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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큭...”
알 수 없는 장소, 한 남자가 감았던 눈을 힘겹게 떴다. 그의 이름은 성준. 임신 능력자인 그는 성매매를 하던 중에 갑작스럽게 난입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곳으로 강제로 옮겨졌다. 그들의 정체는 무엇이고, 그가 잡혀 온 이곳은 또 어디일까.
‘젠장...여긴 어디지...아직도 머리가 아프네...’
조금씩 의식이 돌아온 그가 몸을 일으켰다. 꽤 오랜 시간을 누워있었는지, 그의 시야는 아직까지도 뿌연 상태였다. 상황 파악 전에 우선 몸과 마음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그는 심호흡을 크게 하면서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야가 조금씩 돌아오면서 성준은 자신의 주변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병원 수술실이나 실험실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성준은 그 중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침대 위에 누워있었는데, 근처에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었으며, 몸이 묶여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뭐지? 납치되었다가 구출된 건가? 그렇다는건 내가 임신 능력자라는 사실을 정부에 들켰다는...설마...아니겠지...?’
예상치 못한 주변 모습에 그는 천천히 고민을 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역시나 부정적이고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가 떠올린 최악의 상황은 히어로나 헌터부대에 붙잡혀 실험실에 갇히는 상황이었다. 이곳 분위기가 실험실과 유사했기에 그 생각이 가장 먼저 그의 머릿속에 떠오를 수 있었다.
위잉
그때였다. 갑자기 성준이 누워있는 침대 맞은편에 위치한 문이 열리면서 방 안으로 두 명의 남자가 들어왔다. 두 명의 남자는 성준이 깨어있는 모습에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일어났으면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방금 일어났단 말이에요.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들려줄 수는 없잖아요. 대화에도 타이밍이랑 분위기라는 게 있는 건데.”
남자 한 명은 안경을, 나머지 한 명은 검은색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친분이 있는지, 티격태격하면서 성준이 누워있는 침대로 가까이 다가왔다.
“많이 놀랐지? 마음 같아서는 기절시키지 않고 차근차근 설명해서 데려오고 싶었는데, 처리해야 될 일들도 많고, 나름의 사정이 있어서 이렇게 데려왔어. 뭐, 어디 아프거나 불편한 곳은 없고?”
안경을 쓴 사람이 성준에게 물었다. 그의 말을 통해서 성준은 이 사람들이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왔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의 물음에 답하기 전에 성준은 그것부터 알고자 했다.
“여긴...어디죠? 그리고 저를 왜...?”
“아, 그러고 보니까 우리 소개를 안 했네. 여긴 임신 클리닉이고, 우리 둘은 임신 클리닉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지. 내 이름은 이재희, 얘는 김경재.”
“여, 여기가...임신 클리닉이라고요? 당신이...이재희...?”
“응, 맞아. 임신 클리닉. 어떤 곳인지는 대강 서윤씨한테 들었겠지?”
성준의 질문에 그가 솔직하게 대답해주었다. 그의 대답을 들은 성준은 당연하게도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납치되어 온 이곳은 다름 아닌, 임신 클리닉이었던 것이다. 그를 납치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이재희라고 말했다.
“엄청 놀란 표정이네? 서윤씨 말로는 너도 임신 클리닉에 들어가길 희망했다던데.”
“아...그, 그게...너무 갑작스러워서...”
하서윤에게 들었던 것처럼 임신 클리닉이 주말쯤 움직인다는 것은 성준 역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움직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까 어쩔 수 없었어. 그대로 뒀다가는 네 능력이 또 어떤 짓을 할지 알 수 없으니까.”
“그...저랑 같이 있던 여자는...어떻게 된 거죠?”
“그것도 잘 처리했으니까 걱정 마.”
“그 여자 말고도 한 명이 더 있는데...”
“김소영이라는 이름의 여자를 말하는 거지? 너한테 성매매를 제안한 아주 못된 년.”
“아...네, 맞아요. 김소영도...처리하신 거예요?”
“당연히 그 여자도 완벽히 처리했지. 너는 근데 어쩌다가 그런 여자를 만난 거야? 임신 클리닉 차리고 나서 지금까지 별의별 여자를 다 상대해보긴 했지만, 성매매까지 제안하는 여자는 또 처음이네. 만약에 우리가 너에 대해서 알기 전에 성매매를 시작했더라면, 꽤나 골치 아팠을 거야.”
이재희는 성준을 이곳에 데려온 것뿐만 아니라, 성준의 능력에 대해서 알고 있는 여자들까지도 처리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성준은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재희라는 사람이 히어로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지금 머리가 많이 복잡하지? 잘 이해도 되지 않을 거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울 거야.”
그런 성준의 표정을 읽어낸 이재희가 말했다. 그는 성준이 누워있는 침대에 걸터앉고선 손에 들고 온 서류들을 보여주었다.
“자, 서윤씨한테 보여줬던 자료들인데, 확인해보고 싶으면 확인해도 좋아. 앞으론 네가 일하게 될 곳이니까, 직접 확인해보는 게 좋지 않겠어? 물론, 일하기 전에 훈련부터 받아야겠지만, 그래도 이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시설이 있는지 미리미리 확인해두면 좋으니까.”
그가 성준에게 건네준 자료들은 임신 클리닉에 대한 것들이었다. 서류를 집어든 성준은 떨리는 마음으로 내용들을 살폈다. 안에 적혀 있는 내용들은 하서윤이 해준 말과 크게 다를 것 없어보였다. 정말로 이들은 성준과 같은 임신 능력자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었다.
“정말로...이곳에서 임신 능력자들로 임신을 시키는 건가요?”
“거기 나와 있는 그대로야.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야. 이걸 증명해주는 게 어떻게 보면 너 자신이잖아. 임신 능력자인 네가 이곳에 있고, 앞으로 이곳에서 일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여기가 어떤 곳인지 설명이 가능하지.”
“그렇군요...너무...갑작스럽다보니까...정신이 없네요...죄송해요...”
성준이 임신 클리닉이라는 단체나 이재희의 말을 못 믿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마음의 준비도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성매매를 하던 중에 갑자기 기절을 했고, 눈을 떠보니, 임신 클리닉에 와있는 사실을 어떻게 쉽게 받아들이겠나. 그에게는 조금 시간이 필요해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상태를 이재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절대로 급하지 않았다. 성준이 마음의 정리를 할 수 있도록 충분히 시간을 주었고, 그의 질문에 최대한 솔직하게 답해주고자 했다.
“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면, 편하게 물어봐. 임신 클리닉에 소속된 이상, 더군다나 그냥 일반인도 아니고, 임시 능력자인 이상, 이곳에 대해서 알 권리가 있으니까.”
“네...그...혹시 제 능력을 아는 사람 중에, 박수아라고...학교에서 짝인 여자애가 있는데, 혹시 그 친구도...”
“맞아, 우리 능력으로 처리했지. 벌써 확인한 거야?”
“네...어제 알바하는 식당에 찾아갔었는데, 저를 전혀 못 알아 봐서...”
이재희의 말에 성준이 처음으로 물어본 것은 박수아에 대해서였다.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박수아는 임신 클리닉의 소행이 맞았다. 그들의 능력으로 박수아의 머리에서 성준에 대한 기억이 싸그리 삭제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 친구는 조금 위험해보여서 미리 손을 쓸 수밖에 없었어. 너한테 영향을 받기 전만 하더라도 조용하고 착한 애였는데, 네 능력 덕분에 순식간에 그렇게 변해버렸다는 게 참 안타깝지.”
“아...그렇군요...제 능력을 아는 사람은 다 처리하신 건가요?”
“응, 가족들부터 시작해서 다 처리했어.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러면 혹시 서윤 누나도...?”
성준이 박수아에 대해서 물은 것은 전부 이 질문 때문이었다. 그는 혹시라도 하서윤이 박수아처럼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이들이라면 하서윤의 기억까지도 지울 수도 있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뭐야? 결국에는 서윤씨에 대해서 물을 생각이었네. 하여튼 꼭 이렇게 커플 티를 팍팍 낸다니까. 서윤씨는 걱정하지 마. 서윤씨만큼은 조금도 건들지 않았으니까. 물론, 네가 원한다면, 서윤씨가 가지고 있는 너에 대한 기억마저도 지워줄 수 있어. 어디까지나 네가 원한다면 말이야.”
“그건 절대로 안 돼요. 서윤 누나만큼은...절대로...”
“그래, 털끝도 안 건드릴게. 솔로들은 서러워서 살 수가 없네.”
다행히 하서윤은 무사한 듯 보였다. 하서윤이 먼저 이들에게 다가와 성준에 대해서 말을 했던 만큼 이들은 하서윤의 기억은 그대로 두었다. 그의 말에 성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저...그런데 어떤 식으로 기억을 지우시는지...”
하서윤이 무사하다는 생각에 안심을 할 수 있었던 성준은 그제야 무거웠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해지자, 조금은 임신 클리닉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그는 물어보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떠올리면서 이재희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재희는 그런 그의 모습에 친절하면서도 장난 끼가 살짝 섞여있는 표정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가장 조심스러운 질문이네. 사실, 네가 임신 능력자만 아니었어도 이 부분은 절대로 설명해주지 않았을 거야. 아니, 임신 능력자라고 하더라도 너처럼 능력의 크기가 제법 큰 편이 아니라면, 무조건 비밀로 했겠지.”
“아...굳이 대답해주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말했잖아. 너는 들을 권리가 있다고. 이미 서윤씨에게 들어서 알겠지만, 나는 히어로야. 그것도 사람, 아니 모든 생물체의 기억을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자지.”
그리고 드디어 이재희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었다. 이재희는 히어로였다. 그것도 사람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지닌 히어로였다.
“기억을 컨트롤 할 수 있다고요?”
“응, 내 마음대로 기억을 없애거나 조작할 수 있어. 물론, 시간이 제법 소요되는 일이지만, 그런 식으로 네 능력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을 없앴던 거야. 가족들은 물론이고, 친구들까지 모두 다.”
“그러면...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 왜 제 기억은...?”
그의 능력에 대해서 들은 성준은 속으로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정말로 그가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면, 왜 자신에게 사용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였다.
“말했잖아. 네 능력이 생각보다 강력한 편이라고. 내 능력에도 제한이 존재하거든. 특히나 기이한 현상 이후로는 히어로들의 능력이 전체적으로 약해진 편이라서...나 역시도 예전에 비해서는 많이 약해진 상태야. 그래서 나보다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나 몬스터에게는 전혀 능력을 사용할 수 없어. 약간의 과거 기억을 볼 수 있는 정도랄까.”
성준의 의문제기에 이재희가 답했다. 이재희의 말에 성준은 그제야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자신의 능력이 그 정도로 대단한가 싶기도 했다.
“임신 능력자도 능력자마다 차이가 있는 건가요?”
“차이가 꽤 심한 편이지.”
“왜 그런 차이가 존재하는 거죠? 차이와 상관없이 그냥 관계를 통해서 임신 시키면 되는 거잖아요.”
“임신 능력 자체는 크게 차이 없어. 다만,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에서 큰 차이가 있지. 박수아를 그렇게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네 능력이 강한 탓이라고 볼 수 있어.”
“그렇...군요...신기하네요...아직까진 뭔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재희의 말에 성준은 그동안 자신에게 벌어졌던 일들을 떠올렸다. 통제가 불가능했던 자기자신의 성욕부터 시작해서 박수아와 유은정, 누나 동생까지...그 모든 일들은 결국, 성준 자신의 힘에 의해서 일어난 것들이었다.
“능력이 워낙 강해서 통제가 더 어려웠을 거야. 단순히 자위를 하고, 섹스를 한다고 해서 통제가 가능한 건 아니니까.”
“그거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까요...”
“그래도 너 정도면 그리 심한 것도 아니니까 걱정 마.”
“그래도 친구뿐만 아니라, 누나랑 동생에게까지 그런 짓을 했으니까...”
“다른 임신 능력자들도 다 마찬가지야. 성욕이 극대화되면 가장 먼저, 주변 여자를 찾기 마련이거든. 그래서 대부분 가족이나 주변 친구들부터 시작하지. 오히려 너는 아는 사람 선에서 끝나서 다행인 거지, 다른 녀석들은 여기저기 씨를 뿌리고 돌아다녀서 수습하는데 꽤 힘들었다고.”
이재희의 말에 성준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재희의 말대로 이곳에는 성준과 같은 임신 능력자들이 있었다. 그동안 성준은 혼자 외롭게 자신의 능력과 싸웠었다. 가족과 하서윤이 그를 도와주기는 했지만, 정신적으로 위로가 되어줬을 뿐, 현실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현실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임신 능력자들을 통해서 그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그에 대한 공감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곳에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의 머리와 마음속에는 긍정적인 생각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