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46화 (46/401)

〈 46화 〉 반짝반짝 작은 별 (5)

호준가 영국인가? 아무튼 그런 잡다한 거 연구하는 대학에서 나왔던 이야기다.

인간의 성욕은 남녀라고 다르지 않다.

다만, 개인의 스태미너는 차이가 있는데, 특히나 운동선수들은 황성한 활동력으로 보통 사람들보다 더 뛰어난 정력과 욕망을 가지고 있다.

나는 말 할 것도 없고.

다빈이도 왜소해 보이는 체격과는 다르게, 어려서부터 운동만 하고 자라온 체육소녀였다.

"노래방?"

"응."

"...노래방 가고싶어?"

"응~!"

노래방. 노래방은 노래하러 가는 곳이지.

최신곡. 윤도현이나 김경호 쉬즈 곤 도전하기. 1분 남기고 디스코 메들리. 그런 거 하러 가는 곳이야.

그러니까 진정해. 가만 있으라고 이 녀석아. 기분은 알겠지만, 아직 아니야.

"그래."

"가자~!"

우와 노래방이라.

오늘 처음 여자친구를 사귀고 그날 바로 노래방을 간다고?

고맙다.

정말 고마워. 아름다운 세상이다.

다빈이가 먼저 손을 잡았다.

이미 결승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었는데, 왜 이 작은 스킨쉽에 마음이 설레는지 모르겠다.

여자친구라. 역시 나쁘지 않구나.

특히나 우리는 체육특기자들이라 일반적인 학업과는 거리가 있어 더 이런 저녁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아무튼, 노래방이라. 노래방. 아하하하~! 노래방~~!!

그러나. 룰루랄라 기대했던 것과 현실은 역시 차이가 있었다.

"네?"

"지금 자리가 없어서..."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데요?"

"한 시간 정도?"

"여기서 한 시간 기다려? 그냥 다른 데 가보자."

"응."

"다음에 오세요."

퇴근시간과 겹쳐 그런가 은근 노래방에 자리가 없다.

그나마 사람 없는 곳인가 하면 너무 낡아서 그렇거나.

그것도 아니면.

"미안하네. 우리는 청소년은 받질 않아서."

"왜요?"

"청소년이 왜요?"

"하하. 글쎄? 왜일까?"

사장 아주머니가 난처한 듯 우리를 쳐다보시는데. 아무짓도 안 했는데, 괜히 부끄러워 둘 다 후다닥 빠져나오고 말았다.

"아니 뭔. 다들 노래만 부르고 사나..."

"친구들끼리 오면 안 그러는데..."

우리도 그래. 남자애들끼리 오면 밤이고 뭐고 어딨어. 다 들여보내주지.

거리를 방황하고 다녔다.

몇 군데를 더 돌아 겨우겨우 청소년 출입도 가능하고 사람도 없는 곳이다 치면 거기는 또 문이 너무 오픈형으로 되어있고...

"음..."

"..."

"방 안내해 드릴까?"

"아니요. 그냥 다음에 올게요."

"안녕히 계세요..."

다빈이와 밖으로 나가는데 사장님이 말씀하신다.

"잠깐만. 학생들."

"네. 왜요?"

"보니까, 나쁜 짓 하는 애들 아닌 거 같아 미리 알려주는데."

"뭘요?"

"요즘 웬만한 노래방은 다 cctv 달려있다고 생각해야 돼."

남수가 여자친구 사귈 때 느꼈던 벽이 뭔지 알겠다.

여자친구가 있어도, 단 둘이 있을 곳은 없다.

마음이 동해도 공간이 없다니... 원래 이런 건가?

빌어먹을 동방예의지국같으니라고.

"마하야. 쟤네?"

"어? 나 아까 쟤네 우리보다 먼저 엘리베이터 나가는 거 봤는데."

"쟤네는 어디 가는 거지?"

"따라가 보자."

그래서 어떻게 눈치 껏 우리 말고 서둘러 다른 공간 찾아다니는 학생 커플을 따라가 봤는데. 젠장. 한발 늦었구만. 열심히 노래(?)중이다.

"자리가 없네..."

"다빈아. 엄밀히 없지는 않았어. 그냥 우리가 안 간 거야."

"그치만... 노래 부르고 싶었는데..."

"정말 노래만 부르려고?"

"..."

그러자 다빈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돌아본다.

"그럼 당연히 노래만 부르지. 뭐 하려고?"

"뭐 해야지."

"뭐?"

"뭐긴. 그거야 당연히..."

"이거?"

이런? 상대방은 나보다 한 수 위였단 말인가?

다빈이의 작은 손이 빠르게 다가와 툭 하고 우리 똘똘이를 건드리고 갔다.

"야! 이게 미쳤나! 갑자기 어딜 만져?"

"큭큭. 왜 당황하고 그래?"

하하하... 진짜 여자애들 보기와는 다르지...

"그리고. 나 너랑 그런 거 하려고 온 거 아니거든."

"허허. 누가 뭐래? 괜히 찔려하는 거 같은데?"

"진짜로 아니거든~♡"

오~ 이제 와서 그런다?

자존심이 있다?

내가 여자다?

알았어. 그럼.

"아무튼, 여기 계속 서있지 말고 빨리 다른 데 가보자."

"싫어. 집에 갈래."

"어...?"

건물 밖으로 나와 버스 정거장 쪽으로 걸어가니, 다빈이가 쪼르륵 다가와 가방 끈을 붙잡는다.

"뭘 벌써 가...?"

"피곤해. 가서 쉴래. 나 아직 피로 안 풀렸어."

"야...?"

후후 최 양. 남자를 너무 우습게 보지 말라고.

서운한지 화가 났는지 모를 얼굴로 뚱해져 있는 다빈이한테 다가가 귓속말을 해줬다.

"야. 우리 집 아무도 없어."

"어?"

"형 장사하는데, 요즘 날 풀렸다고 빨라야 11시에나 들어와."

"..."

"난 가서 쉴래."

그러면서 슥 손을 잡고 버스로 몸을 돌리니.

"흠. 뭐. 음... 그렇다면 뭐..."

하면서 쫄래쫄래 따라오는 다빈이였다.

*    *    *

"저기야?"

"응."

"그럼 학교는 걸어가?"

"보통 걸어갔는데. 새벽 운동 끝난 날은 버스 타."

오~ 관리 사무소. 요즘 또 일 좀 하는 거 같은데. 오늘 따라 아파트 조경이 괜찮아 보이는구만.

정문에서 집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달라 보일 수가 없었다.

늘 가는 길. 늘 오가는 공간. 늘 거기 서 있는 자동차와 먼지 낀 자전거들.

혜정이랑도 자주 산책 다니던 곳인데 뭔가 다르다. 아무래도 '여자친구'라는 네임벨류가 있어 그런가? 똘똘아 너도 그렇게 느끼지? 기대되지?

"파트너는 아직도 만나?"

"하하하... 그게 그렇게 신경 쓰여?"

"너 만나면 제일 먼저 하려던 말이 그거였거든."

"끝났어."

"진짜로? 믿어도 돼?"

"그럼. 그렇게 못 믿겠는 애가, 확인도 안 하고 다짜고짜 여자친구라고 했냐?"

"음. 그냥. 친구들 보는데 뭐라고 설명하나 애매하기도 하고."

이제야 말하지만, 반쯤 도박이다 생각하고 있었단다. 내가 아니라고 정색하면 그대로 갈 마음이었다고 얘기해준다.

"멀리 왔다 그냥 가면 또 어쩌려고."

"그럼 이제 매일 밤 입에 과도를 물고 거울을 보며 널 저주했겠지."

"하하하!"

"농담같지?"

"승부욕이 강한 여자는 소유욕도 강하다 그런 말이 있지."

"넌 나 보고 싶지 않았어?"

"아니야. 나도 너 보고 싶었지."

"정말?"

"그렇다니까. 봐 봐. 전화번호도 바로 1번에 저장했잖아."

"난 1번 집인데."

"안 바꾸냐?"

"어쩔 수 없어. 어렸을 때부터 1번은 늘 집이어서."

수다수다. 걸음걸음. 어느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집.

엘리베이터에서 나눈 짧은 키스 흔적을 손 끝으로 지우며 다빈이도 신발을 벗는다.

"들어와."

"으음. 뭔가 되게 깔끔? 그런 분위긴데?"

"가구가 그렇게 많지 않지."

"부모님 취향이 모던 한 거 좋아하시나 보다."

아. 그렇구나. 그런 걸 얘기를 안 했네.

"근데 형이 장사를 해?"

"저기. 다빈아. 이쪽으로 좀 앉아 봐."

"응."

소파에 앉혀 놓고 차분히 말했다.

"우리가 그러니까. 아직 서로를 잘 모르고 있잖아."

"뭐. 그렇지."

"나 부모님 안 계셔."

"어...? 아 그래?"

"응. 그래서 형이랑 둘이 지내고 있어."

"어어. 으음. 몰랐어..."

"넌 당연히 모르지. 우리가 그런 이야기 한 건 아니니까."

탈북이니 뭐니, 곤륜은 당연히 말 할 것도 없고. 그냥 나이 많은 형이 있고, 형은 장사하고. 나는 학생이다 그렇게 알려줬다.

"어~ 어..."

"그래서 그때 임신 어쩌구 했을 때도 크게 별 생각 없었던 거야. 나야 형 따라 나가서 고기 구우면 되니까."

"으음. 뭐. 근데 이런 얘기를 왜 해주는 거야?"

"그냥. 뭔가 우리가 진짜 남자친구 여자친구라면, 이런 건 제대로 얘기를 해줘야 할 거 같아서."

"마하야 잠깐만."

가정 환경에 따라 싫다고 하는 애들이 있을 수도 있다.

친구들 사이에도 그런 걸 따지는데 여자애들이 없을까.

어렸을 때도 가끔 겪어 봤기 때문에, 다빈이가 싫다고 가겠다고 말해도 원망하진 않는다.

"형 계속 일 했다면서? 그럼 넌 계속 쭉 혼자 있던 거야?"

"그렇지."

"..."

"지금도 그래. 그래서 난 이 시간에 운동하는 거고."

운동이 좋다. 멍하니 있는 시간에 목적 의식을 채워주고 하면 할수록 강해지고 몸도 변화 시켜준다. 그리고 이렇게 여자친구도 만들어 주는데. 내가 어찌 운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냥 노력하는 앤줄 알았는데..."

"나도 훈련은 힘들지. 하지만 외로운 거 보다는 낫잖아."

그러자 다빈이가 눈을 슬프게 뜨더니, 끼잉끼잉 배고픈 강아지 같은 소리를 내며 두 팔을 벌린다.

"뭐야? 안기라는 거야? 안아달라는 거야?"

"뭐든. 일로 와..."

위로해주는 건가? 괜찮은데. 그렇게 신경 안 써줘도.

다빈이한테 다가가 안기자, 무게감 때문에 둘 다 풀썩 소파에 눕고 말았다.

"그랬구나...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사정이라기도 뭐한 게. 원체 태어나면서부터 이렇게 자라다 보니까. 이제는 별 느낌이 없어."

떡 본 김에 제사도 지낸다는데, 누운 김에 키스는 해야지.

그리고 키스도 하는 김에 단추도 좀 풀고. 치마도 조금 올리고.

한참을 둘이 그러고 있다 고개를 들었다.

다빈이도 반쯤 떠진 눈으로 가쁜 호흡을 몰아시며 시선을 맞춘다.

"이제 하려고?"

"다빈아. 너 나 진짜로 좋아하는 거 맞어?"

"응. 왜?"

"그냥 궁금해서. 나 왜 좋아해?"

"뭐래. 갑자기..."

"아니. 그렇잖아. 내가 잘생긴 것도 아니고. 너가 실력이 없어서 잘 뛰는 애들을 부러워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진작부터 알고 지내던 건 더더욱 아니고."

"아 몰라. 그런 거 물어보지 마."

감정적인 부분은 어떻게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면서 애써 둘러대는 다빈이.

"그냥 좋아. 다른 게 뭐가 있어."

"그래. 그렇다면 뭐."

"너는?"

"나? 나 너 좋아하냐고?"

"응."

"당연하지. 그러니까 지금도 이러고 있지."

"근데, 넌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랑도 하잖아?"

"하하하..."

"왜 웃어?"

"저기 있잖아. 뭔가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는 거 같은데... 나 그렇게 인기 없어."

"거짓말. 그 말을 누가 믿어."

"야! 진짜야! 우와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되지..."

"근데 마하야. 벌써 9시 다 돼가는데. 우리 이러고 얘기할 시간 있어?"

아차! 그렇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쓸데없는 소리를.

서둘러 방에 가 콘돔을 가져오는데, 다빈이가 소파에 멀뚱멀뚱 애벌레 같이 누워 말한다.

"옷 벗으면 안돼? 나 몸 만지고 싶은데."

"안 될 게 뭐 있어. 하려면 당연히 벗어야지."

"...근데 왜 나는 속옷만 벗어?"

"그건 당연하지."

"왜?"

"학생이 교복을 왜 벗어."

"아하하~ 야! 너는 학생 아니냐!?"

치마를 입으면 이렇게 되는구나 옷이 배에 걸리네.

남방도 블라우스라고 하나? 뭔가 엄청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거 같다. 사회적 관념에서 허락되지 않는 배덕감이라고나 할까,

고맙다. 덕분에 또 하나의 즐거움을 알게 되어서.

아무튼, 시각적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저기 다빈아"

"으음. 왜?"

"역시 이거 벗자."

"이제와서? 하고 있는데?"

"잠깐만 일어나 봐."

옷이 막 구겨지고 있었다.

나중에 집에 가야 될 애를 생각해서라도 일단 찬찬히 옷을 벗겨야 될 거 같다.

반듯하게 나간 딸 아이가 꾸깃꾸깃 돌아오면 어른들이 걱정하실 거 아닌가.

뭐? 무슨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냐고?

당연하지. 여자친군데.

배려심은 사랑(?)의 기본이라고.

"으챠~"

"뭐. 뭐야? 왜 이래."

"됐지? 손 들어 봐."

"야 뭐야 이거? 싫어"

"뭐가 싫어. 그냥 말 탔다고 생각해. 이히힝~"

"하하~ 아 하지 마!"

연애와 여자친구.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토록 바라던 것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을 가진다라고 하는 것도 뭔가 이상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를 좋아해주는 누군가가 있고 나도 그 사람이 좋다.

일단은 그렇게만 느끼고 있는 것도 벅찬 기분이었다.

"다빈아. 진짜 나 좋아하는 거 맞지?"

"그렇다니까."

"그럼 좋아한다고 해줘."

"좋아. 너무 좋아."

"또 더. 더 말해줘."

"진짜 좋아. 좋아해."

이 넓은 세상 위에 길고 긴 시간 속에 수많은 사람들 속에 라는 가사도 있듯이.

어떻게 또 이렇게 만나서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연애란 참으로 신비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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