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신 능력자 -->
“무, 무슨 일인데...갑자기 왜...”
“네가 확인해. 내 입으로 직접 말하기조차 역겨우니까.”
그녀의 얼굴은 표독스럽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다. 지금까지 성준은 살아오면서 이런 누나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표정을 보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을 하며 덜덜 떨려왔다.
“어, 어떤 걸...확인하라는 건데...”
성준의 말에 그녀가 무언가를 툭하고 던져주었다. 그것은 한 눈에 봐도 소형 카메라로 보였다. 도대체 이 안에 무엇이 들었길래 그러는 것일까.
“어떻게 하라고...”
“내가 그거까지 하나하나 설명해줘야 되니? 너 진짜 죽고 싶어?”
“주, 죽고 싶냐니...하하...누나...”
“내가 웃지 말라고 했지!”
“아...으응...미안...”
“노트북에 연결해서 확인해.”
성준은 이런 분위기가 너무나도 싫었다. 아무리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그녀는 성준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했지만, 오늘 그녀는 성준이 감당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의 말에 따라 성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노트북을 가지고 왔다. 생각지도 못했던 그녀의 모습에 겁을 잔뜩 먹은 그는 다리가 풀리고, 손이 수전증에 걸린 것처럼 미친 듯이 떨려왔다. 애써 마음을 다스리면서 진정해보고자 했지만,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은 계속해서 그의 심장을 찔러왔다.
“화, 확인해 볼게...”
도대체 그녀가 이 카메라로 본 것은 무엇일까. 카메라를 노트북에 연결한 성준이 화면을 재생시켰다. 그리고 곧 그는 그녀가 이토록 화가 나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결국...누나가 알아버렸구나...이런 걸 몰래 설치해놓고 지은이 누나랑 나를 불러서 일부러 상황을 만든 건가? 누나도 참...은근히 독한 면이 있었네...’
화면을 바라보면서 성준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들을 떠올랐다.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 누나에 대한 원망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변명을 해야 될지, 신지은이 알면 어떨지, 앞으로의 누나하고의 관계와 그녀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자신의 삶이 어떻게 진행될지 등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담담했다. 노트북 화면으로 자신과 신지은이 애무를 하며 섹스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는 크게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았다. 조금 전에 누나 때문에 떨리면 몸도 이제는 반응을 멈춘 상태였다.
‘막상 걸리니까 아무렇지도 않네. 이젠 될 때로 되라는 건가...나도 참 특이하단 말이야...아니...그냥 병신인가...이 정도로 쓰레기였다니...’
노트북을 덮고 그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성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될까.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해야 될까, 아니면 억지로 변명이라도 만들어내야 될까.
“왜 그렇게 바라만보고 있어? 나한테 할 말 없어?”
성준이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자, 답답했는지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성준은 그녀의 질문에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증까지 제시한 그녀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현재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될 거 아니야! 하다못해 변명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여전히 성준이 가만히 있자, 화가 난 그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의 큰 소리에 그제야 그는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어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누나한테 할 말이 뭐가 있겠어.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는 것도 웃기는 일이고, 그렇다고 이렇게 직접적인 증거가 나왔는데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다 변명으로 밖에 안 들리겠지.”
성준은 굉장히 차분하게 그녀에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그의 표정에서 당황스러움은 완전히 종적을 감춘 뒤였다. 누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컸지만, 그것만으로는 상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누나가 원하는 걸 말해줬으면 좋겠어.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될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말해줘. 결과적으로 내가 잘못한 일이고, 절대 용서받지 못할 일이니까, 무조건 누나 말에 따를게.”
지금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로부터 처벌을 받는 것이었다. 노트북 화면으로 보이는 영상을 확인하는 순간, 그는 마음속으로 결심을 내렸다. 누나에게 어떤 용서나 이해를 구걸하지 않고 어떤 처벌이든 달게 받겠다고 그는 굳게 다짐을 했다.
“뭐라고? 너는 지금 그걸 말이라고...하...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오네...뭐? 나보고 원하는 걸 말해달라고?”
그녀는 그의 반응을 굉장히 못마땅하게 받아들였다. 물론, 애초에 그녀는 성준이 무릎을 꿇으며 애처롭게 사과를 해도 용서해줄 마음은 없었다. 그가 변명을 하더라도 들어줄 마음도 없었고 말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 너무나도 담담한 성준의 모습에 그녀는 속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타이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전부 다 내 잘못이잖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렀고, 누나를 속이기까지 했어. 더군다나 며칠 전에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오히려 누나를 나무라기까지 했고.”
“그래서 너는 지금 네가 잘했다는 거야?”
“잘못했다는 뜻이야. 그것도 용서를 받을 자격조차 없을 정도로 크게 잘못했다는 거 나도 잘 알고 있어.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선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아니, 말할 자격이 없는 거고.”
“하...정말...너 원래 이런 애였니? 전에는 안 그랬었잖아. 왜 갑자기 이렇게 변한 거야?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그러게...미안해...앞으로는 누나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 아니, 꼭 될 수 있도록 할게.”
“야...너...하아...진짜...”
성준의 계속되는 담담한 말투에 결국,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성준은 그녀가 눈물을 보이자,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지만, 지금 자신은 그녀의 눈물을 닦아줄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자기 자신이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
“나는...흐흑...너를 믿었는데...흑...아무리 의심스러운 모습을 보여도 끝까지 믿었는데...흐흑...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
“나쁜 새끼...흑흑...”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지금 그녀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무엇일까. 원망? 배신? 증오? 경멸? 성준은 앞으로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관계로 남을지 걱정이 되었다. 이제 그녀하고는 영영 끝이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한참동안은 앉아있었다. 그 사이, 그녀의 두 뺨 위로 흐르는 눈물은 점점 말라갔고, 다시 한 번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왜...나한테 말 안 했던 거야? 그런 능력이 생겼으면...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가족들한테 말해야 되는 거 아니야?”
그녀가 성준에게 물었다. 처음에 그녀는 성준이 알아서 변명을 늘어놓기를 기대하면서 기다렸지만, 이제는 본인이 직접 궁금한 부분을 질문했다. 이에 성준은 최대한 사실 그대로를 말해주고자 했다.
“처음에는 갑자기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겨서 너무 당황스러웠어. 더군다나 나는 고시원에 있다 보니까 이 사실을 남들보다 하루 늦게 알게 되었거든. 마음 같아서는 누나나 아버지한테 알려서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무섭더라고...예전에 히어로들이 당했던 것처럼 나도 붙잡혀서 실험을 당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도 가족한테는 말했어야지. 우리가 설마 너한테 그런 일이 생겼다고, 다른 곳에 알리거나 신고하겠어?”
“그렇지...그랬어야 했는데 처음에 말을 못하다보니까 타이밍을 잡기가 어렵더라고. 이제 와서 얘기를 꺼냈다가는 잔소리를 들을 것 같기도 했고, 괜히 걱정만 끼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어.”
“하...그게 말이 돼? 준이, 너는 우리 가족을 못 믿는 거야? 아니면 가족을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가족이 왜 존재하는 건데?”
“미안해...어쩌면 나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다른 것은 몰라도 성준이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정말로 크게 잘못한 일이었다. 그도 그것만큼은 무조건 인정을 했다. 이 일은 고작 18살인 그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하...그건 그렇다고 치자. 그래, 그럴 수 있지. 네 성격이라면 나나 아버지한테 말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 더군다나 나랑 하영이는 여자니까, 남자인 네 입장에서는 부끄러웠을 수도 있고. 이해해줄게. 그렇지만...왜 하필이면 많은 사람들 중에서 지은이인건데? 이것만큼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가족들한테도 말하지 않은 사실을 지은이한테 말한 것도 웃기는 일인데, 어떻게 둘이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그녀는 처음보다는 상당히 침착해진 상태였다. 한 번 눈물을 흘려서 그런지 감정적인 부분보다는 침착하게 성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신지은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조금은 목소리 톤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였다.
“혹시 지은이가 먼저 접근하든?”
“지은이 누나는 아무 잘못 없어. 내가 먼저 제안한 거니까.”
“뭐? 네가 먼저 제안했다고? 하...너 정말 단단히 미쳤구나.”
“지은이 누나가 임신 문제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까, 마음이 흔들렸어. 그래서 먼저 제안했지. 나는 내 능력으로 지은이 누나를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내가 마치 히어로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을 했던 것 같아.”
“하...미치겠네...”
성준의 말은 사실이었다. 애초에 그가 먼저 신지은에게 접근을 했고,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다. 그의 의도와 목적 자체는 그녀의 가장 큰 고민이었던 임신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기이한 현상 때문에 지은이가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고선, 네 능력으로 직접 도와주고 싶었다는 거야? 그게...말이 되는 소리야? 지은이는 유부녀잖아! 그리고 너는 고작 18살 미성년자고! 두 사람이...하...그게 가당키나 해?”
“맞아...그 부분은 절대적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해.”
“그리고 임신을 원했으면, 꼭 그런 방법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이용했어도 되는 거잖아.”
“그것도 맞는 말이야. 그래서 우리도 처음에는 단순히 사정할 때만 삽입하는 식으로 관계를 가졌었어. 하지만 그 이후로는...계속해서 관계가 지속되다보니까 점점 더 편안하게 관계를 가지게 되었던 것 같아. 이건...어디까지나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 최근 들어서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성욕이 증가하고 있거든. 이게 능력 탓인지, 아니면 내가 이상해진 건지는 아직 모르겠어.”
“그러니까 결국은...지은이 임신을 위해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성욕을 풀기 위해서도 관계를 가졌다는 거네?”
“어디까지나 목적은 임신이었지만,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의 말처럼 신지은과의 관계가 지속될수록 처음의 순수했던 의도와 목적은 조금씩 변질되어 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임신도 임신이었지만, 점점 더 성욕해소를 우선으로 하게 되었다. 성준은 그 부분조차도 누나에게 비밀로 하지 않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너는 진짜 너무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지금 누나의 처벌을 기다리고 있는 거고.”
“하...그게 잘못한 사람의 태도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뻔뻔할 수가 있니?”
“미안해...실망 시켜서...”
“내가 실망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네가 지금 어떤 짓을 저질렀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또 다시 감정적인 상태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녀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기 어려웠는지 계속해서 숨을 헐떡였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현재 그녀가 받고 있는 스트레스는 한 눈에 봐도 어마어마해 보였다.
“그렇지...그래서 나한테는 용서나 이해를 구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그래서 누나가 말해줬으면 좋겠어.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될지 말이야. 누나가 하라는 대로 할 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라면 빌고, 앞으로 밖에 나가는 일 없이 집에만 처박혀서 지내라면 그렇게 할게. 내게 선택권은 없으니까.”
“너,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너는 지금 내가 왜 이러는지 이해는 되니? 태도가 진짜 가관이다, 정말.”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누나는 내가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하...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솔직하게 말해줄까? 네가 없어졌으면 좋겠어. 이젠 네 얼굴만 봐도 너무 역겨워서 헛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아.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밖에 돌아다닐 수가 없어. 그동안 너를 내 동생이라고 생각하며 대해줬던 게 너무 치욕스럽고 쪽팔린다고!”
“미안해...최대한...조용히 지내볼게...”
“조용히 지내? 나는 네가 내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이제 너 같은 동생은 필요 없어!!”
“.......”
“왜? 막상 꺼지라니까 그러지는 못하겠지?”
“정말로...내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그래, 꺼지라고! 당장 내 앞에서 꺼지라고!!”
성준의 담담한 모습에 잔뜩 열이 받았던 그녀는 결국, 그에게 집을 나가라고 소리쳤다. 성준은 차마 그녀가 그 말만큼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조금은 충격을 받고야 말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될까. 그는 잠시 고민을 하던 끝에 한숨과 동시에 결심을 내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았어...그렇게 할게...”
성준의 결정은 그녀의 말에 따르는 것이었다. 그녀가 홧김에 내뱉은 말임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그녀와 거리를 두는 것을 선택했다. 갈 곳도 없고, 가진 것도 없었지만 적어도 그녀의 화가 어느 정도 풀릴 때까지는 그녀와 마주치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는 생각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성준이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방에서 교복과 함께 가방과 지갑을 챙긴 그는 그대로 현관문으로 향했다. 쉽게 발이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결심을 내렸기에 이곳을 떠나야만 했다.
‘누나는 괜찮겠지? 하...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신발을 신고 현관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성준은 자신의 처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조금 전의 담담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의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절망적이었다. 누나에 대한 미안함은 물론이고, 자신에 대한 원망이 망치가 되어 가슴을 강하게 두드렸다. 이대로 무너질 것만 같았지만,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견뎌야만 했다.
‘지금은 어떻게든 참아보자. 어떻게든...방법이 있을 거야...’
현관문이 열리고 그가 밖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여전히 성준이 나가는 모습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식탁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성준은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며, 혹시나 자신을 붙잡을 수도 있는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뒤,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