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30화 (30/401)

〈 30화 〉 메달의 그림자 (1)

[기습적인 한파로 전국 곳곳에 동파 사고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취재에 임한성 기자입니다.]

"갑자기 추워지냐. 형네는 괜찮아?"

"맨날 일하는데 우리가 동파 될 게 뭐 있어. 아무 문제 없어."

"따뜻해서 운동하기 딱 좋았는데."

"근데, 마하야. 너..."

"응?"

"아니다."

"왜? 뭐가?"

"아니야. 요즘도 운동 열심히 하고 있냐고."

"뭐야 갑자기 싱겁게."

다시 멀뚱멀뚱 TV로 눈을 돌리는데 형이 허벅지를 주물주물 만져본다.

"아 어딜 건드려."

"너. 요즘 누구 만나는 여자친구 있지?"

"아니. 없는데."

"속이지 말고 있으면 있다고 얘기 해 봐."

"없어. 내가 누굴 만난다고..."

만나는 사람은 없다. 단지 하는(?) 사람만 있을 뿐.

그날 이후 최근까지 형만 없으면, 혜정이와 둘이 뭐에 미친 사람들마냥,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

근데 꼬리가 너무 길었나?

이렇게 들키는 건가?

조급함을 최대한 감추며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딱히 속이는 것도 아니잖아. 진짜로 걔가 내 여자친구는 아니니까.

"아 진짜 없어. 있으면 내가 형한테 그런 걸 왜 숨겨."

"아무리 봐도 아닌데... 혼자 이렇게 될 수가 없는데...?"

"없다니까! 뭘 보고 그러는데?"

"너 지금 니 몸에서 굉장히 안정적인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는 거 알어?"

"기운은 또 뭐야?"

"음양의 조화가 어우러져 있다고."

형은 단전이 막혀 내공운행이 어렵지만, 반대로 사람의 기운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단다.

그동안 양기가 넘쳐 흐르던 내 몸에서 최근 굉장히 고요하고 안정된 내공이 읽힌다고 해줬다.

"있으면 데리고 와. 형이 맛있는 거 사줄게."

"없다니까!"

"혹시 혜정이냐?"

"아니라고!!!"

*    *    *

"진짜로? 오빠한테 걸린 거 아냐?"

"아니야. 끝까지 아니라고 발뺌했어."

"그래도 안 믿으면 어떡해..."

"현실적인 얘기를 했지. 생긴 걸 보라고 걔가 나 같은 거 상대하겠냐고."

"그러니까 뭐래?"

"뭐. 그렇게 말한다면... 하면서 납득하던데."

"너무 슬프지 않냐?"

"그럼 어쩌라고? 형 실은 나 혜정이랑 섹스파트너 하기로 해서 어제도 했고 오늘도 하기로 했어 이럴까?"

"미쳤어?"

"그러니까 발뺌 해야지."

혜정이도 한숨을 훅 내쉬며 말했다.

"그러게. 왜 이렇게 섹스에 미쳐 가지고... 스트레스가 많나?"

"내가 그만큼 실력이 늘었다고 봐야되는 거 아닐까?"

"콘돔이나 제대로 끼우고 말씀하시지."

"왜? 제대로 끼웠는데."

"끝에 조금 남기는 거라고 몇 번을 말해주냐."

"그래? 흠..."

철저한 피임. 철두철미한 비밀.

우리는 그렇게 오늘도 새로운 음양합일에 돌입하는데.

"야. 뭐해. 집중해."

"혜정아. 너가 봐도 내가 좀 안정되어 보여?"

"뭔 소리야 하다말고..."

"아니다. 다리 들어 봐."

기운이 안정적이 됐다?

그게 무슨 뜻이지?

전보다 내공을 더 잘 쓸 수 있게 됐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나도 요즘 신기한 게 있는데.

"헉. 허억... 마하야. 이제 그만 끝내면 안 될까?"

"벌써?"

"벌써라니... 지금 20분짼데. 이러면 아퍼."

"어? 어."

지치지를 않는다.

심지어 한번 했는데도 똘똘이가 펄떡펄떡 갓 잡은 장어마냥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게 문제야 이게..."

"야. 뭐하는 거야. 우리 소중이한테."

"이름도 다양하다... 너 또 오래 하려고 혼자 했지?"

"안 했어!"

"근데 왜 이렇게 오래가지? 지루도 아니고..."

"그러게."

아무튼, 조만간 생리가 시작될 거 같다면서 당분간은 보기 어려울 거란다.

"생리 때도 하는 사람 있다고 하던데."

"야. 이게 진짜 오냐오냐 해주니까..."

"알았어. 알았다니까. 옷 부터 입어. 안 그럼 열정이 또 살아난다고."

"하하하! 갑자기 몸이랑 너무 친해진 거 아냐?"

"베스트 먹기로 했지. 이 녀석 덕분에 이런 일도 할 수 있게 됐는데."

그런 의미로, 나는 괜찮지만 이 녀석이 만족이 안 됐다고 매달리고 또 매달려 손과 입으로 두 번을 더 했다.

"지친다 정말..."

"휴지 좀."

"니가 해. 팔 아퍼."

"고마워 혜정아. 너 아니었으면 오늘도 거친 손길에 시달려야 했는데."

"운동을 해서 그런가? 고기를 많이 먹어서 특별히 정력이 좋나? 지민이 오빠도 너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이제 지민이 형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구나.

역시 상처를 극복하는덴 사랑만한 약이 없는 것 같다.

"형은 몇 번 했는데?"

"두 번도 어려워. 오빠는 한번 하면 바로 뻗었어."

"오~ 이거 참. 흠."

"왜?"

"신이 그래도 공평한 거 같아서. 얼굴을 주고 정력을 뺐다니. 얄굳은 신 같으니라고."

"후후. 반대라서 좋아?"

좋다고 하기도 어렵지. 우리는 어디까지나 파트너 쉽으로 맺어진 관계니까.

모든 비즈니스 용어가 그렇듯, 결국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다.

혜정이도 새롭게 남자친구 사귀면 이런 건 그만 둔다고 딱 잘라서 미리 언급해둔 바였다.

결국 전보다는 아주 조금(보다는 훨씬 큰?) 나아졌을 뿐. 달라진 건 없었다.

한번 해봤다고 그만이 아니야.

관 뚜껑 닫을 때 혜정이 생각하면서 갈 거야? 아니잖아.

나태해지지 않게 꾸준한 정진만이 살 길이다.

어찌됐든 나의 꿈은 올림픽 선수촌 입촌이니까.

*    *    *

"으으. 마하야... 안 춥냐?"

"어. 오늘은 훈훈한데?"

"미친 새끼. 이렇게 추운데 반팔 입고 있는 거 봐라."

겨울 훈련으로 한주 고 선수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최고참이 된 동민이와 몸을 풀고 있는데 춥다고 난리다.

"마하 형? 반팔 입고 괜찮아요?"

"어. 뛰니까 괜찮아."

"와... 무슨 러시아 사람도 아니고."

물론 나도 춥긴하지. 하지만 뛰다보면 딱히 추운 거 모르겠던데?

이것도 음양조화에서 오는 내공이 안정적이 된 결과인가?

그날 나는 초사이언이란 별명을 얻었다.

몸에 열기가 막 이글이글 피어오르는데, 감독님들도 목도리 둘둘 감아 맨 상태에서 놀랍다는 식으로 말씀하신다.

"야. 마하야. 넌 뭘 먹었길래 혼자 그러냐?"

"하하... 글쎄요. 고기를 많이 먹긴 하는데."

"아무튼, 몸이 그렇게 뜨거우면 부상 걱정은 없어 좋겠다."

"부상은 둘째치고. 이 녀석 이 정도 컨디션이면 오늘 기록 한번 재봐도 괜찮을 거 같은데?"

겨울은 몸이 굳어있는 탓에 주로 실내운동에 집중하는 편이다.

기록이라. 그러고 보니 마지막 기록이 오직 피지컬로 12초 1인가 그랬었지.

"어때? 해볼래?"

"해도 바뀌었고, 저야. 감독님이 허락해주신다면."

"좋다. 어차피 올해는 선수로 활동하기로 했으니까."

운동장으로 나갔다.

동료 선수들은 다들 롱코트에 목도리를 둘둘 감아매고 나만 반바지 반팔 차림이었다.

"후우~~ 입김 봐라. 야. 너 진짜 괜찮냐? 이러다 감기 걸리면 약도 못 먹어."

"약은 왜?"

"도핑 걸리니까 그러지."

"그래? 어이고야 그럼 좀 뛰고 있어야지."

몸이 식지 않게 혼자 운동장을 두어 바퀴 달렸다.

감독님들도 뭐하러 혼자 체력을 빼냐는데 온도에 적응하고 있었다며 대충 둘러댔다.

"헉. 헉. 됐습니다. 시작하시죠!"

"와 열기 나는 거 봐라."

"이러니까 진짜 초사이언 같네."

마하 형 계왕권 100배를 보여주세요! 같은 장난섞인 응원을 들으며 출발대에 섰다.

클라우칭 스타트.

바닥을 집은 두 손과 어깨에 근육이 바짝 올라온다.

고개를 꺾어 땅을 보며 눈을 감았다.

음양의 조화가 어우러졌다라.

그러고보니 뭔가 다르긴 하구나.

마음이 차분해. 편안하다.

마치 따듯한 일요일 오전, 체온이 남아있는 이불 속에 혼자 누워 똘똘이나 주물주물 거리는데 여자친구가 찾아오는 그런 기분이다.

탕!

더 없는 편안함. 안정된 감정과 내공.

그렇게 100미터 기록을 만들었다.

10.75가 나왔다.

마침내 10초대 선수가 된 것이다.

감독님들이 흥분하시고 운동하는 친구들은 자기가 최고기록이라도 낸 듯 목소리를 높였다.

"상률아 기세를 몰아가야지! 200도 가보자!!"

"마하야 되겠냐?"

"물론이죠!!"

200미터도 22초 32.

육상연맹에서 공인하는 전국 70위에 해당하는 성적이었다.

*    *    *

"잘 먹겠습니다. 감독님!"

"그래. 많이들 먹어라."

훈련을 마치고 회식을 가졌다.

10초대 기록이 나온만큼 한 감독님이 크게 한턱 쏘시겠다면서 모두를 데리고 고기부페를 오셨다.

"한 겨울에 10초 75라. 그럼 대회 때는 더 빨라지겠지?"

"어어. 설레발 치지 마. 고기나 먹어."

"하하! 지는 좋아서 밥까지 사는 놈이. 마하야. 니네 감독이 이렇다."

정말 좋은 분들을 만나 즐겁게 운동을 할 수 있다. 체육계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너 마하."

"네. 감독님."

"몸이 좋은 건 좋은데. 아무리 그래도 이런 날 함부로 옷 훌렁훌렁 벗고 다니지 말어. 감기 온다."

"하하! 야. 얘가 무슨 니 여자친구냐?"

"이제 선수관리 해야지. 이 자식 올 해 대회란 대회는 다 나갈 건데."

"감독님. 그럼 전 수업 어떻게 되는 거에요? 고3이잖아요."

그래서 4월에 열릴 첫 번째 대회가 중요하다고 하셨다.

"교감 선생님께 말씀 드렸어. 첫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면, 그대로 넌 체육특기생이 될 수 있고. 아니면."

"그냥. 일반 학생이 되는 거군요."

"그렇지. 그러니까 조심 하라는 거야. 아니어도 선수는 늘 몸조심해야 된다."

"마하야. 앞으론 친구들이랑도 거리를 둬야 될 거야."

"네..."

"먹는 것도 그렇고, 약도 그렇고. 아까 동민이 얘기 들었지?"

간단한 감기약 하나도 도핑의 위험이 있어 피해야 한다.

친구들과의 약속이나 나들이도 바이오리듬을 깰 수 있다.

진짜 선수가 되는구나. 빡빡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    *    *

"그렇게 까지?"

"어. 음식도 식단 보고하고 먹으라고 하셨어."

"흠. 그럼 파트너도 끝이겠네?"

"그건 아니지. 섹스 하지 말라는 말씀은 없으셨거든."

2월 초. 겨울방학의 끝을 앞두고 다시 혜정이와 만났다.

"지민이 오빠는 그런 거 하나도 안 지켰는데. 하긴 그러니까 실력이 안 늘었지."

"됐어. 굳이 뭐하러 그런 얘기를 해. 사람이 다 개인차가 있는 건데."

"아무튼 조심해야 되니까. 우리도 조금은 참자."

"나는 참아도 너가 될까?"

"후후후. 그래? 그럼 나 가고."

"어어. 잠깐만! 야! 그렇다고 그렇게 바로 가면 어떡해..."

"왜? 혼자 잘 참고 계시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하늘 같은 혜정 님을 무시하고..."

나쁘지 않은데? 오늘은 여왕님 컨셉으로 가볼까?

시간이 흘러 방학이 끝나고. 짧은 새학기를 거쳐 고3이 되었다.

비밀스런 관계는 비밀로 유지한 채, 새로운 반. 새로운 친구들과 만난다.

"다 떨어지는구만. 1년간 재밌었다 병신들아."

"누가 때린다고 울지말고. 특히 마하 너."

"꺼져. 미친놈아! 하하!"

"이과는 그래도 반 많아서 좋겠다... 남자 문과는 교실 세 개라. 애들도 거기서 거긴데."

3월. 새학기. 낯설었던 고3 교실이 익숙해지고, 반 친구들과 운동 관련 이야기를 나누며 교우관계를 만들었다.

"그럼 너는 계속 운동을 하고 있던거야?"

"공부는? 대학은 수시로 가나?"

"글쎄 모르겠네. 거기까지는 생각을 안 하고 있어서."

대학, 수시? 중요하긴 하지만, 역시 관심 밖의 문제다.

지금 나의 모든 신경은 4월 중순에 열리는 춘계전국중고육상대회에 맞춰져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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