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신 클리닉-119화 (119/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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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일(수)

-다음날, 학교

‘오늘 만나면 어떻게든 물어볼 생각이었는데,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안 나오다니...’

다음날, 성준은 학교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이 있었다. 바로 이민정에게 들은 내용의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당사자인 박수아가 필요로 했지만, 하필이면 오늘 그녀는 생리통이 심해져서 학교를 결석한 상태였다. 그녀가 없다면, 아쉽게도 그녀에 대해서 알아볼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지...이렇게 된 이상, 오늘은 박수아에 대한 생각은 잊고 마음 편하게 지내자.’

박수아에 대해서 하루라도 빨리 알아볼 수 없다는 점이 조금은 찝찝했지만, 그래도 마냥 나쁘지는 않았다. 그녀가 없는 오늘 하루 동안은 자유롭게 마음 편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떠올리며, 성준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성준은 오늘 하루 동안은 자신의 능력과 성욕, 박수아에 대한 생각을 잊은 채 예전처럼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 수업시간에는 늘 그랬듯 멍한 표정으로 졸지만 않은 채 시간을 보냈고, 쉬는 시간에는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평범한 고등학생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오랜만에 맛보는 이 생활은 성준에게는 휴식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성준은 보건실에서 보건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박수아가 있었더라면, 보건실에 찾아오는 게 무척이나 힘들었겠지만, 오늘만큼은 자유롭게 이곳을 드나들 수도 있었다. 물론, 딱히 찾아오고 싶은 곳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무슨 일인데요? 알아낸 정보라도 있어요?”

성준이 보건실에 방문한 것은 유은정에서 먼저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예전의 그녀라면, 단순히 성준과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었겠지만, 성준의 능력에 대해서 알고 있는 지금은 달랐다. 평소라면 그녀의 연락을 무시했던 성준이 굳이 시간을 내서 찾아온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임시 능력자에 대한 건 아니고, 한 가지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어서.”

성준의 질문에 그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임신 능력자에 대한 게 아니라는 말을 보아하니, 성욕과 관련된 것은 아니라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걱정된다는 것일까.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준이, 너는 몬스터 본적 있어?”

“몬스터요? 갑자기 몬스터는 왜요?”

그녀가 꺼낸 이야기는 몬스터였다. 그녀의 입에서 몬스터라는 말이 나올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던 성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것도 확실한 건 아닌데, 최근 들어서 몬스터의 활동이 증가했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그들의 타겟이 아무래도 임신 능력자들인가 봐.”

그녀의 말에 성준이 한 가지 사건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가 산속 고시원에서 내려오던 날, 버스터미널에서 봤던 감염자를 말이다. 그때의 일은 그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헌터부대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그대로 죽었을 거야. 그러고 보니까, 그 감염자도 좀 이상했어. 원래 감염자들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는데...설마 내가 임신 능력자라는 걸 알고 반응을 보인 건가?’

그 일을 떠올리면서 성준은 어쩌면 자신이 임신 능력자이기에 공격을 받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몬스터들이 임신 능력자들을 찾고 있다는 건 이미 그도 이강성과 임신 클리닉을 통해서 들은 내용이 있었다. 앞으로 그들의 활동이 증가했다고 하면, 확실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서울은 안전하지 않을까요? 여긴 몬스터들도 함부로 접근하기 힘든 곳이니까요.”

“그나마 여기가 괜찮긴 하지.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잖아. 감염자들도 있으니까.”

“최대한 밖에 돌아다니지 않는 편이 좋겠네요. 안 그래도 근신 중이긴 하지만요.”

몬스터와 마주쳤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저 근처에 있던 헌터부대나 히어로가 빨리 와서 구해주길 바라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기에 최대한 몬스터와 마주치지 않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었다.

“그래, 최대한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갑자기 엄청 걱정된다...”

“에이, 괜찮아요. 지금까지 별 일 없었잖아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으응...그...성욕은 괜찮은 거지?”

몬스터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그녀가 성욕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왜 그렇게 성준의 성욕에 관심이 많은 것일까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성준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

“네, 괜찮아요. 아직까지 쌤이 걱정할 정도는 아니니까, 너무 걱정마세요.”

“그래...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고...”

“걱정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요, 뭐. 아무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친구들하고 매점에서 라면 먹기로 했거든요.”

성준은 그녀에 대한 고마움 때문인지, 그녀에게서 이상한 점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런 것을 알아채기에는 그의 눈치와 센스가 상당히 부족해보였다.

“으응, 아, 맞다. 소영이가 오늘 시간 되냐고 물어보던데.”

그렇게 그녀와 대화를 마무리 짓고, 성준은 친구들이 기다리는 매점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순간, 그녀가 다시 성준을 붙잡았다.

“소영이 누나가요? 혹시 소설 때문에...?”

“응, 그런 것 같더라.”

성준을 붙잡은 그녀가 꺼낸 이야기는 이소영에 대해서였다. 성준이 임신 능력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소영은 그를 통해서 임신 능력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소설에 이용하고 싶어 했다. 이미 그녀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말한 이상, 성준이 피할 방법은 딱히 없었다.

“으음...1시간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요. 딱 1시간만 가능하다고 말해주세요.”

“그래? 그럼 그렇게 말할게. 대신, 너무 깊은 이야기는 해주지 말고. 그냥 가볍게 말해줘도 괜찮을 것 같아. 그 애가 뭐 하나에 관심 보이면 완전 깊게 파는 성격이라 너한테 귀찮은 일 생길까봐 걱정이네.”

“그래도 제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최대한 잘 해야죠. 아무튼 이만 가볼게요. 너무 늦었다가 애들한테 욕먹겠어요.”

“그래, 소영이 때문에 이따 집에서 볼 수 있겠다. 그때 보자.”

그것을 끝으로 유은정과의 대화가 마무리 되었다.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선 보건실을 나온 그는 바로 친구들이 기다리는 매점으로 걸어갔다. 임신 능력자들을 노리는 몬스터와 이소영과의 만남이 조금은 걱정되긴 했지만, 지금은 오랜만에 얻은 자유로운 학교생활을 조금 더 즐길 필요가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얼른 와. 라면 다 불겟다."

성준이 매점에 도착하자, 벌써 라면을 구입해서 뜨거운 물을 붓고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 친구들의 모습에 성준의 고민과 걱정이 싸그리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생활이 진짜 평범한 고등학생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잠깐 어디 좀 다녀왔어.”

“얘 요즘 들어서 엄청 이상한 거 알지?”

성준이 자리에 앉자,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같은 반 친구인 민병석이 말했다. 그는 의심의 눈초리로 성준을 바라보았다.

성준은 그런 친구들의 시선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임신 능력자가 된 이후부터 확실히 성준의 생활 패턴은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가장 친한 친구인 이들이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여자 친구 생겼다는 말도 있던데? 박수아였던가?”

이번에는 성준의 바로 옆에 앉아있던 이강성이 물었다. 이들이 성준에 대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가장 큰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전까지 그들이 알던 성준은 여자하고 잘 어울리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박수아라는 여자애를 거의 달고 살았기에 당연히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이강성은 성준과 같은 반이 아니었음에도 박수아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이미 성준과 박수아의 관계는 많은 사람들에게 퍼졌기 때문이었다.

“여자 친구는 무슨. 그런 사이 아니야.”

“에이, 하루 종일 붙어 다니더만.”

“그래도 네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이는 아니야. 이것만큼은 맹세할 수 있어.”

“좀 수상한데...”

“아니라니까...”

성준은 애써 박수아와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녀와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어제 이민정이 했던 이야기가 신경 쓰였다. 그런 그녀와 사귄다고 소문이 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말 아니야? 박수아는 너 좋아하는 것 같던데?”

“수아가 나를 조금 좋아하긴 하지. 그래도 사귀는 사이는 아니야.”

“오오, 좋아하는 여자도 마다하는 거야? 모솔 주제에 골라서 사귀겠다는 거야?”

“무슨 말도 안 되는...요즘 같은 상황에 여자를 사귀는 게 말이 되냐. 그냥 모솔로 살련다.”

성준은 일부러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하면서 박수아에 대한 이야기를 넘겼다. 그는 오랜만에 학교에서 모인 친구들하고 굳이 박수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박수아가 없는 오늘만큼은 좀 평범한 모습으로 놀고 싶은 그였다.

하지만 그의 그런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져버리고 말았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라면을 먹던 중에 누군가 그의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 사람의 등장에 성준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다.

“저...”

그 사람의 정체는 1학년 여학생이었다. 명찰에 ‘최한결’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그녀는 성준이 매우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 학교에서 유은정과 박수아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성준의 능력을 알고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녀가 성준을 찾아온 것일까. 친구들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에 오묘한 표정을 지었지만, 성준은 죽을 맛이었다. 그녀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알 수 없었다.

“저기...아까부터 지켜봤는데...”

성준의 앞에 서있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성준의 친구들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외모가 나쁘지 않은 편이었기에 친구들은 더욱 환호하는 모습이었다.

“네...그, 그런데요?”

성준이 크게 당황하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의 얼굴을 차마 바라보기 어려웠던 그는 시선을 조금 낮춰서 그녀의 얼굴과 가슴 사이, 목 근처에 시선을 두었다.

“혹시...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그녀가 성준에게 자신의 폰을 내밀면서 말했다. 그런 그녀의 말과 행동에 성준은 더욱 크게 놀랐다. 갑자기 번호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얼굴을 향해 시선을 올렸다. 그러자 매우 수줍은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지? 왜? 어째서...? 왜 갑자기 나한테 이러는 거지? 설마 나를 기억 못하는 건가? 설마...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녀의 모습에 성준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그녀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성준의 친구들은 빨리 번호를 주라고 성준을 닦달하고 있었다.

“야, 너는 무슨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을 때 갑자기 물이 들어 오냐. 얼른 노 젓자, 임마.”

“뭐하고 있어, 팔 빠지겠다. 얼른 번호 줘.”

“남자가 무슨 이런 걸로 길게 생각을 하냐. 사람들 쳐다본다. 얼른 번호 주고 끝내자.”

그들의 말대로 어느새 성준과 그녀는 관심의 대상이 된 상태였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두 사람의 주변을 둘러싼 채로 구경하고 있었고, 그럴수록 그녀와 성준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갔다. 이 상황에서 성준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젠장...왜 갑자기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거야...하...’

결국, 그는 그녀의 폰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번호를 다르게 입력할까, 고민도 해봤지만 그녀의 의도가 궁금했다. 이렇게까지 접근을 했다면, 분명히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고, 이번이 아니더라도 또 다시 기회를 엿볼 것이라 생각했기에 마지못해 자신의 번호를 건네주었다.

“여기요...”

“아...감사합니다. 그럼...이따가 연락할게요...”

번호를 받은 그녀는 폰을 받고는 부리나케 도망을 쳤다. 그녀가 사라지고 난 뒤, 성준은 많은 사람들에게 부러움과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런 그들에게 애써 미소를 지어보았지만, 성준의 속은 더욱 까맣게 타들어갔다.

‘분명히 뭔가 있어. 분명히...이렇게까지 접근한 거 보면, 무슨 의도가 있을 거야.’

그렇게 박수아 없었음에도 성준의 학교생활은 그리 평탄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성준은 계속해서 답답한 마음을 유지한 채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의도를 알 수 없었기에 그의 무거운 마음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한시라도 그녀에게 빨리 연락이 오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하지만 학교를 마칠 때까지 그녀에게서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설마 단순히 성준을 떠본 것일까. 성준은 깊이 한숨을 내쉬면서 천천히 집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가 사는 아파트에 도착하기 직전, 드디어 그녀로부터 문자가 한통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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