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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아
성준과의 말다툼 이후, 그녀의 마음은 상당히 불안정했다. 마치 정신병에 걸린 것처럼 순식간에 분노가 끌어 오르다가도 갑자기 우울과 슬픔이 밀려오기도 했고,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보낼 때도 많았다. 그만큼 그녀가 성준으로부터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살피는 것이 가장 좋았다. 그녀가 이렇게 된 것은 성준과의 말다툼 이후였다. 그렇다면 그 말다툼이 일어난 이유는 또 무엇일까. 바로 그 부분에서 성준과 그녀의 생각이 갈라지게 되었다.
‘분명히 나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을 거야. 누구지? 누가 말한 거지? 이민정, 그년인가? 아니면 누구지? 누가 말해준 거지?’
성준이 서로에 대한 오해와 이해가 부족해서 말다툼이 일어난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는 오로지 말다툼의 원인을 성준에게서만 찾았다. 자신에 대한 성준의 생각과 마음이 달라졌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그녀는 믿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된 이유는 자신이 생리 때문에 학교에 나오지 않았던 날,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한 생각을 떠올리면서부터 그녀의 상태를 급속도로 이상해졌다. 성준의 앞에서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가만히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계속해서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 의심의 대상은 반 친구들 중에서도 대부분 여자들을 향해 있었다.
‘이래서 준이 옆에 나 말고 다른 여자는 절대 안 돼. 다들 어떻게든 나랑 준이 사이를 이간질 하려고 혈안이겠지. 이민정 저 쓰레기 같은 년. 내가 그렇게 경고를 했는데, 아직도 준이 옆에 얼쩡거려? 저년부터 끝내버려야겠어.’
그녀의 의심은 어느덧 확신으로 바뀌었고, 그 확신은 그녀로 하여금 분노를 낳게 만들었다. 그녀는 성준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모두 분노로 바꿔서 성준이 아닌, 다른 여자들에게 풀었다. 그것도 이 일과 전혀 관련 없는 애꿎은 사람들에게 말이다.
특히나 그녀는 이민정에게는 예전부터 늘 독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극도로 경계하는 것은 물론이었고, 그녀가 성준에게 접근하는 모습을 보기만 하더라도 치가 떨릴 정도로 증오했다. 그녀의 미술작품을 버린 것도, 끔찍한 메시지를 상자에 담아 그녀에게 보낸 것도 모두 박수아의 짓이었다.
‘절대로 네들한테 준이를 뺏길 수 없어. 준이는 내 꺼야. 나랑 섹스까지 한 사이라고.’
대체 그녀는 왜 이렇게까지 성준에게 집착을 하는 것일까. 현재 그녀는 단순한 집착을 넘어서 점점 강박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 그녀는 그 이상으로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끔찍한 모습으로 변한 이유는 아마도 성준에 대한 그녀의 집착에다가 추가로 성준의 능력이 더해지면서부터일 것이다.
처음 그녀가 성준을 좋아하게 된 것은 정말로 순수한 마음에서부터였다. 전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던 그녀는 자신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그에게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다소 당황하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녀의 감정은 순수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성준에게 깊숙하게 빠져들었고, 특히나 성준의 능력에 대해서 같이 고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금씩 능력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준 그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집착에다가 그의 능력이 합쳐지면서 점점 괴물로 변해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모습은 성준과의 섹스 이후 더욱 심해졌다. 성준과 룸카페에서 섹스를 한 이후부터 그녀의 집착은 더욱 살벌해져갔다. 이제 그녀는 성준이 자신의 것이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그의 곁에 다가오는 모든 여자를 증오했다. 이민정을 포함해서 유은정과 같은 반 여학생들과 선생님들까지도 말이다. 성준의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하면서도 뒤에서는 온갖 작업을 펼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그녀는 처음으로 성준을 미행했다. 성준과의 말다툼 이후 충격을 크게 받았던 그녀는 오늘만큼은 그를 따라나서기로 마음을 먹었다. 성준과의 다툼은 그녀로 하여금 반성을 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금 더 그를 알아야겠다는 욕망을 들끓게 만들었다.
‘그래, 나도 준이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어. 준이 옆에 또 다른 여자가 있는 지도 알아야겠고.’
그래서 그녀는 학교가 끝난 직후, 몰래 성준을 따라 나섰다. 그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뒤를 밟은 그녀는 지금 자신이 하는 행동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번 일로 성준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으리란 헛된 욕망만이 그녀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중이었다.
‘뭐지? 왜 집에 가다가 다시 돌아가는 건데? 설마 누구 만나는 건 아니겠지? 친구들인가?’
계속해서 성준을 따라 나서던 그녀는 갑작스럽게 가던 길을 멈춰서 다시 되돌아가는 그의 모습에 의문을 품었다. 더군다나 그가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확인하는 모습이 보이면서 그녀의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그녀는 그런 그를 끝까지 쫓아갔다. 알바 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를 미행했다. 그리고 한 카페 안으로 들어가는 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한 명의 여성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구지? 어떤 년이지?’
성준이 여자와 만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어떤 여자일까. 어떤 여자이길래 이 시간에 성준과 만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녀의 시야에서는 여자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직접 살펴볼 수도 없고...짜증나...’
두 사람은 카페에서도 가장 구석에 위치하고 있었다. 카페 안까지는 성준을 따라 들어갔지만, 차마 그곳까지 살필 수는 없었다. 만약 성준에게 들켰다가는 정말 더 크게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그래서 그녀는 간신히 분노를 억누르며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약 20분 정도의 시간이 흘러서 두 사람의 대화가 마침내 끝이 났다.
‘저 여자...어디서 봤는데...아, 그때, 그 년이었구나. 아무 사이도 아니라더니...뒤에서 연락도 하고 만나기까지 해?’
성준이 카페를 나가자마자 그녀는 조금 전까지 성준과 이야기를 나눈 여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녀는 떠올릴 수 있었다. 성준이 1학년 교실 앞에서 서성이던 때를 말이다.
‘최한결이었나? 걸레 같은 년...감히 1학년 주제에 준이를 넘봐?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성준과 만난 여자가 1학년 후배인 최한결임을 확인한 그녀는 분노로 몸이 부들거렸다. 성준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 자체도 화가 치밀었지만, 그것보다는 성준이 자신을 속였다는 점에서 더욱 화가 났다. 그리고 그 화는 성준이 아닌 오로지 그녀에게로 향했다.
도대체 저 여자가 자신보다 뭐가 더 낫다는 것일까. 그녀는 여전히 자리에 남아 차를 음미하고 있는 최한결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녀의 얼굴, 몸매 등을 자기 기준으로 평가하고 재단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그녀에게 문제가 있다고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기도 했다.
‘역시나 이민정이나 유은정이 끝이 아니었어. 준이를 노리는 년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다 그냥 안 둘 거야. 준이는 나만의 것이야. 다른 사람들이 넘보지 못하게 만들 거야. 두고 봐. 준이랑 어울린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겠어. 지금 순간을 실컷 즐기라고.’
여자의 정체를 확인한 그녀는 바로 발걸음을 돌렸다. 최한결에게 잔뜩 화가 났고, 당장이라도 그녀를 누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는 최한결을 머릿속에 저장해놓고는 다시 성준을 따라나섰다. 혹시라도 성준이 또 다시 다른 여자를 만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설마 또 다른 여자가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설마 오늘 일 때문에 일부러 그러는 건가? 안 돼...절대 그렇게 돼서는 안 돼...준이 옆에는 오로지 나만 있을 수 있단 말이야...’
그렇게 또 다시 그녀가 성준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성준이 최한결과 만남을 가진 이후로 그녀의 감정은 더욱 불안해진 상황이었다. 몸이 빠르게 떨려오는 것은 기본이었고, 자꾸만 숨이 거칠어졌으며, 극도로 불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의 눈에 그녀의 모습은 절로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성준을 따라나섰다. 성준을 따라가는 게 그나마 그녀의 몸과 마음을 지배한 불안을 견딜 수 있었다. 그런 그녀의 상황을 전혀 몰랐던 성준은 그저 자신만의 고민에 빠진 채로 집으로 걸어갔다.
‘집이겠지? 설마 준이가 살고 있는 집이 아니라 다른 여자 집이면 어떡하지? 아니야, 아닐 거야. 전에 교무실에서 준이 집 주소가 분명히 이곳이었으니까...이제 어떡하지? 집에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되나?’
마침내 성준이 집에 도착했다. 그녀는 성준이 집안으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확인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심지어 엉뚱한 상상을 떠올리기도 할 정도였다.
이제 그녀는 어떻게 해야 될까. 잠시, 성준이 집에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녀에게 한 통의 문자가 도착했다.
[무슨 일 있니? 어디 아픈 거야? 몸이 안 좋으면 오늘 하루는 안 나와도 괜찮으니까 무리하지 마.]
그녀가 일하는 가게의 사장님이 보낸 문자였다. 그것을 확인하자, 그제야 그녀의 정신이 조금은 돌아올 수 있었다.
‘알바를 깜빡했구나. 어쩌지...이대로 돌아가기엔 너무 불안한데...’
그녀에게 알바는 너무나도 중요했다. 최근에 알바 사장님에게 인정받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욱 그랬다. 알바를 그만둔다면 당장 생활이 위태위태할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려웠기에 이대로 허무하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너무나도 마음이 불안하고 걱정되었지만, 판단을 내려야만 했다.
‘아니야, 준이를 믿자. 나는 준이의 약점도 가지고 있잖아. 그리고 내가 아는 준이는 분명히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야. 오늘 일은...이민정이랑 반 애들 때문이니까...그 애들을 탓해야지. 이렇게 준이를 미행하고 따라다닌다고 해결되는 건 없어. 그래, 돌아가자. 준이를 믿고 주말동안은 알바에만 집중하는 거야.’
여기서 그녀가 내린 선택은 알바였다. 아무리 그녀가 불안함에 시달려 괴물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나중을 기약하며 씁쓸한 표정으로 성준의 집을 바라보다가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그녀가 성준의 집을 벗어나자마자, 기가 막힌 타이밍에 성준의 집 현관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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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
‘오늘은 누나가 없으니까, 오랜만에 서윤 누나네서 저녁이나 먹자. 어차피 동생도 늦게 들어온다고 했으니까...’
집에 도착한 성준은 간단히 샤워를 마친 뒤, 옷을 갈아입고는 바로 집을 나섰다. 누나는 2박 3일로 여행을 떠났고, 동생은 친구와 저녁을 먹고 온다고 했기에 오늘만큼은 오랜만에 505호, 하서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그녀와 밥을 먹을 생각에 그는 잔뜩 기대를 하며 그녀의 집으로 이동했다.
‘뭐지? 방금 전까지 여기 누가 있었던 기분이 드네. 하여튼 요즘 너무 예민해졌다니까...’
복도를 지나 하서윤네 집 앞에 도착한 성준은 바로 벨을 눌렀다. 그녀에게 미리 연락을 해뒀기에 잠시 후, 반가운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녀의 모습에 성준은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