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주 -->
“몸이 안 좋으니까 누워있는 게 좋겠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커피보단 따뜻한 차로 주문하는 게 좋겠어. 뭐가 좋을까...여기, 유자차도 파네. 유자차 괜찮지?”
방에 자리를 잡은 성준은 그녀를 눕히고 주문을 하고자 했다. 그녀가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한 그는 감기에 좋은 유자차를 주문했다. 방에 들어와서도 그녀는 여전히 얼굴을 붉힌 채로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리 봐도 많이 아픈 것 같은데...수아야, 오늘 약속은 취소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어차피 내일 학교에서 말할 수도 있는 거니까. 오늘은 집에 가서 약 먹고 푹 쉬고 내일 다시 얘기하자.”
그런 그녀의 모습에 성준은 크게 걱정이 되었다. 이대로 무리해서 그녀와 있다가는 그녀가 쓰러질 수도 있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녀가 귀찮더라도 친구인 입장에서 아픈 사람을 보고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책임감이 없는 짓이라 생각했다.
“아니야...조금 쉬면...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무리하는 모습을 보였다. 말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그녀였지만, 오늘은 무조건 성준과 있어야 되는 것처럼 행동했다. 성준은 그런 그녀가 무척 답답했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억지로 집에 보낼 수는 없었다. 그녀의 선택이기에 어느 정도는 존중해야만 했다.
“일단, 차라도 마시자. 약도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여기 약국도 멀지 않아서 금방 다녀올 수 있는데...지금이라도 다녀올까?”
성준이 주문한 차가 도착했다. 힘들게 몸을 일으킨 그녀는 성준의 도움을 받아 차를 마셨다. 그녀의 몸 상태는 여전히 안 좋아 보였다.
“아니야, 차 마시고 쉬면 좀 괜찮아질 거야...괜히 걱정 끼쳐서 미안해...나 때문에 많이 답답하고 귀찮겠다...”
“귀찮긴...친구가 아프면 걱정하는 게 당연한 거지...”
성준은 그녀를 위해서 약국이라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성준을 계속해서 붙잡았다. 아프더라도 성준과 함께 있고 싶은 그녀였다.
“그리고 나...아픈 거 아니야...네가 생각하는 그렇게 아픈 게 아니야...”
차를 한 모금 들이킨 그녀가 성준에게 말했다. 그녀는 누가 봐도 아픈 사람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아픈 게 아니라니, 그게 무슨 뜻일까. 성준이 궁금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다시 한 번 힘겹게 입을 열었다.
“만나자마자 이런 말하기 좀 부끄럽지만...지금 나는 감기에 걸린 게 아니야...”
“아프지 않다고? 딱 봐도 엄청 아파 보이는데...그럼, 어떤 상태인데? 설마...아니지...?”
감기에 걸린 게 아니라면, 지금 그녀는 어떤 상태일까. 성준이 다시 한 번 그녀의 전체적인 상태를 살폈다. 그리고 그는 한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성적인 흥분을 말이다.
“맞아...그때, 그 일 이후로...모르겠어...자꾸만 가슴이 답답하고...흥분돼서...미칠 것만 같아...네가 생각하는...그 흥분 맞아...”
그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그녀는 지금 감기나 몸살 같은 걸로 아픈 게 아니었다. 그녀는 놀랍게도 성적으로 흥분 중이었다. 그것도 몸이 달아오르고 숨이 찰 정도로 크게 흥분하고 있었다.
“그때 이후로? 설마 금요일에 그거 말하는 거야?”
“...으응...그때 이후로 머리랑 몸이 이상해졌어...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정말이야...”
“하지만...그 이후로 나하고는 전혀 마주치지 않았잖아...심지어 연락도 거의 안했는데...”
그녀의 말에 성준은 크게 놀랐다. 지금 그녀의 상태가 흥분 상태인 것도 놀라웠지만, 단순히 오늘만의 일이 아니라, 금요일의 일 이후로 계속 그랬다는 점이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처음에는 단순히 내 문제라고 생각했어...하지만...아무리 휴식을 취해도...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어...심지어 자위도 해봤지만...전혀 해소가 되지 않아서...”
“자위로도 해소가 되지 않았다고? 하...일단, 성욕 때문에 그런 건 맞는 거지? 의심하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거야.”
“으응...의심될 수 있겠지만...사실이야...너무 힘들어...”
그녀의 말은 전혀 거짓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힘에 겨워했다. 자신의 성욕을 풀 수 있는 대상인, 성준이 바로 앞에 있어서 그런 것일까. 그녀는 자꾸만 성준의 손을 붙잡았다가 놓았다를 반복하면서 괴로워했다. 말은 안 해도 그녀가 머릿속을 지배하려는 성욕과 최선을 다해서 싸우고 있는 중임을 성준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말도 안 돼...어제 하영이도 그렇고, 왜 수아도 이런 상태인 거지? 나는 흥분하지도 않았는데 왜 두 사람이 흥분을 하는 거야...하...대체 어떻게 되먹은 능력이야...’
성준 역시도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수아에게 일어난 일이 자신의 능력 탓이라고 생각했다. 어제 동생의 일을 떠올려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머리는 더욱 복잡해졌다. 자신의 성욕을 통제하는 것으로 상황을 무마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의 계획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앞으로 이와 같은 상황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우선 진정하고...으음...금요일 이후부터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말해줬으면 좋겠어.”
지금은 당장 눈앞에 있는 박수아가 중요했다. 성준은 그녀의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주차장에서의 일 이후의 그녀의 상태에 대해서 물었다. 그녀는 잠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지금까지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처음에는 크게 문제는 없었어. 그냥...이성을 잃었을 때의 일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강하게 흥분이 되는 정도랄까. 그래도 그 정도는 나 혼자서도 해소를 할 수 있었으니까, 별 문제는 없었어. 그런데...어젯밤부터 갑자기 심해지는 바람에...”
“어제도 이 정도로 심했던 거야?”
“거의 그랬었지...온몸이 갑자기 뜨거워지기 시작하면서 야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마구 떠오르고...특히나 준이, 네가 가장 많이 떠올랐어. 중간 중간 이성을 잃을 뻔할 정도로 머리가 너무 아찔해서...어쩔 수 없이 오늘 너를 부른 거야. 혹시라도 너를 만나면 해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주차장에서의 일이 시발점인 것은 성준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분명히 성준이 그녀의 성욕을 해소해주면서 모든 일이 마무리 되었었다. 그런데 어째서 또 다시 그녀의 성욕이 폭주한 것일까.
어제 하루 동안은 저녁시간을 제외하고는 그녀와 연락 한 번 한 적도 없었다. 하영이야, 같이 붙어있었으니까 조금은 이해가 되었지만, 그녀는 만나기는커녕 생각조차 안 했는데도 왜 성욕에 영향을 받은 것이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너는 네 몸이 왜 이런다고 생각해? 내 능력 때문인 건 확실한 것 같은데...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으니까...”
“글쎄...어제부터 생각해봤는데...나도 잘 모르겠어...그냥...자꾸만 네 모습이 떠오르고, 너를 원하고...성욕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뿐이야...”
현재 그녀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성욕은 성준을 강력히 원하고 있는 중이었다. 성준의 능력에서부터 파생된 성욕이라서 그런 것일까. 성준은 이를 통해서 한 가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지은이 누나도 섹스 이후로 계속 나를 떠올렸다고 했어. 물론, 누나의 성욕은 이 정도로 심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성욕이 증가했다고는 했으니까...그렇다면 이 빌어먹을 능력은 여자의 몸에 성욕이라는 것으로 자리 잡아 끊임없이 괴롭히는 건가? 설마 내 능력으로 한 번 흥분한 대상은 계속해서 이런 상태로 지내는 거라고?’
그는 자신의 능력을 일종의 바이러스라고 생각했다. 아직까진 알 수 없는 특정한 방법으로 사람의 몸에 들어간 이 바이러스는 치료가 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몸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일정 기간의 잠복기를 거쳐서 적당한 때에 등장해 흥분과 같은 이상증세를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그는 추측했다.
그렇다며 이 바이러스의 목적은 무엇일까. 바이러스의 목적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기에는 박수아는 전혀 통증 같은 것을 느끼지 못했다. 바이러스가 단순히 사람의 성욕을 폭주할 정도로 증가시키는 것이라면 목적은 단 하나였다. 이 성욕을 어떻게든 해소시키는 것. 그리고 그 대상은 바로 바이러스 제공자인 성준인 것이다.
‘젠장...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설마...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하다고?’
본인이 생각한 것임에도 그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그의 추측은 허무맹랑했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그의 추측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지은이 누나는 나하고 직접 섹스를 해서 폭주하지는 않았던 건가? 하...만약 이게 맞다면, 하영이도 감염이 되었다는 건데...미치겠네...아마 서윤 누나도 감염이 되었을 확률이 높을 텐데...하...돌겠다...’
성준은 속으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그의 생각이 맞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질 게 뻔했다. 이 바이러스가 어디까지 퍼졌을 지는 그도 짐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감염이 되는 지도 알 수 없었다. 완전히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일단, 수아부터...수아를 치료하려면 어쩔 수 없이 내가 직접 나서야 되는 건가? 하...결국, 이렇게 원하지 않았던 결과로 진행되는 구나...젠장...’
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기엔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박수아가 문제였다. 그는 일단, 눈앞에 있는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결심하며 다시 한 번 박수아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직까지도 자신의 몸을 지배하려는 성욕 바이러스와 열심히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성준을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그녀가 성준에게 잘못된 모습을 보일까 애쓰며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는 원치 않더라도 그녀를 위해, 그녀의 성욕을 해소시키기 위해 힘을 쓰기로 결심을 내렸다.
“수아야...지금 많이 힘들지?”
“...아니야...괜찮아...”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도 괜찮아.”
“...솔직히...많이 힘들어...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지금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해서...너무 무섭고...두려워...이러다가 잘못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혹시라도 너나 다른 사람한테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너무 불안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금까지 박수아가 성준의 앞에서 이토록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던 적이 있던가. 어느새 그녀는 처음 성준과 마주쳤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성준은 그런 그녀를 위해서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고자 했다.
“너는 내 능력에 대해서 아니까, 말하는 거야. 이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인데...아마도 지금 너를 괴롭히는 성욕이...나하고 크게 관련이 있는 것 같아. 그래서...나를 통해서 성욕을 해소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어...”
그녀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매우 부끄럽고 민망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너무나도 급박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이성을 잃을 것처럼 힘들어하고 있었다. 성준은 매우 진지한 톤으로 그녀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꺼냈고, 그녀 역시도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
“미안한데...너랑 해야 될 것 같아...너를 위해서...네 성욕을 잠재우기 위해서 말이야...”
그녀를 괴롭히는 성욕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이 방법뿐이었다. 신지은에게 했던 것처럼 성준은 그녀와의 섹스가 그녀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