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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윤의 집
하서윤의 집에 도착한 성준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그녀와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 역시도 이제 연인이나 다름없는 성준을 반갑게 맞이해주었고, 두 사람은 곧 화기애애한 대화와 함께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아직까지 연인처럼 자연스럽게 가벼운 스킨십을 주고받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뜨거우면서도 묘한 공기가 흐르곤 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성준의 마음속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와 오랜만에 만났다는 점에서 편안하면서도 기분이 좋았지만, 모든 불안을 떨쳐낼 수는 없었다.
‘서윤 누나가 이런 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까...? 내가 가족들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 누나도 나를 싫어하겠지? 하...이걸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또 거짓말을 해야 되는 건가...’
특히나 그는 잠시 후에 그녀에게 이야기할 부분들에 대해서 걱정이 많았다. 혹시라도 이 모든 것을 그녀에게 밝혔다가 그녀와 영영 이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이 이야기는 누구라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성준은 그녀와의 저녁 식사가 끝날 때까지도 차마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성준이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지만, 성준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입을 열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의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오늘 나한테 중요한 얘기 해줄 거라고 기대했는데, 아닌가보네?”
결국 참다못한 그녀가 직접 성준에게 말했다. 그녀의 말에 성준은 멋쩍은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서는 온갖 고민과 생각들이 얽히고설킨 채로 흘러갔다.
“정말 안 해줄 거야? 혹시 무슨 일 있어?”
“아, 아뇨...그게...”
“무슨 일 있구나. 당연히 능력과 관련된 거겠지?”
“......”
그녀는 성준의 표정을 보고 그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계속되는 그녀의 질문에 성준은 속으로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더 이상 숨길 수는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제 우리 사이에 비밀은 없다고 생각했는데...아직 준이는 나를 못 믿는구나?”
그녀가 성준에게 따뜻한 차가 담긴 찻잔을 건네주면서 말했다. 그녀의 시무룩한 표정이 성준을 더욱 압박하는 것만 같았다.
“그게 아니라...하...이걸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정말로 무슨 일 있었던 거지? 나한테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일인 거야?”
“네...엄청 큰일이긴 하죠. 그동안 진짜 많은 일들이 있었거든요.”
계속되는 그녀의 질문에 성준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우면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바로 옆에 앉아서 최대한 경청하며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능력과 관련된 거 맞지?”
“네...저한테 일어날 일이 그거 말고는 없으니까요.”
“정확히 무슨 일인데? 그거 때문에 오늘 계속해서 표정이 안 좋았구나...”
“제 표정이 안 좋았어요? 누나 앞에서는 최대한 숨기려고 했는데...미안해요...”
“아니야, 오히려 내가 준이한테 믿음을 못 준 것 같아서 더 미안한걸. 대체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건데...?”
이야기를 꺼내기 조심스러웠던 성준은 이야기에 앞서 다른 대화를 통해서 마음의 준비를 했다. 호흡을 가다듬고 생각을 정리한 그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한 가지를 물었다.
“저...누나...”
“...으응? 왜 그래?”
“제 이야기에 어쩌면 크게 실망할 수도 있을 거예요. 아니, 무조건 실망하실 거예요. 그래도 제가 사실대로 말했으면 좋겠어요?”
그는 자신의 이야기에 그녀가 실망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 아니 확신했다. 누나 동생과 근친 섹스를 한 부분은 당연했고, 김소영에게 당한 것도 그녀의 입장에서는 실망을 느낄만한 부분이었다. 이야기를 꺼내기 전부터 그는 자꾸만 작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설마 내가 실망하는 게 두려워서 말 못했던 거야?”
그녀의 질문에 성준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그녀가 실망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녀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원망하고 증오하고 손가락질 하는 상황이 무서웠다. 그가 계속해서 자꾸만 실험실과 임신 클리닉을 떠올린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준아...내가 전에도 말했잖아. 나는 무조건 준이 편이라고. 지금 준이가 느끼는 마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그래도 나를 믿어줬으면 좋겠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는 준이 편이야. 왜냐면 준이를 사랑하니까.”
두려워하는 성준의 모습에 그녀가 그의 두 손을 꼬옥 붙잡으며 말했다. 그녀는 마치 아이를 달래듯 조근조근 낮은 목소리로 성준에게 속삭였다. 그녀의 진심어린 말에 성준은 조금이나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당연하지.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원래 다 그런 거야.”
“그치만...그래서 더 두려워요. 혹시라도 누나가 실망해서 사랑마저도 식을까봐...”
“절대 그럴 일 없어. 믿어줘. 맹세할게.”
“하...알았어요. 당연히 믿어야죠. 제가 사랑하는 사람인데...”
그녀로부터 용기를 얻은 성준은 다시 한 번 속으로 다짐을 했다. 그녀는 성준에게는 매우 소중한 존재였다. 이번 이야기로 그녀를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서기는 했지만, 어쩌면 그녀라면 성준의 아픔과 흑역사까지도 사랑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그로 하여금 커다란 용기를 주었다.
그렇게 용기를 낸 성준은 그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과 자신의 능력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비밀로 해도 될 만한 부분들까지 전부 솔직하게 말이다. 중간 중간 변명과 자기합리화가 끼어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거짓 없이 자신이 느꼈던 감정들까지 사실만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네...그런 일들을 겪었다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어...”
그의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심각하면서도 굳은 표정을 지으면서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를 나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를 이해한다는 모습으로 다가갔다. 특히나 잡고 있던 그의 두 손을 절대 놓치는 일이 없었다.
“그러게요...누가 들으면 소설이나 영화 속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죠. 아니,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이런 이야기는 거의 없겠네요.”
“그 일들 때문에 불안하기도 하고, 죄책감도 많이 시달렸겠네. 하지만 나는 준이 탓이 아니라고 생각해.”
심지어 그녀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성준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성준을 사랑하고 있었고, 힘들어하는 성준의 곁에 머물면서 그를 위로해주고 싶어 했다.
“아니에요. 전부 제 탓이에요.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제 능력이잖아요. 그리고 누나하고 동생하고는...하...이러면 안 되는 거지만, 그 순간만큼은 기분도 좋았단 말이에요. 저는...쓰레기에요...”
하지만 성준은 그녀의 위로에도 여전히 괴로워했다. 특히나 근친과 관련해서는 도저히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어제 그는 분명히 동생과의 섹스를 즐겼다. 동생의 나체를 보면서, 동생이 흥분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도 흥분을 했고, 쾌감을 맛보았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그를 짓누르는 압박감의 크기는 커져만 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준이가 왜 쓰레기야. 누구나 임신 능력자가 되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거야.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을 겪을 수도 있는 거고. 오히려 준이는 그 상황을 극복해내려고 노력했잖아. 그 점만 봐도 준이를 나쁘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
“그래도 어떻게 가족들한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요. 제 동생은...고작 중학생이에요. 심지어 임신까지 시킬 뻔했다고요...누나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저를 나쁘게 생각하시죠? 제가...괴물 같죠...?”
“그렇지 않아, 준아...나를 봐...내 눈 바라봐...내가 지금 너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어?”
그녀의 말에 성준이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들자, 그는 그녀의 눈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는 자기 자신의 모습이 비춰왔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다른 여자와 자는 행위는 절대 용서할 수 없어.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야. 나는 준이를 사랑해. 준이가 다른 여자와 잔다고 생각하면...솔직히 화도 나고 짜증 날 때도 있어. 그렇지만 이해해. 왜냐면 준이는 임신 능력자니까...”
“정말로...이런 저를...이해해요...?”
“응, 이해할 수 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고,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니까.”
그녀의 따뜻한 표정과 말이 성준을 감쌌다. 아직까지 성준은 자신을 위해주는 그녀를 100%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해주고 있다는 것과 자신 역시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의 말에 성준은 그제야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다. 머리와 마음뿐만 아니라 그의 몸까지 짓누르고 있던 걱정과 불안이 조금씩 사그라지는 것인 느껴졌다.
“고마워요, 정말. 역시...누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헤, 그렇게 생각해줘서 정말 고마운데? 그동안 마음의 짐이 엄청 무거웠구나...”
“전부 제 책임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해서든 상황을 좋게 바꿔보려고 노력하는데, 오히려 자꾸만 안 좋아지니까...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누구나 그런 상황에 놓이면 비슷한 기분일 거야. 오히려 준이는 이렇게 솔직하게 털어놓았으니까 훨씬 대단한 거지.”
그녀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성준을 위로해주었다. 그녀의 위로에 힘을 얻은 성준의 표정은 점점 밝아졌고,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처음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
“아무래도 임신 클리닉에 들어가야 될 것 같아요. 많이 고민해봤는데, 그게 맞아요. 더 이상은 제 스스로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게 밝혀졌으니까요.”
두 사람의 분위기가 다시 심각해진 것은 성준이 임신 클리닉에 관해서 이야기를 꺼냈을 때부터였다. 임신 클리닉에 들어가겠다는 그의 말에 그녀는 다시금 표정이 진지해졌다.
“임신 클리닉에 들어가는 건 좋은 생각이야. 그치만 아직까지 정보가 부족해서 걱정이네.”
“적어도 한 달 안에는 들어갈 계획이에요.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들어가고 싶지만, 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까요.”
성준이 임신 클리닉에 들어가는 부분에 대해서 그녀는 예전부터 찬성이었다. 하지만 한 달이라는 기간에 살짝 망설이는 모습이 보였다.
“한 달...임신 클리닉에 들어가면...당분간 만나기 어렵겠지?”
“설마요. 그 사람들하고 누나하고 인연도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아직 그곳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부분은 없으니까 잘 모르겠네요.”
그녀가 걱정하는 부분은 성준과 지속적인 만남을 이어갈 수 있는지 여부였다. 어렵게 시작한 사랑인 만큼 그녀는 이 사랑을 반드시 지키고 싶었다. 임신 능력자인 그가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하더라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여기서 나오는 힘이었다.
“음...그럼, 내가 한 번 더 그 사람들 만나볼까? 그게 좋지 않겠어? 이번에는 그 사람들한테 조금 더 자세히 물어보는 거야.”
“자세히요?”
“임신 능력자에 대해서도 그렇고, 이것저것.”
“흠...조금 위험할 것 같은데요...”
“준이가 그곳에 들어간다면, 그 정도는 각오해야지.”
그래서 그녀는 이번에도 자신이 직접 그곳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했다. 다시 한 번 그들을 만나는 것이 두렵기도 했지만, 피할 수 없다면 최대한 빨리 부딪혀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임신 클리닉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해야 될 일이 하나 있어요.”
“반드시? 어떤 건데?”
“누나 임신이요. 누나 임신만큼은 제가 책임지는 걸로 했잖아요.”
“아...헤, 뭔가 그렇게 말하니까 부끄러운데?”
임신 클리닉에 들어가는 것에 앞서서 성준이 최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이 있었다. 그것은 하서윤을 임신 시키는 일이었는데, 그가 한 달이라는 시간을 잡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사랑하는 그녀를 임신 시키는 것이야말로 필수 조건이었다.
“말 나온 김에 바로 할까요? 오늘은 친구네서 잔다고 허락도 받았는데...”
“나 아직 생리 안 끝났는데...괜찮을까...?”
“괜찮아요. 꼭 임신만이 목적은 아니니까요.”
“아...”
임신이라는 단어에 두 사람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화끈하게 달아오른 분위기에 두 사람의 흥분 역시도 뜨겁게 타올랐다. 성준은 그대로 그녀를 향해 몸도 마음도 천천히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