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신 클리닉-140화 (14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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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성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지난밤에 성준의 능력을 알아버린 그녀의 입에서 과연 무슨 말이 나올까. 그는 혹시라도 그녀도 유은정처럼 차갑게 변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긴장되는 마음으로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준아, 오늘 만날 수 있을까? 잠깐이면 되는데...]

다행히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전혀 차갑지 않았다. 그녀는 평상시와 전혀 다르지 않는 톤으로 성준에게 말했다. 혹시 술 때문에 어제의 일을 기억 못하는 것일까.

그녀의 목소리에 잠시 안심을 했던 그는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대화를 이어갔다. 아직 그녀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었기에 지금의 긴장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어제처럼 길게 보는 건 힘들겠지만, 잠깐은 가능할 것 같아요. 지금도 괜찮긴 한데...”

[그럼, 지금 볼래? 어차피 이제 막 점심 먹으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잘 됐다.]

“아, 네, 그래요. 그러면 지금 바로 갈게요.”

그녀는 성준하고의 만남을 원하고 있었다. 단순히 예전처럼 성준과 함께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어보였는데, 성준은 그 부분이 굉장히 마음이 쓰였다.

‘서윤 누나마저 잘못되었다가는...진짜 큰일이야...제발 무사히 넘어가기를...’

전화 통화를 마친 그는 바로 그녀의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이대로 동생하고 있기에는 살짝 어색한 것도 있었고, 저녁에는 누나가 집에 돌아올 시간이었기에 지금이야말로 그녀와 만나기 적당한 시간이라 생각했다.

“또 어디가? 언니 없다고 너무 밖에 돌아다니는 거 아니야?”

외출을 하려는 성준에게 성하영이 다가왔다. 그녀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성준에게 물었다.

“미안, 이런 상황에 집에만 있을 수는 없어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싶은 게 있어서 잠시 다녀오려고.”

“능력에 대해서?”

“응,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줄게. 아직 나도 정확히 아는 게 없어서 지금은 말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조심히 다녀와...”

그런 그녀에게 성준은 적당히 핑계를 대고 밖으로 나갔다. 지금은 동생과 있는 것보다는 하서윤을 만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사실, 동생에게 한 말을 핑계라고만 볼 수는 없었다. 하서윤도 성준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정보원이었다. 그녀가 임신 클리닉에서 들은 이야기가 없었더라면, 성준의 상황은 훨씬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성준은 만약 그녀가 어제의 일을,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이해해준다면, 그녀를 욱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녀를 통해서 임신 클리닉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사랑하는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이해가 필수적으로 필요했지만 말이다.

‘괜찮을 거야...어제 누나가 했던 말처럼 더 이상 도망치지 말자. 아무리 능력 때문이라도 결과적으로 내가 저지른 일이잖아.’

성준은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긍정적인 생각만을 떠올리며, 복도를 걸어갔다. 다소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보였지만, 오늘따라 그녀의 집이 있는 곳까지는 매우 짧아보였다.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갑자기 엄청 떨리네...일단, 들어가자.’

그녀의 집 앞에 도착한 성준은 길게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한 뒤,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곧바로 그녀의 활기찬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정말로 바로 왔구나? 얼른 들어와.”

“네...”

걱정했던 것과 달리 그녀의 상태는 나빠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평상시처럼 매우 반가운 표정으로 성준을 맞이해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집안에서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향기로운 음식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굳이 한 가지를 꼽자면, 성준만이 어제와는 다른 분위기에 놓여있었다. 그는 매우 어색한 표정으로 그녀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고, 그 이후에도 자꾸만 타들어가는 마음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직 점심 안 먹었지?”

“아, 네...아직...”

“다 됐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네...”

평상시 성준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절대 초조함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가볍게 대화를 주고받거나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며 행복한 생각을 품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오늘은 마음속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식탁 위에 갖가지 음식들이 차려지면서 그녀와의 식사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지만, 이대로 밥을 먹다간 체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앉아. 점심이라서 간단히 차려봤어.”

“네...”

성준은 그녀의 말에 오로지 ‘네’라는 단답형의 대답만을 반복하며 자리에 앉았다.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화려한 음식들이 눈앞에 있었지만, 그의 시선에는 오로지 맞은편에 앉은 그녀만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녀의 눈은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로 말이다.

“혹시 점심 먹고 온 거야?”

“아, 아뇨...”

“그럼, 역시나 어제 일 때문이구나? 계속 이렇게 어색하게 구는 건 싫은데...”

“그, 그게...”

그녀는 이미 성준의 상태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의 일까지도 모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설마 준이는 술도 안 마셨는데, 어제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는 하지 않겠지?”

“아...네...”

“밥 먹기 전에 어제 일부터 이야기하는 게 좋으려나?”

그녀의 말에 성준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드디어 성준이 걱정하고 불안해하던 대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우선, 준이 능력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해볼까? 임신 능력자, 맞지?”

그녀가 성준에게 질문했다. 그녀가 어제 일을 모두 기억한다면, 이제는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었기에 성준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구나. 그 전에도 충분히 말해줄 수 있었는데...조금 아쉽네.”

“죄송해요...”

“아니야, 괜찮아. 내가 준이였어도 말하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어. 오히려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지.”

그녀와 성준의 대화는 유은정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유은정은 성준과의 지난 일에 대해서 불쾌함을 느끼면서 차갑고 무겁게 전개를 했다면, 하서윤은 성준에 대해서 서운함과 실망감을 느끼되, 어떻게든 그를 이해해주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었다.

“미리 말했으면, 어제와 같은 일은 없었을 텐데...정말 죄송해요, 누나...다 제 잘못이에요.”

“미리 말하지 않았던 건 조금 서운해. 그렇지만 어제 일은...시작은 일방적이었지만, 결국에는 나도 원했던 거잖아.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그치만...”

“나도 원해서 받아준 일인데, 준이가 미안하다고 하면 내가 뭐가 되겠어?”

“아...네...”

“정말로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거 때문에 어제 오늘 많이 힘들었구나?”

그 점이 성준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유은정과의 대화에서뿐만 아니라 동생과의 대화에서조차도 시종일관 불안한 모습을 보였던 성준은 하서윤과는 조금씩 편안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힘들기보다는...죄책감이 컸죠. 제 자신에 대한 원망도 마찬가지고요.”

“누구나 그런 상황에 처하면 마찬가지일거야. 그래도 나는 준이가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 그러지 않았다면, 어제가 아니라 진즉에 나한테 다가오지 않았을까?”

“어제 같은 일만은 없길 바랐는데...결국 저질러버렸네요...”

“괜찮다니까 그러네. 나도 원했던 일이니까...오히려 어제 일로 준이에 대한 내 마음에 확신이 생겼던 것 같아.”

그녀는 성준을 이해해주는 것을 넘어서 성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어제에 이어서 다시 한 번 고백했다. 어제 그녀가 했던 말은 잠결이나 술김에, 성준의 능력으로 인해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성준을 좋아했고, 그를 원하고 있었다.

그녀의 솔직한 말에 성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고개를 들어 떨리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도 그녀를 좋아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마음이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말은 성준으로하여금 큰 충격을 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직까진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준이가 가진 능력 때문인지, 순수한 마음인지는 잘 모르겠어. 그래서 아직까진 준이한테 마음을 달라는 얘기는 못하겠지. 그치만, 한 가지는 꼭 부탁하고 싶어. 나는...준이 능력으로...임신하고 싶어...”

성준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녀가 미리 준비한 듯 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의 이야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이야기였고, 그런 만큼 그 내용은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성준은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이 될 정도였다.

“임신...이요?”

“으응...임신 클리닉보다는...그래도 좋아하는 사람한테서 임신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무엇보다 준이는...좋은 사람이니까...”

그렇지만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녀는 성준을 통해서 임신하기를 원했다. 당당하게 말하던 처음과는 달리 끝으로 갈수록 발음이 흐려졌지만, 임신이라는 단어만큼은 확실하게 발음하는 그녀였다.

“저, 정말로...제 능력으로 임신하길 바라시는 거예요?”

“으응...그렇다니까...”

재차 이어진 그의 질문에서도 그녀의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얼굴은 어느새 디저트로 올라온 토마토보다도 훨씬 붉게 물들었으며, 손가락은 자꾸만 자리를 잡지 못하고 끊임없이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이런 점만 봐도 그녀의 말이 진심임을 알 수 있었다.

“원래는...임신 클리닉을 이용하실 생각 아니었어요...?”

“그랬었지. 그치만...준이가 있는데 굳이 많은 돈을 사용할 필요는 없잖아. 더군다나 모르는 사람하고, 처음 보는 사람하고 관계를 가지는 것도 그렇고, 아직 그곳에 100%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녀의 판단이 나쁘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임신 클리닉은 아직 신뢰할 수 있는 단체가 아니었다. 그런 곳에 거금을 투자하는 것도 그랬고, 무엇보다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직접 삽입을 통해서 임신을 해야 된다는 점이 그녀에게는 상당히 꺼림칙했다. 그보다는 차라리 성준을 택하는 것이 맞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누나가 원한다면, 저는 괜찮아요. 이미 어제 누나에게 그런 짓을 해버렸으니까...당연히 저한테 선택권은 없겠죠.”

그녀의 말에 성준은 침착하게 고민을 했다. 이미 전에 신지은을 임신 시켰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에게 임신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신지은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 나는 준이의 솔직한 의견도 중요해.”

“저도...누나를 좋아하니까...괜찮아요. 조금은 죄책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누나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정말...괜찮겠어?”

“네, 괜찮아요.”

신지은이 임신했을 때도 성준은 잠시 동안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였었다. 그런데 하서윤이 임신한다면 어떨까. 하지만 차마 성준은 그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다행이다. 대신, 한 가지 더 부탁할 게 있어.”

“...어떤 건데요?”

“준이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특히나 준이가 가진 능력에 대해서 말이야.”

여기에 그녀는 한 가지 더 부탁을 했다. 그녀는 성준이 지니고 있는 능력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원했다. 이런 그녀의 말은 마치 박수아를 연상시켰지만, 성준은 박수아와 달리 그녀에게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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