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신 클리닉-96화 (96/193)

<-- 임신 능력자 -->

“무, 무슨...일인데? 왜 이런 곳에서...?”

마지못해 그녀를 따라가긴 했지만, 성준은 그녀가 두려웠다. 혹시라도 또 무언가를 제안하면 어떻게 할까.

“오늘따라 너 좀 이상하다?”

두 사람이 이동한 곳은 주차장 근처에 위치한 구석진 장소였다. 지나다니는 사람조차도 없는 그곳에서 그녀는 성준에게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 내가?”

“설마 어제 일 때문에 그러는 거야?”

“아니...꼭 그런 건 아니고...그냥, 오늘 컨디션이 좀...”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일 때문인 것 같은데...”

그녀는 성준이 이러는 이유를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에게도 어제의 일은 굉장히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성준과는 달리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는 했지만, 그녀도 성준과 함께 있는 동안 계속해서 어제의 일이 떠오르곤 했었다.

“그래서 오늘은 성욕 테스트 안 할 거야?”

그녀가 다시 한 번 성준에게 질문했다. 처음에만 하더라도 성준은 그녀와 성욕 테스트를 하는 것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제의 일을 떠올린다면, 차마 테스트를 하자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테스트도 좋긴 하지만...너도 어제 봤다시피, 또 그런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려고...”

성준은 그녀에게 사실대로 말하고자 했다. 어제의 일에 대한 문제점들과 함께 순간적으로 폭발해버린 성욕의 위험성에 대해서 경고할 생각이었다. 자칫했다간 그녀를 덮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일? 어제 일이 뭐가 어때서? 테스트 중에 발생한 일이잖아.”

“만약 내가 억지로 버티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너를 덮쳤을 수도 있어. 내 성욕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니까. 만약 내가 너를 덮치면...그때는 정말 큰일이잖아...”

“결과적으로 덮치지 않았잖아. 그리고 자위를 통해서 바로 성욕을 조절할 수 있었고. 또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어제처럼 대처하면 될 거야. 무엇보다 어제 일로 알 수 있게 된 게 더 많아진 거 아니야?”

하지만 그녀는 성준의 경고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 오히려 테스트의 긍정적인 면만을 부각시켰다. 어제의 테스트를 통해서 새롭게 알아낸 사실들이 많다며, 테스트를 꾸준히 해야 될 당위성을 이야기했다.

“정말로 내가 너를 덮쳐도 괜찮다는 거야?”

“그건...으음...덮치는 건 조금 그렇겠지만, 그래도 친구이고 약속했으니까, 이해해야지. 무엇보다 네 의지가 아니라 능력 때문인 걸 어쩌겠어.”

“아니, 그게 무슨...그런 건 이해해줄 필요 없어.”

“단지 기이한 현상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잖아. 내가 괜찮다는데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 아니야?”

심지어 그녀는 자신을 덮쳐도 된다는 식으로 말했다. 성준은 그녀의 어이없는 말에 어떤 반응을 해야 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너는 테스트를 계속 하자는 뜻이야?”

“응, 당연히 그래야지. 솔직히 궁금하기도 하고.”

“뭐가...?”

“저번에도 말했잖아. 네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궁금하다고.”

“정확히 뭐가 궁금한 건데?”

“점점 성욕이 증가하는 것도 신기하고, 이게 과연 어디까지 갈지도 궁금하고.”

그녀의 말에 성준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이런 그녀를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이 되었다. 더군다나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애초에 이것을 노리고 성욕 테스트를 하자고 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거절하는 게 답인가. 하지만 그랬다가는...괜히 사이만 안 좋아지고, 예전처럼 나를 괴롭힐 수도 있잖아. 하...미치겠네...’

그녀가 이렇게까지 나오는 이상, 거절하는 게 정답이었다. 하지만 성준은 차마 그러지 못했다. 성욕 테스트를 시작하면서부터 그녀에게서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과거와 달리 성준에게 매우 호의적은 반응을 해준다는 점이었다. 이전까지는 일부러 성준을 자극하기도 했고, 성준이 조금만 실망을 주어도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반응을 하고는 했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이 전혀 없었다. 성준의 말에 잘 따라주기도 했으며, 두 사람이 처음 알게 되었을 때처럼 쉬는 시간과 수업시간을 가리지 않고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성준은 고민이 되었다. 여기서 거절을 했다가는 그녀에게서 어떤 반응이 나올지 도 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녀가 악한 마음을 품고 상상도 못할 해괴한 일을 저지를 수도 있는 일이었기에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 그녀의 말처럼 성욕 테스트를 통해서 그가 얻게 된 정보들도 꽤 많았다. 만약 어제 일이 아니었다면, 그는 발기가 풀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정보를 몰랐을 것이다. 그녀가 다른 의도로 테스트를 제안했더라도 그것을 통해서 얻는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좋아, 테스트는 계속 하는 걸로 하자.”

결국, 성준은 테스트를 유지하기로 했다. 어차피 학교를 계속 다녀야 되는 이상, 그녀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밀을 알고 있는 그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어제 하서윤에게 들은 이야기나, 그의 친구 이강성의 말에 의하면 최근 들어서 정부나 몬스터 쪽에서 임신 능력자를 찾기 위해 불을 켜고 돌아다닌다고 했다. 이런 시기에 정체를 들켰다가는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었기에 그는 일단, 그녀의 입을 막고자 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그럼, 오늘은 어떤 걸 테스트해볼까?”

테스트를 지속하자는 성준의 말에 그녀가 밝게 미소를 보였다. 테스트를 하는 게 그렇게나 좋은 것일까. 그녀의 속마음을 끄집어내서 한 번쯤은 정확히 알아보고 싶은 그였다.

“글쎄...오늘은 미리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라서 조금 그렇지 않나...오늘 하루는 그냥 넘어가자.”

“그냥 넘어가자고?”

“오늘은 컨디션도 안 좋으니까...”

너무나도 테스트를 하고 싶어 하는 그녀와 달리 성준은 오늘만큼은 테스트가 땡기지 않았다. 어제의 일을 떠올려 보면, 그녀가 무엇을 제안할지 상상도 되지 않았으며, 솔직히 겁도 났다. 조금은 마음의 준비를 한 뒤, 그녀와 테스트를 감행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었다.

“흐응...그래? 그냥 끝내기에는 조금 아쉬운데...”

“내일도 있잖아. 내일은 제대로 해보자.”

“정말? 내일은 제대로 해도 괜찮은 거야?”

“아...음...그래, 내일은 제대로 해보자.”

“그럼, 내일은 어제처럼 직접 보여줬으면 좋겠어.”

“...응? 뭐를...?”

하지만 성준이 테스트를 내일로 미룬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내일로 미루는 대신, 조금 더 과감한 테스트를 하자고 말했다. 특히나 직접 보여 달라는 그녀의 말에 성준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당연히 그거 말하는 거지. 알면서 굳이 왜 물어보는 거야? 혹시 여자 입으로 직접 말하게 하는 쪽이 취향인 거야?”

“아니...그런 건 아니고...아무튼 왜 보여 달라는 건데?”

“어차피 어제 다 본 김에 못 보여줄 것도 없잖아. 이제부터는 제대로 테스트를 해볼 생각이야.”

역시나 어제의 일이 불씨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어제 성준이 자위하는 모습을 직접 본 그녀에게 브레이크는 없었다. 이제 그녀는 성준의 성욕을 가지고 이것저것 다양한 테스트를 할 생각이었다.

“어떤 테스트일지...엄청 궁금하네...하하...”

“후훗, 기대해도 좋을 거야. 앞으로 테스트가 더 재미있어지겠네.”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성준에게 그녀가 음흉하면서도 밝은 미소를 지었다. 도대체 그녀의 생각은 무엇일까. 성준은 자꾸만 한숨이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는 수밖에 없었다.

*

*

*

-505호, 하서윤의 집, 성준

학교를 마치고 성준은 곧장 집으로 향하지 않고, 중간에 하서윤네 집으로 향했다. 누나하고의 약속대로라면 학교를 마치자마자 집에 들어가서 근신하고 있어야만했지만, 어제도 그렇고 오늘 역시도 그럴 수가 없었다. 특히나 오늘은 하서윤으로부터 들을 이야기가 많았기에 기대를 품은 채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서와. 저녁 먹기에는 좀 이른 것 같아서 간단히 간식 준비했어.”

그녀 역시도 성준이 최근에 집에서 근신 중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성준이 저녁까지 있지 못한다는 사실에 그 전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간식을 만들어둔 상태였다.

두 사람은 식탁에 마주앉은 채로 간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의 주제는 역시나 어제 있었던 일과 관련해서였다. 그녀는 최대한 빠짐없이 성준에게 설명을 해주었고, 성준은 그녀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내내 놀라면서도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임신 클리닉...정말로 그런 단체가 있다는 거예요?”

“나도 엄청 놀랐어. 정말로 그런 곳이 있을 줄이야...하지만 내 눈으로 직접 확인까지 했는걸. 분명히 발...그러니까 거기가...커져있었어.”

성준의 그녀의 이야기가 아직까진 믿기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가 거짓말을 할 사람도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이 임신 능력자 중 한 명이었기에 임신 클리닉이 무조건 거짓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속임수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실, 누나 남편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부분도 굉장히 신경 쓰이거든요. 전형적인 사기꾼들의 수법이라서...”

“그럼 거기는 왜...”

“처음부터 거기가 커진 상태이지 않았어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커지는 과정을 직접 본 게 아니라면, 충분히 만들 수는 있겠죠. 그렇다고 누나가 직접 만져본 것도 아니잖아요.”

“아...그렇지...”

그럼에도 성준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뜬금없이 남편을 끄집어내서 50% 할인을 해준다는 부분이 너무나도 신경 쓰였다. 5천만 원이 누구 집 개 이름도 아니고, 함부로 허공에 날릴 수는 없었다.

“조금만 더 지켜봐야 될 것 같아요. 임신 능력자가 30명 가까이 된다는 것도 믿기지 않고...”

“그 사람 말로는 자신이 히어로라고 했어. 협회에서 쫓겨났다고 했나...그래서 또 다른 히어로 친구랑 같이 이번 일을 계획했다고...”

“히어로라는 것도 사실, 믿기는 어렵죠. 그 사람이 능력을 직접 보여준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렇다고 거짓이라고 확정지을 수도 없으니까...조금 더 고민해봐야겠네요.”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었고, 임신이라는 그녀에게 있어서는 인생 전부와 같은 일인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성준은 그녀의 일은 마치 자신의 일인 것 마냥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고자 했다. 필요하다면 친구 이강성을 통해서 임신 능력자와 ‘이재희’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알아보고자 했다.

“그나저나 임신은 어떻게 하는 거래요? 시험관으로 하는 건가?”

주제를 살짝 돌려 임신 방법에 대해서 성준이 물어봤다. 그 얘기를 꺼내자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게...하...방법이 좀 그래...예전에도 한 번 준이랑 이런 얘기 한 적 있었는데...막상 방법이 이것뿐이라니까 엄청 고민되네...”

“도대체 어떤 방법이길래...?”

“그...시험관은 안 된다고 하더라고. 직접 삽입을 해서 정자를 주입하는 방법뿐이래...”

“그, 그 방법 밖에 안 된다고요?”

그녀의 이야기에 성준이 살짝 놀랐다. 그는 당연하게도 시험관시술을 통해서 인공수정을 할 것이라 예상했다. 애초에 그 기술이 있었으면, 신지은하고도 그렇게 했을 것이었기에 당연히 시험관을 떠올렸다.

하지만 직접 삽입이라니, 그는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임신 클리닉이 더욱 사기 단체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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