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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윤
임신 클리닉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로 이동하던 하서윤의 앞에 검은색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차의 뒷좌석에는 놀랍게도 임신 클리닉의 대표라고 볼 수 이재희가 앉아있었다.
그는 그대로 그녀를 자신의 옆자리에 앉히고는 시내에서 벗어나 구석진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자 했다. 임신 클리닉을 몬스터와 정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그들만의 조치인 셈이었다.
“직접 만나자고 하셔서 당연히 긍정적인 답변을 예상했는데, 아쉽군요. 임신 클리닉이 아닌 다른 방법이라도 찾으신 겁니까?”
순순히 이재희를 따라나선 그녀의 첫마디는 임신을 시켜주겠다는 그들의 제안에 대한 거절이었다. 자칫 거절로 인해서 자신이 해코지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녀는 그들을 믿었다. 특히나 남편의 동료이기도 했던 이재희가 자신을 이런 일로 해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은 적중했다. 이재희는 그녀의 거절에도 결코 그녀에게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단순히 아쉬움만을 나타냈을 뿐이었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임신은 제게 있어서 전부나 마찬가지라 조금만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려고요.”
“흐음...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혹시 저희를 믿지 못하시는 건가요?”
“그건 아니에요. 임신 클리닉 자체는 신뢰할 수 있어요. 다만, 다른 게 문제죠.”
첫 번째 목표를 달성한 그녀는 바로 이어서 두 번째 목표인, 임신 능력자에 대해서 묻고자 했다. 직접적으로 묻기보다는 미리 준비해온 말들을 통해서 임신 능력자의 능력에 대해서 간접적으로 묻고자 했다.
“무엇이 말이죠?”
“임신 능력자들을...못 믿겠어요...그들이 가진 능력 말이에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요. 정확히 무엇을 못 믿겠다는 겁니까? 그들의 임신 능력이라면, 이미 정부에서나 몬스터들도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그녀의 말에 이재희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아직까지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난번에 만나서 열심히 설명을 했더니, 이제 와서 뭘 믿지 못한다는 것일까.
“제가 못 믿는 건 임신 능력이 아니에요. 그 외에 다른 능력들을 말하는 거예요.”
“다른 능력이라면...어떤 걸 말하시는지...?”
“전에 만났을 때, 그러셨잖아요. 임신 능력자들은 히어로와 같다고. 혹시라도 주변에 임신 능력자가 있으면 꼭 말해달라고.”
그녀가 그에게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임신 능력자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다. 그에게 직접적으로 임신 능력자에 대해서 물어보면 성준의 존재를 들킬 가능성이 있었기에 이런 식의 방법을 통해서 정보를 이끌어낼 생각이었다.
“그랬...었죠. 임신 능력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통제하지 못할 경우에는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 부분에서 그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거예요. 혹시라도 임신 과정에서 제게 영향을 미치면 곤란하잖아요.”
“아...그럴 수 있겠군요. 그 부분까지는 차마 예상하지 못했네요. 충분히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고객님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은 절대 없을 겁니다.”
그녀의 말에 이재희는 그제야 이해를 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는 절대 그럴 일만큼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이것을 통해서 그녀는 그들이 임신 능력자의 능력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정확히 임신 능력자들이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고,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어요. 그 정도는 저도 알 권리가 있잖아요. 아니, 꼭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확신이 생긴 그녀는 이제 자신 있게 원하고자 했던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말에 이재희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음...뭐, 그 정도는 알려드리겠습니다. 임신 능력자들은 성욕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자신의 성욕뿐만 아니라, 원하는 대상의 성욕까지도 말입니다.”
“성욕을...컨트롤 할 수 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임신 능력자 본인에 대한 성욕이겠지요. 성욕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이성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아직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할 경우에는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임신 능력자의 숨겨진 능력은 바로 성욕 컨트롤이었다. 지금까지 성준과 하서윤은 마치 감염이 되듯 다른 사람의 몸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준의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은 감염 같은 것이 아니었다. 능력을 통제 못하는 성준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성욕을 높여버렸던 것이었다.
“그런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네요. 그래서 임신 능력자들을 발견하면 바로 신고해달라고 하셨던 거군요.”
“만약 폭주를 할 경우에는 주변에 있는 모든 여성들의 성욕을 폭발시킬 수도 있으니까요. 성욕이 일정 수준을 돌파하면 여성의 신체와 정신에 이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그러면 통제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요?”
이재희의 이야기에 그녀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이대로 성준을 가만히 놔뒀다가는 정말로 큰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통제 방법에 대해서 그에게 묻고자 했다.
하지만 급한 마음에 너무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진 것일까. 그녀의 질문에 그는 바로 답하기보다는 살짝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대답하기 어렵다는 느낌이 아니라 마치 그녀를 의심하고 있는 듯 보였다.
“아, 그러니까...어떤 식으로 통제가 가능한지 알아야 제가 믿을 수 있으니까...”
“흠, 히어로와 같습니다. 훈련을 통해서 통제하기도 하고, 능력자의 능력을 자극시키는 방법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현재까지는 히어로에 비해서 통제가 쉽다고 볼 수 있어서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100% 통제가 가능한 거예요?”
“100%라고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90%는 넘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의심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의 대답에 앞서 그녀가 먼저 질문에 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그녀의 설명이 있고나서야 능력 통제 방법에 대해서 대답을 해주었다. 물론, 여전히 의심은 거두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그렇군요. 그래도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임신을 너무나도 간절히 원하지만, 신중히 고민해보고 싶어서요.”
“알겠습니다. 시간은 충분히 드리도록 할 테니까, 고민해보세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저의 임신 클리닉은 고객님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민이 끝나면 연락주세요. 언제든지 괜찮으니까요.”
그렇게 그것을 끝으로 두 사람의 대화가 종료되었다. 그녀는 그가 의심하는 모습에 빠르게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이재희는 그녀에게 조금 더 시간을 주겠다고 말한 뒤, 기사를 시켜서 그녀를 집 앞에 내려다주었다.
“생각이 바뀌시면 꼭 연락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어요. 조금 더 고민한 다음에 임신을 결심하게 되면 꼭 연락드릴게요.”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그녀는 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재희는 그녀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뒤, 차를 움직여 임신 클리닉으로 이동했다. 그가 의심을 거뒀을 것이라 판단한 그녀의 생각과 달리 그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왜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까? 충분히 의심될만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임신 클리닉으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운전기사가 이재희에게 물었다. 운전기사의 질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재희는 의미심장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옛 전우의 아내인데, 능력까지 사용할 필요는 없지. 당분간 사람을 붙여서 살펴야겠어. 분명히 주변에 누군가 있을 거야.”
그의 말을 통해서 그가 하서윤을 의심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과연 그의 속셈은 무엇일까. 그리고 앞으로 그는 임신 능력자인 성준을 어떻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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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하서윤의 집
“성욕 컨트롤이요? 감염이나 바이러스 같은 게 전혀 아니었네요.”
“그러게...그래도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해. 준이, 네 능력으로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다행이지.”
이재희와의 만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바로 성준에게 연락을 했다. 약속장소에서 전전긍긍 그녀를 기다리던 성준은 그녀의 연락에 부리나케 그녀의 집으로 달려갔고, 두 사람은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는 당연히 임신 능력자에 대해서였다. 그녀는 성준에게 이재희로부터 들었던 내용들을 차례대로 설명해주었고, 앞으로의 대처방안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했다.
“훈련이라...어떤 훈련일까요?”
“히어로랑 비슷하다고 했는데, 그것까진 잘 모르겠어.”
“흐음...감염이든 컨트롤이든 어쨌든, 통제를 못하면 저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큰일 난다는 건 변함없네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노력에도 통제 방법에 대해서는 알아낼 수 없었다. 설사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성준이 혼자서 그것을 해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상태이다. 알아낸 정보에 비해서 상황이 썩 좋다고는 말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말인데, 차라리 임신 클리닉에 들어가는 건 어때? 지금 당장은 말고, 내가 임신한 이후에 말이야...”
“임신 클리닉에요?”
그래서 그녀는 언제 폭주할지 모르는 상태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바에 차라리 임신 클리닉에 들어가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그곳에 들어간다면, 만약 그곳이 이재희의 말처럼 믿을 수 있는 곳이라면, 능력도 통제할 수 있고, 실험실과 달리 자유롭게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실험실보다는 임신 클리닉이 더 괜찮지 않을까?”
“그들을 믿을 수 있을까요?”
“내가 제안을 거절했는데도 나한테 아무런 해코지도 안했잖아. 오히려 임신 능력자에 대해서 정보도 주고...”
그녀의 의견대로 임신 클리닉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렇지만 걸리는 게 있다면, 역시나 그들의 정체였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정부나 히어로 협회, 헌터부대에 걸리지 않고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과거에 히어로였다고 말하는 이재희의 정체도 마음이 쓰였다.
“고민은 해볼게요. 실험실이나 몬스터한테 죽는 것보단 누나 말대로 그곳에 가는 게 훨씬 괜찮겠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나도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해. 이런 일은 신중할수록 좋으니까.”
“더군다나 누나 임신하면 챙겨줄 사람도 필요하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성준은 그녀의 곁에 남아서 그녀를 돌봐주고 싶었다. 그녀의 임신을 담당하게 된 지금, 그는 그녀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임신과 더불어 출산까지 무조건 자신이 챙겨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준이가 임신 클리닉에 들어가게 되면, 그곳에서 다 챙겨줄 거야. 나는 걱정 안 해도 돼.”
“정말로 누나 말대로 임신 클리닉이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네요.”
“그러게...그래도 한 가지 방법이 더 생겼다는 점은 다행인 것 같다.”
하지만 임신 클리닉 카드를 이대로 버릴 수는 없었다. 성준과 하서윤은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곳에 대해서 고민해보고자 했다. 어쨌든 그들에게는 최후의 카드가 생긴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