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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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일(화)
-다음날, 학교
“어째 어제보다 상태가 더 안 좋아진 기분인데?”
학교에 도착한 성준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박수아의 모습이었다. 오늘 그녀는 어제보다도 훨씬 더 컨디션이 안 좋아보였다. 얼굴은 굉장히 창백한 모습이었고, 피부도 뒤집어졌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안 좋았으며, 표정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하...맞아...오늘부터 생리 시작이야...”
그녀의 컨디션은 생리 때문이었다. 오늘부터 생리가 시작된 그녀는 심한 생리통으로 인해서 고통 받고 있었다. 남자인지라 생리가 어떤 것인지 잘 몰랐던 성준은 그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너무 아프면...진통제...라도 먹는 게 좋지 않을까?”
“안 그래도 아침에 먹고 왔어. 그래도 너무 힘드네...”
“너무 힘들면 보건실이라도 가자.”
“아니야, 아직까진 그 정도는 아니야. 참을 수는 있을 정도니까...그리고 진통제 먹었으니까 점점 괜찮아지겠지...”
“그래, 아프면 바로 보건실 가고...걱정이네...”
“괜찮다니까...그나저나 오늘은 성욕 테스트도 못하겠네...어제 엄청 좋았는데...”
보건실에 가보라는 성준의 말에도 그녀는 괜찮다고 말하며 버텼다. 오히려 그녀는 성준과 성욕 테스트와 섹스를 못한다는 사실에 아쉬워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 혹시 몰라서 어젯밤에도 자위를 하고 왔으니까. 이틀 연속 섹스에 자위까지 했으니까, 별 일은 없겠지. 발기만 되지 않는다면 아무 문제 없을 거야.”
성준은 이번 주 동안은 그녀와 관계를 자주 가지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선 미리 대비를 해둔 상태였다. 어제 박수아와 섹스를 했음에도 밤에 잠들기 전에 자위를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앞으로 그는 적어도 하루에 2번 이상은 정액을 밖으로 배출할 계획이었다.
“그러다가 발기하면 어떡해...그때는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꼭 나한테 말해야 된다.”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걱정 마. 너는 당분간은 나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지내.”
“그래도 내가 도와줘야 되는데...나 말고는 네 성욕 해소해줄 사람도 없잖아.”
성준의 말에도 그녀는 여전히 걱정을 했다. 그녀가 아니더라도 성준이 성욕을 해소할 대상은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만이 성준의 여자라고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아마도 몸이 아픈데도 성준과 섹스를 하고 싶을 정도로 섹스의 쾌감에 빠져든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 생각이 들자 성준은 오늘만큼은 더욱 그녀와 섹스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네 몸부터 걱정하래두. 지금 네가 어떤 모습인지 거울로 보여주고 싶을 정도야.”
“치이...나 엄청 못생겼지? 생리만 시작하면 피부가 뒤집어져서...”
“그런 뜻이 아니잖아. 오늘은 진짜 아무것도 생각 말고 푹 쉬는 게 좋겠어. 아프면 바로 보건실 가고.”
“그래도 보건실은 안 갈 거야. 괜찮으니까 너야말로 걱정하지 마.”
성준은 최대한 그녀를 달래고 또 달래주었다. 그녀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본인도 컨디션이 별로라 생각했는지, 억지를 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증상은 더욱 악화되었다. 오전만 하더라도 그녀를 괴롭히는 생리통은 고작 인상을 찌푸릴 정도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심한 복부통증으로 배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다. 결국, 그녀는 담임선생님에게 이끌려 강제로 보건실로 이동하게 되었고, 그렇게 점심시간 이후부터 성준은 그녀 없이 학교생활을 보내게 되었다.
‘맨날 붙어 다니던 애가 없으니까 뭔가 허전한 기분이긴 하네. 그래도 오랜만에 맛보는 자유라서 그런지 나쁘진 않다.’
박수아 없이 보내는 학교생활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항상 옆에 붙어 다니던 그녀가 없다는 사실에 약간의 허전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혼자 이것저것 고민할 시간도 많아졌고, 무엇보다 어디든지 혼자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동안 너무 박수아하고만 붙어 다닌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하긴, 최근에 능력 때문에 너무 수아하고만 다녔지. 그동안 다른 친구들한테 너무 소홀했어. 이번 기회에 오랜만에 다른 애들하고도 좀 어울려야겠다.’
그래서 성준은 이번 기회를 살려 오랜만에 반 친구들을 포함해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했다. 특히나 수아가 있었으면, 제대로 대화도 나누지 못했을 여자들을 중점적으로 말이다.
“안녕? 잠깐 시간 돼?”
그가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때마침 누군가가 그에게 다가왔다.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그가 한 때 짝사랑했던 여자, 이민정이었다.
“아...응...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녀하고의 대화는 무척이나 오랜만이었다. 박수아하고 본격적으로 성욕 테스트를 시작하며서부터 성준은 다른 여자애들하고는 말 한마디를 섞지 않았다. 박수아가 그것을 싫어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성준 자체가 다른 여자들을 거부했다. 능력을 들킬 수도 있다는 걱정과 함께 혹시라도 다른 여자들에게도 자신의 능력이 미칠 수 있다는 걱정이 되어서였다.
그렇기에 당연히 이민정하고의 대화도 오랜만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좋아했으면서도 최근 그는 그녀에 대한 생각자체를 거의 해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째서 그녀가 먼저 찾아온 것일까.
“잠깐 대화 가능하지? 혹시 불편하면 나중에 해도 상관없고.”
“아니, 괜찮아. 당연히 안 될 건 없지.”
“그럼, 잠시만 여기 앉을게. 어차피 지금은 수아도 없으니까...”
그녀는 성준에게 허락을 구하고는 비어있는 박수아의 자리에 앉았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에 잠시 당황스러웠던 성준은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그녀에게 이유를 물었다.
“나한테 할 말이라도 있는 거야? 아, 혹시 강성이 때문인가?”
그녀가 성준에게 먼저 말을 걸어온 적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저번에 헌터부대와 관련해서 이강성과 연결을 해달라고 했을 때가 유일하다고 볼 수 있었는데, 성준은 이번에도 그 일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성준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그리고는 이내 다른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수아 때문에...음...혹시 너랑 수아랑 사귀고 있는 거야?”
그녀가 성준에게 궁금했던 것은 박수아에 대해서였다. 도대체 그녀가 박수아에게 왜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그녀는 저번에도 성준에게 이 질문을 했던 적이 있었다.
“아니, 사귀기는 무슨...그냥 조금 가까운 친구 사이일 뿐이야.”
그리고 그때도 성준은 그녀에게 이렇게 대답을 했다. 실제로 성준과 박수아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다. 비록 서로 섹스까지 할 정도로 깊은 관계이긴 했지만, 성준은 그녀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녀에게서는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정말? 혹시 이런 시기에 사귄다고 하면, 이상한 소문 날까봐 비밀로 하는 거 아니야?”
“에이, 그럴 리가. 그렇다기엔 이미 수아랑 나랑 사귄다고 다 퍼졌던데.”
“아무튼 실제로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는 거지?”
“응, 이미 강성이나 병석이, 정호한테도 그렇게 말했어. 내가 걔들한테까지 연애를 비밀로 할 이유는 없잖아.”
박수아와 절대로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는 말에 그녀가 살짝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어서 그녀는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피더니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이야기 하나를 꺼냈다. 이것이 그녀가 성준에게 말을 걸어온 이유라 생각되었다.
“그렇구나. 음...수아는 요즘 어때?”
“수아? 그냥 뭐...나름 잘 지내는 것 같던데? 처음에 비해서 좀 많이 밝아진 게 탈이라면 탈일까...”
“아니, 그런 거 말고...그러니까...네가 보기에는 수아가 어때 보여?”
“내가 보기에? 그냥...좀...정확히 뭐가 궁금한 건데?”
그녀는 수아에 대한 성준의 의견을 계속해서 물었다. 성준은 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기에 보다 직접적인 이야기를 해주길 바랐다.
“하...이런 말을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그래도 둘이 사귀는 사이는 아니라니까...혹시 오해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나는 그냥...걱정이 돼서...”
“알았어. 오해하지 않을게. 편하게 말해줘.”
“어느 순간부터 수아가...좀 많이 이상해진 것 같아서...뭐랄까...수아가 너를 좋아하고 있다는 건 솔직히 너무 티가 나서 잘 알겠거든. 그런데 좋아하는 게...일반적이지는 않다고 해야 될까...”
“어떤 부분에서?”
“처음에는 나한테만 유독 심하게 구는 게 많았어. 그때, 카페에서 우리 만났던 날 기억나?”
“아, 전에 가족들이랑?”
“응, 그때부터 수아가 계속해서 나를 견제한다고 해야 될까? 너는 잘 모르겠지만, 너랑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나, 심지어 네 곁을 지나가기만 하더라도 나를 노려봤었거든.”
그녀는 최근 들어서 박수아가 이상해졌다고 말했다. 특히나 자신에게 유독 심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준은 역시나 박수아의 질투심이 굉장히 심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어진 그녀의 수아에 대한 이야기는 성준으로 하여금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게 만들었다.
“딱 여기까지면 나도 이해할 수 있겠지. 너에 대한 질투심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너한테 궁금한 게 있어도 그동안 일부러 피해 다니기도 했거든.”
“또 다른 문제라도 있었던 거야?”
“하...큰 일이 있었지. 잠시만 기다려봐.”
이야기를 하던 중에 그녀가 사물함으로 이동하더니, 분홍색의 작은 상자 하나를 가지고 왔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그 상자를 성준에게 건네주었다. 성준이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 상자를 열자,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당혹스러움으로 번져갔다.
상자 안에는 온갖 끔찍한 것들이 들어 있었다. 마치 사생팬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스캔들 상대에게 테러를 하는 것처럼 이민정에 대한 안 좋은 메시지들과 함께 끔찍한 모습의 저주인형까지 들어있었다. 특히나 피를 떠올리는 빨간색 액체가 상자 바닥에 딱딱하게 굳어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섬뜩함이 느껴졌다.
“설마 이게...박수아 짓이라고?”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나는 수아가 한 거라고 생각 중이야.”
“설마...수아는 나랑 하루 종일 붙어있어서 너한테 이런 짓을 할 시간도 없을 텐데...”
그녀는 이것이 박수아의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성준은 애써 박수아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그 역시도 자꾸만 박수아가 의심되었다. 박수아의 질투가 심하다는 것은 그 역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도 갑자기 내가 아끼던 물건이 사라진 적도 있어. 심지어 전에 미술 수행평가에서 내가 그렸던 그림 알지?”
“아, 게시판에 걸려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졌잖아.”
“그래, 그것도 알고 보니까 1학년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려져있지 뭐야.”
“그것도 수아 짓이라고? 하지만...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잖아.”
“맞아, 아직 증거는 없어. 그치만 정황상 수아 짓이 분명해. 게시판을 지나갈 때마다 수아가 내 그림을 이상하게 바라봤다는 말이 있거든.”
“그치만...수아는 항상 나랑...아...설마 아침에 그런 건가? 내가 등교하기 전에?”
“그럴 수도 있지. 자세한 건 아직 모르겠어.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다른 여자애들도 심하게 경계를 한다더라고. 너한테 다가가기만 하더라도 눈에서 독기를 품어대며 노려본다니까...다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많이 불편할 거야.”
그 밖에도 이민정은 박수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아직 그녀가 해준 이야기들에서는 박수아가 범인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었지만, 충분히 의심될만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성준의 표정이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너한테 이렇게 직접 말하는 거야. 네가 보기엔 어떤지. 너라면 수아에 대해서 우리보단 자세히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음...글쎄...내 앞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어서...예전부터 나를 많이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전혀 몰랐어. 내가 이쪽 방면으로 좀 많이 둔한 편이라...”
“하...그렇구나. 처음에는 그냥 조용한 애라고 생각했는데...계속 이런 식이면 정말 힘들어질 것 같아.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되는 건데...”
성준의 표정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표정 역시도 심각했다. 그녀는 눈물을 살짝 글썽이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내가 자세히 알아볼게. 그리고 수아짓이 맞다면, 어떻게든 내가 해결해야지.”
“그래줄 수 있어? 진짜 너무 힘들어서 그래...”
만약 지금까지 그녀가 말한 내용들이 전부 박수아의 짓이 확실하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이민정에게는 자신이 직접 해결해보겠다고 말했지만, 성준의 머리는 상당히 복잡해진 상태였다. 이제부터는 박수아가 자신을 도와주는 조력자라 생각했던 그의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져버린 것이었다.
특히나 성준은 어쩌면 박수아의 그런 행동이 자신의 능력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더욱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능력조차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을까. 그의 씁쓸함은 더욱 커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