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신 클리닉-175화 (175/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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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결

‘하...결국, 늦어버렸네. 어쩔 수 없지. 어차피 각오하고 저지른 거니까...’

찐한 섹스를 마치고 모텔에서 나온 최한결은 바로 성준과 헤어진 뒤, 학원으로 향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섹스가 길어지면서 학원 시간에 늦어버렸지만, 그녀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은 편에 속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만큼 성준과의 섹스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던 그녀였다.

‘엄청 어리버리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 같아. 갑자기 변한 모습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진짜 제대로 흥분했으니까...’

처음에 성준과 섹스를 결심한 그녀는 성추행범 치고는 생각보다 그의 성격이 평범했던지라 걱정을 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강압적이고 조금은 하드한 성격의 섹스였다. 그렇기에 평범한 모습의 성준이 그런 것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렇지만 오늘 그가 보여준 모습만 떠올린다면, 앞으로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일반적인 에세머들과는 많이 다르긴 했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모습과 함께 조금씩 이쪽에 흥미를 보이는 그의 모습에 안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반전 매력이 오히려 그녀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소프트하게 가다가 나중에는 하드한 것도 부탁해보자. 아직까진 이 정도 수준이지만, 갈수록 이 세계로 빠트리는 거야. 그러면 기이한 현상이 끝나기 전까진 즐길 수 있겠지?’

그녀에게 성준은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었다. 섹스가 없이는, 성욕 해소가 없이는 하루하루 불행한 삶을 살아가던 그녀였기에 기이한 현상 속에서도 능력을 지닌 성준의 존재는 그녀에게 상당히 중요했다. 그런 그가 SM성향까지 지닌다면 그녀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성준과의 섹스와 함께 앞으로 어떻게 관계를 이어나갈지에 대해서 생각하며 학원으로 걸어갔다. 어차피 늦은 김에 더 늦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여유롭게 이것저것 고민하며 천천히 학원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너무 격하게 했더니, 다리에 힘이 없네. 버스타고 가야겠다.’

모텔이 있는 곳에서 학원까지는 거리가 그리 멀지는 않았다. 대략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였는데, 워낙 섹스가 강렬했던지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던 그녀는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자 했다. 오랜만에 이루어진 구속 플레이에 그녀의 다리는 아까부터 경련이 심하게 일어나곤 했다.

핸드폰을 통해서 학원까지 갈 수 있는 버스와 정류장을 검색하던 그녀는 바로 근처에 정류장이 있음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곳으로 걸어가던 중에 한 통의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네, 엄마.”

그것은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온 전화였다. 그녀가 아직 학원에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선 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도대체 뭐하고 다니 길래 아직도 학원이 아니니?]

“아...그게...”

[한결아, 너 이제 고등학생이야. 중학생이랑 고등학생은 다르다는 걸 아직도 이해 못하겠니?]

“죄송해요...친구한테 갑자기 일이 생겨서...지금 바로 학원 가고 있으니까, 1교시는 나중에 보충 수업으로...”

[친구? 지금 친구가 중요해? 시험이 당장 내일 모렌데, 그깟 친구 때문에 학원을 늦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너?]

전화를 건 그녀의 어머니는 학원에 늦은 그녀를 나무랐다. 그녀가 급하게 만들어낸 변명에도 상관없다는 듯 그녀를 몰아갔다. 어머니의 꾸중에 그녀의 표정은 곧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친구는 대학가서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어. 그리고 고등학교 때 친구가 친구니? 친구도 급이 맞아야 친구지. 지금은 친구에 집중할 때가 아니고, 그 시간에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울 생각을 하라고 몇 번을 말해야 되니?]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 대해서 지나치게 강압적이고 억압적이었다. 특히나 그녀의 공부에 있어서는 지나칠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아니, 관심이라기보다는 거의 집착에 가까웠다. 그녀가 섹스에 집착하듯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학업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그런 어머니 밑에서 그녀가 받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했다. 성적에 따라서 그녀가 집에서 받는 대우는 달라졌다. 일관성이라도 있었으면 그나마 괜찮았겠지만, 그 또한 전혀 찾을 수가 없었기에 그녀는 하루하루 피가 말라가는 심정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너 혹시 또 남자 만나는 거 아니니? 그 꼴을 당하고도 또 남자를 만나는 거야?]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그냥 학교 친구였어요. 그것도 여자요.”

[정말 아니지? 지금 옆에 남자 있는 거 아니지?]

“정말이에요! 원하시면 영상통화도 가능해요.”

그녀의 어머니는 이제 그녀를 나무라는 것을 넘어서 의심까지도 했다. 어머니의 의심에 그녀는 정곡을 찔린 듯한 기분이 들었는지, 크게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머니가 강압적이긴 했지만, 그녀가 남자를 만났던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흠, 알았다. 어쨌든 친구나 남자친구 사귀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고등학생 때만큼은 참아보자.]

“알았어요. 이제 학원가야 되니까, 끝나고 전화해요.”

영상통화까지 하자는 그녀의 말에 어머니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이제 더 이상 어머니랑 통화할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던 최한결은 얼른 전화를 끊고 싶어 했다.

[그래, 오늘도 학원에서 열심히 수업 듣고, 3년만 고생한다는 생각으로 힘내보자. 네 뒤에는 가족이 있다는 거 항상 명심하고.]

“네...학원 다녀올게요...”

그렇게 최한결과 그녀의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가 끝이 났다. 전화를 끊자마자 그녀의 입에서는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조금 전만 해도 성준과의 섹스로 기분이 좋았던 그녀는 또 다시 좌절과 절망이 가득한 표정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더럽다, 내 인생...대학에 가면 정말...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때도 그대로면 어떡하지...아니야, 나는 더 이상 행복해질 수 없을 거야...대학에 가도...똑같아...’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 들어차게 되었다. 겨우 고등학교 1학년인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힘들어 보였다.

터벅터벅 힘이 쭉 빠진 모습으로 그녀가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버스 정류장에 설치된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그녀의 입에서 또 다시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대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그녀는 이 삶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마치 오랫동안 새장 안에 갇혀있는 새가 문이 열려도 날아가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버티자...어떻게든 버텨보자...그래도 성욕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찾았으니까...희망이 없진 않을 거야. 이 상태로 딱 3년...아니, 이제 겨우 2년 정도구나. 2년만 버티면 분명 희망이 있을 거야.’

그렇게 그녀는 또 다시 이를 악물고 버티는 쪽을 선택했다. 미성년자이자 고등학생인 그녀가 부모님에 대항해서 이길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인 성욕은 성준을 통해서 해결이 가능했으니, 이대로 약 2년간 죽어라고 버티는 쪽이 그녀에게는 조금 더 나은 선택이었다.

‘그나저나 도대체 버스는 언제 오는 거야? 2교시 전에는 들어가야 되는데...’

어렵게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머릿속에 가득 찬 부정적인 생각들을 애써 억눌렀다. 이제 학원에 도착해서 공부에 집중해야만 했기에 이런 생각들은 빨리 떨쳐내는 게 좋다. 그녀에게 이런 생활과 과정은 거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아직 10분이나 남았네. 1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에는 들어갈 수 있겠지?’

마지막 한숨으로 어머니와 자신에 대한 생각을 털어버린 그녀가 일어서서 버스 시간을 확인했다. 그녀가 타야 되는 버스는 그녀가 정류장에 도착하기 전에 지나갔는지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2교시 전에는 들어가야만 했던 그녀였기에 살짝은 초조함이 느껴졌다.

‘누구지?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렇게 초조한 마음을 가지고 버스를 기다리는 가운데, 정류장 안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검은색 야구모자에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한 여성이었다.

최한결은 그 여자를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놓고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기에 자세히 관찰할 수는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낯선 느낌보다는 익숙함이 앞섰다. 모자에 마스크까지 착용했음에도 그런 기분이 든다는 점이 그녀는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되었다.

‘섹스에다가 엄마 때문에 조금 예민해졌나...아무튼 신경 쓰지 말자. 아는 사람이면, 먼저 인사하겠지.’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섣불리 나설 수는 없었다. 현대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게 접근하는 것은 썩 유쾌한 행동은 아니었다. 최한결의 입장에서는 굳이 먼저 그녀를 살피거나 아는 척을 할 필요는 없었다.

‘뭐, 뭐야? 왜 이쪽으로 오는 건데...’

그런데 가만히 있는 그녀와 달리 저쪽에서 먼저 움직임을 보였다. 정말로 그녀와 친분이 있는 것일까. 정류장 바깥 쪽에 서있던 여자는 천천히 최한결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바로 그녀의 옆에 바싹 다가와 앉는 것이 아닌가.

‘누구지? 모자랑 마스크 때문에 누군지 전혀 알 수 없어. 이 냄새...무슨 향수더라?’

여자가 다가왔음에도 최한결은 누군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반면에 여자는 마스크를 착용해서인지 굉장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이 상황에서 최한결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여자가 누군지 모르는 이상, 먼저 말을 걸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저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걸어와 주길 기다릴 뿐이었다.

“최한결...맞지?”

“네, 네? 아...네...그, 그런데요...?”

그리고 기다리던 여자의 입이 열렸다. 여자는 정말로 최한결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최한결을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대답했다.

‘나를 안다는 사람이 왜 아직까지 마스크도 벗지 않고...더군다나 최한결 맞지? 뭔가 조금 이상한데...’

최한결은 본능적으로 여자에 대해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확실히 이상했다. 말투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의문 투성이었다.

“너, 방금 성준하고 만났지?”

“...네? 아...누, 누구...신..데요...?”

심지어 여자는 성준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도대체 여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여자의 입에서 성준이라는 이름이 나온 순간, 최한결은 한 명의 여자를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학교에서 항상 성준과 붙어다니던 여자를 말이다.

‘설마...선배 여자친구? 선배랑 내가 모텔에서 나온 걸 목격한 건가...아...젠장...그러면 안 되는데...’

최한결은 그녀를 성준의 여자 친구로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살기를 뿜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잖아. 중요한 건 네년이 성준하고 놀아났다는 거지.”

“아...그게...죄송해요...전부 사정이 있어서...”

“사정? 내가 네 사정까지 알아야 되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죄송해요...정말 죄송해요. 다음부턴 절대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정말 죄송해요...”

그녀가 정말로 성준의 여자 친구라면 최한결 입장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사과밖에 없었다. 이대로 그녀와 머리채를 붙잡고 싸울 수는 없지 않은가. 제발 그녀가 눈감아주기를 바라고 또 바랄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절대로 최한결을 용서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여전히 살기를 잔뜩 뿜어대는 그녀는 최한결 앞에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맑은 액체가 들어있는 병이었다. 도대체 저것은 또 무엇일까.

“그래도 뻔뻔하게 반항은 안 하고 잘못했다고 말하네. 자신 있게 준이를 협박할 때는 언제고. 아주 웃긴단 말이야.”

“죄송해요...죄송해요...”

“죄송하다고 말하면, 네가 한 잘못이 사라진다고 생각해? 심지어 둘이 계약서까지 작성했다고 하던데, 기가 막혀서 정말.”

“그건...어차피 아무 효력도 없는 거니까요...다시는 안 만날게요. 정말 죄송해요...”

여자는 계속해서 최한결을 위협했다. 최한결은 그녀가 내뿜는 살기에 눌려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몸은 어느새 공포와 두려움으로 덜덜 떨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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