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50화 (50/401)

〈 50화 〉 아테네로 가는 길 (1)

"맛있어?"

"응! 나 치킨 좋아해."

"치킨은 누구나 좋아하지."

"후후 내가 더 좋아하거든?"

과연 충주는 충청도를 대표하는 도시 중 하나구나.

식당도 많고 오락실도 보이고 놀거리가 가득해 보였다.

오늘은 감독님이 용돈까지 주셨다.

번화가에 나온 김에 둘이 극장이라도 가볼까 하는 마음이다.

데이트라는 걸 즐기고 싶었다.

"어?"

"그러니까 영화 이런 거 말고 둘이 있으면 안돼?"

"또... 노래방 가자고?"

"감독님 아직 안 갔어? 오늘 올라간다고 했었잖아."

"후우... 다빈아..."

아무래도 다빈이는 처음이 처음이다보니, 둘이 있는 게 뭔가 엄청 간단한 일인 듯 생각하는 거 같은데...

나도 하고 싶다고. 정말 미친 듯이 하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있는 중인데.

진짜 앞 뒤 안 가릴 배짱만 있었으면, 어디 공원 화장실이라도 갔을거다.

근데, 그게 어디 마음같이 되는 일이던가.

"올라가서 보자. 응?"

"..."

"아. 야. 그렇게 보지말고..."

"나 먼저 늦게 갔다고 집에서 혼났어..."

"진짜? 언제? 우리 집 처음 왔을 때?"

"아니. 그때 일요일에."

"아~ 그날."

"연습 있다고 했는데 걸린 거 같애. 엄마가 뭐라고 했단말야. 이제 니네 집 잘 못 갈지도 몰라."

"어떻게 또 그렇게 됐냐..."

"그러니까. 지금 아니면 같이 있기 어렵단 말야."

"쩝... 그렇다고 한들..."

"아 짜증나 진짜..."

대체 나더러 뭘 어떻게 하라는 거냐.

같이 있고 싶다고 어디 모텔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충주 애들도 아니고, 먼저 같이 노래방 되는 곳 찾다 보면 시간만 버릴 거고.

시간은 없고. 장소도 없다.

속으로 빌어먹의 동방예의지국 욕이나 하며 한숨이나 훅 훅 거리고 있으니, 다빈이도 기운이 빠지는지 툴툴거리면서 일어났다.

"나 갈게. 배불러..."

"가자. 데려다 줄게."

"됐어. 너 오늘 시합 있었잖아. 가서 자..."

"..."

"안녕."

답답하네.

아니! 나도 하고 싶다니까? 너랑 같이 있고 싶다고!

근데, 상황이 그렇지 않은 걸 어떻게 하라는 거냐...

시간은 또 잘도 흘러간다.

5월이 되며 날씨가 갑자기 여름이 됐고, 교복이 하복으로 바뀌었다.

다빈이와도 가끔 만나긴 하지만, 그래서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만나면 바로 집으로 가자고 졸라대는 통에 뭘 할 수가 없다.

놀고 싶다. 데이트도 하고 싶고 번화가도 나가보고 싶다. 그냥 다빈이와 같이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물론, 섹스 좋지.

아! 내가 누군데. 사랑(?)으로 살아가는 구마한데.

여자친구와 있는 게 싫다는 게 아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다빈이를 만나는데, 뭔가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싶은 기분이 들었다.

*    *    *

학교. 점심시간.

친구들과 5분만에 급식판을 비워 놓고 노닥거리고 있었다.

"야 팔에 힘 줘봐."

"꺼져 새끼야."

"갑빠. 오~ 씨발 몸 존나 단단해. 각목으로 치면 각목 부러뜨릴 수 있냐?"

"하하 미친새끼."

"마하야. 그럼 이제 한동안 대회 없어?"

"어. 몸도 피곤하고. 공부도 그렇고. 무엇보다 이제 나 나오면 다른 학교에서 출전을 안 하는 분위기가 잡혀서 대회가 조금 그래."

"우와... 너 온다고 시합을 안 보내? 그런 게 있어?"

"그렇대. 몰라 나도. 굳이 다른 학교 사정까지 따지고 싶진 않으니까. 피곤해서 쉬는 거야."

"이번에도 우승했냐?"

"응."

"이번엔 메달 몇 개 땄냐?"

"늘 똑같지 뭐. 근데 이번엔 800에서 동메달. 그거 보고 감독님들이 쉬라고. 너무 무리했다고 그러시더라고"

"오오~ 이 새끼~"

"자랑 할 거면 이렇게 해야 돼. 간지난다."

"하하하... 뭔가 알면서도 어이없는 느낌 알지? 마하 시합 얘기 들으면 그렇지 않냐?"

"아 됐다고."

조만간 중간고사가 시작된다.

수능도 수능이지만, 친구들은 내신 성적 때문에라도 학교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다.

다 같이 뭘 하기가 어려우니, 그냥 학교에서만 논다.

나는 그 시간을 여자친구와 함께 보내고 싶었는데...

일상이 바뀐 건 없다.

따져보면 오히려 나아진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울까?

이것도 다빈이 때문인가?

"너 수시 썼냐?"

"이제 너네도 이런 거 물어보는구나. 우리 반 애들만 그러는 줄 알았는데."

"뭔 소리야. 주변에 이미 대학 합격한 애들도 있어."

"그래? 벌써?"

"나오지. 어떤 애들은 지금 면허 공부하고 있어."

"교실에서? 그건 좀 재수 없는데?"

"뭐 재수 없냐. 지가 재주 있어서 간 건데."

"그래. 너도 빨리 대학 가. 성적도 있는데 오라는 데는 있을 거 아냐."

있기야 있지. 한체대도 오라고 하고, 경희대, 고려대. 여기저기 다들 손을 내밀고 있지만.

대학이라... 잘 모르겠다.

대사부님과 태릉이야기를 나눈 뒤부턴 대학도 크게 체감이 안 된다.

지금이면 다들 해외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갔을까?

올림픽을 생각하며, 멀리 하늘을 보고 있는데 친구들이 말했다.

"좋겠다 니는. 대학도 걱정 없고 여자친구도 생기고."

"뭔가 부럽기도 하면서 또 뭔가 좆같기도 하고..."

"아~ 나도 수시 쓰게 여기저기 대회 있을 때 나가 볼 걸."

"..."

"하하하~! 야. 아 얼굴 풀어 새끼야. 다 좋아서 그러는 거지."

"아냐. 내가 언제 니들 개소리 신경 쓴 적 있냐."

그날은 너무 갑작스러웠던 것도 있지만, 여자친구와 함께하기 위해 태릉을 거절했었다.

잘 한 짓일까?

마침. 태윤이도 다빈이는 잘 지내고 있냐고 물어본다.

"잘 있겠지 뭐."

"야. 뭐 그런 성의 없는 대답이 다 있냐?"

"그래. 니 여자친구잖아."

"요즘엔 잘 못 봐. 걔도 어쨌든 자기네 일정이 있으니까."

"다빈이는 대회 계속 나가는가?"

"응. 메달 많이 땄어. 컨디션도 확실히 돌아왔고. 진짜 잘하긴 하더라."

"야. 마하야. 우리랑 다빈이네 학교. 어디랬지? 성운이랬나? 거기 애들이랑 어떻게 미팅 같은 거 안 되냐?"

"너네 공부 안 해?"

"씨발! 학생은 공부만 하라는 법 있어!!"

있지. 엄밀히 우리한테는 교칙이라는 게 있어... 쌩까고 살아서 그렇지.

"몰라. 근데 다빈이 별로 친구들 많이 없는 걸로 아는데."

"다음에 한번 물어 봐. 야 난 그렇게 강아지 상 애들이 좋더라."

"난 고양이과."

"난 여우."

"너네 진짜 공부 존나 힘들구나... 그냥 다음에 날 비워서 동물원이나 갔다올까?"

태윤이는 아랑곳 않고 각 동물형 성격에 대해서 말해준다.

"강아지 과가 순둥순둥하지. 고양이 과 애들이 좀 까칠하지만 매력이 있고."

"여우는? 남수야 여우는 뭐냐?"

"섹시. 성숙미."

"오오~ 오오! 그렇네 진짜!"

"카하하! 미친놈들. 야 여자애들 만나는데 뭐 그런 거까지 따지고 있어?"

"이 새끼 대화 존나 건성으로 듣는 거 짜증 나지 않냐?"

"놔둬. 씨발년. 지 여자친구 생겼다 이거야. 존나 그렇게 맨날 혼자 앞서가."

"아니 무슨 사람을 동물에 비유하냐고?"

"있다고 새끼야! 그런 거 진짜 있어. 여자애들도 남자 얼굴 다 그렇게 따져!!"

"그럼 마하는 무슨 과냐?"

"짐승. 애니멀."

"하하! 언제는 멋있어졌다며!?"

"거친 맛이 있는 거지. 마치 제주 현무암 같은 정형화되지 않은 매력이랄까..."

"음. 디아블로 바바리안 같은 느낌이지."

한참 헛소리 신나게 떠들던 두 녀석이 농구장으로 가고, 남수랑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다빈이는 어디라고 봐야 될까? 걔도 귀엽게 생겼잖아."

"다빈이야 다람쥐지."

"다람쥐 과 성격은 어떠냐?"

"글쎄다..."

성격이라... 다빈이 성격?

이제와 생각해보면, 동민이나 인수가 했던 말이 틀리지 않다.

생긴 건 귀여우나 생각보다 까칠하고 주변을 잘 돌아보지 않는다.

사람들과 있을 때, 특히 운동하는 친구들과 있을 때의 다빈이는 나와 있을 때의 그녀가 아니다.

주변을 조금 낮춰 보는 시선도 보여주고, 여차할 땐 대상을 아주 무시해버리고 만다.

아마, 외모가 아닌 성격만 봤다면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그런 걸 어떻게 알기도 전에 먼저 선을 넘은 게 나였다.

그리고 또 어떻게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사귀는 사이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귀엽지 뭐. 애교도 부리고 그래."

"오오~ 이 새끼. 야. 너네는 둘이 만나면 뭐하고 노냐?"

"..."

"왜? 내가 뭐 이상한 거 물어봤어? 쳐다보고 지랄이야."

"남수야. 너 먼저 여자친구 사귈 때 너넨 주로 뭐했어?"

"병신아. 내가 물어봤잖아."

"야 나 진짜 오랜만에 박남수 카운슬링이 필요한 시간이 왔는데..."

"뭐. 뭐 있어?"

"너 이거 진짜로 애들한테 말하면 안 된다."

"뭔데?"

"진짜. 맹새 하라고."

그리고 남수한테 말했다.

그러자 돌아오는 반응은...

"씨발! 그럼 해본 거 맞네!?"

"..."

"와 이 새끼!! 하하! 어이 구마하!! 어! 니가! 진짜로!!"

"아 됐어. 꺼져..."

"으하하하!! 야! 너 이 새끼 소원을 이뤘구나. 어?!"

"아... 그러니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니다. 됐다..."

젠장. 누구한테 뭘 물어보는 거냐...

"근데 그게 고민이 돼? 오히려 좋은 거 아냐?"

"후우... 그게 그렇지가 않으니까 그러지."

"오케이.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얘기해 봐. 들어줄게."

만남부터 과정까지.

중간중간 남수가 진짜 니가 그랬다고? 같은 충격의 리액션을 보여주지만.

"근데, 진짜로 둘이 극장 한번 간 적이 없어?"

"없다니까! 얼굴 보면 밥 먹고 맨날 집으로 가자고 난리야..."

"와 뭔가 부럽기도 하면서, 내가 봐도 그건 좀 이상하기도 하고"

"그치? 좀 그렇지?"

"음. 뭔가... 아 모르겠어. 그냥 솔직한 말로 존나 짜증나."

결론적으로 남수는 다빈이가 날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모르겠어... 그게 좋아하는 건가?"

"좋아하지 않고서야 먼저 그렇게 하자고 매달리겠냐고. 그것도 여자애가. 그렇게 생긴 애가? 너한테??"

"그런가?"

"와... 마하야. 진짜 뭘 어떻게 하길래 그러냐? 무슨 테크닉이 있어?"

"야."

"응?"

"나 이거 진짜 가볍게 얘기할 거 아냐. 심지어 나 다빈이 때문에 태릉에서 오라고 하는 것도 거절했었어."

"이건 또 뭔 소리야...?"

종별 대회 때 이야기까지 말하자. 남수도 연애 문제가 나에게 어느 정도의 무게감으로 다가오는지 가늠이 되는가 보다.

"병신아... 그 좋은 기회를 거절해?"

"그때는 다빈이가 더 크게 느껴져서..."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누가 봐도 그건..."

"그러니까. 난 그만큼 애한테 진심인데... 얘는 뭔가 그냥 나 보면 그 생각 밖에 없나 싶기도 하고."

"어~어."

"미안. 내가 말했지만 어이없긴 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니 말이 맞는 거 같아서."

"뭐가?"

"다빈이는 너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너랑 하는 그 자체를 좋아하는 거 같다는 생각??"

불확실하게 느껴지던 의혹을 남수가 깔끔하게 정리해줬다.

"드라마나 영화 보면 그러잖아. 여자들이 막 남자한테 버럭버럭 소리 지르면서 오빠는 나랑 있으면 그 생각 밖에 안 해? 이런 거. 그게 지금 너한테 온 거 같은데?"

"대체 뭔 드라마에 그런 말이 나오냐?"

"몰라. 우리 누나 볼 때 옆에서 보니까 그러고 있던데."

"여자들 참..."

"근데, 니 경우엔 이게 지금 남녀의 역할이 뒤집혔다고 해야겠지."

"음..."

"넌 걔 어떻게 생각하는데?"

"다빈이? 좋아하지."

"근데 왜 불만이야?"

"좋아는 하는데... 그러니까 모르겠다고."

남수는 그럼 우리 만났을 때도 사귀는 건 아니었네. 그때 거절하지 그랬어? 라는데.

"처음은 물론 나도 좋았지."

"그럼 그냥 가."

"근데... 그게 다빈이도 다빈인데, 그냥 여자친구가 생긴다는 게 좋았어."

"에이 거기서 잘 못 됐네. 감정도 없는 애를 왜 사겨."

"좋다고 생각했다고."

"그럼 가든가! 새끼 한동안 안 그러더만 또 오락가락 거리네."

"안 그러게 생겼냐? 가면 갈수록 얘가 날 보는 게 아니라, 지 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는데."

"마하야. 이 세상 그 누구도 상대방을 아무 조건 없이 좋아하는 건 없어."

그런가? 내가 너무 과대 해석하나...?

"아니면, 뭐야? 뭐 몸이 아닌 마음의 교류를 원하는 거야?"

"미친 놈. 누굴 씨발 여자애로 아나."

"니 말이 그렇잖아. 지금 니가 가진 불만이 존나 여성적이라니까."

"야. 꺼져. 병신이 누가 누굴 보고 여성적이라고"

어라? 잠깐만... 여성적?

"..."

"갑자기 왜?"

"아니. 아냐."

"걱정 마. 애들한테 말 안 한다니까. 할 게 있고 아닌 게 있지. 들개들한테 이런 걸 어떻게 말하냐."

남수의 말에서 뭔가 불안감이 스쳐갔다.

여성적이라고? 혹시나 싶지만... 내 안의 정기는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야 가장 최적의 성과를 낸다.

그러고 보니 요즘엔 이상하게 피로도 잘 풀리지 않고, 마음도 예전과 달리 센치한 느낌이 있다.

혹시?

*    *    *

"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운동 안 가?"

"형. 바뻐?"

"아니. 왜?"

"잠깐만 이리로 와 봐."

직원 탈의실에 가서 옷을 벗었다.

형이 멀뚱멀뚱 보면서 묻는다.

"너 갑자기 뭐하냐?"

"형. 지금 나 어때? 요즘 서로 바빠서 잘 못 봤잖아."

"..."

형의 표정이 안 좋다. 진짜로 어딘가 이상이 있는건가?

"혹시 균형이 깨졌어?"

"야 이 자식아 너 대체 뭔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역시나 음양의 조화가 완전히 음으로 치우쳐져 있단다.

양기가 사라졌다.

젠장. 그럴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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