녀는 힐끔힐끔 성준의 핸드폰 화면을 살폈다. 성준은 단 한 명의 사람하고 문자를 주고받는 것이 아니었다. 무려 4명의 사람과 문자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이민정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저 둘은 처음 보는 이름인데...성하은은 친누나라고 들었고, 유은정은 보건쌤이고...보건쌤하고 따로 연락까지 하는 사이구나. 어쩐지 저번에 심상치가 않더니...짜증나...그나저나 나머지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야...하서윤이랑 신지은? 둘 다 여자 이름인데...한 명은 존댓말을 하는 걸 보니까 연상 같고, 한 명은 친구인가?’

다만, 이민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녀의 불안한 마음은 잠잠해질 수 없었다. 그동안 성준의 뒷조사를 하긴 했지만, 그녀는 아직도 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특히나 그의 주변 여자들에 대해서는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성준이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도 없었고, 학교가 끝나고 나면 알바를 해야만 했기에 그를 따라다닐 수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저 여자들이 굉장히 신경 쓰였다. 아직 그들의 정체를 알 수는 없었지만, 자꾸만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뛰었다. 혹시라도 그들 중에 성준과 썸을 타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당장이라도 처내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마음만 먹을 뿐 실천으로 옮기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짜증나...답답해...왜 나는 바라보지도 않고, 저 여자들하고만 대화를 하는 거야...이렇게나 예쁘게 꾸미고 왔는데...어째서...’

성준은 여전히 그녀들과 문자를 하느라 바빴다. 박수아는 그런 성준을 뒤에서 바라보며 애써 답답한 마음을 삼켰다. 속으로는 몇 번이나 성준에게 몇 번이나 이런 저런 말을 하고, 스킨십을 유도하는 등 그를 유혹하기 위한 기술을 펼쳤지만,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성준을 다른 여자에게 뺏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나한테 어떤 사람인데...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를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해. 힘내자, 박수아. 너는 할 수 있어...할 수 있다고...’

성준을 다른 여자에게 뺏기는 것만큼은 결코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녀에게 성준은 이제 단순한 좋은 사람과, 좋아하는 이성을 넘어선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설사 잘못된 마음이라 하더라도 이미 그녀에게 성준은 그런 존재였다.

‘동생한테 조금 더 물어봐야겠어. 어떻게 하면 변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남자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지...이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성준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움직여야 되는 거야. 그게 맞아. 나한테는 그의 약점도 있으니까...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한테 넘겨줄 수는 없잖아. 절대 그를 놓칠 수는 없어...’

그리고 그런 불안한 마음은 조금씩 그녀를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절대 좋은 쪽으로의 변화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동생 박수진이 겪었던 것처럼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쪽을 선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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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성준

무사히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성준은 간단히 헌터부대 공부를 마친 뒤, 저녁을 먹기 위해서 505호, 하서윤의 집으로 향했다. 오늘은 그녀와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었기에 매우 기쁜 마음으로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고, 그녀 역시도 성준을 환하게 웃으며 맞이해주었다.

“미안해요, 일찍부터 준비하시느라 많이 힘들었죠? 차라리 다음에 먹을 걸 그랬나 봐요.”

“아니야, 괜찮아. 나는 이렇게 준이랑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걸.”

“저도 누나랑 저녁 먹는 시간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그치만 아쉽게도 오늘은 시간이 별로 없네요.”

“어쩔 수 없지. 내가 준이 누나 입장이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나 같은 사람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겠지. 나도 내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

평소에 그녀와 저녁을 먹는 시간은 보통 저녁 6시나 7시 이후였다. 하지만 오늘 성준이 그녀의 집으로 향한 시간은 5시가 되기도 전이었다. 그가 이렇게나 그녀의 집에 일찍 찾아온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친누나, 성하은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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