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신 클리닉-148화 (148/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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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일(월)

-다음날, 성준

또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 이번 주에는 성준에게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루가 지날수록 사건사고가 늘어가는 탓에 그는 점점 지쳐가고 있는 중이었다. 제발 오늘 하루만큼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길 바라면서 기도하는 게 하루의 일상이 될 정도였다.

그렇기에 오늘도 학교를 향하는 그의 마음은 무거웠다. 학교에는 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박수아부터 시작해서 유은정과 최한결까지...이 세 사람은 성준의 편이라고도 볼 수 없었기에 걱정과 함께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특히나 그 중에서도 성준은 박수아가 가장 걱정이 되었다. 지난 주, 박수아와 다툼이 있었던 그는 그녀의 상태가 궁금했다. 혹시라도 그때의 일로 아직까지도 서운해 하면서 자신이나 주변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녀의 성격이라면 그러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이상하네...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이럴 리가 없는데...주말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아니면, 일부러 이러는 건가?’

그렇지만 그런 성준의 걱정과는 달리 오늘의 박수아는 조금 이상했다. 금요일에 일을 떠올려보면, 그녀는 분명히 성준에게 서운한 마음을 품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그녀는 성준이 예상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성준이 처음 교실에 들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그녀는 늘 그랬던 것처럼 일찍 학교에 도착해서 혼자서 음악을 들으며 앉아있었다. 성준은 그녀가 서운해 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녀의 옆에 앉았는데, 여기서부터 반전이 시작되었다. 음악을 듣던 그녀가 매우 반갑게 그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 아니던가.

여기까지는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아무리 서운해도 인사 정도는 할 수 있고, 주말동안 그녀의 서운함이 풀렸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오늘 그녀는 매우 이상했다.

“주말은 잘 보냈어?”

“응, 그럭저럭. 너는 어땠어? 별일은 없었고?”

“나도 뭐...똑같았지...”

“그렇구나. 다행이네.”

대화만 떼어놓고 보면, 누구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평소와 많이 달랐다. 평상시의 그녀라면 조금 더 성준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대화를 이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그녀는 성준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녀의 이런 모습에 성준은 서운함이 남아있어서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정답이 아니었다. 대화를 할 때만큼은 그녀는 성준에게 미소를 보이기도 했고, 대화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단지 예전처럼 성준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달랐다.

“아, 그리고 저번 주 일은 내가 미안해. 아무리 그래도 애들 앞에서 그 얘기는 절대 하면 안 되는 건게, 내가 지나쳤어.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아...나야말로 미안해...요즘 워낙 예민해지다보니까 괜히 잘못도 없는 너한테 화를 냈던 것 같아. 의심했던 것도 미안하고...”

심지어 그녀는 성준에게 먼저 저번 일에 대해서 사과하기도 했다.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상황들에 성준의 당혹스러움은 커져만 갔다.

‘왜 갑자기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거지? 이러니까 더 부담스럽잖아...’

그녀는 마치 성준과 어울리면서,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성격을 변화시켰던 것처럼 이번에도 성격을 변화시킨 듯 보였다. 성준에게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모습과 달리, 이번에는 마치 이민정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왜 그녀는 또 다시 자신의 성격을 바꾼 것일까.

‘여자들은 원래 이런 건가? 이해할 수가 없네. 덕분에 몸은 편해지긴 했지만, 마음이 너무 불편해...수아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데 괜히 나 혼자서 눈치 보는 건가...’

그녀의 바뀐 모습에 성준은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저번 일로 그녀가 화를 내거나 또 다른 큰일을 만들지는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은 들었지만,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녀가 겉모습과는 달리 속으로 무슨 꿍꿍이를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로 바뀐 거라면 좋을 텐데...너무 민감하게 생각하지 말자. 언젠가는 이유를 알 수 있겠지. 지금은 수아 말고도 처리해야 될 일들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그녀에게만 신경을 쏟을 수는 없었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 만큼 성준에게 처리해야 될 문제가 산더미였다. 김소영에게서 얻어낸 일주일동안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될 필요가 있었다. 오히려 박수아의 이런 모습이 천만다행일 수도 있었다.

위잉 위잉

그리고 성준이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타이밍 좋게 두 사람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하나는 최한결의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유은정의 것이었다. 그는 올게 왔다는 심정으로 폰을 열어 문자 내용을 확인했다. 평소라면 박수아의 눈치를 엄청 살폈겠지만,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조금은 마음 편하게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문자 보내서 미안해요. 계약과 관련해서는 될 수 있으면 오늘 안에 대답 들었으면 좋겠어요. 더 이상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늦어도 내일까지는 꼭 알려주셨으면 해요. 꼭 부탁드릴게요.]

첫 번째 문자는 최한결이 보낸 문자였다. 그녀는 성준으로부터 내일까지 계약과 관련된 대답을 듣길 원하고 있었다. 이것과 관련해서는 성준 역시도 미리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이미 이에 대해서 하서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고, 그도 결심을 내렸기에 별다른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

[오늘 학교 끝나고 시간 되시면 저번에 만났던 카페에서 볼 수 있을까?]

[네, 가능해요. 대답은 그때 들려주실 건가요?]

[그렇게 할게. 그럼, 그때 보자.]

그녀의 제안에 대한 성준의 대답은 예스였다. 아직 그녀에게 그렇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성준은 그녀와의 계약을 각오했다.

성준이 그녀와의 계약을 맺고자 결심을 내린 이유는 그녀의 성격 때문이었다. 그녀는 성준의 약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준을 만났을 때,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성준을 뒤흔들거나 압박할 수 있는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성준을 배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비록 사정상 협박을 하기도 했지만, 그녀를 무조건 나쁜 사람으로만 몰고 갈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녀의 이런 성격을 조금 이용하고자 했다. 그녀와 계약을 맺고 관계를 가지되, 자신에게 조금 더 유리한 쪽으로 이끌도록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 그녀의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필수였으며, 그녀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했다.

‘문자만 봐도 조심스러운 성격이 그대로 느껴지니까...이런 성격이라면, 분명 크게 일을 벌일 생각은 없을 거야. 계약인지, 뭔지 그것만 잘 이용하면 나한테 유리한 쪽으로 이끌 수 있어. 어쩌면 은정 쌤보다 훨씬 활용가치가 높을 수도 있겠지.’

성준은 최한결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약점을 알고 있다는 점과 함께 협박과 계약이라는 카드를 내밀어서 당황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상처가 특유의 성격과 성향을 이용한다면, 능력을 통제하는데 유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는 하서윤에게 허락까지 받았기에 훨씬 부담도 적었다.

최한결에게 답장을 보낸 뒤, 성준은 이어서 유은정에게 온 문자를 확인했다. 최한결과 관련된 문제는 오늘 만남을 통해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이제는 유은정이 문제였다. 아직까지 차디찬 마음을 유지하고 있는 그녀하고는 어떻게 해결해야 될까. 그녀는 성준보다 어른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곤란한 점이 많았다.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런데, 점심시간에 잠깐 볼 수 있을까?]

유은정에게서 온 문자는 직접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학교에서 직접 만나자는 건 무슨 의미일까. 혹시 성준의 누나와 벌써 대화를 나눈 것일까.

‘어차피 쌤하고도 결판을 지어야 되는 거니까...계속 이런 관계로 지낼 수는 없어. 적어도 쌤은 나한테 도움이 될 정보도 가지고 있고, 그 일 전까지는 나를 도와주고 걱정해주던 사람이니까...하루라도 빨리 관계를 회복하는 게 맞아.’

그녀의 문자에 성준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라도 그녀가 다른 생각을 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무섭고 두렵다고 그녀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가족도 있었고, 하서윤도 있었다. 상황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것이 현실이었지만, 이럴수록 강하게 마음을 먹을 필요가 있었다.

‘최한결은 만나서 해결하면 될 것 같고, 박수아는...무슨 속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당분간 잠잠할 것 같고. 가족 일도 해결된 것 같으니까, 이제 남은 건 몇 명 없구나. 오늘 쌤하고의 관계만 해결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유은정에게 알겠다고 답장을 보낸 뒤, 성준은 천천히 자신의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현재 그가 처한 상황은 그리 썩 좋지는 않았다. 협박을 받는 것은 기본에 그의 능력에 영향을 받고 있는 사람도 제법 있었으며, 심지어 성매매까지 해야 될 판이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파오는 것은 당연해보였다.

그래도 그는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의 상황과 맞서고자 했다. 이 많은 사건들 중에 하나라도 빨리 정리를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나마 가족들에게 이 상황을 고백했고, 하서윤을 완전히 자신의 편으로 만든 게 다행이랄까. 가족들과 하서윤을 떠올릴 때만큼은 그는 마음과 머리가 조금이나마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빠르게 점심을 해치운 그는 바로 유은정에게 문자를 보낸 뒤, 보건실로 갈 준비를 했다. 보건실에 가기 전에 그는 먼저, 박수아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내가 일이 생겨서 잠깐, 보건실 좀 다녀와야 될 것 같은데...”

“보건실? 어디 아픈 거야?”

“아니, 그건 아니고...음...전에 말했었지? 내 누나랑 보건쌤이랑 선후배 사이라고. 최근에 누나한테 일이 생겨서...”

그는 박수아에게 보건실에 다녀와도 괜찮냐고 허락을 구했다. 고작 보건실에 가는 걸로 굳이 허락을 구하는 이유는 그녀가 유독 유은정에 대해서 크게 질투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이번에도 매우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 심지어 누나를 팔기도 했다.

“그런 일이면 당연히 다녀와야지. 혹시 안 좋은 일인 거야?”

“아니, 그렇게 심한 일은 아니고...”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 얼른 다녀와.”

“아...그래...”

하지만 이번에도 박수아는 그의 예상을 벗어난 모습을 보였다. 질투는커녕 그는 오히려 성준을 걱정하며 얼른 보건실에 다녀오라고 말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저...그래서 말인데...음...그...성욕 테스트는...내일이나 다음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예상치 못한 그녀의 반응에 당황한 성준은 이어서 그녀에게 성욕 테스트에 대해서 물었다. 이것에는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괜찮아. 서로 상황이 안 맞으면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이제부턴 더 이상 일방적인 관계를 가지지 않으려고. 그동안 내가 너무 너한테 무리하게 요구한 것 같아.”

“아...꼭 그런 건 아닌데...”

“앞으로는 나한테나 너한테 이상이 생기지 않는 이상은 억지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물론, 지속적으로 성욕을 해소해야 될 필요가 있으니까 주기적으로 관계를 가져야겠지만...음...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 내서 제대로 얘기해보자.”

“...으응, 그래. 그럼...나는 보건실 다녀올게.”

“응, 이따 봐.”

이번에도 박수아는 원래의 그녀의 모습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하루 만에 달라질 수가 있는 것일까. 혹시 그녀에게 여러 명의 자아가 존재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대체 무슨 속내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성준은 이제 그녀에 대해서 당황보다는 답답한 마음이 느껴졌다.

‘답답하네...속마음을 전혀 알아차릴 수가 없어. 제발 사고만 안 치기를...’

지금 당장은 그녀의 속마음에 대해서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또한, 굳이 알아내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그녀의 모습이 다른 일들도 마음이 급한 성준에게는 무척 편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만큼은 그녀를 잊고 다른 일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보건실로 이동했다.

‘그래, 천천히 하나씩 끝내자. 수아는 잠시 잊고, 쌤부터 해결하는 거야.’

보건실로 이동하자, 가운을 입은 채 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성준은 그녀와 마주치기 전에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그녀에게로 걸어갔다. 그녀는 인기척에 바로 고개를 들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성준을 바라보았다.

“왔구나. 앉아.”

“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래도 지난번보다는 훨씬 부드러워진 느낌이었다. 어느 정도 성준에게서 마음이 풀린 것일까. 성준은 그녀의 말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이에요...?”

성준이 먼저 그녀에게 물었다. 성준의 질문에 그녀는 무언가를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대답했다.

“해줄 얘기가 있어서. 그동안 궁금하지 않았어? 내가 왜 이렇게 과민반응하면서 너한테 화내고 짜증내고, 분노했는지.”

그녀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다. 성준은 이번에도 그녀가 임신 능력자에 대해서 각종 정보를 제시하거나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성준에게 들려주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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