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임신 클리닉-180화 (18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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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일(토)

-다음날

“그럼, 다녀올게요.”

“조심히 다녀와.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임신 클리닉에서 말했던 것처럼 그들이 도와주기 전까지 최대한 버티는 게 목적이라는 점 명심해. 준이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여기서 더 큰 사고 쳤다가는 진짜 힘들어질 수도 있으니까...”

“네, 알았어요. 능력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조심할게요. 누나도 무슨 일 생기시면 바로 저한테 연락주시고요. 이제 우리는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거 아시죠?”

“후훗, 알았어. 그럼 다녀와. 다녀오면 내가 맛있는 거 해줄게.”

“나는 누나가 제일 맛있는데...아무튼 다녀올게요.”

다음날, 하서윤의 집에서 잠에서 깬 성준은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그녀와 함께 주말을 보내면서 행복하고 즐거운 신혼부부 분위기를 풍기려고 했었던 그녀였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오늘 그에게는 또 다른 할 일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었기에 아무리 사랑하는 하서윤이라도 차마 뺄 수가 없었다.

‘후우, 누나 말대로 임신 클리닉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까지는 최대한 조심해야겠지. 오늘도 침착하게만 대응하면 문제없을 거야.’

하서윤의 집에서 나온 성준은 곧장 약속장소로 향했다. 미리 도착해서 카페에 자리잡은 성준은 이곳에서 누군가를 만날 생각이었다. 그의 표정이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봐서는 그에게는 매우 어려운 사람으로 보였다.

잠시 후, 성준이 있는 카페 안으로 한 명의 여자가 들어왔다.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성준의 입에서는 긴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녀의 정체는 성준을 협박하고 성매매를 제안했던 김소영있다.

사실, 김소영과의 예정된 만남은 일요일인 내일이었다. 그렇기에 성준은 당연히 내일 만날 것을 예상하며 그에 대한 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 아침에 그녀로부터 연락이 오는 바람에 계획은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오늘 안에 대답을 달라는 그녀의 문자에 성준은 어쩔 수 없이 그녀와 직접 만남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다른 약속 있다면서 핑계라도 만들 줄 알았는데, 괜찮다고 해서 놀랐는걸? 아니면 내가 보고싶었던 건가?”

성준을 발견한 그녀가 밝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녀를 바라보는 성준의 표정과 달리 그녀는 상당히 기분이 좋은 듯 보였다. 커피를 주문한 그녀는 성준의 맞은편에 앉아서 흐믓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제가 왜 일부러 누나를 피하겠어요. 그랬다가는 바로 실험실행일 텐데...저는 어디까지나 이 관계에서 을의 입장이잖아요.”

“후훗, 너무 그렇게 말하진 마. 기왕 하는 거 기분 좋게 하면 더 좋잖아.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게 좋은 거야. 그리고 누가 보면 내가 너를 잡아먹을 줄 알겠네.”

그녀에게 협박을 당하는 성준과 달리 그녀는 매우 태연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점이 성준에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고, 분노도 느껴졌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저 참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그는 어디까지나 을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왜 갑자기 오늘 답을 달라고 하신 거예요? 원래는 내일이었잖아요. 갑자기 이런 식으로 불러내면 곤란하다고요.”

“갑자기 불러내서 미안. 그치만 당연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겠지?”

불편한 그녀와 오랜 시간을 보낼 이유가 없었던 성준은 바로 본론으로 대화를 이끌었다. 그녀가 갑자기 약속된 날짜를 당겨서 오늘 대답을 달라고 한 이유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성준은 그 점이 궁금했고, 오늘 그가 그녀와 직접 만나게 된 이유였다.

“설마 오늘 안에 돈이 필요한 건 아니겠죠? 아시겠지만, 지금은 드릴 돈이 한 푼도 없는데...”

“에이, 내가 그 정도로 돈이 급한 건 아니야.”

“그럼, 뭔데요? 왜 굳이 오늘...?”

“돈은 급하지 않은데, 상황은 조금 급하지. 일이 잡혔다고 해야 될까?”

성준은 처음에 그녀가 내일이 아닌, 오늘 자신을 불러낸 이유가 돈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그녀는 돈이 급해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돈보다는 성준 자체가 필요해보였고, 그것을 통해서 성준은 한 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설마...?”

“뭘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맞을 거야. 네가 생각하고 있는 그거.”

“저는 아직 제안에 대해서 대답도 안 했는데...”

“지금 바로 대답해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리고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대답은 ‘예스’ 같은데?”

그녀의 말을 통해서 성준이 떠올린 것은 바로 성매매였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그녀가 급하게 성준에게 답을 달라고 요청한 것은 성매매 때문이었던 것이다.

“하하...당황스럽네요...설마 했는데...”

“얼른 대답해줘. 예스야, 아니면 노야?”

“......”

그녀는 다시 한 번 성준에게 자신의 제안에 대한 대답을 요구했다. 그녀의 물음에 성준은 바로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성매매와 관련된 온갖 복잡한 상상들이 떠오르곤 했다.

“답답하게 자꾸 그럴래?”

“예스...맞아요...”

“후훗, 그럴 줄 알았어. 너라면 당연히 내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런 그의 모습이 답답했는지, 그녀가 또 다시 재촉을 했다. 그녀의 계속된 재촉에 성준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어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대답은 당연하게도 예스였다.

‘서윤 누나 말대로 지금은 이 방법뿐이야. 분명히 임신 클리닉에서 도와준다고 했으니까...’

지금까지 많은 사고를 바탕으로 여러 여자들과 관계를 가져왔던 성준이었다. 그 중에는 원치 않았던 관계도 있었고, 관계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한 그라도 성매매만큼은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협박에 못 이겨 강제로 성매매를 한다는 점에서 성준의 심정은 참담했다.

그럼에도 성준인 그녀의 대답에 예스를 한 것은 어디까지나 임신 클리닉 때문이었다. 당장 김소영에게 줄 돈이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지만, 성준은 임신 클리닉을 믿어보고자 했다. 그들이 꼭 자신을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설마...오늘부터 바로 하자는 건 아니죠?”

그렇지만 지금 당장은 임신 클리닉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다. 하서윤의 말에 의하면 임신 클리닉은 주말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그들이 움직이기 전까지는 도움을 받을 수 없었기에 성준은 성매매를 시작하는 시기가 궁금했다.

“왜? 오늘부터면 안 되는 거야?”

“다, 당연하죠! 갑자기 오늘부터 한다고 하면...아직 준비도 안 됐고...”

“준비할 게 따로 있나? 몸만 있으면 되는 거잖아.”

“아니...그러니까...”

“후훗, 걱정 마. 오늘은 아니니까. 대신, 내일일 가능성이 높아. 그래서 오늘 말해달라고 했던 거고.”

“아...”

그녀는 내일부터 성매매가 시작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에 성준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당장 오늘이 아니라는 점에서 안심이 되면서도 내일까지 임신 클리닉의 도움이 없다면, 정말로 성매매를 해야만 되는지 걱정이 되었다.

“설마 내일도 안 된다는 건 아니지? 날짜가 잡히면 무조건 해야 될 거야. 고작 한 두 시간 정도면, 얼마든지 시간 낼 수 있잖아.”

“...알았어요. 일단, 내일로 알고 있을게요.”

“그래, 자세한 건 오늘 안에 문자로 말해줄게.”

걱정과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참는 수밖에 없었다. 성준 혼자서는 이 상황을 대처할 능력이 없었다. 그는 마지못해 그녀에게 알겠다고 말하며,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두 사람의 대화는 끝이 났다.

‘에휴, 다 자업자득이지. 내가 능력을 함부로 사용한 탓에 이렇게 되는구나...’

그녀와의 대화를 마무리 지은 성준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거리를 걸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자꾸만 성매매에 대한 불안함이 떠올랐다. 임신 클리닉의 도움이 없다면 정말로 성매매를 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능력 때문에 온갖 성범죄를 저질러 온 그는 드디어 마지막으로 성매매까지 접수하게 되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답답함을 느꼈던 그의 입에서는 연신 긴 한숨을 흘러나왔다.

‘어떻게든 되겠지. 더 생각해봤자,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더 이상 생각말자. 자세한 건 서윤 누나랑 같이 상의해봐야겠어.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처리하자. 제발 여기 있어야 되는데...’

그렇게 한숨을 내쉬면서 그는 어디론가 이동했다. 그가 이동한 곳은 박수아가 일하는 식당이었다.

김소영을 만나는 김에 그는 며칠째 보지 못했던 짝궁, 박수아를 직접 만나보고자 했다. 아프다고 했던 그녀였기에 알바를 하고 있을 가능성이 그리 높진 않았지만, 혹시나 싶어서 그녀가 일하는 식당을 살폈다.

‘역시 없는 건가...음...어...!?’

식당 안을 살펴보던 성준은 곧 박수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그는 다짜고짜 안으로 들어가 그녀를 붙잡았다. 겉으로 보이는 그녀의 상태는 아프다는 말과는 달리 너무나도 멀쩡해보였다.

“수아야...”

“...성준...?”

성준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상당히 놀란 듯 보였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성준을 바라보았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아...나 지금 일하는 중이라...”

“그래? 음...그럼 언제 시간이 될까?”

“...30분 뒤부터 쉬는 시간이라, 10분 정도 가능할 것 같은데...”

“그럼, 그때까지 기다릴게. 아니, 밥이라도 먹고 있어야겠다.”

알바 하는 그녀의 모습은 학교에서하고는 많이 달랐다. 마치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를 떠올릴 정도로 상당히 조용하고 내성적인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와의 대화를 위해서 성준은 한 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했다. 하서윤의 집을 나오기 전에 아침밥을 먹긴 했지만, 그녀가 또 다시 도망을 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식당을 벗어나지 않았다. 성준은 오늘 어떻게 해서든 그녀의 문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다.

그렇게 30분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그는 그녀와 마주한 채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매우 긴장하는 표정으로 성준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가 이토록 긴장하는 모습이 처음이었던 성준은 조금은 어색한 말투로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몸이 많이 안 좋았던 거야...?”

“...응? 무슨...말이야...?”

“아파서 결석을 3일이나 했잖아. 어디가 어떻게 안 좋았던 건데?”

“내가...결석을 3일이나 했었나...?”

하지만 그녀는 뭔가 조금 이상했다. 말투가 바뀐 것은 당연했으며, 성준과의 대화를 굉장히 어려워했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담임 말로는 아프다고...하던데...”

“아...으응...아프기도 했고...좀 일이 있어서...”

“그랬구나. 나는 그런 줄도 몰랐네. 계속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없길래 걱정 많이 했어.”

“네가...나한테 전화를 했다고? 문자도 하고?”

“으응, 전혀 몰랐구나. 폰이 고장난 건가...?”

“그런데...네가 왜...나한테 이렇게 관심이 많은 거야...?”

“응? 그게 무슨...?”

“담임이 시킨 거야? 나 잘 있나 확인해보라고? 아니면 정말로 아픈지 알아보라고?”

“아니...그런 건 아니고...그거야 우린, 짝궁이기도 하고...친구니까...”

“내가...너랑...친구...? 우리가...그렇게 친했었어...?”

심지어 그녀는 마치 그동안 성준과 쌓은 친분을 모두 잊은 사람처럼 굴었다.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설마 이번에도 연기를 하는 것일까. 성준의 머릿속이 또 다시 복잡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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