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2)
7월 둘째 주. 낯설은 신촌 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어느날 대 사부님이 찾아와 단복을 전해주셨다.
"마하야. 이거 한번 입어봐라."
"와 정장이네요?"
"그래. 아이고 잘 어울리는구나."
"멋지네. 선생님 요즘엔 단복도 은근 세련되게 나오네요?"
"그럼. 패션의 시대 아니냐."
단복은 정장과 츄리닝 두 벌인데, 입장식이나 시상식 때 나라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꼭 입어야만하는 옷이었다.
가슴에 달린 태극기를 보며 형을 생각했다.
등에 적힌 KOREA라는 글귀도 어딘가 인상깊었다.
국가대표라. 옷을 입으니 이제는 현실감이 느껴진다.
"어떠냐? 사이즈 괜찮지?"
"네. 편해요."
"이 감독도 왔다갔다면서?"
"훈련 상황 체크하시고 가셨어요. 별 말씀은 없으셨어요."
"그래. 아픈 데는 없고? 밥은 잘 먹고 있지?"
"아우 선생님. 그만하세요. 보시면 아시잖아요. 이 녀석 씽씽해요!"
"현석이 니가 조금만 더 고생해라. 상률이도 이제 방학했다고 올라온다고 했으니까."
"걱정마요. 우리 잘 지내고 있으니까."
"네. 교수님이 많이 챙겨주세요."
"그래 그래. 아우 우리 마하가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단복도 받고, 신촌 생활도 적응되지만, 그래도 역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환경의 적적함이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 같다.
특히 여기는 학교 중앙에서 길 건너 불야성의 신촌거리가 보이는데, 밤마다 뭐가 그리 시끄러운지. 객으로 눌러앉아 운동만 하는 입장에서 말 못 할 부러움을 자아낸다.
"당연한 거 아니냐? 그러니까 연대지."
"연대가 공부하는 학굔 줄 알았지. 스카이아냐."
"몰라. 밥 먹었냐?"
"내 얘기 말고. 니 얘기나 해봐. 그래서? 넌 지금부터 재수 노린다고?"
"그래야지... 에이 씨...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공부 좀 해놓을 걸..."
지루함은 매일 밤 친구들과의 통화로 이어지는데, 태윤이 남수는 학원에 매진하다보니 늘 그렇듯 여유로운 정석이가 상대해주고 있었다.
"야. 그러지말고, 아직 시간 있으니까."
"새끼야. 수능이 운동이랑 똑같은 줄 알어? 수능은 씨발 기본부터 찬찬히 다져와야 하는 거라고."
"야 이 미친놈아! 그렇게 잘 알면 진작 좀 하든가!!"
"뭐 설마 이렇게 될 줄 알았냐고... 난 내가 수능 볼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어이고 우리가 언제까지 고등학생이라고..."
태윤이랑 남수는 목표한 모의고사 성적을 내고 있지만, 정석이가 아무리 노력해도 점수가 나오질 않는단다.
뒤늦게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는 친구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될까?
내가 태극마크를 다는 걸 보면서 이놈도 전에 없던 각오가 생긴 건 좋지만, 쉽게 뭐라 하기가 어려운 문제였다.
"태윤이 서강대 노린다 그러고. 남수도 존나 상향지원 할 거라고 하는데..."
"이제 와서 뭐. 걔네는 원래 공부 좀 했었어."
"아 난 진짜 너만 보고 있었는데..."
"병신같은 소리 그만하고. 아직 안 늦었다니까. 포기하지말라고."
"마하야. 운동 재밌냐?"
"재밌지. 그러니까 힘들어도 참는 거고."
"존나 부럽다. 나도 그런 것 좀 찾으면 좋겠는데..."
따져보면 나도 아직 정확히 내 꿈이 뭔지 모르겠다.
그냥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을 뿐. 반드시 메달을 따겠다? 국위선양을 하겠다? 그런 각오로 운동했으면 이정도까지 해낼 수 있었을까?
선수촌 입촌! 섹스! 얼마나 깔끔하고 확고한 목표인가.
역시 결승점이란 단순할수록 좋은 것 같다.
"떠들다 보니 다 왔네. 정석아, 끊는다."
"그려. 들어가고."
"너도 차분하게 생각해. 이제 와서 초조해한다고 되는 거 없어. 무엇보다 우리 아직 학생이야."
"쩝. 알겠다고 씨발년이 잔소리야."
다음 날. 다시 연세대 체육관. 올림픽 개막까지 30일.
오전 훈련으로 스타트 연습에 매진했다.
아무래도 관중들이 많다보면 집중력이 떨어질 거 같다는 말씀을 드리자, 이현석 교수님이 상률이는 대체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아서 너 같은 학생이 찾아왔냐고 감탄을 아끼지 않으신다.
이 교수님도 많이 가까워졌다.
처음은 낯설었지만 겪어보니 크게 어색할 게 없는 게. 이 교수님은 그냥 한상률 감독님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였다.
감독님의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말아라 하는 교육방침이 어디서 왔나 했더니, 이 교수님의 지도방법이 그러했다.
"오케이. 잠깐 휴식."
"후우."
"마하야. 너 설마 예측 출발하는 거 아니지?"
"아우 아니죠. 실격받기 싫어요 저도."
"그래. 그럼 지금 컨디션만 유지해라. 그래도 충분히 해낼 수 있으니까."
"네! 고맙습니다."
"아~ 이런 보물을 데리고 있는데, 기자를 못 부르다니..."
"하하! 그건 저보다 감독님이 절대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에잇 배고픈데 밥이나 먹으러 가자."
교수님과 학관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근데, 너?"
"네? 왜요?"
"상률이가 그러던데, 너 원래 운동하면 엄청 먹는다면서?"
"아. 원래는 그랬는데요. 요즘엔 잘 모르겠어요."
"혹시, 눈치보는 거면 그러지 마. 많이 먹어도 돼. 내 돈 쓰는 거 아냐. 다 연맹에서 보태주는 거지."
"걱정마세요. 저 원래 그런 눈치 잘 안 봐요."
비공식 테스트를 거친 날. 형한테도 물었지만 몸에 다른 이상은 보이질 않는다고 했었다.
그냥 나쁠 거 없구나 하루하루 보내고 있지만, 나도 조금 신기하기는 하다.
왜 배가 안 고프지? 분명 내공은 소모되고 있을 건데??
"아무튼, 이쯤 됐으면 이제 우리도 조금 더 긴밀한 이야기를 해도 되지 않을까?"
"네. 뭐요?"
"슬슬 대학 결정해도 되지 않겠어? 어? 연대에서 밥먹고? 연대에서 운동하는 구마하 선수?"
"하하하.... 근데 제가 이 학교 올 수 있을까요...?"
"그럼. 너 올림픽 빼고도, 그동안 국내대회 실적만 가지고도 충분히 우리학교 들어온다니까?"
"전 솔직히 말하면 건대 쪽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거기는 왜?"
"그냥 장학금 이야기도 하시고, 우유도 공짜로 준다고 그러고..."
"야! 우리 학교도 우유 있어!!!"
수시기간이라 원서를 써봐야 알지만, 당장은 올림픽도 있고, 그냥 잘 모르겠다고 답변드렸다.
그래도 가능하면 연세대로 오는 것도 좋다고 구두약속은 잡았다.
"그래. 운동선수도 학벌이 중요한 시대야. 상률이 봐라. 지독한 놈 끝끝내 공부해서 서울대 가더니 여기저기 엄청 스포트 라이트 받고."
"감독님은 그래서 더 힘들었다고 하시던데요?"
"괜히 징징거리는 거야. 그 자식 우리랑 있을 땐 은근 대학 자부심 드러낼 때 많어."
"저도 여기오면 좋죠. 이대도 가깝고. 여자들이랑 동아리도 같이 할 수 있고."
"크하하하! 이놈은 대체 대가리에 뭐가 들어차 가지고?"
늘 그렇듯 생활이 바뀌는 건 없다.
선수라는 게 원래 뛰고 먹고 자고. 다시 뛰고 쉬고 먹고 운동만 하는 직업이 아니던가.
그냥 하루 하루 달력에 올림픽 개말날짜만 체크하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운동이 없는 시간은 주로 원룸에서 쉰다.
나가서 돌아다녀도 좋지만, 요즘엔 명상의 시간을 자주 이용하는 중이다.
형도 명상은 수련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 했었고, 나도 명경지수의 마음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알기에 더 정신을 가다듬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아 오빠! 양말 이렇게 벗어두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을 얘기 해!!"
"양말 가지고 그래..."
"한 두 번 말하냐고!!"
옆방 커플은 주구장창 쉬지도 않고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근데, 옆에 누구 왔다며? 뭐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조용해?"
"몰라. 운동하는 사람 같던데?"
"저 사람은 TV도 안 보나?"
아니, 조용해도 난리냐...
성공을 크게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가급적 돈 많이 벌면 방음 잘 되는 집에서 살아야겠다.
한 지붕 두 가족 살림을 하는 것 같다.
옆방 커플의 싸우는 소리, 사랑하는 소리. 농담하는 소리까지 다 공유되는 환경에 있다보니 진짜 모를 거 알 거 많이 배운다.
물론, 세상 모든 게 명암이 있듯 이런 환경도 나름 플러스 요인이 있는데.
그게, 연애라는 게 뭔지 간접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부모님 없이 성장했다.
엄격한 형이 있어 생활의 개념은 잡을 수 있었지만, 보통의 남녀가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역시 잘 모르겠다.
섹스를 통한 사랑. 서로에 대한 증명. 혜정이도 그랬고, 다빈이때도 그랬지만. 여자들이 몸을 허락한다고 나를 완전히 받아주는 것 같지는 않다.
옆방 커플을 보면서, 보통의 연인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을 배워가는데, 기대했던 것과 달리 커플은 생각보다 많이 싸운다.
아까도 그랬지만, 양말 하나로 다투는 일도 많고, 먼저는 뭐? 변기 뚜껑? 모르겠다. 그런 걸로도 싸울 때가 있더라.
할 땐 그렇게 침대 삐걱거리고 신음소리내던 사람들이 싸울 땐 어떻게 저렇게 서로를 죽일 듯이 소리를 지르는 걸까? 그래놓고 또 밤에는 왜 그렇게 사랑한다고 난리를 부릴까?
모르겠다. 그냥 사랑하고 싶다.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다. 몸과 마음을 통한 즐거운 시간을 나누고 싶다.
올림픽도 올림픽이지만, 역시나 외로움은 무서운 존재인 것 같다.
감정에 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가운데 하루빨리 아테네로 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 * *
8월 초. 올림픽 개막까지 남은 시간 이제 열흘.
구마하의 친구 이정석은 TV를 보고 있었다.
[올림픽 축구 대표팀이 유럽에서 마지막 평가전을 앞두고 있습니다.]
"형. 마하 형은 갔어?"
"아직. 모레 쯤 간다고 하는 거 같던데."
"와... 마하 형이 국가대표라니... 싸인이라도 받아둘 걸."
뉴스에서도 종목별 몇 몇 팀은 먼저 시차적응이나 현지 적응을 떠났고, 대표팀도 조만간 전 멤버를 그리스로 보낸다는 말이 나왔다.
"새끼. 유럽도 가고 존나 좋겠네."
"어이고 이 진상아... 그게 지금 할 말이냐?"
"아 또 왜? 뭐?"
"니 친구는 벌써부터 지 앞가림 하고 있는데, 넌 뭐하는 놈이길래."
"아 엄마는 밥 먹는데 왜 그런 소리를 꺼내고 그래!!"
이정석은 부모님의 잔소리가 지겨워 집을 뛰쳐 나온다.
나라고 하기 싫어 안 하는 게 아니다. 단지, 뭘 해야 되는지 몰라 못 하고 있을 뿐.
"뭘 안다고 진짜!"
걔도 원래 국가대표가 되려던 게 아니라고.
그냥 어쩌다 지 적성과 재능을 잘 찾았을 뿐이지...
엄마도 알면 마냥 잘했다고는 못 할 걸?
"..."
라고 하기엔.
바로 옆에서 친구가 노력을 통해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지켜 본 이정석이었다.
"그래. 그것도 지 팔자지..."
이정석과 구마하는 같은 시간을 걸었다.
베스트 친구 중 하나였었다.
똑같은 시간을 누군가는 부지런히 뛰고 땀 흘려 기회를 만들었고 누군가는 그 시간을 방황으로 보냈다.
목적이 뭐든 무슨 상관인가. 꿈을 위해 달렸다는 것이 중요하지.
"여. 김태. 뭐하냐?"
"뭐하긴 뭐해. 늘 그렇듯, 학원이지..."
"저녁은? 집에서 먹냐?"
"모르겠다. 아 지긋지긋해..."
"야. 우리 오늘 마하네 형한테 가볼래?"
"안 그래도 아까 남수도 전화해서 그러던데. 고기 먹으러 갈까?"
이정석은 친구들과 만나 마하네 형 구마윤을 찾아갔다.
"형! 저희 왔어요."
"어. 왔구나."
"형님. 먼저 신촌 가신다더니, 마하 보셨어요?"
"응. 하하. 너네 배고프지?"
"아니요. 저희 그냥 형 보러 왔어요."
"아이고 고맙다. 있어 봐. 자리 잡고 앉아있어."
이정석은 오늘따라 식당을 둘러본다.
여전히 장사는 잘된다.
마하네 형이 원체 인물도 뛰어나고 서비스 정신도 좋으니 연일 만석이지만, 그렇다고 매번 공짜밥을 먹고 있는 건 엄청난 신세를 지고 있는 것 같다.
"공부 힘들지?"
"괜찮아요. 근데 형? 저희도 그때 올라가서 마하 잠깐 보고 왔는데, 이 새끼 키 더 큰 거 같던데요?"
"그러게 말이다. 이제는 나는 넘어섰고, 태윤이랑 근접한 거 같던데."
"저보다 클 거 같던데요. 가끔은 좀 징그러워요."
"하하하! 징그럽게 보지는 말고."
"대체 뭘 먹이길래 그렇게 커요?"
"글쎄다. 근데 정석아."
"네?"
"무슨 걱정있어?"
"아니요..."
구마윤이 이정석의 어두워진 아우라를 읽고 물어보았다.
이정석도 처음은 꾸물꾸물 하더니, 곧 속내를 꺼내들었다.
"그냥 집에가면 엄마가 자꾸 뭐라고 하니까요..."
"부모님이 걱정해주시면 감사한 거지."
"모르겠어요. 엄마는 마하 국가대표 되는 거 보면서 나도 뭔가 그런 큰 일을 해야된다고 그러는데..."
"야. 야. 새끼야 여기서 그 얘기가 왜 나와?"
"그래. 마하랑 너랑 완전 다른 이야기지."
"후후. 우리 동생이 미안하구나."
"어 어 아니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고요! 그냥 수능은 다가오고, 답답해가지고요."
김태윤과 박남수가 다급히 분위기를 바꿔본다.
"형은 유럽 가보셨어요?"
"하하!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딨어."
"보통 대학생들 배낭여행 많이 가던데?"
"난 어릴 때부터 장사해서 그런 거 잘 몰라."
"형님 그럼 대학은요?"
"난 계속 일했어. 대학도 이번에 마하 훈련한다고 처음 가봤다."
그 말에 이정석이 구마윤을 쳐다본다.
"저 형님?"
"응?"
"그럼. 형님은 계속 여기 계셨던 거에요?"
"그렇지."
"..."
다들 가깝게 지내온 만큼 구씨 형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다.
이정석은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지금 누구보다 마윤이 형이 더 마하를 보고 싶은 것 아닐까...?
"형님. 그럼 저랑 그리스 다녀오실래요?"
"뭐?"
"마하 응원 안 가실래요?"
김태윤과 박남수도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뭐라는 거야? 니가 거길 어떻게 가?"
"뭐 어때. 구마가 그랬어. 가족들 입장권 나눠준다고."
"..."
"야. 너는 그렇다쳐도 형님은?"
"아니. 애시당초 니한테 유럽 갈 돈은 있어?"
이정석이 다시 구마윤을 보면서 말한다.
"형님. 저 알바 시켜주시면 안돼요?"
"정석아?"
"미친놈아. 너 왜 이래?"
"아 뭐! 나 그냥 일이나 할래. 공부는 아무리 봐도 아닌 거 같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어. 그럼 남은 건 취업인데. 진짜 어디 공장 들어가는 건 아닌 거 같다고."
"하하하. 형. 신경쓰지 마세요."
"네. 얘가 요즘 모의고사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러나 구마윤은 정석이의 이야기를 흘려듣지 않는다.
"출근은 졸업하고 하는 거지?"
"네."
"야. 야! 잠깐만!!"
"형도 왜 그러세요?!"
"얘들아. 너희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정석이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야. 진심이야."
의지가 생겨나는 몸에선 빛이 난다. 정석이의 몸에서 그런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고깃집 직원이면 어떤가. 그가 그런 길을 가겠다는데.
무엇보다 동생의 친구들이었다.
여기서 받아주지 않으면 자칫하단 어긋나는 길을 갈 수도 있다.
그럴 바엔 내가 품어주는 게 맞다는 것이 구마윤의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나도 마하 응원 가고 싶어. 진짜로."
"하하! 그쵸! 형 저랑 같이가요!! 가불만 해주세요! 제가 나중에 꼭 갚을게요."
"됐어. 형이 그정도 돈은 있다."
그러자 박남수가 다급하게 말했다.
"그! 그럼 저도 데려가 주시면 안돼요?!"
"야. 꺼져! 넌 뭔데?"
"뭐! 나도 대학가면 알바 할 거야! 형. 저도 같이가요. 저도 마하 시합 뛰는 거 보고 싶어요."
"괜찮겠어? 너희 공부해야 되는 거 아냐?"
"아 뭐 어때요. 끽해봐야 일주일 잠깐인데. 육상이 올림픽 내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건 그렇지만."
"오케이. 남수까지 콜!"
그러자 다급한 건 김태윤이었다.
"야. 야! 잠깐만. 그럼 나도 데려가!!"
"시끄러! 넌 공부 해!"
"그래! 넌 성적 잘 나오잖아!"
"뭐가! 나도 원래 우리 가족 지금 휴가 갔는데, 나만 집에 혼자 있는 거란 말이야!!"
1년 전.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말도 못 붙이던 친구를 놀렸던 세 사람이었다.
이정도 모험과 도전이 뭐란 말이야. 마하는 올림픽을 갔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단 말이다.
구마윤은 동생 친구들을 보며 돈 깨지는 소리가 들리지만, 통 크게 말한다.
"오케이! 그럼 같이 가자!! 부모님 허락만 받아 와!!"
이틀 뒤 8월 10일.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단이 그리스 아테네 공항에 도착.
단복을 갖춰입은 구마하도 입국 수속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