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신 클리닉-138화 (138/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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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일(토)

-다음날, 성준

하서윤과의 첫 섹스를 마친 다음날, 성준은 하루 종일 하서윤에 대한 생각으로 걱정과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밥을 먹거나 화장실에 가더라도 그는 항상 핸드폰을 손에 들고 다녔다. 혹시라도 그녀에게서 연락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오후가 되어서도, 점심시간이 지나서도 그녀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정말로 술 때문에 어제의 일을 전혀 기억이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유은정처럼 성준에 대한 그녀의 감정이 차갑게 식어버린 것일까.

“무슨 일 있어? 하루 종일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왜 그래?”

성준의 모습에 그의 동생, 성하영이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안 그래도 어제 집에 12시가 지나서 들어온 오빠에게 그녀는 매우 불만이 많아보였다.

“아니, 그냥...”

“요즘 오빠 수상하다? 또 사고치는 거 아니지?”

“그런 거 아니야. 걱정하지 마.”

그녀가 오빠를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오빠의 능력에 대해서 알고 있는 그녀는 오빠가 신지은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큰일을 저지를까봐 걱정했다.

“요즘 능력은 어떤 데? 괜찮아?”

그녀가 오빠에게 물었다. 성준은 그녀의 질문에 하서윤은 물론이고, 박수아와 최한결, 유은정 등을 떠올렸다. 하지만 차마 그녀에게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줄 수는 없었다.

“똑같아. 여전히 성욕만 잘 컨트롤하면 문제없어.”

“정말이지? 나는 아직도 그때 일이 생생하단 말이야. 순간적으로 머리가 하얗게 변하면서, 온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그때는...진짜 큰일 날 뻔했지.”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말에 그녀가 과거의 일을 꺼냈다. 그녀에게 그때의 일은 절대로 잊기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랬던 적 없어? 나한테 그랬을 정도면 다른 사람들한테도 한 번 정도는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

그렇기에 그녀는 더욱 성준의 능력이 두려웠다. 그의 능력이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직까진...없는 것 같은데...?”

“정말? 아직까지 한 번도 없다고? 내가 처음이라는 거야? 저번에는 나 같은 케이스가 처음이라고 했지, 오빠가 먼저 흥분해서 영향을 미친 적은 있었다고 했잖아. 왜 자꾸 숨기려는 거야?”

성준은 그녀의 질문에 대충 얼버무리며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예리했다. 과거에 성준이 흘리듯 얘기한 내용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의 의심스러운 눈빛에 그는 더욱 난감해졌다.

띵동 띵동

그때였다.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성준을 구해줄 구세주가 등장했다. 집안 가득히 울리는 벨소리에 두 사람은 순간적으로 현관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성준은 재빨리 동생에게서 벗어나 현관문으로 달려 나갔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고맙다고 생각하며 말이다.

“아...”

하지만 그의 그런 생각은 얼마 가지 못했다. 문을 여는 순간, 벨을 누른 사람을 확인하는 순간, 그의 표정은 더욱 심각하게 굳어졌다.

‘왜 쌤이 여기서 나오는 건데!?’

성준을 구원해준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윗집에 사는 보건 선생님, 유은정이었다. 그녀가 어째서 성준을 찾아온 것일까. 갑작스러운 그녀의 모습에 성준은 너무 놀라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그녀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계속 이렇게 서있을까?”

“아...드, 들어오세요...”

그녀는 여전히 성준에게 차가웠다. 그녀의 표정에 기가 확 죽어버린 성준은 당황한 모습으로 그녀를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왜 자꾸 우리 집에 와요?”

거실에 있던 성하영이 유은정의 방문에 인상을 찌푸렸다. 성하영은 그녀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

“하영이, 너 만나러 온 거 아니니까, 신경 끄렴.”

하지만 유은정 역시도 만만치 않았다. 두 사람의 신경전에 성준의 등 뒤에는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누나는 지금 여행 중인데...”

성준이 두 사람의 뜨거운 신경전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유은정은 성준을 차갑게 노려보며, 대답했다.

“나도 알고 있어. 언니 만나러 온 게 아니라,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왔거든.”

“아...그러시구나...그러면...제 방에서 얘기할까요...?”

“그러든지.”

유은정이 이곳에 찾아온 것은 역시나 성준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성준은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꺼낼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와의 만남이 두려웠고,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녀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직접 찾아온 이상 도망칠 곳은 없었기에 그는 그녀를 자신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렇게 직접 찾아오실 줄은 몰랐네요...”

방에 들어가자마자 그녀는 저번처럼 성준이 공부할 이용하는 의자에 앉았다. 성준은 그녀의 맞은편에 위치한 침대에 걸터앉은 채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싸늘한 모습에 그의 시선은 자꾸만 바닥을 향했다.

“그런 일을 당했는데, 당연히 안 찾아올 수가 없지.”

“아...그, 그렇죠...”

그녀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지난번에 성준과의 일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그 일을 당했다고 표현을 했다.

“바로 본론부터 말할게. 앞으로 네가 가진 능력에 대해서 무조건 나한테 보고해줬으면 좋겠어. 네가 나한테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내게도 그 정도 권한은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녀는 가타부타 말없이 바로 본론을 꺼내놓았다. 그녀는 성준의 능력에 대해서 관심이 상당해보였다. 왜 그녀가 능력에 관심을 보이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말에 딱히 틀린 부분은 없어보였다.

“제 능력에 대해서요? 어떤 보고를...원하시는 건데요?”

성준의 능력에 대해서 그녀가 정확히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성준이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질문을 건넸다.

“너도 이제는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되지만, 네 능력은 너무 위험해. 절대로 너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거야. 이대로 두었다가는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큰일을 치를 수도 있어. 어쩌면, 하영이한테도 그럴 수도 있고, 하은이 언니한테도 그럴 가능성이 있겠지.”

그녀는 성준의 능력에 대해서 걱정했다. 그가 자신의 능력을 전혀 컨트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지난번의 일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런 그의 옆에 조력자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녀의 의견이었다.

성준은 그녀의 의견에 딱히 반박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여러 방법을 통해서 노력해봤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 갈수록 상황은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의견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있었다. 도대체 그녀가 어떤 방법으로 돕는다는 것일까.

“너한테 당한 이후에 계속해서 임신 능력자에 대해서 알아봤어. 특히 임신 능력자의 능력을 어떻게 하면 통제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능력을 완전히 통제하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준이, 네가 전에 했던 것처럼 성욕을 해소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고.”

그녀는 성준과의 일이 있은 후로, 임신 능력자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아보았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능력 통제와 관련해서 집중적으로 조사를 했는데, 성욕 해소만이 그나마 통제에 도움이 됨을 알 수 있었다.

“역시...제 방법이 틀린 건 아니었네요. 그치만...쌤도 알다시피, 이게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서...”

“아마도 자위...만 해서 그럴 거야.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네? 그, 그러면...?”

“단순히 사정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 준이, 네가 그런 능력을 지니게 된 건, 임신을 시키기 위함이야. 계속해서 성욕이 증가하는 것도 그 이유고. 능력을 통제하기 위해서는...자위보다는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될 거야.”

그녀가 조사한 정보는 성준이 알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자세했다. 지금까지 성준은 자위를 통해서도 능력의 영향력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정보에 따르면 자위만으로는 부족했다. 그가 가진 능력이 원하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임신이었기에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서 성욕을 해소해야만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었다.

“어쩐지...자위로는 조금 부족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도와주겠다고 한 거야. 지금 네 상황에...자위말고는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을 거 아니야...”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직접 성준을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자위만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녀가 도와주겠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성준은 그녀의 말에 충격을 받은 것처럼 크게 당황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쌔, 쌤이요? 쌤이...저를...어떻게...요...? 아니...왜요?”

성준이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돕겠다는 말인지 이미 알고 있엇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조금 전만 해도 그때의 일 때문에 그에게 차갑게 굴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네가 나한테 했던 짓은...화나고...열 받고...크게 실망한 게 사실이야...내가 그렇게 경고를 했는데도 능력을 함부로 사용한 것도 그렇고...그래도 계속해서 네 능력을 방치할 수는 없으니까...”

“그때 일은...정말 죄송해요...쌤이 갑자기 변하는 바람에...그 방법밖에 떠오르지 않았어요. 아무리 그래도 조금 더 침착하게 생각했어야 했는데...”

“아니야...어쩔 수 없었으니까...다만, 앞으로는 주의해야 될 거야. 앞으로는...절대로 내 허락 없이 내 몸에 손댈 생각하지 마. 무조건 내 허락이 있어야 될 거야. 멀쩡한 정신을 가졌을 때의 내 허락 말이야.”

성준을 돕겠다는 그녀의 말은 진심으로 보였다. 그녀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성준과 직접 관계를 가지겠다고 말했다.

“저 같은...사람이랑 쌤이 관계를 가져도 되는 걸까요...?”

“이제 와서 죄책감이라도 느끼나봐?”

“아...죄송해요...정말 죄송해요, 쌤...”

“내가 알아본 정보에 의해면 임신 능력자의 능력에 영향을 받은 사람은 계속해서 그 영향에 시달리게 될 거래. 그의 주변에 머물면 머물수록 영향력이 더 강해진다고 하던데...나는 너하고 같은 학교에 다니고,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잖아. 나 혼자서 성욕에 괴로워하며 지낼 바에야 차라리 이게 낫지 않을까 싶어서.”

그녀가 성준과의 섹스를 원하는 이유는 이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미 성준의 능력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성준을 원하며 성욕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차라리 혼자서 괴로워할 바에 그의 능력을 통제하는 것을 돕는 게 좋겠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그녀의 말에 성준은 두 명의 사람을 떠올렸다. 박수아와 신지은을 말이다.

박수아의 경우에는 계속된 섹스에도 여전히 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성준을 더욱 갈망했다. 반면에 신지은은 성준을 통해서 성욕 해소하기를 원하면서도 박수아와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유은정은 어떨까. 그는 유은정이 박수아처럼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다.

“직접 관계를 가지면...정말로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현재까지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그렇다고 하더라고. 내 몸에 들어온 성욕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겠지만...적어도 저번처럼 완전히 이성을 잃을 일은 없지 않을까? 그때의 일은...두 번 다시 경험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했으니까...”

“아...”

그렇지만 그녀는 이미 성준과 관계를 가지기로 결심을 내린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성준은 그녀에게 결코 박수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앞으로 네 능력에 대해서는 나한테 매일매일 보고했으면 좋겠어. 문자로든, 전화든, 직접 만나서 얘기하든 상관없으니까, 네 편한 대로 해. 대신, 꼭 사실만을 말해줘. 조금이라도 속이려고 하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네...”

“그리고 관계 시간과 장소는 내가 결정할 거야. 성욕이 차오르지 않는 이상, 억지로 너랑 할 생각 없으니까. 내가 할 말은 여기까지야.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자. 지금은...아직까지는...너랑 이렇게 단둘이 대화하는 게 썩 기분 좋지 않으니까...나중에 내가 괜찮아지고나면...그때 다시 얘기해보자.”

“...가시는 거예요?”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했잖아.”

“아...네...”

그것으로 그녀와의 대화가 끝이 났다. 그녀는 자신의 할 말만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성준은 차마 꺼내지 못한 채 그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인사도 하지 않은 채로 현관문을 나섰다. 성준은 마지막까지도 차가운 그녀의 모습에 씁쓸함을 느끼며 현관문을 닫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성준의 시련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문을 닫고 뒤를 돌아보는 순간, 오빠를 향해 경멸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는 성하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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