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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기로 가버렷-39화 (39/401)

〈 39화 〉 승자의 품격 (5)

혜정이와 인사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10년.

다빈이를 처음 보고 대화를 나누기까지 걸린 시간이 8시간.

구마하. 진짜 많이 컸다.

다른 걸 떠나서도 이거 하나만큼은 나 스스로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남자친구 있어?"

"어 없어..."

다빈이는 살짝 정색하면서 마치, 자긴 그런 사람 아니라는 듯 쳐다보며 물었다.

"너는 여자친구 있는 거 아냐?"

"나도 없어."

"...근데 어떻게 해봤어? 헤어진거야?"

"파트너가 있지."

그 말이 뭔가 엄청 크게 느껴졌는가. 가뜩이나 큰 눈동자가 막 동공이 빠져나올듯 흔들흔들 거리고 있다.

"파... 파 파트너?"

"음. 섹스 파트너."

"..."

"불건전한 그런 건 아냐. 걔나 나나 서로 그런 관계로 좋아하고 있어."

"조... 좋아하고 있다고?"

"하하. 뭐랄까? 감정적인 교류가 지나버린 육체적인 관계랄까."

아무튼, 질문에 대한 답을 해줘야지.

"하면 어떠냐고? 글쎄다. 나야 좋지."

"상대방은...?"

"여자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좋아하는 거 같애."

"..."

"전에는 몰랐는데, 걔도 이것저것 스트레스가 많은 애라. 어쩔 땐 나보다 더 닥달하고 그러기도 하니까."

서로 깊은 관계가 되면서 알아가는 것도 많다.

혜정이 같은 경우 보기보다 진로 걱정이 상당히 큰 친구였다.

본인은 아나운서나 하다못해 승무원 같은 화려한 직업을 가지길 원하지만, 부모님들은 예쁜 딸내미 이상한 놈들 꼬일까 우려스러워 조용한 직장에 들어갈 수 있게 경영이나 회계 같은 걸 배우길 원하시는데.

"적성이 그렇게 안 맞는다고. 그래서 그 스트레스를 남자친구 사귀면서 풀고 있었는데."

"어어..."

"요즘엔 나 만나고 이러면서 그 짓은 안 하는 거 같더라고."

다빈이는 사람들 다 보기보다 많은 사정있겠지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이거, 은근슬쩍 주제를 피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암튼, 난 섹스 좋아. 난 좋다고 생각해."

"임신하면 어떻하려고...?"

임신이라. 물론 그런 걱정도 있지만.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 콘돔 하나를 보여줬다.

"이걸 쓰지. 대략 90%의 피임률."

"그런 걸 왜 들고 다녀..."

"늘 간직하고 있어야 준비된 자세라고."

혜정이와 약속이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각자 콘돔 하나씩은 챙기고 다니자고.

그래서 혹시 학교에서 하려고 저러나? 같은 기대를 했는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만약 10%의 난관을 뚫고 나오는 아이라면 그땐 책임지고 키울거야."

"..."

"아무튼, 다 웃자고 하는 말이니까. 쪽팔린 거 싫어서 헛소리 지껄인다고 생각해."

라고 일단 안심을 시켜준다.

살살 입질을 해보고 있었다.

미끼를 물면 고마운 것이고 아니어도 뭐. 아쉬울 건 없으니.

"저기. 마하야..."

"응?"

"..."

그녀도 부끄럽게 시선을 돌려 아랫도리를 쳐다봤다.

"왜?"

"그... 그냥 내가 한번 만져만 보면 안될까?"

"하하! 안될 게 어딨어. 만져 봐."

"진짜??"

"응. 대신 여긴 밖이니까. 누가 보기도 그렇고."

그래서. 일단 방으로 가자고 물었는데.

"응."

됐다.

*    *    *

"뭐해. 빨리 들어와."

"어..."

별 두 개 짜리 지방 호텔. 다른 말로 모텔이라고도 하지.

원래라면 학생 신분으로 절대 올 수 없는 곳이지만, 우리는 지금 각자 온돌방과 침대 방으로 이곳을 숙소로 삼고 있었다.

다행스럽게 지나치는 사람 없이 단숨에 방으로 들어왔다.

"혼자 쓰는 거야?"

"감독님 같이 쓰고 있어."

"괘 괘 괜찮을까?"

"진정해. 괜찮아. 이 인간 술마시러 갔어. 어제도 새벽 늦게 왔었다고."

"그 그래...?"

"그리고. 뭐. 너만 만져보는 건데."

"..."

다빈이의 표정이 붉게 달아오른다.

아니 그냥 방불이 그래서 그런건가?

아무튼, 고맙다. 여러 가지 의미로.

"잠깐만. 나 먼저 좀 씻고."

"어? 왜? 왜? 왜 씻어?"

"야. 진정하라고. 난 지금 나갔다 온 거 잖아. 아직 샤워 안 했어."

후우. 떨리긴 매한가지다.

나야말로 처음 보는 애랑 이래도 되는건가 싶은데...

그것도 여자애를...

라는 걱정과 다르게 샤워는 참으로 빠르고 간결하게 끝낸 것 같다.

역시 몸은 정직하다.

"후우."

자. 이제 전장으로 가볼까.

벌컥 문을 열고 나오니, 침대 끝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다빈이가 깜짝 놀라며 눈을 막 가린다.

"야! 벗고 나오면 어떡해!!"

"뭐 어때. 보고 싶다며."

"아 옷 입어!!"

오케이.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나의 스승 이혜정양이 그랬다. 만약 상대방이 싫다고 하면, 절대 억지로 다가가지 마라.

"알았어. 아무튼, 속옷 안 가져 갔으니까 눈 돌리고 있어."

"..."

그리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옷을 꺼내 팬티부터 챙겨 입는데.

거울로 보니 다빈이가 흘깃 거리며 날 훔쳐보고 있었다.

"아 뭘 보고 있는건데."

"...그냥 몸 보고 있는거야."

"엉덩이 보고 있었으면서."

겸사겸사 나도 오랜만에 거울을 보며 몸을 체크했다.

와 진짜 이렇게 보니까 정말 환골탈태가 맞긴 맞구나. 뼈 몸이 다 바뀌었네.

"흡! 으읍!"

"갑자기 뭐해?"

"근육 체크! 흡!! 이두박근!"

"풋!"

혼자 푼수짓 떨고 있으니, 역시 웃긴가 보다.

여전히 조심거리고 보고있던 다빈이가 이제는 얼굴에서 손을 치우고 내 몸을 보며 물었다.

"진짜 몸 부럽다... 강해보여. 너는 부상도 다 피해갈 거 같애."

"..."

천천히 다빈이한테 다가갔다.

"왜 왜 이래?"

그녀의 눈앞에 빳빳하게 서 있는 소중이가 덜렁거리고 있다.

그러나 내 목적은 그런 게 아니다.

"다빈아."

"야 이러지 마... 나 무서워."

"그런 거 아니니까. 잠깐만."

침대에 걸터 앉은 그녀의 앞에 풀썩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놀란 얼굴로 굳어있는 그녀의 다리를 잡아, 천천히 운동복의 종아리를 걷어 올렸다.

그리곤 발 끝에 가볍게 입을 맞춰줬다.

"..."

"자. 내가 축복을 걸어줄게. 다시는 부상 같은 거 없을 거야."

"......"

"우리 감독님이 그랬어. 부상은 생각없이 뛰는 놈들한테도 오지만, 그보다는 보통 열심히 하는 사람들한테 오는 거라고."

나의 성욕을 잠시 접어두고, 그녀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다빈이의 눈동자가 다시 촉촉하게 젖어가는 게 보였다.

"응..."

"부상을 입었다는 자체가 노력의 상징이야. 노력 아무나 못 해. 넌 강한 사람이니까 했던 거고. 그러니까 이겨낼 수 있어."

울먹울먹 거리던 애가 스르륵 내려와 안긴다.

"흐어엉. 어엉~~! 어엉..."

아이고. 왜 이렇게 다들 내 앞에서 우냐...

그 뒤론, 뭔가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남자의 신체가 궁금했던 다빈이의 관심은 성욕을 감추고 있던 다른 말이었고.

열심히 몸을 키워왔던 나는 그녀의 욕망을 채우기에 충분했었다.

"이렇게 해주면 좋아?"

"응."

"..."

"입으로 해주면 더 좋아."

"이... 입으로?"

아야. 이빨이 닿네. 역시 경험이 있고 아니고가 이런데서 차이가 나는구나.

"너도 누워 봐."

"야. 그 그렇게 보... 보지 마..."

"뭐? 보 뭐라고?"

"미쳤나 봐 진짜. 제정신 아닌 거 같애. 하하~"

장난스런 순간도 더러 지나가며 천천히 그녀의 몸을 달궜다.

다빈이도 처음은 경직되어 있더니 점점 호흡이 가빠지면서 목소리에 숨소리가 묻어 나왔다.

"됐어? 진짜 해도 돼?"

"...근데 마하야."

"싫으면 그만하고."

"아니. 그게 아니라... 엉덩이가 어쩜 이렇게 단단할 수 있어?"

"하하! 이 상황에 그게 궁금해??"

다빈이와 있으면서 혜정이를 떠올리는 것도 이상하지만, 역시 그 친구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하야. 자?)

(아니. 왜?)

(...)

(왜? 또 하자고?)

(넌 힘들지도 않냐...)

(뭐 별로... 왜? 무슨 얘기 하려고 그렇게 사람을 쳐다보는데?)

(자신감 가지라고. 너 진짜 좋은애니까.)

(그럼. 자신감을 가지고 물어보는데)

(안 한다고! 이 자식아!!)

개학을 앞두고 둘이 언젠가 열심히 땀 빼고 누워 있을 때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혜정이 말고 다른 사람과 하는 날이 올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그 순간이 빨리 왔다는 데 놀랍다.

천천히 움직이는 몸짓에 다빈이의 호흡이 가빠지고 있었다.

기분이 좋은가 보다. 무방비한 얼굴을 보여주는데 그게 더 기분이 좋았다.

더 기분 좋아지게 아팠던 다리를 들어 종아리와 발 끝에 입을 맞춰주니 살짝 눈을 떠서 보는데.

"좋아?"

"응... 정말로. 너무 좋아."

뒤늦게 시트에 피가 묻거나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는데.

하고 나서 말해주길 예전에 혼자 야한 걸 보다가 막을 찢어먹은 경험이 있었단다.

"우와... 안 아팠어?"

"되게 아팠지... 그래서도 좀 무서웠고..."

"아니. 뭘 어떻게 했길래? 혼자 막 몸을 그렇게."

"야! 됐어. 뭘 알려고 그래."

"왜. 말해 줘. 너는 막 내 몸 가지고 인체의 신비전을 펼쳐놓고선."

그때 전화기가 울리는데, 친구 녀석들이라 무시해 버렸다.

미안하다. 우정도 우정이지만, 지금은 쉿 섹스 중. 아니 후희 중.

"가야되겠다."

"씻고 가. 가면 또 애들 있어서 샤워하기 어려울 거 아냐."

"음. 그게 나으려나?"

"내가 씻겨줄까?"

"...응."

부끄러워 하면서 또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다.

작은 체구에 작은 몸. 그러나 누구보다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다빈이.

서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됐는지가 참 신기하지만.

"아. 마하야..."

"허리 좀 살짝만."

"으음."

씻으면서 한번을 더 하고, 씻고 나와서 침대에서 한번을 더 했다.

피임? 콘돔은 하나 아니었냐고?

뭐가 중요해. 흥분이 최고조에 달해 있는데 거기까지 따지겠냐고.

운동하는 애라 그런가 역시 체력이 다르다.

"후우 후우! 와... 세 번을 계속 하는 건..."

"헉. 허억... 꼭 인터벌 한 거 같다..."

"하하하! 이래서 여자들도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거구나..."

"남자야 말로. 진짜..."

밤 9시 30분.

이제는 다빈이도 팀으로 돌아가야 하는만큼 서로 옷을 챙겨입고 마무리를 했다.

"뭔가 갑자기 옷 입고 이러니까 되게 어색하다..."

"뭐 어때. 원래 그런 거지."

"..."

"왜?"

"잠깐만 머리 이렇게 숙여 봐."

그리곤 진한 키스로 오늘을 마쳤다.

"잘해. 내일 응원할게."

"응. 잘 자."

*     *    *

"감독님. 여기요..."

"어이고야... 죽겠다."

대회 셋쨋날.

시합이 없는 날이라 운동장을 찾아와 다빈이나 성운여고만 응원해주려 했는데, 졸지에 술주정뱅이 수발이나 들어주고 있다.

"어우. 미친 인간들... 뭔 술을 그렇게들 처마시는지."

"이 감독님은 멀쩡하시더만 왜 감독님만 이러세요?"

"죽겠다 마하야."

"죽겠다 죽겠다 하지 마시고, 올라가서 쉬세요."

"시합이 남았는데 너만 두고 어떻게 가냐..."

제발 가시라고요...

감독님만 없으면 오늘도 다빈이랑 같이 있을 수 있는데...

경기장엔 여자 4x100미터 계주 결승을 앞두고 선수들이 모이고 있었다.

성운여고도 한쪽에 자리를 잡고 지도교사의 이야기를 들은 뒤 각자 흩어지는데, 그때 3학년 다빈이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자! 자! 다들 잠깐 모여 봐!"

헤롱헤롱거리는 감독님 등을 두드려 드리며, 멀뚱멀뚱 선수들을 보았다.

다빈이의 모이라는 말에 동료 선수들이 서로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다.

"손 모으자."

"..."

"빨리. 그리고 파이팅 해. 잘하자! 응!"

"응."

"그래. 힘내자!"

"성운 파이팅!!"

그렇지. 파이팅이다.

운동장에 선수들의 뜨거운 함성이 울린다.

"최다빈 파이팅!!! 성운여고 파이팅!!"

제 자리를 찾아가는 다빈이한테 큰 소리로 응원을 해줬다.

관중석을 돌아보는 그녀의 미소에 부상이나 승부에 대한 걱정은 없어 보였다.

역시 사랑(?)은 위대한 것.

"야. 마하야."

"네."

"너 쟤 아냐?"

"하하. 그냥 귀엽게 생겼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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