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신 클리닉-69화 (69/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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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윤

성준을 방에 두고 샤워를 하기 위해서 욕실에 들어간 그녀는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성준을 집에 받아들이고, 말고 문제는 이미 결정된 사안이었고, 그녀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까부터 이상해진 자신의 마음 때문이었다.

‘왜 이렇게 떨리지...이제 준이에 대한 마음은 다 접었다고 생각했는데...아직 남아있는 건가...?’

교복과 가방을 들고 문 앞에서 민망한 표정으로 서있는 성준을 보는 순간, 처음에는 크게 당황했었다. 집에서 쫓겨난 그가 걱정이 되기도 했고, 혹시라도 그의 누나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또 다시 혼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은 그가 이 집에서 머물기로 결정한 순간부터였다. 그때부터 이상하게도 마음이 떨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까 이 집에서 다른 사람이랑 같이 지내는 건 처음이네...그래서 그런가보다...’

그녀가 이 집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하고 함께 지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아까부터 묘한 감정에 휩싸이고 있는 중이었다. 항상 비어있던 남편의 빈자리를 마치 성준이 다가와 채워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런 생각...하면 안 되는 건데...나도 모르게 또 욕심이 드네...’

그렇지만 그녀는 애써 이 생각들을 속으로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그녀는 성준에 대한 자신의 욕망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은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미망인이었고, 성준은 이제 18살인 청소년이었다. 그에게 이런 감정을 품는 것 자체가 지나치게 큰 욕심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매번 똑같았다.

‘그냥 편하게 생각하자.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이잖아. 최대한 불편하지 않도록 나도 노력하는 거야. 어차피 나는 평소에 하는 일도 딱히 없으니까, 준이가 머무는 주말까지는 준이한테 맞춰서 생활해야겠다.’

따뜻한 물줄기가 그녀의 머리와 몸을 천천히 적셔왔다. 그것만으로는 그녀의 복잡한 마음을 달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한결 나아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이번에도 그녀는 성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무시하고 지워냈다.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그녀는 간단히 머리를 말린 뒤, 바로 성준을 위해 간단한 음식을 준비했다. 그녀가 성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것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통해서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배를 채워주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그녀를 생각했다.

‘저녁이니까 너무 짜지 않게 하자. 양도 너무 많으면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 딱 이정도만.’

그녀가 요리를 만드는 사이, 요란한 소리와 기분 좋은 냄새에 성준이 이끌리듯 거실로 나왔다. 그는 요리하는 그녀의 모습에 방긋 미소를 지으면서도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괜히 저 때문에 누나만 힘들어진 것 같네요.”

“에이, 나도 마침 살짝 출출하던 참이었어. 조금만 기다려봐. 금방 만들어줄게.”

그녀는 그런 그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미소로 답을 해주었다. 실제로 그녀는 성준에게 요리를 해줄 때만큼은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싫은 내색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고, 특히나 그 대상이 성준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지금 역시도 그녀는 상당히 기분 좋게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또띠아를 이용한 아주 간단한 음식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정성을 다해서 음식에 집중했다. 이렇게 만든 음식인 만큼 맛이 안 좋을 수가 없었다.

“딱 하나씩만 먹으면 될 것 같아. 맛은...잘 모르겠네, 헤. 이건 처음 만들어 본 거라서...”

“지금까지 누나가 만들어준 것 중에 맛없었던 게 하나라도 있었어요? 이것도 당연히 맛있을 수밖에 없겠죠. 잘 먹을게요.”

음식이 완성되고 두 사람은 식탁에 앉아 서로를 마주보며 음식을 먹었다. 그녀가 만든 음식은 이번에도 성준을 크게 감동시켰다. 역시 음식만큼은 그녀를 따라올 자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내일 학교는 몇 시까지 가는 거야?”

간식을 먹던 중에 그녀가 성준에게 물었다. 성준이 여기서 지내는 동안에는 확실하게 그를 케어해주기로 작정했던 그녀는 내일, 성준의 일과가 궁금했다.

“8시까지니까, 여기서 적어도 7시 반에는 나가야 될 것 같아요. 집에서 지낼 때도 항상 그랬거든요.”

내일은 성준이 학교에 나가는 금요일이었다. 학교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기에 집이 아닌 곳에서도 학교에 나가야만 했다. 이곳은 성준의 집에서 고작 30초 밖에 안 걸리는 곳이었기에 집이랑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그래? 그러면 아침은 7시쯤에 먹어야 되려나?”

“네? 아...굳이 그러실 필요 없는데...아침은 안 먹어도 괜찮아요. 집에서 지낼 때도 아침 안 먹고 학교 갈 때도 종종 있었거든요.”

집이랑 이곳의 차이점이 있다면, 성준을 챙겨주는 사람의 유무였다. 그나마 최근에는 누나가 집에서 지내면서 성준을 조금씩 챙겨주고는 했지만, 평소에 그는 항상 혼자였다. 그에게 아침밥을 차려주는 사람도 없었으며, 그를 깨워주거나 그의 옆에서 사소한 부분까지 관리해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아침은 꼭 먹어야 된다고 했어. 아침을 먹고, 안 먹고가 얼마나 차이가 큰데. 특히나 공부할 때는 더 중요하고.”

“정말로 괜찮은데...”

“우리 집에서는 우리 집 룰을 따라야지?”

“네...”

하지만 이곳에서는, 하서윤의 집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성준을 케어하기로 결심한 그녀는 그가 집에 머무는 동안만큼은 아무런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했다. 아침밥을 차려주는 것은 당연했으며, 그가 마음 편하게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성준이 원치 않더라도 그녀가 그것을 원했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 잠은 몇 시에 자?”

“12시에서 1시 사이쯤에 자는 것 같아요. 그 전에 자기도 하고요.”

“흐응...그럼 아직 시간이 좀 남았네? 그 전까지 가만히 있는 것보단 공부하는 게 좋겠다.”

“...네?”

“남편이 사용했던 책 마음껏 써도 되니까 편하게 공부해.”

“아...네...”

“그럼,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까, 준이는 얼른 씻고 바로 공부하러 방에 들어가자.”

“...네...”

성준은 뭔가 그녀로부터 어머니의 잔소리 느낌을 강하게 받았지만, 그래도 한 편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누군가 자신을 이렇게 챙겨주고 관리해주는 느낌을 받는 것은 너무나도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누나의 잔소리는 이제 더 이상 그에게 먹히지 않았기에 하서윤의 잔소리를 조금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간단한 식사를 마친 성준은 가볍게 씻고는 방에 들어가서 공부를 시작했다. 하루 동안 일어난 많은 일들과 함께 자신의 방이 아닌, 낯선 장소에 있다는 사실에 집중이 잘 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한 글자라도 더 읽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리고 그가 그러는 사이, 그녀는 설거지를 마치고 책을 보며 소화를 시킨 뒤, 잘 준비를 했다.

‘갑자기 이상하게 긴장되네...’

잠을 자기 위해서 잠옷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이상하게도 가슴이 두근거리면서 긴장이 되었다. 자신의 집에 다른 사람이, 그것도 남자가 있어서 그런 것일까. 피곤은 했지만, 이상하게도 자꾸만 눈이 초롱초롱 빛나면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준이가 나한테 무슨 해코지를 할 사람도 아닌데 무슨 걱정이야...아니...오히려 내가 준이한테 이상한 마음을 품을까봐 그런 건가? 하...정신 차리자...’

그녀의 긴장은 성준 때문이었다. 하지만 절대로 성준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성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증폭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더 이유에 가까웠다.

그러한 생각들을 빠르게 지워내기 위해서 침대에 누운 그녀는 눈을 감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자꾸만 그녀의 머릿속을 성준이 찾아와 휘젓고 다녔다.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 성준의 방 앞으로 다가갔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인사라도 하고 잠에 들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할 것만 같았다.

똑 똑

“네, 들어오세요.”

“아직 안자고 있지?”

“네, 아직까진...공부 중이긴 한데, 오늘 일 때문에 집중이 잘 안 되긴 하네요. 그래도 끝까지 해봐야죠.”

“많이 힘들겠다. 그래도 공부하는 모습 보니까 꼭 헌터부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노크를 하고 방문을 열자, 책상에 앉아있는 성준의 모습이 보였다. 집중력이 흐트러진 상황에서도 그는 끝까지 책상에 앉아있는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그런 그의 모습에 마치 엄마처럼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누나. 그나저나 무슨 일이에요?”

“아, 그냥...공부하다가 너무 피곤하면 바로 자도 괜찮다고...나도 이제 잘 생각이니까...혹시라도 뭐 필요하면 거실로 나와서 편하게 마음껏 사용해. 잘 모르겠으면 날 깨워도 괜찮고.”

“네, 알았어요. 신경 써주셔서 고마워요.”

“그래, 그럼, 너무 무리하진 말고...내일 보자.”

“잘 자고, 내일 봐요.”

성준의 방에 들어간 그녀가 한 일은 딱히 없었다. 그냥 그와 가볍게 몇 마디를 주고받은 게 전부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답답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아직까진 그가 집에 있다는 사실에 긴장이 되었지만, 적어도 잠은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바로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 조금 전과 달리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 그녀는 곧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두 사람의 하루가 무사히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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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다음날

아침 일찍 잠에서 깬 하서윤은 바로 일어나서 가볍게 씻고는 성준을 위한 아침을 준비했다. 그를 위해 최대한 맛있으면서도 건강한 아침을 차려주고 싶은 마음에 그녀는 무려 새벽 6시에 일어나 1시간 동안 음식을 만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이제 슬슬 깨워야겠다. 7시 반에는 나가야 되니까, 지금 깨워야 여유 있게 아침을 먹을 수 있겠지.’

아침을 차린 그녀는 이제 성준을 깨우기 위해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살짝 열자,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자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현재 시간은 6시 50분. 그는 그녀가 방에 들어온 줄도 모른 채 깊게 잠을 자고 있는 중이었다.

‘이 방이 너무 더운가? 이불을 다 차버리고 잤네.’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간 그녀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를 깨우기 위해서 들어오긴 했지만, 긴장이 되면서 조심스러워지는 그녀였다. 특히나 그의 자는 모습을 바라보자,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아침에 누군가를 깨워주는 것도 오랜 만이네...’

그녀는 성준을 바로 깨우기보다는 그가 자는 모습을 은근히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많은 식사를 했던 사이였지만, 이렇게 얼굴을 오랜 시간 바라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만 마음속에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이러면 안 돼...정신 차리자...그가 머무는 동안 편하게 케어해주기로 했잖아...’

그녀가 고개를 좌우로 강하게 저었다. 그녀는 그런 자신의 마음을 또 다시 애써 억압했다. 그에게 다른 마음을 품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바로 그를 깨우기 위한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그녀의 시야에 무언가가 포착되었다. 그것은 그녀의 마음을 더욱 흔들어놓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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