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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클리닉-86화 (86/193)

<-- 임신 능력자 -->

“하영이 말로는 요즘 누나 상태가 심각하다고 하던데...이러다가 큰일 나는 게 아닐까 걱정이야...”

“설마 우리 관계 때문에 이런다는 거야?”

“우리 때문만은 아니겠지. 남자친구 문제까지 겹쳐서 많이 힘들어하고 있는 것 같아. 자세한 내용은 아직 하영이도 모른다니까, 더 걱정이지...”

동영상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던 신지은의 표정이 성준처럼 심각하게 바뀌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친구인 성하은에 대해서 많은 걱정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번 일로 친구사이가 영영 끝날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임신이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영상으로 보이는 성하은의 상태가 심각했다. 지금까지 전혀 보여주지 않던 모습을 보이고 있던 그녀였기에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뱃속에 아기를 생각하면 최대한 스트레스 받을 만한 상황을 피하는 게 옳았지만, 이 상황을 만든 사람은 성준과 자신이었기에 그녀는 어떻게든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해보고자 했다.

“빨리 결정을 내려야 될 것 같아. 이대로 가다간 준이, 네 말대로 정말 큰일이라도 나겠어.”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려야지. 그래서 오늘 만나자고 말한 거야.”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거야? 오늘 말하려고?”

“아직 계획은 없어. 이제부터 생각해봐야지. 이따가 하영이도 여기로 올 거야. 내가 불렀거든.”

성준의 생각 역시도 그녀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기필코 오늘 안에 결정을 내리리라 결심을 했다. 신지은을 만나는 것뿐만 아니라, 이곳에 동생을 부른 것도 그 이유였다.

“하영이까지? 하영이가...우릴 도와줄까? 하영이도 아직 우리 관계에 대해서 모르고 있잖아.”

“적어도 누나 상태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을까 싶어서.”

“하긴...사과는 타이밍도 중요한 거니까...그리고 하영이라면 하은이가 어려워하는 상대니까, 우리 편으로 만들어두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리고 누나 상태에 대해서도 자세히 들을 수 있으니까. 그나저나 누나는 좀 어때? 진료는 잘 받은 거야? 별 얘기는 없었고?”

아직 성하영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있었다. 성준은 잠시 주제를 돌려 신지은에 대해서 물어보고자 했다. 이번 계획을 설정하는데 있어서 신지은의 몸 상태와 컨디션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진 특별한 문제는 없는 것 같아. 나도 임신이 처음이라서 모르는 게 너무 많거든. 그저 하루하루 긴장하면서 지낼 뿐이지.”

“다행이네. 이럴 때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되는 건데...” “내가 벌인 일이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마인드 컨트롤하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도록 노력해봐야지.”

다행히 그녀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임신 초기라는 극도로 조심해야 되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그녀였지만, 컨디션은 상당히 좋은 편에 속했었다. 아직까지 임신 증상들이 나타나 그녀를 괴롭히지 않고 있었고, 이상 증상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 스스로 마음을 잘 달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아, 그나마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최근 정부에서 임신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부쩍 늘었다는 점이랄까.”

그녀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는 성준에게 얼굴을 가까이 내밀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부에서?”

“응, 이제부터 임신한 사람들에 대해서 특별 관리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있거든. 특별 관리 대상으로 지정해서 각종 진료혜택은 물론이고, 출산 이후에도 이것저것 관리해주는 게 많은 모양이야. 나야 잘 된 일이지.”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한 이야기는 최근 임신에 대한 정부의 바뀐 정책이었다. 아직 확정된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에서도 기이한 현상에 대해서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누나에 대해서 의심하진 않고?”

“다행히 별다른 의심은 없어. 아직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정책이 아니라서 지금은 관리가 좀 형편없거든. 아, 또 다른 얘기로는 불법 시술이나, 냉동정자 밀매에 대해서 단속이 심해졌다고 들었어. 안타깝게도 이젠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임신하기가 어려워졌다는 뜻이겠지. 나처럼 운 좋게 준이 같은 사람을 만나지 않는 이상 말이야.”

그녀의 이야기에 성준은 혹시라도 자신의 정체가 발각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진 정부가 이쪽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는 않았다. 여기에 그녀가 특별히 산부인과 의사와 잘 얘기하고 이곳저곳에 돈을 뿌리고, 지인 찬스를 이용했기에 잘 넘어갈 수 있었다.

“이제 내 능력으로 다른 사람을 임신시키는 일은 그만둬야겠네.”

“될 수 있으면 조심하는 게 좋겠지. 그래도 아직까진 괜찮을 거야. 정부나 히어로 협회나, 헌터부대나 임신한 사람들보다는 임신을 시키는 사람이랑 몬스터에 더 관심이 많으니까.”

“임신을 시키는 사람들? 나 같은 사람 말이야?”

“응, 준이, 너 같은 사람들을 ‘임신 능력자’라고 부르더라고. 우리 생각보단 임신 능력자가 제법 있는 것 같아.”

“뭐...그건 이미 짐작하고 있는 거니까. 나 같은 사람들을 그들이 노리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겠지. 몬스터도 마찬가지고.”

“그 수가 점점 증가한다는 말도 있어. 준이, 너처럼 처음부터 능력이 유지되는 사람도 있지만, 나중에 뒤늦게 능력이 다시 생기는 사람도 있다더라고. 그래서 요즘 몬스터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던데...자세한 건 잘 모르겠어. 나도 어디까지나 정부 사람들한테 들은 거니까.”

그녀는 정부의 정책뿐만 아니라 임신 능력자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성준의 그녀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다. 자신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일이었기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전에 말했던 그 단체에 대해서는 모르는 거지?”

“단체? 무슨 단체?”

“전에 누나가 돈 주고 정보를 구입했다는 곳 말이야.”

“아아, 그곳은 잘 모르겠어. 임신한 이후로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으음...혹시 앞으로도 임신 능력자나 몬스터, 정부 정책에 대해서 알게 된 게 있으면 말해줄 수 있을까?”

“당연하지. 그 정도야 문제없어. 병원 갈 때마다 사람들한테 이것저것 물어볼게.”

특히나 성준은 최근에 임신 능력자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지은과 하서윤에게 접근했던 단체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어쩌면 그들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른 임신 능력자들과 만나보고 싶어졌다. 아직까지는 두려움이 많았지만, 이 일도 언젠가는 그의 발목을 붙잡으리라 생각되었다.

“하영아!! 여기야, 이쪽으로 와.”

그렇게 성준이 신지은이 임신과 임신 능력자에 대해서 심각하게 대화를 하는 사이, 드디어 성하영이 카페에 도착했다. 성준과 마찬가지로 교복을 입은 그녀는 굉장히 새침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지은이 언니? 언니는 왜 여기 있어?”

“내가 왜 여기 있다고 생각해?”

“설마...언니하고도 관련이 있는 거야?”

“일단, 자리에 앉아. 자세한 이야기는 천천히 해줄게. 뭐 먹고 싶은 건 없고?”

성하영이 신지은을 발견하고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오빠하고 단둘이 대화를 나눌 줄 알았는데, 신지은이 있자 다소 놀란 모양이었다.

“하...도대체 무슨 일인지, 감도 안 잡히네. 지은이 언니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어.”

그녀가 성준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성준과 신지은을 번갈아 바라보며 머리를 굴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떠오르는 게 없었는지, 답답해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성준은 그런 그녀를 보며,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줘야 될지 고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에게 사실을 말해줘야 될지, 그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녀가 성하은처럼 이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이 걱정되었던 그는 자꾸만 속으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일단, 누나랑 내가 싸웠다는 건 알고 있지?”

“집에는 언제 들어올 거야? 매일 언니 때문에 미치겠단 말이야. 이제 오빠도 그만하고, 빨리 언니랑 화해해.”

“누나는 좀 어때?”

“동영상 안 봤어? 내가 아무리 언니랑 친하지 않더라도, 같이 사는 가족이란 말이야. 지금까지 언니가 저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은 처음 봤어. 그러니까 빨리 집에 돌아오라고. 언니도 그걸 바라고 있단 말이야.”

“그래...그래야지. 그래서 이렇게 모인 거고. 적어도 이번 주 안에는 집에 들어갈 예정이야. 누나한테 사과도 하고.”

성준은 일단, 곧 집에 돌아가겠다고, 누나에게 사과를 하겠다고 말하면서 그녀를 안심시켰다. 처음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그녀에게 좀 무리라 생각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녀가 이 일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아직까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천천히 시간을 끌다가 분위기를 봐서 사실을 말해주거나 이대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으면, 언니가 저러는 거야? 더군다나 집까지 나가고.”

“그러게...집을 나간 건 내가 잘못한 것 같아...”

“아니, 그러니까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건데? 지은이 언니는 또 무슨 관련이 있고? 답답하게 말 돌리지 말고 빨리 얘기해줘.”

“우선, 우리 계획부터...”

“굳이 날 불러낸 건 내가 필요하다는 뜻 아니야? 무슨 일인지 알아야 도움을 줄 수 있지.”

그렇지만 성하영은 막무가내로 본론부터 듣길 원했다. 그녀의 태도에 성준은 속으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는 신지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신지은은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네가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을 텐데...괜찮겠어?”

“아니, 무슨 얘긴지 들어야 받아들이던 말든 하지.”

“하영아...정말 심각한 이야기라서 그래...”

“알았어...내가 언제 오빠 부탁 거절한 적 있나...”

“하아...좋아, 말해줄게. 놀라지 마. 그러니까...”

신지은에게 허락을 받은 성준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자신의 이야기와 신지은과 있었던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카페 안에 사람이 많지 않았고,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았기에 이야기는 끊김 없이 이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성하영의 표정은 충격과 놀라움으로 가득해져갔다.

*

*

*

-하서윤

성준이 학교에 가고 집에 혼자 남게 된 하서윤은 하루 종일 우울한 상태였다. 성준의 빈자리가 이렇게나 컸던 것일까. 애써 집안일을 하면서 성준에 대한 기억을 잊어보고자 했지만, 자꾸만 머릿속에 성준이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아침에 왜 그런 말을 해가지고...바보...’

오늘 아침, 그녀는 용기를 내서 성준에게 손을 내밀었다. 왜 갑자기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무슨 자신감으로 성준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성준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고백했던 그녀였다.

그 때문인지, 그녀는 성준이 학교에 간 이후로 계속해서 자신도 모르게 시계를 바라보며 성준을 기다렸다. 시간이 갈수록 그녀의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고, 학교를 마칠 시간이 되어서는 제대로 서있지도 못할 정도로 마음이 두근거렸다.

‘학교 끝날 시간이 훌쩍 지났는데...역시 안 오는 건가...내가 너무 무리한 걸 요구했던 모양이야...많이 부담스러웠겠지...’

하지만 집에 올 시간이 지나서도 초인종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분명히 성준도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오지 않는 것일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녀의 한숨은 깊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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