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땀은 노폐물을 배출해 피부를 맑게 해준다. (1)
"별로 달라진 건 없는 거 같은데."
그날 이후 근 한달이 되어서야 겨우 앉아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거울을 보았다.
잘생겨졌나 싶었지만, 못 먹고 뒤틀린 덕분에 배와 얼굴이 홀쪽해진 것 말고는 바뀐 건 없는 것 같다.
"마하야. 무공은 원래 수련을 쌓아야 하는거야."
"뭐야 그게. 그럼 나는 왜 그런 고생을 했어."
설명을 해주는데, 무공으로는 이해가 안 되어 내 나름대로 현대인의 감각으로 해석을 해보자면. 쉽게 말해 내 몸은 지금 용량을 늘린 업그레이드를 거쳤다.
인간의 내공이란 외공과 비례하여 강인한 육체에 강인한 내공이 쌓이기 마련.
그걸 나는 먼저 내공의 한계를 최대치로 넓히고 이제 외공이 내공에 맞춰 따라오게 될 거란다.
"하드는 높은데 램이 딸리는 건가? 그 반댄가?"
"뭐 어떻게든 보면 좋은 거지."
60년이 거쳐야 얻을 수 있는 경지를 한 달 만에 해냈다.
이제부터 내 몸은 훈련을 하면 할수록 강해지고 육체도 그에 맞게 변해 갈 것이란다.
"진짠지 뭔지..."
"기분은 어때?"
"모르겠어. 그냥 배고파. 그것도 진짜 엄청나게..."
"그래. 뭐든 먹자. 먹어야 힘이 나니까."
학교는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갑자기 큰 병이 생기는 바람에 수술했다고 둘러댔단다.
어쩐지, 이놈들이 어떻게들 알고 너 괜찮냐? 살아있냐? 같은 문자를 보냈나 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뭐. 딱히 틀린 말도 아니긴 하네. 전신수술 한 거랑 같으니까."
"그렇지. 그래도 참 우리 동생 대견하다."
"아 됐어..."
"부모님이 보셨으면 정말 좋아하셨을 건데."
"..."
평생을 모르고 살아서 큰 상관이 없었는데, 갑자기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오니 형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부모님은 돌아가신 거지?"
"몰라. 하지만 난 살아계실 거라고 믿어."
"...적들이 왔다며?"
"우리를 멀리 보내셨으니까. 아버지도 원 없이 힘을 써서 적들을 물리치셨을거야."
형 말을 곧이 곧대로 들어보면, 차원의 문을 열 정도의 힘을 가진 아버지가 그리 쉽게 쓰러지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된다.
단, 적들을 물리쳤다면 왜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을까... 그런 의심이 들지만.
형의 희망을 굳이 내가 꺾을 이유는 없으니 쓸데없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아무튼, 형. 나 그럼 내일부터 다시 학교 가는 거지?"
"응."
"그럼 운동은 해도 돼?"
"당연하지! 너 하고 싶은대로 원 없이 해도 돼!!"
앞으론 훈련을 하면 할수록 강해질 거라며 나보다 더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주는데.
하늘을 나는 사람이 그렇다고 하니 믿기야 하겠지만.
근데. 훈련하면 강해지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 뭔가 크게 변하는 게 있을까?
***
"어? 구마하!"
"야. 너!!"
교복이 하복으로 바뀌고, 한 달만에 찾아간 학교에서 내 친구들을 떠나 반 친구들까지 다가와 난리였다.
"그러니까 너는 갑자기 무슨 운동을 한다고."
"야. 올림픽이 애들 장난이냐?"
물론, 한달 이란 시간은 충분히 긴 시간이고, 그 시간동안 내 의지와 꿈은 이제 전교생이 다 아는 가십 거리가 되어 있었다.
그래도 우정이 있긴 있는가.
"야. 섹스 이야기는 일부러 안 한 거냐?"
"너도 가오가 있지."
"우리도 그건 지켜주자고 했었어."
"그냥 올림픽에 나가고 싶다고 하는 걸로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라. 굳이 뭐 거기까지는."
"그래. 고맙다 새끼들아."
"대체 뭔 짓을 했길래 수술까지 해?"
"어이고. 이 븅신아..."
"쯧쯧 얼굴이 반쪽이 됐네."
한달 만에 보는 태윤이 정석이 남수는 여전했지만, 친구들이 보는 나는 변해 있었다.
하나같이들 얼굴이 홀쭉해서 그런가 전보단 조금은 사람같이 보인단다.
"진짜?"
"어. 볼이 빠져서 그런가. 어깨도 그렇게 안 작아 보이고."
"원래 못생김이 100이라면 지금은 80정도?"
"그래? 난 똑같은 거 같은데."
남수와 정석이가 그러는데, 태윤이가 가만히 지켜보다 물었다.
"너 혹시 성형했냐?"
"와 오랜만에 들으니까 이런 개소리도 되게 반갑다."
"아니. 진짜로 뭔가 조금 변한 거 같은데?"
"꺼져 병신아."
"어! 어! 야. 정석아. 너 일로 와서 서 봐."
태윤이가 날 일으키더니 정석이와 내 키를 재본다.
그리곤 지가 맞다는 듯 힘 찬 목소리로 말했다.
"봐 봐! 원래 이 새끼가 더 작았는데 지금 정석이랑 키 똑같잖아!"
남수도 어? 진짜네? 라면서 손을 반듯이 펴 머리를 맞대보고 있었다.
"무슨, 다시 재 봐. 니네가 잘 못 봤겠지."
친구와의 우정과 키는 상호작용하지 않기에, 내가 자기를 따라잡았다는 말에 정석이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데.
"다리 들지마."
"가만히 좀 있으라니까."
"아 이 새끼가 자꾸 엉덩이로 미니까 그러지!"
"나 가만 있었는데."
"그러니까. 마하 가만 있었는데."
"쪼잔하게 굴지말고 좀 가만히 있어 봐."
공정하고 엄격한 눈대중으로 검사한 결과 아직은 정석이가 조금 크지만 거의 비슷 하단다.
"마하야. 너 키 몇이었지?"
"170..."
"무슨 니가 170이야. 168잖아!"
"닥쳐. 그건 중3 때야!"
태윤이가 알고 있던 키는 2년 전이다.
그러니 지금은 170이 됐겠지만, 중요한 건 177이라는 (실제 175) 정석이와 내가 비슷해졌다는 것이다.
"우와~ 한 달 사이에 사람이 이렇게 자랄 수도 있구나."
"역시. 성장기의 청소년은 잠을 잘 자야"
"아. 다시 재보라고! 그리고 난 쓰레빠 신었는데 이 새낀 운동화 신고 있잖아!"
환골탈태라는 게 진짜 벌어지긴 벌어졌구나.
정확하진 않아도 5~6cm가 훌쩍 자란 거 같다.
그럼 형 말도 거짓은 아닐 거야.
다음 쉬는 시간 나는 체육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어. 왜?"
"저 6반 구마한데요."
"응. 야 근데 너 좀 변한 거 같다?"
한 달만에 모습을 드러내자 체육 선생님도 좀 바뀐 거 같다고 알아보시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저. 선생님 혹시 체대 나오셨어요?"
"그렇지. 왜?"
"저... 올림픽은 어떻게해야 갈 수 있어요?"
"왜? 운동하려고?"
"네."
체대도 아니고 바로 올림픽이라니 선생님은 호탕하게 웃어보이시지만 그래도 훈훈한 미소를 보여주셨다.
"종목은 뭔데?"
"육상이요."
"육상이라. 그럼 나보다 한 선생님을 찾아가 봐."
"한 선생님이요?"
"어. 난 유도 출신이라 육상은 잘 모르거든."
한상률 선생님이라고, 남자 반이 아닌 여자 반 체육을 담당하시는 분이 계신다.
국가대표는 못 됐지만 대학까지는 선수로 활약하셨던 분이라 그쪽이 더 잘 아실 거라 하셨다.
한 선생님은 체육실이 아닌 교무실에 계셔서 따로 찾아갔다.
"올림픽?"
"네."
"흠. 운동을 했었어?"
"아니요. 그냥. 목표로 잡고 있어요."
"기록이 얼마나 되는데?"
"14초 정도..."
"안돼. 그정도 뛰어선."
14초면 느린 건 아니지만, 고등학생선수로 두각을 나타내려면 적어도 12초 안으로는 뛰어야 한단다.
"12초요."
"마하라고 했지? 이름 멋있다 너."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운동이란 게 의지만 갖고 되는 게 아니야."
12초라... 확실히 빠른 숫자다.
일단 12초는 만들고 나서 다시 선생님을 찾든가 해야겠다.
***
그날 밤 또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을 찾아왔다.
"아으으. 뻐근해라."
환골탈태를 떠나서 근 한달만에 운동을 시작하니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천천히 준비운동을 마치고 스트레칭을 해줬다.
"와 땀이 안 나네."
먼저는 준비운동만 해도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는데, 지금은 땀은 커면 오히려 몸을 쭉쭉 펴주니 기지개를 피듯 등이 시원해지고 어깨가 부드럽게 풀리는 기분이다.
"후우. 보자. 그럼 뛰어볼까."
내가 준비한 운동 루틴은 기본운동 다음에 운동장 열 바퀴를 달리는 것이었다.
체계적인 운동법을 모르니, 그냥 TV에서 보던 걸 흉내내는 것에 불과하지만 한달 전 뛸 때는 이것만 하더라도 전신에 힘이 쭉 빠지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다르긴 다르다.
"바람이 시원하구나."
한 바퀴. 마치 산책하듯 몸이 가뿐한 기분이었다.
다섯 바퀴를 돌자 그때서야 조금 숨이 차오르는 것 같지만, 참다보니 그것도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아홉 바퀴가 되어서야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하고.
열 바퀴를 마쳤을 땐 깊게 숨을 내뱉어주니, 두근 거리던 심장이 천천히 내려 앉았다.
"오~?"
변화는 호흡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다리도 가볍고 전신이 그냥 깃털같이 느껴진다.
내 힘이 내 몸을 지탱하는데 있어 무리란 없는 것 같다.
이것이 내공이란 건가.
아직 몸이 완전치 않음에도 전신에 퍼지는 이 넘치는 에너지란 대체...
제자리 점프를 뛰었더니 트램블링에 올라온 것처럼 몸이 방방 날아 올랐다.
다리에 충격도 느껴지지 않는다.
확실히 다르긴 다르구나.
전에도 나름 운동은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기와 혈이 막힌 상황에서 몸짓이었다니.
와 기쁘면서 갑자기 억울하네.
참으로 모질고 고됐던 십팔년이었다. 어떻게 보면 나도 독한 놈이야.
"구마하. 이제 과거와 빠빠이 하는 거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멋진 미래를 바라보듯. 찬란한 순간을 향해 두 눈 바짝 힘을 올려 반대 방향을 보았다.
"오케이. 뛰어보자."
"야!!"
끼이익-!
뭐야? 갑자기???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초등학교 교문 근처로 어슬렁 어슬렁 그림자 세 개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 뭐야?"
"이 새끼 역시 여기 있었네."
친구들이 찾아왔는데, 보자마자 지랄지랄이다.
"넌 씨발 일어난지 며칠이나 됐다고!"
"마하야. 그만해. 이제."
"뭐야? 나 여깄는 건 어떻게 알았어?"
정석이 친구가 교무실에 있다 내가 한 선생님을 찾아가 올림픽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그 바람에 녀석들이 혹시나 싶어 형네 가게로 갔고. 여기있을 거란 말에 따지러 왔다.
"새끼야. 섹스도 섹스 나름이지."
"그러니까. 너 그러다 뒤져 병신아."
"근데 왜 너네 형은 너 안 말리고 있냐."
와 이 새끼들 은근 우정이 진한데?
친구들이 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일일이 설명해주기도 복잡하고 나도 어떻게 다 전달을 해줘야 할지 모르는 이야기라 괜찮다고 하는데.
"마햐야. 진짜 맹세하는데, 2년 뒤 빡촌에서 젤 예쁜 애로"
"태윤이 저 자식은 아직도 빡촌 타령이네..."
"죽을 바에는 빡촌이 낫지. 애들 말 들어."
"괜찮아. 새끼들아. 나 운동해도 된다니까."
"너 병이야 이거. 성욕에 미친 거라고 지금."
"남수야. 니 여자친구들 중에 못생긴 남자 페티쉬 가진 애들 없냐?"
"아 진짜 괜찮다니까 그러네."
남수도 물었다.
"수술 했다며."
"..."
"애들 말 들어. 몸이 반쪽이 됐는데 무슨 운동이야 운동은."
"대신 키 컸잖아."
"야. 우리라고 너 응원 해주기 싫어서 이러냐."
후우. 안 되겠다. 이 자식들 진심이야.
깊은 우정을 거부할 수도 없고, 뛰고 싶은 열망도 누를 수 없다. 적당히 둘러대야지.
"나 수술 한 거."
"어."
"그거... 포경수술이야."
세 친구의 얼굴이 멍하게 변했다.
"아직 안 했어?"
"포경을 왜 지금 해? 방학 때 안 하고?"
"...그냥. 어쩌다 보니까."
"딸 치다 찢어졌구나."
"..."
"그게 찢어져?"
"그렇다고 들었어. 몰라 나도 정확한 건."
그래서 키가 컸나? 한달을 못 해서? 너도 좀 참아 봐.
태윤이와 정석이가 둘이 쑥덕쑥덕 거리는 가운데, 다시 운동장을 뛰려고 몸을 돌려 세우는데.
애들이 가만히 있던 남수를 향해 물었다.
"근데 얘는 왜 포경 이야기 나오니까 조용하냐?"
"뭐? 아 뭐!?"
"너 안 했구나."
그 말에 나도 운동을 멈추고 남수를 보았다.
마치 도둑질이라도 걸린냥 애가 당황하고 있었다.
"노포였냐?"
"아 뭐 씨발놈들아!"
"와. 남수가 욕을 다 하네."
"그러게. 걸리기 싫었던가 본데?"
"아 씨발 뭐! 원래 안 하는 거야. 하는 게 비정상이라고!!"
잠깐의 혼란을 딛고 친구들은 더는 나의 운동을 말리지 않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래. 해라. 누가 말리냐. 자위하다 살까지 찢어먹는 놈인데..."
"딱하긴 하네. 근데 뭐 봤길래 그래? 공유 좀 해. 혼자 보지말고."
"남수야. 나 기록 좀 재 줘."
"..."
"괜찮아. 포경 안 한게 뭐 어때서 그래."
"닥쳐 씨발..."
불만스런 얼굴로 핸드폰을 꺼내들던 남수가 욱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보며 말했다.
"병신들. 아무것도 모르는 새끼들. 남자 성감대는 다 껍질에 붙어있는 것도 모르고."
"진짜?"
"구라치지마 새끼야. 괜히 지 쫄리니까 지어내고 있어."
"나중에 가서 두고보자. 누가 맞나."
후우. 아무튼 2004 아테네 올림픽까지는 이제 1년.
올림픽 참가기록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선 100미터 12초의 벽을 끊어야 한다.
"준비됐어 마하야?"
"후우. 후우우!"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