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 얼굴은 죄가 아니야. (1)
삐리리리~~~!!!
"마하야. 야! 구마하 빨리 일어나."
새벽 7시 반 알람소리를 무시하며 꿈틀대다 형한테 걷어차였다.
느릿느릿 아 학교 가기 싫어 꿍얼거리지만, 일단 어푸어푸 세수를 마쳤다.
"후우."
껌벅거리는 시선이 천천히 나를 인식한다.
이렇게 아침세수를 마치고 거울을 보면 대부분 자기를 잘생겼다고 믿는다는데.
진짜 나는 내 얼굴이지만...
"역시 오늘도 못 생겼구나..."
'존못'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존나 못 생겼다는 뜻이다.
누가 봐도 못생긴 얼굴. 스스로도 인정할 수 없는 외모. 그것이 나 구마하였다.
혈기왕성한 18세의 아침은 오늘도 절망으로 시작한다.
"형. 갔다올게."
"어. 수고하고."
멍하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으니, 5층 7층. 우리 집 11층을 지나친다.
"..."
그리고 역시나 14라는 숫자에서 멈추는 엘리베이터.
그냥 계단으로 갈까...?
설마 싶지만 계단 위에서 사근 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엘리베이터가 눈앞에 멈추더니, 스르륵 가벼운 샴푸 냄새가 풍겨온다.
"하아암~"
14층 주민 동갑내기 혜정이가 졸린 얼굴로 거울에 기대 있었다.
무심한 듯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자 혜정이도 슬쩍 쳐다보지만, 서로 인사는 하지 않았다.
싸우거나 그런 건 아니다.
서운한 일이 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나 쟤나 표면적으론 모르는 사이라 아는 척을 할 수가 없을 뿐이다.
"아 졸려..."
"..."
물론 존재는 알지. 나는 당연히 알고 쟤도 나를 조금은 알고 있겠지.
우리는 초중동창에 같은 아파트 라인에 10년을 살았으니까.
혜정이는 어릴 때부터 예쁜 걸로 유명했고 지금도 많은 애들이 좋아하고 있는 아이였다.
단지, 나는 그런 여자애와 같은 공간에 지내며, 심지어 같은 고등학교에 들어오면서까지 인사 한번 해본 적 없다는 것 뿐이다.
왜냐고? 그거야 당연한 거 아냐?
얼굴이 이러니까...
"오빠 왔어? 응. 나도 지금 가."
아파트를 빠져나온 혜정이가 전화를 걸며 도도도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간다.
정문 근처에서 그녀의 남자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다.
남자친구를 발견하자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달려가는 혜정이. 그리고 그녀를 맞이해주는 잘생긴 누군가.
오빠라고 하더니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날렵하게 생겼구나.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질투는 아니고, 그저 부럽다는 생각 뿐이다.
오히려 저렇게 생겨야 저 정도 여자친구를 사귀는구나. 뭔가 자연의 법칙같이 납득이 되는 거 같다.
엉덩이가 아프다며 투덜 거리지만 남자친구의 뒷좌석에 올라타 멀어지는 그녀와 어떤 형을 한참을 보고 있었다.
아 진짜 나도 잘 생겼으면... 나도 저렇게 키가 컸으면...
그랬으면 내 자전거 뒷좌석에 혜정이가 앉아 있을까?
일단 인사는 나눴을 거야.
가는 길이 같으니 오가면서 친구는 됐겠지.
야간에 편의점도 가고 주말엔 서로의 집도 놀러가고.
친구에서 여자친구로 그리고 연인으로.
정말 모든 게 자연스럽게 발전해 나갔다면.
그랬다면 작년 6월의 그날은...
"야. 니 남자친구 지나간다."
"지랄하지마 미친년아."
"하하하!"
다 들린다고 씨발년들아.
깔깔거리고 웃으며 지나가는 어떤 망할것들 때문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어두침침한 쇼윈도에 내 모습이 어스름이 비춰지고 있었다.
역시 모든 문제는 이 얼굴이다.
울퉁불퉁한 얼굴형에 대충 눈코입으로 자리잡은 이목구비.
신체 비율도 맞지 않고... 큰 머리에 작은 어깨까지...
하늘이여... 천지신명이여... 그리고 단군 할아버지여...
대체 사람을 왜 이렇게 못 생기게 만드셨습니까...
"그냥 자살할까."
"뭐래 이 새끼는 또?"
누가 친구 아니랄까 봐, 오늘도 좌절스런 모습으로 불만을 토로하니 친구들이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하고 나선다.
"그냥 성형수술하라니까. 뭐 어때."
"미친놈아 남자가 무슨 성형을 해."
"아니야. 수술로 될 게 있고 아닌 게 있어. 마하는 안돼. 가능성이 없어."
"그럼 뭐 어떻게 하라고?"
"능력이지. 얼굴이 다가 아니야. 마하야 능력을 키우자."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결국 여자들이 마주봐야 하는 건 인간의 외모라고."
가장 친한 친구 태윤이와 정석이었다.
한 놈이 더 있는데, 다른 반이라 아직 찾아오지 않고 있다.
"여자들도 다 수술하는데 남자라고 못 할 거 없잖아."
"야. 이 새끼 말 듣지마. 그렇게 얻어진 외모로 자신감이 생기겠냐."
"제발... 둘 다 그냥 닥쳐주면 안 되냐..."
아무 소리도 듣기 싫어 엎드려있으니 그새 마지막 퍼즐 남수가 찾아왔다.
세 녀석이 나를 둘러쌓고 떠들기 시작했다.
"마하는 자냐?"
"울어."
"왜?"
"아침에 혜정이 봤대."
"아! 아니라고!!"
남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안 볼 수 있나. 이웃인데."
"근데, 냉정히 말해서 10년동안 인사 한 번 안 한 사람을 이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웃 아니면 뭐?"
"마하가 하는 짓은 스토커에 가깝지."
"시끄럽다고! 새끼들아!!"
이야기는 쉬는시간 점심시간 그리고 하교시간까지 이어졌다.
"과연 구마하의 스토킹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야. 우리 이 새끼 하는 거 지금이라도 증거사진 모아놔야 하는 거 아니냐?"
"후우..."
"너도 그렇게 끙끙거릴 바에는 가서 좋아한다고 하라니까."
"꺼져. 내가 걜 좋아하는 게 아니야."
"미친놈. 그걸 누가 믿는다고."
"그러니까. 존나 황당하네."
이놈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혜정이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예쁜 건 인정해야지."
"연예인도 예쁘지. 만화 속 캐릭터도 예쁘다. 그림도 조각도 다 예쁘지만 그저 나를 모를 뿐."
"마하는 가상의 존재를 좋아하나?"
"...개새끼들 듣자듣자 하니까 존나 짜증나게 만드네. 맘대로들 지껄여라. 나 간다."
"야. 야. 저 새끼 삐졌다. 그만하자."
"에이 병신아. 장난 친 거 가지고."
"하하하! 아 왜 그래! 일로 와 새끼야."
친구들이 달래준다며 근처 공원으로 갔다.
태윤이가 아이스크림을 쏘고, 다 같이 벤치에 앉아 할짝할짝 단 맛을 섭취하고 있었다.
"넌 맨날 하던 얘기에 갑자기 정색하고 그러냐."
"니들도 좀 그만해라. 애가 싫다는데 계속 놀리면 기분 좋을 사람이 누가 있다고."
"너도 했잖아 병신아!"
"박남수 씨발놈. 너 같은 놈을 씹선비라고 하는 거야."
쪽쪽 아이스크림도 다 먹었고, 오해도 풀고 싶고. 그래서 친구들을 쭉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야."
"어."
"..."
"뭐? 말해."
"내가 진짜 심각하게 물어보는데"
과연 나는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솔직하게 답해달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그럼..."
"어... 당연하지..."
"뭐 너라고 연애 못 하라는 법 있냐..."
이것들이 그 말을 뭐 그렇게 떠듬떠듬...
아니라는 말보다 더 충격적인 반응에 멀뚱멀뚱 고개를 돌려보니, 애들이 책임을 피하고 싶어 서로를 힐난하고 나섰다.
"씨발. 너가 맨날 이 새끼한테 성형수술이니 뭐니 하니까!"
"그러는 넌!! 니야말로 가능성 없다고 능력이니 뭐니 했잖아!"
두 녀석은 무시하고 남수를 쳐다보자, 친구는 침착하고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
"너 그렇게 여자친구 사귀고 싶었어?"
"어."
"왜?"
"왜가 어딨어. 그냥 사귀고 싶은거지..."
"그러니까 혼자 끙끙 거리지 말고 가서 고백을 하라니까?"
"한다고 되냐?"
"적어도 끝은 날 거 아냐."
안 될 걸 알아도 제대로 매듭을 짓는 게 미련을 갖는 것 보다 낫다는 남수.
태윤이도 정석이와 싸움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본다.
"야. 근데 왜 차이는 게 더 낫냐?"
"그러게. 나도 모르겠는데. 왜?"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 데리고 뭔 말을 하라고..."
남수는 당장은 상처를 받더라도 고백하는 과정 속에 조금씩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당당하게 여자친구도 사귈 수 있을 거라 말했다.
"흠. 듣고보니 그건 그렇네."
"남수 말이 맞네. 너도 오늘 혜정이 찾아가서 얘기 해."
"병신들 또 시작이네. 그러니까 내가 걔를 그렇게 좋아하는 게 아니라니까..."
"그럼 뭔데??"
"야. 너 지금 말 앞뒤 존나 안 맞는 건 알고있냐?"
성격은 어떤지 몰라도 일단 이놈들은 내 친구고, 나를 걱정해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여기까지 속마음을 꺼냈는데 더 못 할 말이 뭐가 있겠나.
"진짜로 혜정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야."
"꺼져."
"이제와서 무슨."
"쉴드를 쳐주고 싶어도 이건..."
"아 진짜 그런 건 아니라고!!"
"그러니까 뭐냐고!"
"새끼 듣는 사람 존나 답답하게 만드네"
"마하야. 너가 아침에 혜정이를 보고 오는 날은 분위기가 달라. 누가봐도 그래."
"후우... 작년 월드컵 때..."
"어."
"월드컵 뭐?"
"..."
혜정이는 원래 예쁜 아이였고 인기좋아 다들 그냥 마음 속으로 품고있는 첫사랑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였다.
물론 그녀는 나에게도 늘 그런 위치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던 작년 6월 22일 토요일.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월드컵 8강전이 열렸다.
궃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른 시간 열렸던 경기는 모든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승리. 한국의 4강 진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사람들은 광장으로 넘어가 소리를 지르거나 삼삼오오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이른 시각인만큼 많은 이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나도 친구들과 시합을 관전하고 뜨거운 가슴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그때 봤어."
"뭘?"
"..."
아파트 입구에서 얼굴에 태극 마크를 그려넣고 반짝이는 악마 뿔을 하고있던 혜정이가 빨간 옷을 입은 어떤 남자와 집으로 가고 있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방방 애교를 부리던 이혜정과 그녀의 어깨에 듬직하게 손을 얹고 있던 어떤 남자.
두 사람을 지켜보며 놀란 가슴 두근 거리지만, 일단 나도 집이 저쪽이라 멀리 돌아갈 수도 없고 그냥 천천히 내 걸음 닫는대로 걸었다.
태연한 척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자 나보다 몇 발자국 빠르게 걷던 두 사람이 1층 어두침침한 복도 끝에서 마구잡이로 키스를 하고 있었다.
돌부처가 된 듯 우두커니 지켜보았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춰 문이 열리며 환한 빛이 비춤과 동시에 두 사람은 빨려가듯 엘리베이터 안에 자리를 잡고.
같이 있던 남자는 혜정이 옷으로 한 손을 밀어넣자 애가 미약한 신음을 흘리는데.
"그리고?"
"그래서??"
"그리곤 그냥 문 닫혔지..."
"..."
"..."
"..."
우두커니 고개를 들어 승강기의 붉은 숫자가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하강.
14층에서 돌아온 엘리베이터 속에는 진득한 공기 외 아무것도 남지 않었다.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 사이에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럼... 둘이 한 거야?"
"작년이면 고1이잖아...?"
그 말에 또 더 긴 침묵이 이어졌다.
"와. 혜정이 그렇게 안 봤는데..."
"아니. 난 딱 그렇게 봤어. 그렇게 생긴 애를 인간들이 가만 냅두겠냐."
"이것들은 같은 학교 여자애를 가지고..."
"뭐! 우리가 그랬어?"
"그래. 마하가 겪은 일을 들어주고 있는 거 아니야."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나도 미친 건 아는데. 그날 이후로 머릿 속에 한 가지 생각밖에 안 떠올라."
"뭐?"
"뭔데...?"
"너 혹시...?"
"뭐긴 뭐야. 섹스지..."
어떤 비난을 듣더라도, 그날 이후 내 안에 자리잡은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할 수가 없다.
나는 과연 섹스라는 걸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겼는데, 어떤 여자가 키스를 해주고 흥분되고 격정적인 경험을 나눠줄까?
아니 내가 자기를 만지게 허락이나 하겠어?
침대에 나란히 눕는다고?
옷을 벗어?
다리를 벌리고 막 이런 걸 한다고?
나랑???
"흑."
"야...?"
"어이 구마하...?"
"너 지금... 우냐...?"
친구들 앞이었다.
솔직한 고민을 털어놓자 뒤늦게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다.
쪽팔린 건 알지만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참기가 너무 힘들다.
"아 씨발 안 울어! 누가 운다고 그래!!"
누가봐도 나는 너무 못 생겼다.
그렇지만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고 싶다.
그것이 본능이니까.
살아있으니까.
바라면서도 어쩔 수 없는 열정만 뜨겁게 차오르는 십팔세의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