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신시키기 -->
“지은이 누나? 누나가 여긴 또 왜...?”
집 안에는 성하은 외에도 한 명의 사람이 있었다. 성준은 거실 소파에 누나랑 같이 앉아있는 신지은의 모습에 살짝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녀가 지금 이 시간에 여기 있을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초대했어. 저번 일로 내가 크게 오해했으니까 오늘 다 풀 생각이야.”
신지은은 역시나 성하은의 초대를 받고 이곳에 와있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어제 성준에게 했던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는데, 성준은 굳이 신지은까지 불러서 이럴 필요가 있나 싶었다. 신지은은 그녀가 말하기 전까지는 어떤 오해를 하고 있었는지 절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신지은에게 자신의 오해를 털어놓는다는 것은 그의 상식으로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도 얼른 씻고 와. 맛있는 거 많이 준비했으니까.”
“아...으응...”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미 벌어진 상황을 멀뚱멀뚱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성준은 두 사람을 거실에 두고선 혼자 샤워를 하며, 도대체 누나의 의도가 무엇일지 고민했다.
‘그냥 다시 예전처럼 친하게 잘 지내보려는 거겠지? 하지만 누나 성격하고 이런 건 조금 거리가 먼데...하...뭔가 불안해...’
그렇지만 그녀의 의도를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이런 스타일은 평소에 성준이 알던 그녀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평소에 그녀라면 이런 식으로 다 같이 모여서 친해지자고 말하기보다는 한 명 한 명에게 찾아가 진지한 이야기 끝에 정식으로 사과를 하면서 오해를 풀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성준의 마음은 자꾸만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앉아. 아, 친구들하고 밥 먹고 왔다고 했나? 그래도 조금이라도 먹자.”
“으응, 조금만 먹을게...”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성하은이 기다렸다는 듯이 성준에게 말했다. 그녀는 상당히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성준은 그녀의 웃음이 매우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성하은의 말에 따라 그녀의 옆자리에 앉은 성준은 조심스럽게 신지은의 눈치를 살폈다. 신지은은 생각보다 표정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이미 성준이 오기 전에 이야기를 들었던 것일까. 그녀는 당황스러움도 전혀 없이 오히려 이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다.
“준아, 어제는 내가 정말 미안했어. 어제 일로 나한테 많이 실망했지?”
잠시 신지은과 대화를 하던 성하은이 성준에게 말했다. 이제 드디어 본격적으로 그녀의 말이 시작되는 것일까. 성준은 긴장한 표정으로 각을 잡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성준과 달리 그녀의 표정은 인자하기 그지없었다.
“실망은 무슨...충분히 오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니야, 그래도 누나가 많이 미안해.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준이를 믿어줬어야 했는데...”
“나야말로 누나한테 너무 뭐라고 해서 미안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누나한테만큼은 절대 짜증도 화도 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어제 내가 너무 심했던 것 같아...”
“정말 미안해...내가 요즘 많이 힘들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오해를 해버렸나 봐...우리 앞으로는 무조건 서로를 믿으면서 다시 예전처럼 지내자.”
심지어 그녀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좀 과할 정도로 성준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했다. 그녀의 표정과 말투가 상당히 진지했기에 성준은 어쩔 수 없이 분위기를 따라서 그녀에게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녀와 오해를 완전히 풀고, 사과를 하는 것은 그도 원했던 일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뭔가 이상해...아무리 생각해도 누나 스타일이 아닌데...우리 누나가 이런 식으로 나온다고? 한 번 서운한 게 생기면 며칠 동안 담아두고 있다가 따로 불러내서 울면서 화해를 하곤 했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변할 수가 있나?’
그렇지만 성준은 자꾸만 불안함이 느껴졌다. 그녀와 사과를 하는 것은 좋았지만, 답답했던 기분이 풀리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알 수 없는 답답함에 더욱 시달리는 것만 같았다.
‘아니겠지...그냥 기분 탓이겠지...저렇게 지은이 누나하고도 잘 지내는 걸 보면, 분명히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이런 자리를 준비했던 걸 거야. 누나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남친하고 힘드니까 빨리 풀고 싶었을 테지.’
하지만 그 답답함의 원인을 당장 찾는 것은 힘들어보였다. 지금 상황에 그녀한테 대놓고 물어볼 수는 없었기에 성준은 그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이 상황이 끝나기를 지켜봤다.
그렇게 이후에 세 사람은 매우 좋은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성하은도, 신지은도, 성준까지도 상당히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성준의 불안한 마음은 점점 잊혀지게 되었고, 셋은 예전처럼 좋은 사이가 될 수 있었다. 이대로 끝난다면, 셋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주어질 것만 같았다.
“잠깐만, 나 전화 좀 하고 올게.”
한창 즐겁게 대화를 하던 중에, 성하은이 핸드폰을 확인하며 말했다. 그녀는 잠시 전화를 하겠다고 말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사이, 성준은 신지은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고자 했다. 그는 혹시라도 방에 들어가있는 누나가 자신의 얘기를 들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매우 작은 목소리로 신지은에게 말했다.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 누나 답지 않게.”
“그러게. 나도 갑자기 하은이가 불러서 깜짝 놀랐다니까. 그것도 뜬금없이 저번 일을 꺼내면서 자신이 크게 오해를 했다고 말하는 거야.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는데, 그래도 다행히 좋게 끝난 것 같아.”
신지은도 성준에게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성하은은 역시나 신지은에게 자신이 했던 오해에 대해서 말한 듯 했다. 만약 성하은이 어제 성준에게 했던 것처럼 신지은을 추궁했더라면, 큰 싸움을 번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좋게 끝난 것을 보아하니, 확실히 누나가 오해를 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앞으로는 우리 조금 더 조심해야겠어. 누나가 술을 먹어서 다행이지, 신음소리 들었다고 했을 때는 얼마나 놀랐는데...진짜 다 끝났다고 생각했단 말이야.”
“그러게, 나도 그 이야기 들었을 때는 진짜 심장이 떨어지는 기분이었다니까. 기이한 현상이 아니었다면, 바로 들켰겠지.”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좋게 끝나서 다행인 것 같아. 앞으로 비슷한 일만 없다면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겠지. 다음부터는 진짜 조심하자.”
“우리가 최근에 너무 주변 생각 안하고 즐기긴 했어. 이제부터라도 신중해야지.”
성준과 신지은은 성하은이 모르는 이야기를 조용히 몰래 나누었다. 둘만의 비밀은 결코 다른 사람에게 들켜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앞으로는 섹스를 하더라도 매우 신중하기로 결심했다. 특히나 성하은에게 만큼은 두 번 다시 이런 오해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몰래 대화를 나누는 사이, 드디어 통화를 마친 성하은이 방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이상했다. 그녀는 마치 다급한 일이 생긴 사람처럼 인상을 쓰고 있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그녀의 표정에 신지은이 먼저 물었다. 신지은의 질문에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미안한데, 아무래도 지금 나가봐야 될 것 같아.”
“지금? 무슨 일인데?”
“남자친구 집안에 일이 좀 생긴 것 같아서...지금 바로 가봐야 될 것 같아.”
그녀의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녀는 지금 당장 나가야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의 남자친구네 집안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정식 가족은 아니더라도 예비 며느리인 입장에서 안 가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아직 결혼한 것도 아닌데, 꼭 가야 되는 거야?”
이번에는 성준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는 아무리 문제가 생겼더라도 아직 결혼한 사이도 아닌, 그녀가 이 늦은 밤에 떠나는 것이 맞는 일인가 싶었다.
“안 그래도 최근에 임신이랑 결혼 때문에 싸웠는데, 이런 것까지 무시하고 안 갈 수는 없잖아. 그랬다가는 영영 그 사람이랑 끝날 거야. 이거라도 해서 마음을 돌려야지.”
“하은이, 네가 진짜 고생이 많구나. 그래, 내가 봐도 안 갈 수는 없을 것 같아. 조심히 다녀와.”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녀를 막을 수는 없었다. 결혼을 한 신지은은 그녀의 상황을 이해해주었다. 그녀는 바로 옷을 갈아입고는 나갈 준비를 했다.
“집은 내가 알아서 정리할 테니까, 조심히 다녀와. 오늘 안에는 집에 올 수 있는 거야?”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뒷정리 좀 부탁할게, 준아.”
“내 걱정은 말고. 조심히 다녀와.”
“응, 미안해. 대신, 다음에 또 이런 자리 만들자. 그럼, 다녀올게. 지은아 다음에 봐.”
그렇게 자리를 만든 성하은이 집을 떠나버렸다. 성하은은 정말로 급한 일인지, 뒤도 제대로 돌아보지 않은 채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성준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별 일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괜찮을 거야. 오히려 이번 기회에 시댁에 잘 보여서 점수 따면 좋은 거지.”
“그렇겠지? 그나저나 어쩌다 보니까 우리 둘만 남게 되었네. 누나는 집에 안 가도 되는 거야?”
“늦게 들어간다고 말해서 괜찮아. 뒷정리하는 거 도와줄게.”
생각지도 못하게 집안에 성준과 신지은 둘만 남게 되어버렸다. 성하은의 초대로 남편에게 미리 말을 하고 나왔던 신지은은 바로 집에 가지 않았다. 그녀는 남아서 성준의 뒷정리를 끝까지 도와주었다.
둘만 남게 되었다고 바로 두 사람 사이에 스파크가 튀는 일은 없었다. 지금은 둘 다 모두 성하은을 걱정하고 있었기에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창 성욕이 왕성한 두 사람 사이에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천천히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던 두 사람은 곧 정리를 마칠 수 있었고, 매우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준이, 너는 만약에 우리 사이를 하은이에게 들키면 어떻게 할 거야?
신지은이 성준에게 물었다. 그녀의 말은 100% 진지하기 보다는 다소 장난이 섞여있었다. 때문에 성준은 진지하게 고민하기 보다는 간단히 대답을 해주었다.
“글쎄, 어떻게 하기보다는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에이, 그래도 하은이가 집에서 쫓아내겠어?”
“누나라면 쫓아내지는 않겠지. 아마 내가 나갈 것 같아.”
“준이, 네가? 왜?”
“그냥...누나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누나 얼굴을 못 볼 것 같아서. 진짜 우리 누나가 알게 되면 엄청나게 난리가 날 거야.”
이미 성준은 신지은이 했던 질문에 대해서 상상을 해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그가 내렸던 답은 절대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고 이것은 어마어마하게 큰일이었다. 단순히 누나를 배신하는 것을 넘어서 앞으로 누나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아마 그렇게 되면 나도 하은이하고 영영 끝이겠지.”
“누나 성격에 어디에 신고를 하거나, 알리거나 그러진 않겠지만...우리 둘하고는 정말 끝일 거야.”
“그래서 오늘 이렇게 잘 풀려서 정말 다행인 것 같아. 하은이도 이제 우리 의심 절대 안 한다고 말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정말이겠지?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별 일 없었으면 좋겠다. 하여튼 이놈의 성욕이 문제라니까.”
“후훗, 그래도 그 성욕이 생각보다 엄청나지 않아?”
“그렇긴 하지...섹스라는 게 이렇게나 좋은 건 줄 전혀 몰랐어.”
“우리 준이 큰일이네.”
하지만 누나에 대한 걱정과 달리 그의 성욕은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었다. 이놈의 성욕은 절대 그의 의지만으로는 컨트롤 되지 않았다. 머리로는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항상 걱정하고 불안에 떨었지만, 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금만 하더라도 자꾸만 신지은과 단둘이 집에 남아있다는 생각에 흥분이 되곤 했던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