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얼굴은 죄가 아니야. (2)
"빡촌을 가면 돼."
"에이 그건 아니지."
"와 이 새끼들 이젠 하다하다 빡촌 소리까지 나오네..."
"뭐? 안 되면 돈주고 하면 되는 거 아냐?"
"그건 싫어."
"봐. 마하가 싫다잖아."
"뭐 어때. 마하야. 별 거 아니야. 그냥 섹스야. 돈이든 뭐든 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거라니까."
저속한 단어로 표현되어 그렇지 나는 감정에 진지한 놈이다.
섹스는 다른 말로 사랑이었다.
아름다운 경험을, 멋진 추억을 상대와 나누는 행위.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의 과제는 종족번식이다.
그리고 종족을 번식하기 위해선 섹스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거늘.
그런 것을 돈으로 서로간에 느끼는 감정도 없이 그저 수컹수컹 거리는 행위로 치부해 버리기엔
"야. 근데 그거 있지 않냐? 수정란으로 임신하는 거?"
"..."
"어 있어. 섹스 안 해도 임신 할 수 있다고 들었어."
"그럼 됐네. 이 새끼. 종족번식은 수정란으로 하고."
"남수야. 우리 친구들 다시 사귀자. 이런 덜 떨어진 놈들 말고 좀 제대로 된 인성가진 애들로"
눈물까지 흘리며 고민을 꺼내놓은 덕분에 친구들은 그날 이후 나의 아픔을 더는 웃음으로 간단하게 때우지 않았다.
대신, 진지하게 같이 고민을 해주는데. 이쪽이나 저쪽이나 피차 머리에 든 거 없는 고등학교 2학년이라 생각하는 건 거기서 거기에 불과하다.
"그럼. 이런 건 어때?"
"뭐?"
"외국인 신부를 사는 거야."
"넌 왜 다 돈으로 때우려고 하는데!!"
태윤이는 돈으로 해결하자.
정석이는 그 돈도 능력이 있어야 되는 거니 일단은 능력을 키우자.
결국 어떻게 가도 도돌이표를 그리는 이야기에 의지할 수 있는 건 남수 밖에 없다.
"진짜 내가 니네한테 그 말은 왜 꺼내가지고..."
"근데 너한테 그런 고민이 있는 건 맞잖아."
"맞긴 한데..."
태윤 정석과 다르게 남수는 이성적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외모에 자신감이 너무 없다는 게 문젠데."
"솔직한 말로 이런 외모로 자신감을 갖는 게 비겁한 거 아니냐?"
"야. 너도 좀 그렇게 자기비하만 하지말고."
"...아 진짜 내가 니들 처럼만 생겼어도 인생 살만 했을 거 같은데."
그러자 태윤이가 다시 진지한 목소리로 돌아본다.
"야. 구마하. 진지하게 빡촌 생각해 보라니까."
"얘들아. 너네는 나랑 태윤이랑 싸우면 누구 편 들어 줄래?"
"새끼야. 남자가 능력으로 인정받는 건 서른 지나서야 가능하다고!!"
녀석은 계산을 하고 있었다.
지금부터 능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좆빠지게 12년을 구를바에야 2년 뒤 자기가 같이 가주겠다는데.
"저 새끼 이제보니 지가 가고 싶어서 그러는 구만"
"뭐! 혼자 가긴 좀 무섭잖아..."
"남수야 잠깐만. 태윤아. 넌 그렇게 하고싶어?"
"뭔 상관이야."
"상관이 없는 건가..."
"아니야. 이 새끼 지금 괜히 나한테 이겨먹고 싶어서 고집부리는 거야."
어느새 나의 고민은 태윤이와 정석이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고 있었다.
"씨발 무조건 능력이지. 능력만 있으면 여자들은 다 줄 서게 되어있어."
"아니라고. 넌 조또 모르면 가만히 있어. 여자들이 남자 얼굴을 얼마나 보는데."
이놈들이 싸우는데 왜 내가 상처를 입을까...
그런데 일단 싸움이 벌어지니 재미는 있어 지켜보게 된다.
"그래! 니 말대로 20대 다 지나서 나이들어 성공했다 치자. 그럼 여자들은 그때까지 가만있냐?"
"그런 참한 여자들을 만나면 되는 거지."
"꺼져. 그딴 생각을 갖고 있으니까 여자들이 남자들 알기를 우습게 알지!"
태윤이의 주장은 이러했다.
20대는 인생의 가장 찬란한 시기.
청춘을 들이부어 겨우내 인정을 받더라도, 그때까지 참고 견딘 노력과 보상은 어디서 받을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성공했다한들, 나이들어 상대방을 지금보다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겠는가?
나중가서 손해 볼 바에는 똑같이 캐쥬얼하게 어울리면서 여자를 알아가는 게 맞다.
이에 맞서 정석이는 사람의 감정은 돈이나 캐쥬얼함이 아닌 진심이 있기에 참고 견디어 능력을 키우고. 훗날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좋은 여자를 만나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와 얘들 은근 제대로 싸우는데?"
"그러게. 재밌네."
"닥쳐 너 때문에 이러는 거 아냐."
"뭘 또 나 때문이야! 지들 자존심가지고 지랄하면서."
아무튼, 정석이도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래. 생긴 거 중요하겠지. 근데 능력 없는 남자를 과연 여자들이 좋아할까?"
"아 일단 외모가 되야 능력을 따진다니까 그러네."
"새끼야. 너야말로 뭘 안다고 그러는데."
태윤이네 사촌 형이 그랬단다.
사촌이라는 말에 우리는 웃어 보이지만, 어느정도 설득력이 있어 납득을 하고 지나갔다. 형들의 말은 늘 옳으니까.
"마하야. 넌 뭐냐? 외모냐 능력이냐."
"능력도 있는데... 난 솔직히 태윤이가 조금 더 맞는 거 같애."
"아 아니라고 씨발 진짜... 이 새끼들."
"여자들도 남자 생긴 거 본다고 듣긴 들었어."
"그래! 야. 혜정이 남자친구는 어떠냐? 잘생겼지?"
"역시 능력같다. 미안하다 정석아."
"꺼져 이제와서 무슨."
여기서 논쟁을 끝내겠다는 듯 태윤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잘 봐. 세상엔 등급이 있어."
못 생긴 남자 위에 못 생긴 여자가 있고, 그 위에 평범한 남자와 평범한 여자가 존재한다.
천상계라 불리는 저 위에 예쁜 여자들이 존재하지만, 그보다 더 위라 불리는 신계가 있단다.
"거기가 바로 잘 생긴 놈들의 세상이지."
얼굴이 진짜 극강으로 잘생겼으면 아무리 예쁘고 잘난 여자라 하더라도 자기가 돈 벌어 남자를 모시고 산단다.
"그런 게 어딨어."
"그래. 아무리 잘 생겼어도 능력 없는 놈을 왜 좋아하냐."
"아 진짜. 니네 알랑드롱이라고 들어봤어?"
녀석은 프랑스의 대배우 알랑드롱이라는 인물을 예로 드는데, 노숙자 시절에 여자들 덕분에 밥을 굶지 않고 옷을 깔끔하게 챙겨입고 나아가 영화배우가 되어 부와 명예를 손에 쥐었단다.
"알겠냐? 능력은 외모를 못 이긴다니까."
"..."
"..."
그러자 남수가 말했다.
"근데, 태윤아. 니 말대로면 마하는 너무 희망이..."
"그러니까 사랑이고 뭐고 따질 게 아니라 깔끔하게 빡촌 가자고."
슬프지만 이 이상의 설득이란 없을 것 같은 느낌에. 나의 첫경험은 그렇게 1호선 용산 청량리 역에서 멈추는가 했는데.
논쟁에서 밀리던 정석이가 입을 열었다.
"호나우딩요."
"브라질 축구선수?"
"그래. 호나우딩요는 잘 생겼냐?"
2002월드컵의 우승멤버이자 브라질 축구영웅 호나우딩요는 특유의 발재간으로 유명하지만 외모 또한 어떤 의미로 명성이 자자하다.
실려과 외모로 인해 외계인이라고까지 불리는 그를 떠올리며 우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러자 정석이의 얼굴이 의기양양하게 변해간다.
"호나우딩요는 외국애들이 봐도 못생긴 얼굴이지."
"근데?"
"인터넷에서 봤는데. 유럽 슈퍼모델들이 호나우딩요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냐?"
"뭐라고 하는데?"
아티스트.
그는 침대에서 예술가였다.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콧대 높은 여자들이 바라보는 호나우딩요의 또 다른 자아였다.
"8번을 하면서도 지치지 않았다는 말이 있어."
"..."
"..."
"..."
"과연 호나우딩요가 외모로 다가갔을까?"
8번을 했다는 말에 태윤이네 사촌형이나 알랑드롱이 허무하게 사라진다.
8번이라... 딸딸이도 그렇게는 못 할 건데...
"알겠냐? 남자는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야."
"야. 그건 호나우딩요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이 새끼나 호나우딩요나 생긴 건 거기서 거기잖아!"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고 들었다.
이런 것들을 친구라고 데리고 있는 현실이 못 생긴 외모보다 더 서글픈 건 아닐까?
***
"결국 결론은 없네."
"없어 병신들 지들 잘났다는 것만 중요해."
"근데 나도 정석이 말이 조금 더 일리 있는 거 같애."
"너도 능력과냐?"
"너는 태윤이가 맞는 거 같냐?"
사랑이냐 한다면 정석이가 맞는 거 같고.
연애라고 한다면 태윤이가 맞는 거 같다.
정답은 모르겠다.
"솔직히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
"8번이라... 와 대단하네. 그게 돼...?"
"호나우딩요잖아. 스포츠 스탄데. 체력이 되겠지."
"스포츠 스타라."
남수가 멍하니 하늘을 보다 고개를 돌렸다.
"너도 운동은 꽤 하잖아?"
"하면 뭐."
"올림픽을 나가 봐."
"하하하! 미친 새끼. 너까지 정신나간 소리 할래?"
남수는 그게 아니라 진지하게 하는 말이라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 나도 그 얘기는 들었거든."
"뭐? 무슨 얘기?"
"올림픽 선수촌."
"선수촌이 왜?"
"..."
"뭐? 뭐 때문에 정색해서 그러는데."
마치 천기누설이라도 밝히는 양 남수가 주변을 둘러보며 심각한 목소리로 귓속말을 건넸다.
"존나 한데."
"진짜?"
"그래!"
"..."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거냐고 물으니, 남수도 사촌 형을 꺼내왔다.
"우리 친척 형 중에 유도로 대한체대 간 형 있거든."
"어."
"그 형이 들려줬는데"
4년마다 돌아오는 지구인의 축제 올림픽.
그곳엔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20대 남 녀들이 하나같이 아름다운 몸과 혈기왕성한 에너지를 자랑하며 한 자리에 모여있다.
무엇보다 올림픽은 보름 밖에 안 열린다.
한정된 시간. 한정된 만남. 지금밖에 없다는 순간의 선택.
"그래서 그냥. 존나 한데."
"..."
"진짜로."
"올림픽은 연금 받으려고 나가는 거 아니었어?"
"아 이 새끼. 운동하는 애들이 거기까지 머리가 뛰겠냐고."
"그럼 진짜로?"
"뭐 스포츠 정신을 내가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생각해 봐."
4년에 한번 짧은 시간 지구인의 축제가 열린다.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있는 공간엔 낭만이 있다.
올림픽이란 자체만으로 메리트가 있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는 땀과 열정은
"사랑이구나... 사랑을 하는거야."
"그렇지."
"심지어 외국일 것이고..."
"모든 선수들에게 올림픽은 외국이지. 사람이 개방적이게 된다고."
"와... 그렇게 듣고보니 올림픽 대단하네."
"전체 참가자 가운데 메달 따는 선수는 10%도 안 되는데, 왜 다들 올림픽 나가려고 피 땀 흘리고 고생하겠냐."
"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
태윤이나 정석이와 다를 바 없이 우리도 머리에 든 거 없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올림픽이란 단어는 사촌 형, 알랑드롱. 그리고 호나우딩요를 집어 삼키고 있었다.
인간의 외모는 얼굴이 전부가 아니다. 강한 육체도 외모다.
역도 선수의 넓은 가슴과 허벅지 근육은 황소 같은 매력이 있다.
배구 선수의 큰 키와 팔 다리는 새랭게티를 우아하게 거니는 기린과도 같다.
육상 선수의 복근. 수영 선수의 어깨.
"리듬 체조 존나 이쁘잖아."
"오..."
"러시아 선수들. 우크라이나."
"..."
좋아하던 여자애가 어느 순간 성인이 되는 것을 보면서, 사랑이 아닌 섹스로 모든 감정이 집중 된 나에게 리듬 체조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이상의 논리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
"남수 말이 아주 구라는 아니구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이 열렸다.
하지만 냉전시대의 갈등에 따라 서구권 국가들이 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았고, 다음 84년 LA올림픽엔 소련쪽 동구권 국가들이 이에 맞서 불참을 선언한다.
반쪽짜리 올림픽을 치러내는데 질려버린 IOC위원회는 88년 서울 올림픽에 양측을 설득하고 나섰고.
한국의 경제 문화 모든 것이 집중된 88년 서울 잠실 올림픽 주 경기장엔 당시 가장 많은 국가가 참가하여 지구촌의 대 축제가 벌어졌다.
그리고 한국 올림픽 위원회는 고국을 찾아준 외국인 선수들에게 큰 선물을 나누어 줬으니.
"이때부터 콘돔을 나눠줬구나..."
그 숫자가 자그마치 8500개.
남수의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올림픽 선수촌엔 사랑이 있다.
보름간의 축제. 지구촌의 사랑. 동방예의지국마저 집어 삼키는 개방감.
역사는 이어진다.
88년 8500개의 사랑은 계속되는 올림픽에 힘입어 마지막 2000년 시드니에선 그 숫자가 자그마치 90000에 이른다.
"..."
기념으로 가져가는 놈들도 있었을 거야.
혼자 끼워보고 자위하는 놈들도 있었겠지.
그래도 9만이다. 콘돔 9만개가 뿌려졌다고.
"올림픽 관련기사는 IOC오피셜이겠지...?"
내 이름은 구마하.
나의 성을 걸고 9만개의 사랑 가운데 내 한 자리 없겠는가.
"하하하! 골 때리네. 어? 마하야 너 어디가냐?"
"운동."
"이 시간에?"
TV를 보고있는 형을 지나쳐 아파트를 빠져나와 달렸다.
땀이 흠뻑 젖을 때까지 뛰고 또 뛰었다.
"후욱 후훅!"
할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어!
올림픽만 나가면 나도 할 수 있어!!
얼굴이 다가 아니야.
콘돔이 9만갠데 잘생긴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라고!
"하하하! 하하하하!!"
태극마크도 금메달도 아닌.
오직 성욕 하나 만을 위해 나는 꿈을 품고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