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신 클리닉 -->
“그쪽은 왜...히어로를 관두고 이런 일을 시작하신 거죠?”
성준은 계속해서 이재희에게 질문을 했다. 임신 클리닉과 이재희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많았던 그는 서슴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임신 클리닉에 대해서 긍정적인 쪽으로 마음이 돌아선 그는 앞으로 이곳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조금 더 그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도 성준은 이재희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았다. 그가 왜 멀쩡히 활동하던 히어로 협회를 나와서 임신 클리닉을 차렸는지 알고 싶어 했다.
“아까부터 엄청 예민한 질문만 하네. 뭐, 히어로 협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야 될까? 약간의 트러블이 생기는 바람에...그래도 이 친구는 계속 히어로 협회 소속으로 활동 중이니까, 완전히 그쪽이랑 척을 진 건 아니야.”
이재희가 이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해주었다. 그는 히어로가 탄생한 초창기부터 히어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 직후부터 협회와 의견차이로 심하게 다툰 뒤, 그곳을 나와 임신 클리닉을 차렸다고 한다.
“그런데 임신 클리닉은 왜...?”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임신 클리닉일까. 성준은 그에게 조금 더 자세한 대답을 요구했다.
“협회나 헌터부대에서 몬스터에 집중을 했다면, 나는 임신 능력자에 집중을 했거든. 임신 능력자가 처음 발견될 수 있었던 건, 나 이 친구 덕분이야.”
“아...그러면 이 분도 히어로이신 가요?”
“응, 그렇지. 가만히 서있지만 말고, 눈 한 번 보여줘 봐.”
그러자 이재희가 같이 들어온 선글라스의 남자에게 말했다. 그는 이재희의 말에 투덜거리더니, 선글라스를 벗어 성준에게 자신의 눈을 보여주었다.
“아, 귀찮은데...자, 됐지?”
그의 두 눈은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단순히 파란색 눈동자를 지닌 게 아니라, 정말로 눈에 LED를 달아놓은 듯 빛이 퍼져 나왔다. 신기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 녀석 능력도 나만큼이나 아주 귀하고 중요한 능력이거든. 능력자나 감염자, 몬스터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랄까.”
김경재의 파란 두 눈이 공개됨과 동시에 그의 능력에 대해서 이재희가 설명해주었다. 김경재의 두 눈은 쉽게 말해서 모든 생물에게 존재하는 기를 느끼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능력을 바탕으로 히어로와 임신 능력자 등을 감별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으로 숨어서 지내는 감염자와 몬스터를 구별할 수 도 있다. 또한, 벽 넘어서의 사람까지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녀석의 능력을 바탕으로 임신 능력자들을 하나하나 모았어. 나보다 약한 녀석들은 기억을 조작해서 붙잡았고, 너처럼 나보다 강한 사람들은 입으로 열심히 설득을 하고 다녔지. 처음에는 진짜 엄청 고생했다고. 중간 중간 이 녀석이 협회 소속으로 임무에 나설 때면, 진짜 나 혼자서 개고생이었지.”
“그렇게까지 해서 임신 클리닉을 만든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음...아까도 말했지만, 협회나 헌터부대하고 의견 차이가 심했어. 특히나 임신 능력자에 대해서는 더 심했지. 그 녀석들은 임신 능력자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오로지 몬스터한테만 집중했거든. 그러는 사이에 임신 능력자들은 몬스터들에 의해서 한 명 한 명씩 사라졌고. 내 입장에서는 임신 능력자들을 최대한 살리고 싶었어. 뭐, 더군다나 이걸로 돈도 벌 수 있고, 정말로 임신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울 수도 있으니까.”
그밖에도 이재희는 임신 클리닉을 어떻게 만들었고, 왜 만들었는지 말해주었다. 그의 설명만으로는 전부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성준은 그래도 임신 클리닉이라는 곳이 마냥 돈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아쉽지만 아직까진 장사가 잘 되는 편은 아니야. 이제 기이한 현상이 발생한지 고작 두 달이라서 아직까지는 사람들의 불안감이 그리 크진 않은가봐.”
그렇지만 그의 말대로 아직까지 임신 클리닉은 활성화가 되지 못한 상태였다. 그동안 이재희와 김경재의 노력으로 제법 많은 임신 능력자들을 보유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편이었다.
“기이한 현상은...해결될 수 없는 거예요?”
“음...나는 가능성이 무척 낮다고 생각해. 몬스터를 하나하나 찾아서 죽이는 것도 힘든 일인데, 이 현상을 해결하는 건...글쎄...적어도 10년, 아니 50년 정도는 지나야 되지 않을까? 차라리 임신 능력자가 발생한 것처럼 기적을 바라는 게 더 좋을 수도 있어.”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임신 클리닉의 활용도가 높아지겠네요.”
그래도 앞으로 임신 클리닉은 이 세계에서 많은 역할을 할 것임은 분명했다. 인류에게는 안타깝게도 기이한 현상은 기대와는 달리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만큼 임신 클리닉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질 것은 당연해보였다.
“아마도 그러겠지? 그런데 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건 별로라서...아무튼 이제 어느 정도 머리도 정리 되었으면, 슬슬 이동해보자.”
“이동이요? 어디를...?”
“이곳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줘야지. 앞으로의 네가 이곳에서 어떻게 생활지부터 시작해서 말이야.”
그렇게 성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모두 끝이 났다. 이재희는 이제 성준과 함께 임신 클리닉을 하나씩 직접 살펴보자고 말했다. 이재희의 말에 성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을 빠져나온 세 사람은 가장 높은 곳부터 아래로 내려오면서 천천히 임신 클리닉을 살폈다. 임신 클리닉 자체는 클리닉이라는 이름답게 병원의 모습과 매우 유사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 정도일까. 그래도 중간 중간 사람들이 보이긴 했는데, 이들 대부분은 이재희가 따로 고용하거나 데리고 온 사람들이었다.
“아직 손님이 별로 없어서 직원도 그렇게 많진 않아. 그래도 갈수록 늘어날 테니까, 1년 정도 지나면 여기도 제법 병원 분위기가 나겠지?”
“그런데 계속해서 임신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정부에서도 클리닉의 정체를 알게 되지 않을까요? 그때마다 기억을 조작할 수 없잖아요.”
“이미 정부나 협회 쪽에서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 다만, 정확하게만 모를 뿐이지. 서로 중요한 정보만 고유하지 않을 뿐, 웬만한 건 다 알고 있다고 보면 돼.”
“그런데도 계속 할 수 있는 거예요?”
“말했잖아. 그들은 아직까진 임신 능력자에 대해서 크게 관심 없다고. 이제 곧 몬스터하고의 큰 전쟁을 준비하고 있어서 거기에 온 신경을 쏟고 있지. 그 사이에 내가 자리 잡으면, 지들도 어쩌지 못할 거야. 더군다나 충분히 얘기가 잘 되었다고도 볼 수 있어서 그 부분은 절대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클리닉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각 방과 시설에 대한 설명과 동시에 이재희는 앞으로 임신 클리닉의 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의 설명을 들을수록 성준은 점점 임신 클리닉에 빠져 들어갔다.
특히나 성준이 관심 있어 하는 부분은 바로 다른 임신 능력자들에 대해서였다. 그는 다른 임신 능력자들이 이곳에서 어떻게 지내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했다.
“마친 잘 됐네. 딱 타이밍 좋게 손님 한 명이 와 있는 것 같은데?”
조금 더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세 사람은 임신 능력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성준과 비슷한 체격에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는 간편한 복장으로 어떤 방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손님이요?”
“응, 아마도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준비가 되면, 방금 저 남자가 들어간 방으로 들어가게 될 거고, 그러면 임신을 위한 성관계가 이루어지는 거지.”
“아...꼭 반드시 삽입을 해야 가능하다고 들었어요.”
“맞아, 임신 능력자들이 일종의 각성 상태가 되어야만 가능하거든.”
“그렇군요...”
“아무튼 구경해볼래? 원래는 대표인 나만 가능한데, 이것도 어떻게 보면 훈련인 셈이니까, 참관하게 해줄게.”
세 사람은 남자가 들어간 방 바로 옆에 위치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의사 가운을 입은 한 명의 여자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임신 능력자는 A에서 D까지 총 4개의 등급으로 나눠져 있어. 그 중에서도 D랑 C의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여자 연구원 한 명씩 참관을 하게 되어 있거든. 물론, 당연하게도 고객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하지.”
“주로 어떤 걸 연구하는 거죠?”
“당연히 임신 능력자와 임신에 대해서. 자세한 건 이곳에서 일하면서 알게 될 거야.”
성준이 들어간 방에서는 마치 경찰조사실처럼 커다란 창문으로 옆방과 연결되어 있었다. 옆방에서는 이쪽이 전혀 보이지 않지만, 이곳에서는 옆방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했다. 이곳에서 관계를 가지는 두 사람의 몸 상태를 하나하나 체크한다고 이재희는 말했다.
이재희의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옆 방 안으로 여자 한 명이 들어왔다. 그 사람이 이재희가 말하는 손님인 듯 했다.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구나. 처음에는 엄청 어색하겠네.’
옆방의 모습은 모텔이나 비지니스 호텔과 유사했다. 작은 공간에 침대와 샤워시설이 있는 것이 전부였다. 자신이 저곳에 있다는 상상을 하자, 성준은 굉장히 민망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방은 전부 저런 식으로 되어있진 않아. 우린 최대한 고객에게 맞춰주는 편이거든. 어떤 고객은 처음부터 끝까지 얼굴 공개를 거절한 적도 있어. 그럴 경우에는 딱 하반신만 내놓고 관계를 가지지.”
“하반신만요?”
“응, 산부인과 진료할 때처럼. 옆에서 보면 굉장히 웃기는 상황이지.”
“아...‘
이재희는 마치 성준의 생각을 읽는 듯 계속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그의 설명에 성준은 상당히 흥미롭다고 생각하며, 옆방을 바라보았다. 옆방에서는 두 남녀가 매우 친밀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고객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는 얼마든지 저런 식으로 지낼 수도 있어. 따로 만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 능력을 함부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야.”
이번에도 이재희의 설명이 있었다. 고객과 따로 만남을 가진다니...그의 설명에 성준은 안 좋은 의미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옆방에 있는 두 남녀는 잠깐의 대화를 끝으로 바로 옷을 벗고 뜨거운 섹스를 나누었다. 원래라면 애무도 한정되어 있지만, 두 사람은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관계를 즐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성준은 생각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 성준은 놀라움을 감추기 힘들었다.
“생각하고는 많이 다르지? 그치만 저런 경우는 꽤 드물어. 직접 하게 되면 알게 될 거야. 처음에는 엄청나게 어색하거든.”
“그렇군요...”
“자, 그럼 이제 훈련에 대해서 얘기해볼까?”
그렇게 참관을 마무리하고, 성준은 이재희를 따라서 계속해서 클리닉을 돌아다녔다. 이제는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훈련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훈련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건데요?”
“히어로하고 비슷하다고 볼 수 있어. 중요한건 시간이지. 너 같은 경우에는 능력의 크기가 제법 커서 한 달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데...”
훈련을 받으면 능력 통제는 충분히 가능했기에 따라서 가장 신경 쓸 부분은 훈련에 소요되는 시간이었다. 성준은 한 달이라는 시간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한 달이나요? 그러면 통제가 가능할 때까진 여기서만 지내는 거예요?”
“그렇다고 볼 수 있어. 학교나 가족들한테는 내가 말해둘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아...이제 와서 거절할 수는 없는 거겠죠?”
“당연히 불가지.”
이재희의 말에 의하면 이대로 성준은 한 달 동안 이곳에서 강제로 생활해야만 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제법 긴 시간이었기에 그의 입장에서는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재희의 말대로 이곳에 들어온 이상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재희와 한 배를 탄 이상, 어떻게든 견뎌야만 했다. 성준을 애써 마음을 정리하며, 각오와 결심을 내렸다.
“그 이후에는...자유롭게 집에도 학교도 갈 수 있는 거죠?”
“응, 당연하지. 그 전까지만 고생하면 될 거야.”
“...어쩔 수 없죠. 이대로 도망칠 수도 없으니까, 열심히 하는 수밖에요.”
“당연히 그렇게 나와야지. 훈련은 당장 내일부터 이루어질 거야. 각오 단단히 해두라고.”
이제 성준의 운명은 오로지 임신 클리닉에 달려 있었다. 그의 삶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능력을 통제하지 못하면서였다. 능력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이곳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기에 아무리 무리한 요구라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히어로들이 히어로의 삶은 거절할 수 없었던 것처럼 임신 능력자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운명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건 나도 별로지만, 일정 부분은 타협을 해야지.”
이재희가 고민하는 성준에게 말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임신 능력자는 성준에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이제 이 능력과 성준은 절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셈이었다.
성준은 지금까지 이 능력으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가 이 능력을 원했던 것도 아니었고, 이 능력으로 인해서 안 좋은 경험들도 하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이 능력을 바탕으로 처음으로 섹스를 경험하기도 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게 그의 삶이었다. 임신 클리닉에 들어오게 된 것도 어떻게 보면 그의 운명이라고 할 수 있었다.
‘헌터 부대라는 꿈은 접어야겠지만, 이 정도면 오히려 나한테는 과분할 수도 있어. 내게 주어진 임신 능력과 임신 클리닉의 삶을 받아들이는 거야.’
그동안 성준은 임신 능력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임신 능력자로서의 삶을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더 이상 피할 수는 없었다. 이제는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그동안 임신 능력에 의해서 강제로 끌려왔다면, 이제부터는 이곳에서 능력을 통제하면서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성준은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굳은 각오를 내렸다.
“아, 그리고 본격적으로 임신 클리닉에서 일하게 되면, 당연히 돈도 지급 될 거야.”
“돈이요?”
“우리 소속으로 일을 했으니까, 당연히 지급해야지.”
“아...”
더군다나 이곳에서 일을 하면 돈까지 받을 수 있다. 임신 능력자가 되기 전, 성준의 유일한 고민이었던 돈 문제까지도 해결이 되는 셈이었다. 이제 이곳에서 정말로 그의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