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신 능력자 -->
“왜 그것밖에 안 되는 건데요? 뭔가 이상한데...”
“그치? 나도 여기서 좀 의심이 되긴 했어. 그 사람 말에 의하면 임신 능력자들은 히어로와 비슷하다더라고. 그래서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동시키는데 제한이 있다고는 하지만...지어낸 말일 수도 있으니까.”
“능력을 발동시키는데 제한이 있다고요?”
“응, 그렇다더라. 자기들도 지금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도를 했었대. 하지만 삽입을 통한 사정만이 임신이 가능했다더라고. 내가 의심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시험관으로 임신이 가능하다면 왜 굳이 어렵게 이런 식으로 장사를 하겠냐고 묻기까지 했어.”
“하긴, 냉동정자를 판매하는 쪽이 훨씬 이득이겠죠. 정부나 몬스터들한테 걸릴 위험도 적고요.”
삽입만으로 임신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성준은 임신 클리닉에 대한 의심이 더욱 증폭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말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만약 삽입이 없어도 임신이 가능하다면 굳이 복잡한 방법을 이용해서 장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
‘만약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신지은과의 관계에 대해서 누나도 더 이해해줄 수 있을 텐데...하지만 아직 그들의 말을 믿을 수는 없으니까...’
삽입으로 임신이 된다는 말에 성준은 자연스럽게 신지은과의 관계를 떠올렸다. 성준과 신지은은 실제로 섹스를 통해서 임신을 이룬 관계였다. 만약 하서윤이 들은 이야기가 사실이고, 신지은과 성준이 섹스가 아니라 다른 방법을 택했더라면 임신은 영영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들은 게 있어. 임신 능력자들에 대해서 말이야.”
성준이 과거의 일들을 떠올리고 있는 사이, 그녀가 그곳에서 들은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해주었다. 사실, 애초에 그녀는 성준을 만나기 전부터 이 이야기를 꺼내길 기다리고 있었다. 성준에게 이 이야기를 해준다면 그의 반응이 어떨지 너무나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임신 능력자들에 대해서요?”
“응, 혹시 준이 주변에 아는 임신 능력자 있어?”
“네? 그, 그건...왜요?”
“당연히 없겠지?”
“그, 그렇죠...그런 사람이 흔한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그러더라. 주변에 임신 능력자가 있으면 조심하는 게 좋다고. 그리고 웬만하면 바로 자기한테 말해달라고 그랬어.”
“특별한...이유라도 있는 거예요?”
“아까도 말했지만, 임신 능력자는 히어로와 같아. 초창기 히어로들은 본인들의 능력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면서 폭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거든. 임신 능력자도 마찬가지인 셈이지. 그들은 히어로와 같은 능력이 아니라 성욕으로 나타난다고 하더라고.”
그녀의 말에 성준은 다시 한 번 크게 놀랐다. 그녀가 그들로부터 들은 말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임신 능력자인 성준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서 점점 증가하는 성욕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 않던가. 심지어 폭주해서 하서윤에게 몹쓸 짓을 저지르기도 했었다.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성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던데?”
“주변 사람까지요?”
“응, 주변 사람들의 성욕에도 이상증상을 일으킬 수 있대. 그래서 혹시라도 주변에 임신 능력자가 있으면 자기한테 말해달라고 했어. 요즘 몬스터나 정부에서 임신 능력자들을 찾으려고 별 짓을 다한다고 하니까...몬스터에게 붙잡히고 그대로 죽는 거고, 정부에게 붙잡히면 온갖 실험과 수모를 당할 수도 있다더라.”
그녀는 계속해서 임신 클리닉에서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성준의 표정변화를 유심히 관찰했다. 성준의 표정은 점점 심각하게 굳어갔고, 심지어 덥지도 않은데 식은땀을 흘리기도 했다. 그녀는 이 모습을 보고선 역시나 성준도 임신 능력자가 맞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하하...재미있는 이야기네요...뭐, 저희하고는 크게 관련이 없으니까요...”
성준이 괜스레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머릿속은 굉장히 복잡해진 상태였다.
“그렇지. 우리하고는 크게 관련이 없으니까. 아무튼 어떻게 결정을 내려야 될지 모르겠어. 준이, 네 생각은 어때?”
당황해하는 성준에게 그녀가 물었다. 그녀는 굳이 당황해하는 성준을 조금 더 압박하지 않았다. 그녀는 성준이 반강제적으로 능력을 자신에게 밝히기보다는 자발적으로 말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화제를 돌렸다.
“글쎄요...그 단체에 대해서 아직까진 믿을 수는 없지만...다른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이재희란 사람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고 결정해야 될 것 같아요.”
“만약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사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될까?”
“...만약 사실이라면...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누나한테 임신은 전부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렇겠지? 나한테 임신은 전부니까...”
화제를 돌려서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임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이번에도 결정된 것은 없었다. 다만,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임신을 하는 쪽이 좋지 않을까 두 사람은 생각했다.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녀에게 임신은 인생 그 자체니까 말이다.
그것을 끝으로 두 사람의 대화가 끝이 났다. 성준은 조금 더 그녀와 있으면서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동생에게 문자가 왔다. 학교 끝난 거 다 아니까, 빨리 집에 들어오라는 내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준이 떠나고 혼자 남은 하서윤은 성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오늘로 그녀는 그가 임신 능력자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될까. 그녀의 마음은 임신 클리닉보다는 자꾸만 성준에게로 끌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성준에게 이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오늘도 그녀의 고민은 한없이 깊어져만 갔다.
*
*
*
-성준의 집
“자꾸 이런 식이면 곤란해. 언니한테 말하는 수가 있어.”
“미안...친구랑 얘기 좀 하다가...”
“지금 오빠 상태가 어떤 데, 친구 만날 시간이 있어?”
“그거 때문에 만난 거야. 친구네 부모님이 헌터부대 연구원이라서...”
집에 들어온 성준은 다짜고짜 도끼눈을 뜨고선 자신을 나무라는 성하영에게 친구를 팔아가며 변명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녀는 성준을 의심했지만, 그래도 가족 중에 오빠만큼은 좋아했던 그녀였기에 그의 말을 믿어주었다.
“오늘은 별일 없었고? 학교에서는 어땠어?”
“별일은 무슨...그냥 똑같았어.”
“그래? 흐응...무슨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정말로 별일 없던 거지?”
“그렇다니까...얼른 밥이나 먹자.”
성하은하고의 화해 이후, 집으로 돌아온 성준은 다시 예전과 같은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다만, 예전하고 다른 게 몇 가지 있다면, 하나는 성하은과의 어색함이었고, 두 번째는 성하영의 존재였다. 특히나 성하영은 끊임없이 성준에게 말을 걸면서 그를 괴롭혔는데, 그녀를 상대하는 건 그에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요즘 성욕은 어때?”
“야, 밥 먹는데, 꼭 그런 얘길 해야겠냐?”
“밥이랑 이게 무슨 상관인데?”
“세상에 중학생 여동생이 고등학생 오빠한테 밥 먹으면서 성욕은 어때, 라고 묻는 게 정상이야?”
“아니, 나는 그냥 걱정되니까 그렇지.”
“네가 신경 쓸 필요 하나도 없어. 다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알아서 한다는 사람이 언니랑 싸워서 가출까지 했으면서.”
“......”
특히나 그녀는 최근 들어서 성준의 능력에 극도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애초에 가족 중에서 오빠를 가장 좋아하기도 했었고, 잘 따르는 편이었던 그녀는 오빠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그런 오빠가 기이한 현상 속에서도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고, 그거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고 하니, 어떻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어디가? 자위하러 가는 거야?”
“야!! 너...진짜...왜 자꾸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뭘 그렇게 부끄러워 해? 여동생도 여자라는 거야?”
“그게 아니라, 하...가족끼리도 지켜야 될 매너가 있는 거라고...그리고 네가 여자지, 남자냐? 오빠한테 이러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성준은 그녀의 이런 행동이 무척 괴로웠다. 예전부터 주변 사람의 시선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고, 굉장히 당당하게 떠오르는 생각을 필터링 없이 내뱉고는 했던 그녀였지만, 성준에게 만큼은 더욱 심했다. 오빠한테 자위하러 가냐고 묻는 여동생은 그녀뿐일 것이다.
“매너는 무슨. 우리 예전에는 같이 목욕도 했었잖아. 그때 이미 볼 거 못 볼 거 다 봤는데.”
“그건 어렸을 때잖아. 성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랐던.”
“어렸을 때는 되는 거고, 지금은 안 되는 거야? 가족인데? 그리고 그때도 이미 다 알고 있었거든. 나는 몰라도 적어도 오빠는 알고 있었지.”
“아니...아무리 가족이라도...하...그래, 네 말이 맞다. 네 말이 맞아.”
“정말? 그럼 오랜만에 오늘 같이 목욕할까?”
“야...”
“헤, 농담이야. 근데 솔직히 말하면 조금 보고 싶긴 해. 오빠 능력 말이야.”
“그, 그건 네가 왜 봐...”
“그냥 궁금하니까. 정말로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아직 나랑 언니는 직접 확인을 못했잖아.”
“굳이 직접 볼 필요 없이 지은이 언니 임신 한 것만 봐도 충분하잖아.”
“그런가? 뭐, 아무튼 알았어. 언젠가는 볼 기회가 오겠지. 아니면 내가 몰래 봐도 되는 거고. 그럼, 자위 열심히 해.”
“......”
그런 여동생을 놔두고 성준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그녀를 상대하기에는 너무 머리가 복잡했다. 조금 전에 하서윤에게 들은 이야기가 신경 쓰였는지, 그는 바로 침대에서 누워서 생각들을 정리했다. 동생이 말한 것처럼 자위를 해서 오늘의 할당량을 채워야 했지만, 그것마저도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요즘 따라 신경 써야 될 일들이 엄청 많네. 박수아에다가 서윤 누나, 지은이 누나 임신 문제, 임신 클리닉, 거기에다가 가족들까지...이런 상황에서 헌터부대 공부는 절대 못 해...’
최근에 성준에게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산 속 기숙사에서 내려온 지 고작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그에게 벌어진 일들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이 기이한 현상과 매우 깊게 연관이 있었다. 기이한 현상이 없었더라면 그는 평범하게 헌터부대 공부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임신 클리닉...정말일까...? 정말로 나는 히어로 같은 존재인 건가? 이것도 어떻게 보면 인류의 위기인 셈이니까...하지만...내가 히어로라고? 하...헌터부대가 되고 싶은 건, 사람들을 구하는 것보단 돈이 목적이었는데...’
왜 그에게 이런 능력이 주어진 것일까. 성준은 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자신에게 이런 능력이 주어진 것인지 고민해보았다. 로또 당첨보다도 훨씬 극악의 확률로 배정된 이 능력이 왜 하필이면 그에게 온 것일까. 능력을 가진 만큼 그에 대한 책임감을 동반해야 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신지은을 임신 시킨 것만 해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오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정부로부터 실험을 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여태까지 이 사실을 비밀로 했던 것도 그였다. 그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져만 갔다.
‘임신 클리닉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어. 강성이한테도 물어보고, 최대한 알아봐야지. 만약 그곳이 사실이라면...조금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거야.’
머리가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성준은 하서윤으로부터 들은 임신 클리닉이 떠올랐다. 만약 그곳이 정말로 임신 능력자들을 다수 보유한 단체라면 성준에게는 중요한 단체였다. 예전부터 자신과 같은 임신 능력자들을 만나고 싶었던 성준이었기에 그는 부디 그 단체가 사기단체가 아닌 진짜로 존재하는 곳이길 바랐다. 그곳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과 함께 앞으로 나아 가야될 방향을 안내받고 싶어 했다.
그렇게 복잡한 생각 끝에 그는 그대로 잠이 들었다. 내일은 또 그에게 어떤 하루가 펼쳐질까. 그는 부디 아무 일도 없길 바라며, 달콤한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지만, 아쉽게도 앞으로의 그의 나날들이 그리 평탄해보이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