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신 클리닉-81화 (81/193)

<-- 임신 능력자 -->

“아직 그곳이 뭐하는 곳인지 모른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 같아요. 요즘 임신 때문에 사기 당한 사람도 엄청 많다던데, 혹시 모르니까 최대한 조심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임신과 관련된 이슈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최근 들어서 임신을 원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 단체들인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성준은 이곳에서도 뭔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아직까진 사기꾼으로 보이진 않던데...지금까지 정보들은 그래도 확실했잖아.”

“원래 사기꾼들이 그런 식으로 접근한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진짜를 보여줘서 안심시켰다가 나중에 뒤통수를 치는 거죠.”

“정말? 그러면 안 되는데...”

“물론, 아니길 바라야죠. 지금까지 누나가 쓴 돈도 꽤 되는데, 전부 사기라고 하면...좀 그렇잖아요.”

현재까지 그녀가 이곳에 투자한 돈만해도 상당한 액수였다. 그런데 이곳이 알고 보니 사기 단체라고 한다면, 그녀가 받을 충격은 꽤 클 것이다. 더군다나 이곳은 그녀에게는 유일하게 임신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었다. 최근에 정부가 임신과 관련해서 많은 정보들을 차단하고 있었기에 이곳이야말로 그녀의 유일한 희망인 셈이었다.

“하아...이곳마저 안 된다면...나한테 임심은...머나먼 꿈이겠지...?”

“아니에요. 분명히 다른 방법도 다른 기회도 있을 거예요.”

이곳이 사기 단체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녀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실망하는 그녀의 모습에 성준은 크게 마음이 아팠다. 애써 그녀를 위로해주었지만, 그는 차마 자신이 임신을 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정말로 이곳이 거짓된 단체일지라도 그 말만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어렵게 일어난 만큼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어...내 옆에 준이도 있으니까, 어떻게든 힘내서 견뎌볼게.”

“고마워요, 정말. 누나는 역시 웃을 때가 가장 예쁘다니까요.”

성준의 위로에 그녀가 길게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안 좋은 생각들을 털어낸 뒤,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그녀의 웃음에 성준은 자신도 미소를 지으며 보답해주었다.

“그러면 준이가 같이 가주는 거야?”

“네, 그렇게 해요. 시간도 학교 끝난 뒤라서 딱 적당한 것 같아요.”

“바로 옆에 붙어서 따라올 거야.”

“으음...그렇게 했다간 그 사람들이 아예 나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따로 움직여야겠죠?”

“그래, 그게 좋겠다. 만약 사기꾼이 아니라면 준이는 그대로 나를 지나쳐가면 되는 거니까.”

다시 단체 얘기로 넘어온 두 사람은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혹시라도 그녀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성준은 약속된 날에 그녀와 동행하기로 했다. 물론, 그들이 진짜일 확률도 있었기에 완전히 옆에 붙어있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그녀를 살필 계획이었다.

과연 두 사람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단체에서 하는 말들은 정말 사실인 것일까. 단체에서 보낸 날짜는 4일 후인 수요일이었다. 그날, 드디어 임신과 관련된 그녀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

*

*

-오후 점심시간, 성하은

성준과 하서윤이 대청소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성준의 누나, 성하은은 긴장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마치 첫 면접을 보는 취준생처럼 매우 초조한 표정으로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하...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리냐...그냥 만나서 대화만 나누면 되는 건데...겁먹을 필요 없어...내가 잘못한 것도 없잖아. 이런 건 오히려 당당하게 나설 필요가 있어...’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은 그녀의 남자친구와 전와이프였다. 미리 약속장소에 도착해서 그들을 기다리던 그녀는 초조함을 이기지못하고 계속해서 찬물을 들이켰다. 약속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그녀의 심장은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워크샵이나 송년회에서 장기자랑을 할 때도 이만큼 떨리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젠장...왔다...어떡하지...아아...나 어떡해...’

시간이 흘러 드디어 남자친구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남자친구 옆에 한 명의 여성이 보였다. 굉장히 도도한 모습의 그녀는 한 눈에 봐도 성하은보다 기가 세다는 것이 느껴졌다.

‘애는 왜 데리고 나왔대...짜증나...’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녀가 애와 함께 나왔다는 점이었다. 굳이 애를 데리고 나온 것은 아마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성하은은 그것이 자신을 향한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먼저 와있었구나. 밥은 먹었고? 안 먹었으면 밥부터 먹을까?”

성하은의 남자친구, ‘신진호’가 물었다. 큰 키에 다부진 몸, 호감형 외모를 지니고 있던 그는 현애인과 전와이프가 같이 있는 어색한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침착한 모습을 보였다. 본인이 이곳에서 감정을 드러내거나 누구의 편을 들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는지, 그는 감정 표현이나 행동에 최대한 조심을 기울였다.

“밥 먹으려고 만난 거 아니잖아요.”

“그렇지. 그럼...둘이 먼저 대화 나누고 있어. 나는 애랑 같이 있을게.”

그는 두 여자에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나눌지 매우 궁금했지만, 지금은 알아서도 알려고 노력해서 안 된다고 생각하며 애와 함께 멀리 떨어진 자리로 이동했다. 그렇게 이제 드디어 두 여자가 단둘이 대화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하은씨 맞죠? 저는 수빈이 엄마 ‘이다영’이라고 해요. 그동안 엄청 만나고 싶었는데, 드디어 보네요.”

신진호의 전와이프 이다영이 먼저 성하은에게 인사를 했다. 그녀는 굳이 자신을 수빈이 엄마라고 소개를 했다. 성하은은 그녀의 말에 속으로 기가 차다는 식으로 비웃었다.

“네, 저도 만나서 엄청 반갑네요. 저는 진호씨 여자친구, 성하은이에요.”

이에 성하은은 받은 만큼 그대로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그녀는 여자 친구라는 단어에 일부러 강조하며 말했다.

시작부터 한 차례씩 공격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겉으로는 웃고 있으면서도 어마어마한 살기가 느껴졌다. 조금 전만 해도 초조한 모습의 성하은은 온데간데없었다.

“우리가 이렇게 웃으면서 대화 나눌 사이는 아니니까, 바로 본론부터 들어갈까요?”

“오래 있어봤자, 서로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 당연히 그래야죠.”

두 사람의 이야기는 시작부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굳이 신경전을 펼치면서 이야기를 질질 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두 사람은 바로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진호씨한테 얘기는 들었죠? 그래도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저는 진호씨하고 재결합할 생각이에요. 요즘처럼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시대에 애는 정말 소중하니까요.”

이다영이 말했다. 재결합에 대한 그녀의 의지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녀로부터 직접 듣게 되자, 순간적으로 성하은의 머리가 아찔해졌다. 부글부글 분노가 끓어오르면서 당장이라도 앞에 있는 물을 들이 붓고 싶었지만, 애써 참아내는 그녀였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굳이 다시 한 번 설명해주시고, 정말 친절하시네요. 그럼, 저도 다시 한 번 말씀드릴게요. 그쪽이, 아니, 오빠의 전와이프인 다영씨가 재결합을 원하든 말든 저는 오빠랑 결혼할 생각이라서요. 오빠도 당연히 그쪽, 아니, 전와이프인 다영씨가 아니라 저를 원하고 있고요.”

그녀의 말을 간신히 참아낸 성하은이 이번엔 반대로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절대 신진호하고 헤어질 생각이 없었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도 강했지만, 고작 이 정도의 여자에게서 남자친구를 뺏긴다는 것이 무척 자존심 상했다. 전남편을 찾아와 애를 가지고 협박을 하는 것은 그녀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되지 않았다.

“정말로 진호씨가 그렇게 생각할까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요즘 두 사람, 따로 떨어져서 지낸다면서요?”

“...그게 어때서요? 아직 결혼한 사이는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죠. 집에 일이 생겨서 잠시 나온 거지, 곧 다시 오빠 집에 들어갈 예정이에요.”

“정말요? 제가 알고 있는 거랑은 조금 다르네요. 둘이 임신 문제로 싸운 걸로 알고 있었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었나 봐요.”

그렇지만 이다영은 성하은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만만치 않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은근슬쩍 성하은의 감정을 건드렸다. 성하은의 입가에 지어진 미소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어색하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싸운 게 아니라, 그냥 의견 차이가 있었을 뿐이에요.”

“의견 차이가 꽤 커 보이던데요?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닌 것 같고...”

“서로 의견 차이가 있어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가는 게 연인이자, 부부 아닌가요? 아, 다영씨는 오빠랑 그걸 못해서 헤어진 건가?”

물론, 성하은의 공격 역시도 만만치는 않았다. 공격을 잘 버텨내지는 못했어도 공격력만큼은 그녀도 뒤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는 지금 신진호의 옆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라는 점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지금 당장은 진호씨가 옆에 있으니까 그쪽이 잘난 거 같으시죠?”

“...뭐라고요?”

“한 번 두고 봐요, 누가 이길지. 언제까지 진호씨가 하은씨 편일지, 궁금하네요.”

“애만 아니었어도 진호씨가 다영씨랑 만날 일은 절대 없었을 거예요. 다영씨가 언제까지 치사하게 애 뒤에 숨어있을지 저도 궁금하네요.”

“그 애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직 잘 모르시나보다. 지금 진호씨 마음이 그 애 때문에 흔들리는 거 안보이세요? 진호씨뿐만 아니라 이제 슬슬 전부 내 편으로 돌아서는 것 같던데...”

“...애는...오빠 애는...기이한 현상이 끝나기 전까진 가질 수 없지만...그래도 얼마든지 가질 수는 있으니까요...”

하지만 성하은에게는 한계가 있었다. 이다영에게는 애라는 엄청난 무기가 있었기에 성하은이 이길 수가 없었다. 이다영의 말처럼 신진호와 그의 가족들의 마음은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는 중이었다.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고요? 요즘 임신하는데 필요한 돈이 얼만지나 알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것도 진호씨 애도 아니고, 다른 사람 애를 가지는 데만 수억이 들어가요. 내가 듣기로는 하은씨네 집이 그렇게 잘 살지는 않다고 들었는데, 이것도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

결국, 성하은은 그녀에게 패하고 말았다. 감정이 통제가 되지 않았던 성하은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물 컵을 붙잡고 그대로 벌컥벌컥 마셨다. 마음 같아서는 이다영의 얼굴에 뿌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굳이 이렇게 감정소모하면서 서로 피곤할 필요 없잖아요. 어차피 결론은 정해져있는데, 불필요한 싸움 그만하고 포기하시죠.”

“...지금...저보고 오빠랑 헤어지라고요?”

“잠깐 일어나서 뒤에 좀 보실래요?”

“...네?”

이다영의 말을 따라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다영이 가리키는 곳에는 애와 함께 즐겁게 놀고 있는 신진호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성하은은 심장이 덜컥 주저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 정도 했으면 충분하잖아요. 더 이상 자존심 구기지 말고, 그만하세요. 하은씨 정도면 능력도 있고, 외모도 뛰어나서 충분히 좋은 남자 만날 수 있을 텐데, 굳이 망신까지 당할 필요 있나요? 그럼, 잘 알아들었다고 생각하고 일어날게요. 더 이상 얘기해봤자, 좋은 말도 안 나올 것 같으니까.”

그것을 끝으로 두 사람의 대화가 완전히 끝이 났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다영은 바로 신진호와 애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고, 이윽고 신진호가 성하은에게 다가왔다.

“택시만 태워주고 다시 올게. 같이 밥이나 먹자.”

“...됐어.”

“...그 사람이랑 무슨 일...있었어?”

“...혼자 있고 싶어요. 됐으니까, 먼저 가요.”

“하은아...”

“제발...부탁할게. 나 좀 내버려둬...”

“...그래...알았어...”

그렇지만 성하은의 마음은 이미 무너져버린 상태였다. 신진호가 애써 그녀를 달래보고자 했지만, 지금 그녀의 마음은 어떤 누구라도 달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신진호는 그녀를 혼자 두고 가버렸고, 그렇게 그녀는 또 다시 혼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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