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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클리닉-60화 (6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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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하은은 여전히 성준의 집에서 지냈다. 오늘 역시도 성준은 학교에서 누나로부터 집에 머문다는 문자를 받을 수 있었다. 어제 기나긴 얘기 끝에 그녀의 화가 어느 정도 풀렸기에 다행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는 왠지 모르게 누나가 집에 있는 것이 불편했다. 누나가 그동안 자신을 위해서 노력하고 고생한 것이 안타깝고 고마웠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상당히 누나가 불편했던 그였다.

무엇보다 그가 누나가 불편했던 이유 중 하나는 하서윤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는 이상하게도 하서윤을 싫어했다. 성준에게 반찬 만들어주는 일을 잠시나마 대신해줘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하서윤에 대한 소문이 이상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묘하게 하서윤을 견제하는 느낌이었다. 그런 상황에 그녀의 집에서 밥까지 먹는다고 했다간 엄청난 잔소리를 들을 것만 같았기에 성준은 미리 누나에게 친구랑 나가서 놀다가 들어오겠다고 말을 해놓았을 정도였다.

“그건 누나에 대한 오해 때문이잖아요. 누나가 알고 보면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 하여튼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문에 엄청 민감하다니까요.”

“그래도...내가 폐인처럼 지냈던 건 사실이니까...그리고 요즘에는 대인기피증도 심하고...준이 누나는 준이한테 부모님 같은 존재잖아. 세상에 어떤 부모가 자식한테 나 같은 사람이랑 어울리게 두겠어.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해.”

성준이 그 사실을 하서윤에게 말해주자, 그녀는 상당히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자존감이 상당히 낮은 듯 보였다.

“제가 부모라면 자식한테 절대 그런 편견은 심어주지 않을 것 같아요. 누나는 좋은 사람이에요. 제가 아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착하고 좋은 사람이에요. 제가 왜 거짓말까지 해서 누나 보러 왔겠어요. 그러니까 다시는 그런 생각 하지 마세요.”

그런 그녀에게 성준은 진심어린 위로를 해주었다. 실제로 성준은 그녀와 약속이 있는 날은 공부고 뭐고, 무조건 미루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최근 그의 삶에서 그녀를 만나는 것보다 좋은 건 섹스밖에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정도로 그에게 그녀는 중요한 존재였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진짜 준이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 아직도 나 혼자서 외롭고 쓸쓸하게 지냈을 거야.”

“누나는 좋은 사람이라서 굳이 제가 아니더라도 훨씬 더 좋은 사람 만나셨을 거예요.”

“후훗, 지금 나한텐 준이보다 좋은 사람은 없는 걸?”

“그러고 보니까 누나는 가족은...없어요?”

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성준은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다. 현재 그녀는 성준을 제외하고는 집안에서 혼자서만 지냈다. 남편을 잃은 이후로 충격 때문에 그렇게 지내게 되었는데, 그 전에는 연락하면서 지내는 가족이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없어. 나는 고아원 출신이거든.”

하지만 그의 질문은 의도치 않게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야 말았다. 고아원 출신이라는 그녀의 말에 성준은 순간적으로 심장이 바닥으로 쿵하며 가라앉는 기분을 느꼈다. 생각해보니, 과거에 그녀에 대한 소문 중에 부모나 가족이 없다는 얘기를 들은 것도 같았다.

“아...죄송해요...정말 죄송해요...”

“아니야, 준이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 나한테 가족이란 그리 가까운 존재는 아닌가봐. 어렵게 가족을 만들었는데, 금방 사라지는 걸 보니까...”

말로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조금 전보다 훨씬 더 시무룩해진 상태였다. 성준은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준이한테 가족은...어떤 느낌이야?”

그런 성준에게 그녀가 한 가지 질문을 했다. 그녀의 질문에 성준은 잠시 고민을 했다. 그에게 가족이란 무슨 존재일까.

“글쎄요, 딱히 어떤 말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때로는 원수 같기도 하고, 불편하거나 귀찮으면서도 가장 소중한 존재라고 해야 될까요. 굳이 말하자면 언제든지 나를 희생할 수 있는 그런 존재 같아요.”

그에게 가족은 정말 특별한 존재였다. 특히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빚에 시달리면서부터는 더욱 그랬다. 역경은 그와 그의 가족을 더욱 강해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시켰다. 가끔씩은 누나와 동생과 부딪히면서 싸울 때도 있었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그에게 가족은 전부를 내줄 수 있는 소중한 존재였다.

“언제든지 희생할 수 있는 존재...맞는 말이네.”

“가끔씩 싸우기도 하지만, 가족이기에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거겠죠.”

“가족은...참 좋은 거네. 부럽다.”

성준의 대답에 그녀는 진심으로 그를 부러워했다. 그녀에게 가족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몇 년 전만 해도 그녀는 남편과 함께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가족은 아니지만...그래도 누나 곁에는 항상 좋은 사람이 있어줄 거예요. 누나는 좋은 사람이니까 당연히 옆에 좋은 사람들만 모이겠죠.”

“준이 너처럼?”

“뭐...저도 그럴 수 있겠죠.”

“준이 같은 동생이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그럼 그냥 제가 누나 동생 할까요?”

“후훗, 친누나는 어쩌고?”

“누나가 두 명이면 더 좋죠, 뭐.”

“그런 말이라도 너무 고맙다. 준이는 진짜 지금 나한테는 가족만큼 중요한 존재야.”

성준이 그런 그녀에게 당장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그녀의 옆에서 가족처럼 위로를 해주고, 그녀가 필요할 때마다 옆에 있어주는 게 전부였다. 물론, 그녀에게 그런 성준은 가족보다도 훨씬 더 따뜻하게 다가왔지만 말이다.

“그냥 빈말이 아니고, 정말인데요? 요즘 들어서 간섭이 조금 심해지고 있거든요. 물론, 그만큼 저를 걱정하고 저한테 관심이 있어서겠지만, 최근 들어서는 좀 그러네요. 더군다나 저한테 본인 이야기는 하나도 해주지도 않고. 점점 누나랑 멀어지는 기분이에요.”

“그래? 누나가 요즘 많이 힘든 모양이다.”

“뭐, 그렇긴 하죠. 저희 누나도 요즘 임신 때문에 고민이 많거든요.”

“요즘에 여자들은 다들 그 문제로 고민이 많으니까...그래서 저번에 임신과 관련해서 고민이 있었구나.”

“뭐...그렇죠. 그래서 그런데 혹시 저번에 그 정보는 어떻게 됐어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가족에서 임신으로 넘어왔다. 성준의 질문에 그녀는 기다리고 있다는 듯이 대답을 해주었다.

“안 그래도 오늘 그 얘기 하려고 했는데, 오늘 아침에 결국 입금해버렸거든. 무려 300만원이나 써버렸어.”

성준이 그녀에게 묻는 정보는 바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단체에서 제공해준 임신과 관련된 정보였다. 그녀는 이번에도 300만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해서 정보를 얻어냈다고 말했다. 이번에 그녀가 얻어낸 정보는 과연 무엇일까. 성준은 어쩌면 자신의 능력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었기에 매우 긴장하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특별한 정보는 없었어. 다만, 나한테 직접적으로 연락을 해서 조금 놀랐을 뿐이지.”

“직접 연락을 했다고요?”

“으응, 문자뿐만 아니라 전화까지 했는걸.”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요?”

“임신을 원하냐고 물어보길래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했지. 그러니까 자신들이 임신을 시켜줄 수 있다고 말하더라고.”

“정말요? 임신을 시켜준다고 했어요?”

그곳에서는 놀랍게도 그녀에게 임신을 시켜주겠다고 말했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임신을 가능하게 해주겠다는 말일까.

“응, 확실히 그랬어. 정확한 방법은 아직 알려줄 수 없지만 본인들 능력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대신, 돈이 조금 많이 필요하다고 했어.”

“얼마나 필요한데요?”

“그것도 아직은 말 안 했어. 다음 주나 주말에 한 번 더 연락을 할 거라고, 그때 확실하게 결정을 내려주면, 액수와 함께 방법까지 알려주겠다고 말했어.”

“흐음...도대체 어떤 방법일까요?”

“글쎄...요즘 냉동정자를 몰래 거래해서 불법으로 시험관 시술을 하는 곳도 많다고 들었거든. 그런 곳이 아닐까 싶기도 해. 물론, 불법인만큼 사기 치는 곳도 많다고는 하더라고.”

아쉽게도 그들은 아직 자신들의 모든 정보를 밝히지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이들이 굳이 이렇게까지 비밀로 할 이유는 없었다. 사기를 목적이라면 이렇게 시간을 끈다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었다. 성준은 왠지 모르게 자꾸만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일단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으응, 그렇지. 임신이 가능했으면 좋겠는데...그러면 나도 준이처럼 가족이 생기는 거잖아.”

“저도 꼭 그랬으면 좋겠네요. 누나도 제 친누나도 임신만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성준과 달리 그녀는 이 단체를 믿는 듯한 눈치였다. 그녀에게 임신은 삶의 모든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아무리 불길한 마음이 들더라도, 사기를 당하더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두 사람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이미 저녁은 오래 전에 마친 뒤였고, 두 사람은 여전히 차를 마시면서 아직까지도 대화를 이어갔다. 임신과 가족이라는 무거운 주제는 이제 마무리를 지었고, 지금 두 사람은 비교적 가벼운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다. 특히나 성준은 그녀가 너무나도 편하게 느껴졌고, 마치 친누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녀에게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니까 그 애가 자꾸 그런 식으로 나온다는 거지? 준이, 너는 그 애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는 거고?”

“네,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이해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 애가 가지고 있다는 준이의 약점은 어떤 건데?”

“아...으음...그것까지는...하하...죄송해요...”

현재 성준이 그녀에게 털어놓고 있는 고민은 박수아에 대한 것이었다. 최근 박수아 때문에 걱정거리를 달고 살았던 그는 그녀에게 박수아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차마 자신의 비밀에 대해서는 그녀에게 말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그녀라면 충분히 교우관계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 애가, 그러니까 수아가 준이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네? 수아가 저를요?”

그리고 그녀의 대답은 역시나 명쾌했다. 그동안 성준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그녀는 이야기만 듣고도 단숨에 맞출 수 있었다.

“이야기만 들어보면, 준이를 엄청 좋아하는 것 같아. 그래서 가끔 질투도 하고, 투정도 부리는 거겠지.”

“아...하지만...저는 그 애한테 특별히 해준 것도 없는데...”

“꼭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해줘야만 좋아하는 게 아니잖아. 나한테 준이가 옆에만 있어줘도 좋은 느낌을 주는 만큼, 그 애도 준이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감정을 받는 게 아닐까?”

“그렇군요. 그치만...좋아하는 것치고는 너무...”

“원래 여자의 마음은 그래. 절대 남자들은 이해할 수 없지.”

“흐음, 생각해보니까 누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해요. 왜 그동안 전혀 몰랐을까요?”

“준이가 그런 쪽으로 조금 둔한 면이 있구나.”

“조금은 그런 편이죠.”

그녀의 말에 성준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박수아가 자신에게 했던 것들을 떠올려보자, 대부분 관심의 표현들이 많았다. 애초에 여자가 자신을 좋아할 리가 없다고 선을 그엇기에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저는 아직 누군가를 만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데 어떡하죠...”

“그럴 때는 확실하게 이야기 하는 게 좋긴 해. 그 애가 더 상처받기 전에 말이야.”

“으음...역시 그렇겠죠. 고민해봐야겠네요.”

그렇지만 성준은 박수아의 마음을 받아줄 준비는 되어있지 않았다. 그녀가 싫은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여자를 사귈 때가 아니었다. 헌터부대 공부도 공부였지만,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이 문제였다. 지금 상황에서 여자를 사귀는 것은 그에게는 사치에 가까웠다.

“저는 이제 가봐야 될 것 같아요. 아까부터 계속 누나한테 문자 오고 있거든요.”

“어머, 그럼 빨리 가봐야지. 괜히 또 누나한테 한 소리 들을라.”

그녀에게 조금 더 박수아 문제에 대해서 상의를 해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성준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아까부터 누나에게서 문자폭탄을 받았던 그는 이제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안해요. 오늘처럼 날씨 좋은 날에는 밖에 나가서 운동도 해야 되는데...아쉽네요.”

“괜찮아. 다음에 또 만나면 되잖아.”

“그럼, 다음에 또 만나요. 오늘도 정말 고마웠어요.”

“나도 고마웠어. 잘 가.”

그렇게 성준은 하서윤의 집을 나와서 다시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면서 그는 누나가 보낸 문자들을 확인했다. 다행히 문자 내용을 보니, 화가 난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조금 어색한데...별 일은 없겠지.’

누나와 마주치는 것이 상당히 어색했지만, 그래도 그의 가족이었다. 그는 용기를 내서 현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에 들어간 그는 뜻밖의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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