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신 클리닉-130화 (13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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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결...하...그러고 보니까 오늘 만나기로 했었지...’

그에게 문자를 보내 온 주인공은 같은 학교 1학년 후배인 ‘최한결’이었다. 오늘이 그녀와의 약속이 있었던 날임을 떠올린 그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졌다. 그녀는 그의 능력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긴장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오늘 어디서 보면 될까요?]

만나자는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는 이대로 그녀를 무시해버릴까 잠시 고민도 되었지만, 비밀을 알고 있는 그녀를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상황까지 연출하며 그에게 접근하지 않았던가. 분명히 자신에게 원하는 게 있으리라 그는 생각했다.

[학교 근처에 OO카페 알죠? 거기서 만나요.]

또 다시 그녀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OO카페라...성준은 길게 심호흡을 하며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 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비밀을 알고 있는 이상, 그는 어떻게든 자신의 편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 도착하자, 멀리 구석진 곳에서 한 명의 여성이 손을 드는 모습이 보였다. 미리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는 최한결의 모습에 성준의 심장은 더욱 두근거렸다.

‘겉으로 봐서는 멀쩡하게 생겼는데...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니까...’

성준은 최대한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귀여운 외모에 모범생 스타일의 그녀는 매우 얌전한 자세로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성준이 자리에 앉자, 그녀가 다시 한 번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이곳에 들어오기 전만 하더라도 성준은 당당하게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꺼낼 생각이었지만, 막상 이렇게 마주하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저한테 원하시는 게 있다고...”

성준이 그녀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성준의 말에 그녀는 잠시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대답했다.

“네, 맞아요. 그래서 이렇게 만나자고 했고요.”

그녀의 대답을 통해서 드디어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성준은 겉으로는 담담하더라도 속으로는 매우 긴장하며 그녀를 상대했다. 그녀에게서 무슨 말이 나올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기에 끝까지 긴장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원하는 게 뭔데요? 전에 전화로는 제 능력을 원하신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며칠 전에 그녀는 전화를 통해서 성준에게 성준이 가진 능력을 원한다고 했었다. 그 말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없었던 성준은 지금에서야 그녀에게 다시 한 번 그것을 물었다.

“맞아요. 오빠가...음, 선배라고 할까요?”

“편하신 대로 불러주세요.”

“그럼, 선배라고 부를게요. 선배도 저한테 편하게 해주세요.”

“......”

“아무튼 선배가 능력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이렇게 만날 이유도 없었겠죠. 저번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쇼를 할 이유도 없었을 테고요.”

그녀는 역시나 이번에도 성준의 능력을 원한다고 말했다. 이럴 때만큼은 참 능력이 원망스러운 그였다.

“정확히 어떤 걸 원하는 건데요? 아니, 원하는 건데?”

“말 그대로예요. 선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저한테 필요하거든요.”

“필요하다고? 왜...? 그게 왜 필요한데...?”

성준의 질문에 그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에는 무슨 뜻이 담겨있는 것일까. 성준은 순간적으로 온몸이 불안에 휩싸이듯 떨려왔다.

“그 능력이 쓰일 곳이 뭐가 있겠어요? 딱 두 개밖에 없지 않나?”

“무, 무슨...?”

“임신이랑 섹스, 두 개 아니에요?”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그는 그 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성준에게 원하는 것은 이것이었다.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막상 그녀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으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러니까...나랑...관계를 가지자는 거야? 어, 어째서? 나는...너를...”

“추행했었죠. 지하철에서.”

“그, 그런데도 나랑 하겠다고? 뭔가...이상하지 않아?”

“추행은 추행이고, 이건 이거니까요. 그때는 일방적으로 당해서 기분이 나빴던 거고, 이건 일방적인 게 아니잖아요.”

고작 17살 여고생이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나 담담하게 내뱉을 수 있는 것일까. 그녀는 조금의 표정변화 없이 성준에게 관계를 가지자고 말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몸과 말이 떨려오는 성준과는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정말로...나랑 하자는 거야? 진심...이야?”

“네, 진심이에요. 그래서 쇼까지 하면서 이렇게 따로 불러낸 거고요.”

성준은 그녀의 진심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에 그가 그녀의 문자를 받고 짐작했던 것은 3가지였다. 비밀을 폭로하겠다며 협박을 하면서 돈을 뜯어내거나, 성준이 가진 능력을 통해서 그녀의 주변 사람에게 사용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가 직접 이 능력을 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세 번째였다. 17살 여고생이 그 정도로 성욕이 많은 것일까. 아니면, 이것 말고도 원하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그냥 단순히...그것만 원한다고?”

“네, 맞아요. 뭐, 나중에는 조금 더 깊게 들어가야겠지만, 지금은 그것뿐이에요.”

“조금 더 깊게?”

“그건 계약을 맺은 후에 말씀드릴게요.”

“계약? 계약은 또 뭐야?”

“그냥 말로만 끝낼 수는 없잖아요. 선배가 저와 관계를 가져주는 조건으로 저는 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폭로하지 않는다는 계약이죠.”

뿐만 아니라 그녀는 성준과의 섹스를 계약관계라고 표현했다. 도대체 그녀의 정체가 무엇일까. 갈수록 성준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가득해졌다.

“내가 지금...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래. 왜...나하고 관계를 가지고 싶은 건데? 그것부터 잘 이해가 안 돼서...”

성준이 다시 한 번 그녀에게 질문을 했다. 그는 성추행범인 자신과 관계를 가지려는 그녀가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되기도 했다.

“뭐, 성추행범이랑 관계를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겠죠. 기이한 현상이 아니었더라면, 저도 절대 선배를 원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기이한 현상이잖아요. 제 주변에서 유일하게 선배가 필요로 하는 걸 가지고 있으니까, 제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죠.”

그렇지만 그녀는 정말로 성준과의 섹스를 원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원하는 것은 성준이 아니었다. 성준이 가지고 있는 능력, 발기를 할 수 있는 그 능력을 원하고 있었다.

“너는...아직 고등학생이잖아...”

“선배도 고등학생이잖아요.”

“아, 그건 그렇지...으음...그러니까 아직 17살인데...그게...이렇게까지 좋은 거야? 아무리 급해도...성추행범하고 할 정도로 원한다는 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녀가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섹스를 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성준은 혹시나 그녀가 지하철에서의 사건 이후로 자신의 능력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되었다. 만약 그렇다면 상당히 심각한 일이었다. 그녀 말고도 이 세계에 자신의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이 꽤 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글쎄요. 그게 제 운명인가 보죠. 중학생 때부터 그랬거든요. 늘 옆에 남자를 두고 살았죠.”

“남자를...두고 살았다고?”

“섹스 중독...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세, 섹스...중독...?”

하지만 성준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이런 모습은 능력의 영향과는 상관없어보였다. 그녀의 성욕은 기이한 현상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에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 끊임없이 남자를 원하고, 섹스를 갈망하는 사람이 되었죠. 제가 더럽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요. 그게 맞는 말이니까.”

“아, 아니...그, 그런 일을 당했으면...신고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제가 더러워서, 제가 쓰레기라서 당한 일인걸요.”

그녀는 굳이 성준의 능력이 아니더라도 이미 이상성욕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이상성욕은 어렸을 때 당한 성폭력에서부터 기인한 듯 했다. 성준은 그런 그녀가 안타깝다고 생각되었지만, 그녀는 그런 식의 동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욕해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왜 그런 말을 하고 그래...아무리 네가 그런 짓을 했다고 하더라도 네가 쓰레기라서 더러워서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해.”

“저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면 선배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아무튼 저에 대한 얘기는 여기서 마무리 하고, 이제 우리의 계약에 대해서 얘기할 차례인 것 같아요.”

“아...으응...”

성준은 그녀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그녀가 이런 길을 선택했고,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어차피 그녀와 관계를 가져야 되는 입장이라면, 그녀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계약은 간단해요. 자세한 사항은 나중에 정하는 걸로 하고, 우선,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무조건 관계를 가지는 게 가장 기본 원칙이에요. 대신, 시간과 장소는 최대한 선배 의견에 따르는 걸로 할게요. 저는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는 지금 이 시간에 시간을 낼 수 있고, 주말에는 저녁 이후에는 아무 때나 가능해요. 물론, 너무 늦은 시간은 힘들겠지만요.”

“정말로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거야? 지금 우리 상황에서는 아무리 봐도 네가 갑이잖아.”

“계약은 상호간의 존중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에는 조금 일방적일 수도 있겠지만,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맞아요.”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히 마무리 짓고, 두 사람은 다시 계약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가 제시한 계약 내용은 성준에게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박수아처럼 일방적으로 섹스를 하자고 말하지 않았다.

“왜 굳이 나를 이렇게 배려해주는 건데?”

이 부분에서 성준은 살짝 그녀가 의심되었다. 그녀가 원하는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여자친구가 있다는 거 알고 있어요. 최대한 그 분한테 피해를 입히고 싶지는 않아요. 선배의 삶에도 깊게 관여하고 싶진 않고요. 우린 그냥, 서로 원할 때, 성욕을 해소하고 싶을 때만 만나서 목적을 이루고 헤어지는 거예요. 그게 전부에요.”

그렇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성욕해소였다. 그녀는 성준을 섹스 파트너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은 듯 보였다.

“여자친구? 으음...꼭 지금 계약을 맺어야 되는 건 아니지?”

그녀의 말에 성준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녀가 제시한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성욕 해소야 성준에게는 매우 필요로 하는 부분이었다. 박수아와 신지은이 있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제한이 있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위험부담도 적었기에 성준에게 나쁠 게 하나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안 그래도 성욕이 많은 그녀에게 그의 능력이 침투할 경우였다. 만약 그럴 경우에는 계약대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는 그 점이 두려웠기에 조금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네, 생각할 시간은 드려야죠. 하지만 제가 그렇게 인내심이 많은 편은 아니라서...최근에 성욕 때문에 고생을 좀 했거든요.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부탁드릴게요.”

“그래...알았어...생각해보고 결정할게.”

다행히 그녀는 성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성준은 주말동안 진지하게 그녀에 대해서 고민해보고자 했다.

“네, 부탁할게요. 그럼, 이만 일어날까요? 같이 나가면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먼저 나가주세요.”

“응, 그래...다음에 보자.”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가 끝이 났다. 성준은 그녀의 말에 따라 먼저 일어나 카페를 나왔다. 생각지도 못하게 근심 하나가 늘어났다는 사실에 그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생각보단 나쁜 애는 아닌 것 같네. 내 능력만 컨트롤 할 수 있다면, 큰 문제는 없겠어.’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녀가 성준이 예상했던 만큼이나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녀의 계약대로만 진행된다면, 오히려 성준에게는 이득인 부분도 많았다. 그 점에서 그는 씁쓸함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최한결과의 오늘 만남이 그에게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것임을 그는 전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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