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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기로 가버렷-45화 (45/401)

〈 45화 〉 반짝반짝 작은 별 (4)

얘가 방금 뭐라고 한 거지...?

"네?"

"마하 뭐라고요?"

"하하하~ 왜 그러세요."

나도 그런데, 친구들도 이해가 안 되는가 보구나.

태윤이와 남수가 다시 한번 묻자 다빈이가 날 쳐다본다.

"너 내 얘기 안 했어?"

무슨 얘기를 해? 그걸 말해도 되는 거였단 말이야?

뒤늦게 지나가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던 정석이도 돌아와서 묻는다.

"알겠다고 새끼들. 미안 얘들아. 그래서. 마하 왜 찾아오셨어요?"

"하하하~ 여자친구니까 찾아왔죠."

"네? 마하 뭐요?"

"마하야. 친구들 왜 이래?"

"..."

왜 이러긴. 놀라니까 그러지...

*    *    *

"마하야. 니네 학교는 되게 번화가에 있다."

"너네는 아니야?"

"응. 우리는 그냥 아파트 단지에 덩그러니 있어서 재미 없는데."

웅성웅성 시끌시끌. 세 놈이 앞장서고 다빈이와 둘이 걷고 있었다.

대화 한 마디 한 마디를 놈들이 훔쳐 듣는 것 같다.

그래서도 목소리를 바짝 낮춰 물었다.

"근데 다빈아...? 어떻게 왔어?"

"얘기 했잖아. 친구 테니스 대회 있어서."

"아니. 우리 학교 어떻게 알고 찾아왔냐고..."

"아. 인터넷 보고."

"..."

"너 연락처가 따로 없길래."

뭔가 같은 생각을 했다는게 귀엽기도 하고 조금 놀랍기도 하고.

아무튼, 여러 가지로 당황스러움은 여전하지만, 다빈이가 온 게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나도 그 생각 하기는 했는데."

"뭐?"

"너 연락처."

"그치? 그날 후배들 챙긴다고 정신 없다보니까."

"바빠보이긴 하더라."

"야. 근데 둘이 무슨 얘기하냐?"

"되게 속닥거리네?"

"쟤가 남수. 큰 놈이 태윤이."

"알어. 그리고 옆에가 정석이."

"어? 근데 우리 어떻게 아세요?"

"마하가 우리 얘기 했어요?"

"후후후."

후후후 가볍게 웃어 넘기는 다빈양.

했지. 니네 얘기 했어. 아주 짧게. 왜냐면 그때 둘 다 벗고 있었거든.

"근데 우리 어디가요?"

"글쎄요. 정하진 않았는데."

"다빈 씨 뭐 먹고 싶으세요?"

"야... 동갑인데, 다빈 '씨'는 좀 이상하지 않냐?"

"뭐 어때. 다들 처음 보는 사인데."

그리고 얘는 또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무리에 녹아드는 거지??

"구마하. 뭐가 좋겠냐?"

"아무거나 가. 햄버거도 좋고."

"니가 사는 거야."

"그래. 니가 결정해."

"왜 내가...?"

"그럼. 니 여자친구가 찾아왔는데, 우리가 돈 쓰리?"

그럼 그렇지. 저놈들이 다빈이 있으니까 가만히 있지. 세 녀석 눈빛에 악마가 깃들어 있는 것 같다...

"맥도날드 가 있어. 그리고 다빈아"

"응?"

"잠깐만 이리로."

"야!"

"아 또 왜?!"

"버거킹으로 가자. 빅맥 지겨워."

어디든 들어가 있으라고 해놓고 다빈이를 끌고 가까운 건물 계단으로 갔다.

"왜?"

"우리 사겨?"

"어."

"...언제부터?"

"그날 했잖아."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뭐 이상하진 않네. 나름 논리적이기도 하고 설득력도 있고.

"아니야? 아니었어?"

"아니. 그게 그러니까..."

"..."

"......"

"야. 구마하."

"응?"

"너 그냥 나 한번 따먹어 본 거야?"

와... 우리끼리 낄낄거릴 때나 이 말이 농담이지...

여자애가 이 말 하니까 진짜 무섭다...

"아니. 그건 아니지."

"그럼. 뭐. 그 파트넌가 하는 앨 신경 쓰는 거야?"

"..."

"혹시, 아까 걔야?"

"누구?"

"아까. 너 막 찾으러 갔던 예쁜 애."

"아니지. 걘 그냥 친군데."

"남녀 사이에 친구가 있어?"

"있어. 우리는 남녀공학이니까. 학교에서 밥 같이 먹는 애들도 있는데."

다빈이의 의심하는 눈동자에 으음. 하는 표정이 지나간다. 이해 한 건가?

"아무튼, 다빈아"

"야. 너 똑바로 해. 맞어 아니야."

"뭐? 여자친구?"

"어."

그래. 운동하던 애들이 다들 얘 까칠하다고 했었지.

성질 내니까 또 이런 얼굴이 보이는구나.

"아니 나야 좋지."

"근데 왜 그렇게 조심스럽게."

"갑자기 찾아오니까 당황스럽잖아. 온다는 걸 모르고 있었고."

"그치~♡ 미안..."

호두까기 인형 같던 애가 다시 다람쥐 모드로 돌아간다.

허허 난감한지고.

"야! 야! 왜 매달리고 그래."

"보고 싶었어~♡"

다빈이가 꼭 매달려 바짝 몸을 밀착시켰다.

그 바람에 똘똘이 녀석이 꿈틀 거리고 반응을 일으키고 말았다.

"후후. 뭐야 또? 너어~"

"아 뭐..."

와 여자애가 이러니까 당황스럽네...

그것도 밖인데, 사람들 다 보는데.

"다. 다빈아... 잠깐만!"

"으~흠. 아~ 좋다."

"아이고 참..."

"마하야?"

"응?"

"나 뽀해줘."

미치겠네 진짜...

싫은 건 아닌데. 아니 좋긴한데. 근데 밖에서 왜 이러는지...

이러다 애들이라도 와서 보면.

"어? 미 미안!! 하도 안 오길래 뭐하나 와봤다가..."

"..."

"에이~ 친구들 기다리나보다. 가자."

"......"

뭐라고 해야 할까. 어딘가 순수하게 기뻐하기가 조금 애매한 상황이다.

다빈이는 좋다. 나도 얘 좋아해. 여자친구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

그러나, 막 자기가 먼저 찾아와 이러는 것도 조금 이상하고, 친구들도 그렇고.

연애가 원래 이렇게 시작하는 건가?

"셋이 그러고 안 좁냐?"

"어. 괜찮아. 두 사람 앉어."

"몸도 큰 놈들이..."

식당 안. 태윤이 정석이 남수 세 녀석이 벽 쪽에 붙어있는 긴 의자에 옹기종기 쪼르륵 앉아있다.

다빈이와 맞은 편에 앉자마자 남수가 물어본다.

"근데, 몇 살이세요?"

"저요? 고3이요."

"진짜요? 어려보이는데?"

야. 아까 갑이라고 했잖아...

"하하~ 고맙습니다!"

맞다. 다빈이는 남자를 많이 안 접해 본 애지. 이런 게 먹히는구나.

일단 정리할 건 먼저 정리를 해줘야겠다.

"어. 그럼. 음. 뭔가 좀 어색하지만... 정식으로 소개를 해주자면, 여기는 성운여고 3학년 최다빈이라고."

"잘 부탁드립니다."

"아 네. 저희도."

"와~ 여고생... 우와..."

"정석아. 정신차려. 우리 학교도 여고생들은 있어..."

"틀려. 여기는 리본을 묶고 계시잖아. 가디건을 입고 있다고. 치마에 주름이 있어."

"아하하! 되게 자세하게 보셨네요. 우리 교복 귀엽죠?"

뭔가 다빈이 때문에 정석이까지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거 같다...

뭐해 니들은? 이 자식 좀 어떻게 해봐. 하는 시선으로 태윤이 남수를 번갈아 쳐다보니, 애들이 흠흠 하면서 정석이를 진정시킨다.

그러는 두 녀석도 뭔가 궁금한 게 엄청 많아 보였다.

"근데 마하는 대체 어떻게 알게 되신 건지...?"

"야. 일단 말부터 놓자. 우리 그건 좀 풀고 가자 어색해서 더 불편해."

"그래도 되냐? 그래도 돼? 다... 다빈아?"

"응! 근데 얘도 처음에 나한테 존댓말 했었어."

"그때는 뭐. 그게 예의니까."

어떻게 알게 됐는가?

언제부터 사귀게 됐는가?

다빈이도 모든 걸 다 말할 필요는 없다는 식으로 애둘러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냥 대회나갔다가? 서로 이야기도 통하고."

"대회? 뭐. 작년 전국체전?"

"아니지. 그땐 우리가 같이 있었잖아."

"그럼. 이번 춘계대회?"

"왜? 왜 그렇게 놀라냐?"

"야. 그게 며칠이나 됐다고... 거기서 여자친구를 사겼어?"

역시 정석이는 가끔 이렇게 애가 묵직한 맛이 있어. 새끼 날카롭구만.

"하하! 시간이 뭐 중요하다고 그래. 그치?"

"크흠. 흠. 그렇다고 하네..."

"뭐야. 둘이 진짜 사귀는 거 맞어? 넌 근데 왜 이렇게 어리버리떠냐?"

아까 우리가 같이 있던 모습을 봤던 남수가 말한다.

"얼떨떨하겠지. 그런 짓을 했는데..."

"뭔 짓?"

"..."

"얘네 아까 데리러 갔을 때 둘이 막 끌어안고 뽀뽀하려고"

"야. 우리끼리 있는 거 아니잖아."

"그래 새끼야. 말 조심해."

"아니. 내 말은 둘이 사귀는 거 맞다고... 새끼들 나한테 지랄이야..."

일단 시간이 시간인지라 앉아서 수다만 떠는 것도 그렇고. 뭐라도 먹어야지.

햄버거를 사러 나왔느넫, 남수와 정석이가 따라온다.

"야. 씨발놈아."

"미친놈아. 사람한테 욕을 할 때는... 감정을 좀 덜고..."

"지금 감정 덜게 생겼어?"

"그래. 너 진짜 뭐냐? 이런 걸 왜 말을 안 해주는데."

"너 씨발 그때도 그래서 전화 안 받았지? 어? 둘이 있었냐?"

"후우... 그리고 이렇게 귓속말로 조용히 말하지 말고. 진정 좀 해. 내가 누구 죽였어?"

테이블을 돌아보니 태윤이와 다빈이가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석이와 남수도 두 사람을 보면서 말한다.

"귀엽다? 어? 뭐냐? 이것도 우승자의 특권 뭐 이런 거냐?"

"아 왜 때려! 미친놈아."

"저기. 마하야..."

"넌 왜?"

"...아니지?"

남수의 짧은 질문 "아.니.지.?" 물음표 끼고 네 글자.

하지만 그속에 담긴 뜻을 풀어 해석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그래 쟤가 니 여자친구라는 건 알겠는데, 쟤랑 그런 건 아니지? 아니라고 해줘. 제발 아니라고 해달라고. 나의 의심을 부정해달란 말이야...'

아까는 그렇게 맞다고 지랄하던 놈이 지금은 이렇게 간절한 표정을 보여주는지...

우정도 사랑 못지 않게 애매한 감정들이 있구나.

"내가 이래서 니네한테 아무것도 말하기 싫었던 거야."

"뭘?"

"뭐가? 우리가 어쨌는데?"

"난리를 피니까. 내가 뭘 말해주고 싶겠냐고."

그 말에 정석이와 남수가 반성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래. 미안하다..."

"음. 그건 뭐."

"진짜 니들 말대로 며칠 안 됐어. 나도 오늘 쟤 오는 거 모르고 있었고. 왜 나한테 지랄들인데."

"알았어... 화내지 마. 웃자고 하는 얘기지."

"마하야...?"

"왜? 또 뭐?"

"아니. 그냥 여자친구 있어서 좋겠다고..."

진짜 가지가지 하는구만...

햄버거를 받아들고 자리로 돌아오니, 태윤이가 말했다.

"아~ 송파에 있어?"

"응."

"그렇게 멀진 않네."

"뭔 얘기하고 있었냐?"

"학교 어디 있냐고. 송파래. 너 알았냐?"

몰랐는데, 고맙다. 좋은 정보를 얻었다.

"알지. 성운여고 유명해."

"그래? 난 학교 처음 듣는데."

"체육이 아니잖아."

석식 시간은 50분.

그런데 한 시간 반이 지나도록 애들이 일어날 생각들이 없어 보인다.

다빈이도 마찬가지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하하! 그럼 너희 작년에 다 같은 반이었던 거야?"

"나 빼고. 이렇게 셋. 이과반들."

"재밌었겠다."

"우리가 정말 구마하 사람 만드느라 고생했지..."

"다빈이 너 그거 알아야 돼. 진짜 마하 작년에 만났으면... 아우..."

"왜? 작년엔 왜?"

"아니야. 이 새끼들 괜히 놀리는 거야."

친구와 여자친구가 한 자리에 있는 경험.

뭔가 들개들 앞에 족발 뼈다귀라도 된 듯 물고 뜯기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기분이다.

"아 씨. 학교고 뭐고 그냥 노래방이나 갈까?"

"좋아! 나 노래방 좋아해."

"다음에. 얘들 지금도 야자 늦었어."

"그래. 나 아까부터 우리 담임 문자 오고 난리났어."

"태윤이 저 새끼는 노래도 못 부르는 게 꼭 노래방 가자고 지랄이더라."

"못 부르니까 가야지. 연습을 해야 될 거 아냐."

친구들을 보내주고 다빈이와 둘이 있었다.

"애들 재밌다."

"재밌어. 성격이 지랄 같아서 그렇지."

떠들고 뭐하고 하다보니 밤 7시.

다들 퇴근 시간이라 정신 없는 가운데, 단 둘이 동네에 서 있었다.

"올 때 버스 타고 왔어?"

"응."

"송파면 몇 번이야? 직행이 있나?"

"괜찮아. 10시까지만 가면 돼."

"10시?"

"마하야. 우리도 노래방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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