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가문의 비밀. (2)
열 두 살 띠동갑 우리 형. 구마윤.
어릴 때부터 나에게 형은 아버지이자 어머니이고 유일한 가족이었다.
그런데도 나와는 다르게 참 잘생긴 측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마하야. 너 요즘 야한 것만 생각나고 그러지?"
"..."
"자위는 해?"
아니다. 이 인간은 나의 친형이 아니야.
우리는 원래 남인데, 어쩌다 형제가 된 관계로 오늘에 다다랐을 거야.
제정신인가? 어떻게 대놓고 물어보지??
"아 뭐래! 갑자기!!"
"부끄러워 하지말고."
"나 그런 거 안 해!! 내가 형인 줄 알어!"
정석이가 동생이랑 야동 공유한다고 했을 때 웃지 말고 대처방안을 들어둘 걸.
몸은 찝찝하고 마음은 불편한, 참으로 난감한 대화가 아닐 수 없어 버럭버럭 정색하며 빨리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데.
"괜찮아. 우리 집안은 원래 음기가 쌓일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아. 형!"
"마하야. 우리는 한국사람이 아니야."
"어?"
맞다. 집안의 비밀을 알려준다고 했었지? 딸딸이 얘기에 정신이 나갔었네.
"우리 고향은 곤륜. 정확하게 말하면 이 시대 사람들도 아니야."
나는 섹스를 하고싶어. 그래서 올림픽에 나갈거야.
친구들에게 직접 한 말이지만, 나도 제정신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해야만 하고, 절박하게 도전해야 그나마 사람다운 경험(?)을 치룰 수 있으니까.
그런데, 왜 우리 형이?
생긴 것도 문제없고 돈도 적당히 버는 사람이 정신빠진 이야기를 하고있지?
"그게 뭔데?"
"너랑 나는 무림에서 태어났어."
형 이야기는 이러했다.
우리는 원래 구파일방 중 하나라는 곤륜파에 속한 가문으로 아버지가 극강의 무공을 연마해 편안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단다.
"그러던 어느날. 적들이 쳐들어 왔어."
"..."
"멸문지화를 피하기 위해, 아버지는 가지고 계신 모든 무공을 쏟으셨고 그렇게 너랑 나는 차원을 넘어서"
"형. 나 씻는다."
"너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일이야."
"팬티 그냥 세탁기에 넣어도 되지?"
"마하야. 넌 기억 안 나겠지만, 난 모든 일을 직접 겪었어."
아무리 생각해 봐도 헛소리를 할 사람은 아닌데...
심각한 얼굴로 이상한 말을 주절주절 꺼내고 있으니 걱정도 들고...
"마하야. 침착하게 앉아서 들어 봐."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무림이 뭔데? 요즘 가게에서 중국 드라마 봐?"
"후우."
"씻는다. 아 땀 나서 되게 찝집하다고."
아무리 가족이래도 믿어줄 게 있고 아닌 게 있다.
베란다로 가 빨래를 벗고, 팬티만 챙겨서 씻으러가는데, 형이 거실에 정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형..."
"..."
화난 것 같은 모습으로 무겁게 정좌를 하고 있으니 곤륜이니 무림이니를 떠나서 걱정되기도 하고 무섭기도해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뭐... 뭐하는 거야...?"
정좌 자세로 앉아있는 형의 몸이 천천히 둥둥 떠오르기 시작했다.
"뭐... 뭔데! 왜 떠있어??? 내려와!!"
진짜 떴다. 사람이 공중에 떴어. 내가 봤어.
10여초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형은 분명히 허공에 몸을 띄웠다.
"후우우-"
긴 숨을 내뱉음과 동시에 천천히 거실로 내려와 앉는 형.
너무 놀랍고 신비로워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뭐지? 방금 대체 뭐였지??
한참을 눈만 껌벅 거리고 있자, 밖에서 두어시간 전력으로 뛰고 온 나보다 형이 더 뻘뻘 거리고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봤지."
"바... 방금 뭐... 뭐 한 거야?"
"무공술."
"..."
"난 단전이 파괴되어서 내공운행이 어려워. 그래서 이게 한계지만"
"단전이 파괴 돼?"
배꼽 아래를 쳐다보고 있으니 형은 씩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무튼, 내가 너한테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믿겠지."
"믿는다고 해도... 어느 정도여야..."
"마하야. 우리는 원래 무림인이야."
***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냉수 한 사발을 들이키고 다시 마주 앉았다.
"그럼 티벳인가?"
"응. 요즘엔 그렇게 불리고 있지."
멸문지화를 피해 차원을 돌파한 우리 형제.
형도 요즘 시대의 지도와 기술을 바탕으로 찾아보니, 티벳 북부에 위치한 곤륜산맥 어딘가가 우리의 고향이 있던 곳이란다.
그럼 찾아가면 되지 않느냐 하니, 우리가 태어난 시대는 현대의 공간이 아니기에 가도 가족을 찾을 수 없을 거란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우리는 티벳인의 먼 선조에 가까울 것이라 했다.
"...그럼 한국은 어떻게 온 거야?"
"후후후. 고생 많이 했지."
우리 형 구마윤은 어린 나이에, 더 갓난 애기인 나를 안고 참으로 많은 고생을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소문을 듣게 되었는데, 그것이 탈북자란 사람들에게 한국이란 나라의 국적을 준다는 말이었다.
"탈북...?"
"너도 그렇고, 나도 너무 어리고. 거친 세상에서 살아남자니 아무래도 안정된 생활이 필요할 거 같아서."
"무림에 이어서 이번엔 탈북자라고??"
가끔 가게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공무원 같은 사람들이 있는데, 공짜 밥 먹으러 오는 구청직원인줄 알았더니 그게 국정원이었구나.
뭐 거짓 탈북자라 한들, 형도 어렸고 나는 갓난 애기라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말로 얼버무리고 넘어갔다는데, 와 오늘 밤 대단하네. 혜정이가 남자친구랑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는 모습은 아무것도 아니구만...
"그럼 내 이 좆같은 이름도 그래서 그랬던 거야?"
"하하하. 아무튼, 마하야.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라."
"또 뭐가 있어?"
그동안 숨겨왔던 집안을 알려준 건 다른 게 아닌 나를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란다.
"강해진다고?"
"운동 할 때마다 뭔가 좀 다른 게 느껴져?"
"아니. 아직..."
"아마, 혈이 닫혀 있어서 그럴거야."
"혈이 닫혀?"
"마하야. 너의 몸은 아직 깨어난 게 아니야."
알고보면 형 여자친구가 외계인었다 해도 이상할 거 없는 마당이라, 형이 방으로 건너가 들고 나온 꼬질꼬질해 보이는 책이 그리 특별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이건 또 뭐야?"
"우리 가문의 비서."
곤륜의 무공은 오행에 기반을 두고있고, 내가 기억하지 못한 아버지는 젊은 시절 무당파에서 수련을 하여 음양에도 능통한 기운이 있으셨단다.
이 책은 그런 아버지가 자신의 모든 경험을 기록해놓은 것이었다.
"음양오행이네..."
"세상의 이치지. 잘 알고 있구나."
"...학교에서 배웠거든."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하나 쓸모 없다고 생각했는데, 도덕 시간에 배운 동양철학이 우리 집안의 근본이었다니...
형이 들려주는 아버지는 무공의 극치를 깨달으신 분이셨단다.
음양오행이란 세상의 이치를 담고 있기에 아버지는 무공의 극에 다다르며 천지와 하나가 되었고, 시간과 차원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셨단다.
"아니 뭔 신도 아니고..."
"아버지는 거의 신선이었지. 아마 그래서도 적들의 표적이 되신 게 아닐까 싶어"
"..."
"아무튼, 이 비서를 다 깨우치면 나도 아버지 같은 힘을 얻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지만."
올바른 스승 없이 혼자 무리하게 무공을 연마하던 형은 단전이 파괴되어 내공을 모을 수 없게 되었단다.
그래서 아까같은 무공술도 겨우 10여 초 펼치는 게 전부라는데.
"그것만 해도 대단한 거 아닌가...?"
"마하야. 집중해야지."
"어. 어."
내공이 파괴되었지만 형은 그래도 어릴 때 고향의 기억과 책에서 본 지식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단련시켰다.
스포츠의 근본은 체력단련이다.
과거에 무공을 연마하는 것과 현대의 운동은 같은 것이었다.
"너한테 아무것도 해준 게 없었는데..."
"에이...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해."
"이걸로 강해지면 좋겠다."
마침 팬티만 입고있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란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기마자세를 하고 왼손은 단전에 오른손을 머리 위로 올리란다.
"뭐하는 거야?"
"지금부터 몸에 막혀있는 기혈을 열거야."
"왜?"
"그러면 강해질 수 있어."
"형 다 좋은데, 나 좀 씻고 하면 안 될까? 몸 진짜 장난 아니게 찝찝한데."
"됐어. 어차피 더 더러워 질 거니까."
"어?"
형의 얼굴이 걱정어린 표정으로 변했다.
"참아야 한다. 알겠지?"
"왜? 뭐 하는 건데?"
"간다. 마하야 넌 할 수 있어."
그리고 형이 내 배에 손바닥을 얹더니 뜨거운 느낌이 전신으로 퍼져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거?"
"조용히!"
"흠."
"가만히. 눈을 감고 기가 정수리까지 가는 걸 느껴."
불편한 자세를 취한 상태에서 가만히 형의 말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그래. 느껴진다.
뭔가 뱃속을 꿀렁꿀렁 타기 시작하더니 가슴이 답답해지고 목이 뜨거워지며 코와 입으로 열기가 빠져나오는 것 같다.
"참어. 뱉으면 안돼."
"흡. 흐읍. 흡!"
인터넷에서 체력 강화엔 인터벌이란 말을 듣고 혼자 운동장에서 해봤는데.
가만히 있어도 마치 전력질주를 하는 것 같이 호흡이 가빠지며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아직. 아직 더."
"으읍. 으으읍!!!"
"마하야. 다시 한번 묻는다. 너 진짜 죽을 각오 되어있는 거지?"
말을 못하니 고개를 끄덕이고 싶은데, 그조차 목에 천근을 걸어둔 것 같아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너는 이제 죽었다 깨어날 거야."
"..."
"생사현관(生死玄關)의 길을 뚫어내고 다시 만나자."
그 순간. 눈이 퍽 하고 뜨였다.
코와 입에서 물이 줄줄 흐르기 시작하는데, 뱃속에 있던 대변과 소변까지 다 쏟아지는 것 같았다.
"혀어어..."
"잘했어. 멋있다 내 동생."
그리고 기절해 버렸다.
***
보름 간 쓰러져 있었다.
형은 가게 문을 닫고 날 치유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순간 순간의 기억만이 스쳐갔다.
솔직히 말하면 누군가 내 몸을 칼로 난도질하는 것 같아 딱히 뭘 기억하고 자시고 할 여지도 없었다.
"으윽 형..."
"아프지. 알어."
"아... 이거 뭐야..."
"..."
"이건 좀 너무하잖아."
혼자 수련하다 기혈이 뒤틀렸지만, 형은 실패의 과정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본래는 일갑자 이상의 수련을 거쳐야지만 되는 건데."
"그냥 한국말로 해. 이제와서 무슨..."
"60년 이상은 수련을 해야 되는 거라고."
"와 엄청 빡시겠네..."
"그러니까 지금 몸이 아프지."
말 그대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었다.
어려서부터 체육 영재가 되어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애들을 지금이라도 따라잡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너가 진지하게 뭔가를 하는 건 처음이라."
"근데... 너무 아퍼... 진짜로."
"참자. 마하야. 환골탈태가 시작되고 있어서 더 그럴 거야."
"환골탈태?"
"응."
본디 곤륜 사람들은 다들 훤칠한 체구에 맑고 흰 피부를 가진 걸로 유명하단다.
미남 미녀가 많아 시기와 질투가 없는 그곳을 누군가는 신선들이 사는 곳이라 표현하기도 했단다.
"이 과정만 버텨내면 넌 그 어떤 선수에 뒤지지 않는 육체를 가질 수 있을 거야."
"형... 잠깐만. 원래 다들 잘 생겼다고?"
"어."
"근데 나는 왜 이래...? 나도 곤륜의 피를 이어받았다며?"
"넌 태어나자마자 바로 이곳으로 건너왔잖아."
곤륜에서 맑은 공기와 음식을 먹으며 유년기를 보낸 형과 다르게, 나는 어려서 고향을 떠나 독기 가득한 현대에서 자라는 바람에 몸의 혈기가 여기저기 막혀 있단다.
역시, 내가 못 생긴 건 세상이 문제였던 거야. 빌어먹을 세상 같으니라고.
"나도 그럼 형 같이 멋있어 질 수 있는거야?"
"당연하지."
"좋아. 견디겠어."
잘려나가던 몸이 다시 이어 붙고.
가만히 누워있던 심장이 혼자 미친 듯 뛰면서 숨을 헐떡이더니 또 금새 사그라 들었다.
살면서 단 한번도 느껴본 적 없는 고통 속에서 나는 아픔을 이겨내고자 머릿속에서 주문같이 몇 가지 단어만 되내이고 또 되내였다.
리듬 체조. 러시아. 그리고 우크라이나...
"으윽!!"
그럼에도 참을 수 없는 통증에 혈변을 누고 고통에 몸부림 치다 오물을 뒤집어 쓰는 순간이 있었다.
더는 안 될 것 같다는 아픔 속에선 우크라이나고 올림픽이고 레닌이 붉은 깃발을 휘두르며 손짓을 하는 모습에 꿈도 뭣도 다 포기할까 했지만.
"흐으윽. 우우우..."
그럴 때마다 한번 더 서글프게 울면서 참아본다.
질질 짜는 두 눈 저편, 레닌의 붉은 깃발 너머에는 고통이 아닌 건강하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타이트한 운동복을 입고 긴 머리를 흩날리며 미소를 짓고 있으니까.
올림픽이여. 지구상의 축제여...
"에..."
"뭐?"
"세에..."
"마하야. 뭐라고 하는 거야?"
그래. 이것이 올림픽이다.
참아! 견뎌! 넌 할 수 있어!!!
"세에에에에에에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