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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기로 가버렷-7화 (7/401)

〈 7화 〉 땀은 노폐물을 배출해 피부를 맑게 해준다. (3)

* * *

어제 밤. 형에게 물었다.

"형. 경공술이 그거지? 빨리 달리는 거?"

"경공술이 무작정 빨리 달리는 건 아니지."

"형도 할 줄 알어?"

경공술은 내공이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이라며 단전이 파괴된 형은 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는지 아냐고 물으니 이론으로 설명하긴 어렵다는데.

"마하야 귀 이렇게 할 수 있어?"

"귀?"

형이 귀 끝을 움찔움찔 움직이는 걸 보여줬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거잖아."

"이건 어떤 원리로 되는 건지 설명할 수 있겠어?"

"글쎄? 머리 근육으로?? 피부를 당겨서?? 잘 모르겠네."

"무공도 똑같애. 되긴 하지만, 뭐라 설명하긴 어려운 거야."

손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다리는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는가.

우리 몸이 자연히 행하는 것을 뭐라 표현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공도 같은 것이란다.

"오~ 뭔가 기품있어 보이는데."

"알아서 되는 게 아닌 반복되는 연습 끝에 자연히 익히게 될 거야."

그래서 무공을 연마할 땐 주로 옷을 벗고 있는다.

자연과 맟닿은 상태에서 스스로를 온전히 느끼는 것.

피부의 호흡. 땀방울이 흐르는 감각.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을 바람을 통해 알게 되면, 작은 것 하나 느끼고 다듬어 전신에 기가 둘러지고. 나중엔 풀잎을 밟아도 땅을 디딘 듯 가볍게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단다.

"와 그럼 금메달은 문제도 아닐 건데."

"쉽게 되는 건 아니니까. 가볍게 보지말고 꾸준히 노력해 봐."

***

다시 학교 운동장. 호루라기 소리를 들으며 출발.

양말의 얇은 천 너머 거친 흙의 촉감이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이게 형이 말한 몸이 먼저 자연을 느끼는 감각인가?

그저 느낌이 닿는대로 다리를 번갈아 뛰어 마주하게 된 기록.

"11.08요!?"

"어..."

"선생님. 잘 못 재신 거 아니세요?"

"아니야. 진짜야... 너도 봐 봐."

한상률 선생님이 멍한 표정으로 초시계를 보여주셨다.

뒤늦게 다가온 친구들도 11초라는 기록에 동시에 남수를 돌아보는데.

"이 새끼 어제는?"

"뭐! 아니 14초 맞았잖아! 난 똑바로 쟀어!"

차이야 있겠지. 어제는 출발자세도 어정쩡하고 신발이나 준비운동 모든 게 오늘과는 달랐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이정도 기록이면.

"와 근데 11초면..."

"선생님. 빠른 거죠?"

"빠르지... 마하야. 너 숨 괜찮니?"

"네. 뭐. 괜찮은 거 같애요."

"그럼 한번만 더 뛰어보자. 나도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아서."

선생님까지 다 같이 호들갑스런 모습에 집에 가던 학생들이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친구들과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오는데 애들이 나보다 더 난리다.

"와 이 새끼. 장난 아닌데?"

"마하야. 보이냐? 여자애들이 지금 널 보고있어."

"시끄러. 뭔 상관이야..."

"아니 보라고 새끼야. 저기 혜정이잖아."

혜정이라는 말에 고개를 들자, 진짜로 애가 멀리서 친구들과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마하의 꿈은 올림픽이 아닌 학교에서 벌어질지도."

"오늘이 그날인가. 10년만에 구마하가 이혜정과 인사를 나누는 날."

"닥치라고 좀..."

친구들은 스탠드가 아닌 운동장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다시한번 달릴 준비를 위해 몸을 쭉 쭉 펴주는데.

"이 새끼 지금 뭔가 의식하고 있는 거 같은데?"

"뭐야 아까 준비운동 끝난 거 아녔어? 왜 갑자기 똥폼을 잡어 병신아."

"남수야... 애들 좀."

"좀 나와. 그만 놀리고."

대충 분위기가 수습되자, 선생님도 멀리 큰 소리로 다 됐냐고 물으셨다.

손을 번쩍 들어 신호를 보내고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를 갖추는데.

"파이팅. 파이팅!! 작살 내버려."

"10초 가자 마하야!!"

이러니 저러니 아무리 떠들어도, 응원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역시 좋은 거 같은

"그럼 혜정이도 널 다시 볼 거야."

"어머. 쟤 우리 아파트 사는 앤데. 지금 친구들한테 그러고 있을 걸."

병신들아. 제발 집중 좀 하자고...

그나저나 정말로 혜정이가 본다는 사실에 뭔가 집중력이 흔들리고 말았다.

아까같이 출발에 집중하지 못하고 달리는 것도 시원찮게 뛰고 말아 결과는 13초 대.

어제보단 확실히 빨랐지만 만족하긴 어려운 결과였다.

"뭐야? 너무 다르잖아."

"아니. 애들이 옆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 하잖아요."

"아깐 진짜 빨랐는데..."

선생님도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며 말씀하셨다.

"중거리는요? 중거리도 재보기로 하셨잖아요."

"너 800미터 맨발로 뛸 수 있겠어? 발바닥 찢어져 이 녀석아."

"전 괜찮은데."

"안돼. 오늘은 여기서 끝."

그래도 나름대로 합격점은 받았는가, 한 쌤이 올림픽에 참가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일단 국가대표가 되어야지."

"역시."

"선수 선발전을 치루고. 그러기 위해 종별대회든 전국체전이든 메달을 따야하고."

멀리있던 친구들도 신발과 가방을 챙겨들고 다가왔다.

"한번 생각해 보자."

"네."

"오! 선생님. 설마 마하 진짜로 올림픽 가는 거에요?"

"친구들한텐 잘 설명해주고. 난 교무실로 들어간다."

"네.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한테 인사를 꾸벅 건네고 친구들과 앉아 옷과 신발을 챙겨 신었다.

"뭐라고 그러냐?"

"진짜 나갈 수 있데?"

"시합을 먼저 나가야 된데. 국가대표 선수 선발전이라는 것도 치러야 한다 그러고."

"오~ 뭔가 그쪽도 나름의 체계가 있었구나."

"병신이냐? 그럼 국가대표를 아무나 시켜주게?"

아무튼, 진짜로 올림픽의 브라끈이 보이는 것 같은 마음이라 나름 흡족한 기분으로 하루를 마칠 수 있었다.

*  *  *

"우리 반 마하요? 글쎄요 크게 특별한 건 못 느꼈는데."

"그러세요."

한상률은 마하네 담임 선생님을 찾아와 물었다.

일시적이긴 하나 분명 기록은 기록.

근육도 발달하지 않은, 운동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학생이 이런 성과를 냈다는 건, 훈련 여하에 따라 10초도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아니. 10초가 뭐란 말이냐.

이 친구는 아직 10대. 선수의 최전성기 20대 중반이 된다면 잘하면 9초도...

9초는 동양인이 쉽게 밟을 수 없는 영역. 진정한 월드클래스 레벨이었다.

"운동에 재주가 있더라고요."

"안 그래도 마하가 얼마 전 학교 한참 빠졌거든요. 갑작스렇게 수술을 했는데."

살이 빠졌다더니 그것이 수술때문이었단 말인가?

그럼 지금도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는 말이 된다.

마하네 담임이 말하길, 잘은 모르지만 애가 갑작스레 운동을 시작하다 어디 이상이 생겨 한 달 가까운 시간을 학교를 못 나왔단다.

담임 된 입장에선 무리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데. 체육인이 듣기로는 참으로 기특하지 아니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아무도 눈여겨 보지 못한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몸이 망가질 정도로 자신을 던질 각오가 있는 학생.

그날 밤 한상률은 고민할 거 없이 그에게 찾아온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 상률이. 오랜만이다."

"뭐하냐?"

"그냥 있지. 왜?"

"주영아. 너네 육상부에 최고 기록이 몇 정도 나오지?"

이주영은 그의 대학 동기로 근처 학교의 체육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래? 11초도 있긴 있구나."

"있기야 하지. 잘하는 애 하나 있어. 전국은 어려워도 지역 정도는 인정받는 녀석이야."

"우리 학교에도 하나 나왔다."

"진짜? 너네는 운동부 따로 없잖아. 트랙도 없고."

"그러니까... 심지어 따로 운동한 적도 없는 애야."

"오우. 천잰가? 전학 보내려고?"

"미쳤냐!! 내가 키울거야!"

"하하하. 이 새끼."

"그냥 훈련 좀 같이 해볼 수 없을까 싶어 전화 해봤어."

체육인생 29년. 아직 포기는 이르다.

선수는 끝났지만, 코치가 남아있다.

구마하란 원석이 겸비한 재능과 각오를 다듬어 다이아몬드를 만들겠다.

"근데 잘못 잰 거 아니야? 운동하는 애들 아니고 고등학생 11초 흔한 게 아닌데"

"진짜로 11초 08이였어."

"정말이면 엄청난 재능인 걸"

"한번 데리고 가봐도 될까?"

"흠. 곧 주니어 선수권인데..."

시합 일정이 잡혀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존재에 선수들 컨디션이 깨질 게 염려스럽지만. 반대로 긴장감이 생길 수도 있으니.

어려운 고민 끝에 이주영은 한상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 한번 데리고 와 봐."

"고맙다. 다음에 내가 밥 살 게."

"이름은 뭐냐? 몇 학년인데?"

"구마하. 2학년."

"본명이야?"

"어."

"장난 아니구만. 이름도 마하야?"

*  *  *

친구들과 헤어지고 형한테 찾아와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진짜 배운대로 막 팍팍 뛰는데!"

"알았으니까 조용히 먹어. 이제 곧 있으면 손님들 올 시간이다."

"와 진짜 형. 맨발이 뭔가 달라도 다르더라."

몸이 바뀐 뒤로 식욕이 전보다 두 세배가 늘었지만. 오늘은 먹어도 먹어도 배 부르다는 걸 못 느껴 음식을 계속 들이붓고 있었다.

"근데 왜 이렇게 배가 안 차지."

"마하야. 뛰기 전에 순간적으로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고 그랬지?"

"응."

"명경지수(明鏡止水)에 돌입했었네."

명경지수는 맑은 거울과 조용한 물이라는 뜻으로 티 없이 맑고 고요한 심경을 나타내는 무공에 있어서 더 없이 순수하게 자신에 집중되는 상황이었다.

"그럼 내가 기를 쓴 거야?"

"아마도."

"와... 진짜 기라는 게 있긴 있구나. 그럼 국가대표도 별 거 아니겠는데?"

"까불지 마. 아직 그 힘을 깨닫고 운행 할 정도가 되려면 멀었어."

기를 썼든 뭐든, 내 안의 능력을 사용한 것이었다.

12초가 목표였는데, 11초란 결과를 내다니. 마음이 하늘로 솟구치는 것 같다.

이렇게 운동을 했다. 선생님한테 이렇게 배웠다. 너무 신이 나서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있으니, 형이 훈훈하게 웃으며 말했다.

"재밌나 보네."

"뭐가?"

"운동. 너 이렇게까지 뭐 할 때 신난 적 잘 없었잖아."

외모 뿐만 아니라 살면서 크게 두각을 나타낸 분야가 없었다.

공부도 그렇고, 노는 것도 그렇고. 뭘 해도 평균 이상이 되어본 적이 없는데.

그런 가운데 찾게 된 재능과 적성.

섹스를 떠나서 운동이 진심으로 좋아지고 있었다.

"어. 재밌어."

"그래. 열심히 하자. 그리고 슬슬 배 부르면 먼저 일어나. 나 장사 해야 하니까."

태극 마크가 아닌, 올림픽 선수촌에 입성하는 그날을 꿈꾸며 시작한 운동.

흐리게만 잡혀있던 꿈이 구체와 되는 기분에 몸과 마음이 더 없이 훈훈한 저녁이었다.

무엇보다 이 길 끝에는 나도.

"할 수 있어. 그래. 이번엔 진짜 할 수 있다는 기분이야."

누가 될 지는 몰라도 이성과 함께하는 시간.

야한 꿈을 꿔도 직접 경험한 게 없으니 상대가 나와도 직전에 꿈이 멈추고 만다.

하지만 될 거야. 선수는 외모가 아닌 실력으로 평가하는 세상이니까.

내일은 서점을 가볼까? 뭐가 됐든 내가 하는 건 무공이 아닌 스포츠니까. 스포츠에 관련한 이론과 공부가 필요할 거 같다.

식단도 중요하겠지. 형도 사람은 먹는대로 몸이 바뀌는 거라고 했었어.

다음 날 아침. 알람소리가 아닌 부푼 꿈에 눈이 번쩍 뜨여 학교로 출발했다.

이것저것 오늘의 일정을 구상하는 가운데 위에 올라가 있던 엘리베이터가 눈앞에서 멈췄다.

샴푸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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