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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기로 가버렷-59화 (59/401)

〈 59화 〉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5)

시합을 앞두고 최대한 침착하려 했지만, 솔직히 올림픽에 나왔는데 긴장이 안 될 수가 없다.

"후우."

"후우우우~"

"아니 감독님이 한숨 쉬시면 어떡해요?"

"야 나는 사람 아니냐? 청심환을 세 알을 먹었는데도 너무 떨려 지금."

가슴이 두근두근 거릴 수 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꿈에도 그리던 올림픽 스타디움.

엄청난 관중과 경기장.

사람들의 목소리가 공기를 울리고 있었다.

주변 모든 이들이 다들 엄청난 강자들로 보인다.

이기고 싶다. 잘 하고 싶다. 그런 사소한 감정도 분위기에 삼켜지고 있었다.

"감독님. 저 출발 때 실수하면 어떡하죠?"

"마하야. 연습만 생각하자. 그동한 해 온 노력을 믿어. 알겠지?"

"네!"

그리고 경기 시작. 9.91로 예선 첫 경기를 통과했다.

"어우 떨려라."

심장이 두근두근한다.

긴장된 상황에서 내몰린 감각이 온 몸을 지배하고 있었다.

정말 반복된 훈련만 생각하며 뛰었다. 의지가 아닌 몸이 알아서 움직여 나온 결과.

예선을 마치고 전광판을 보는데 내 이름이 있는 것을 보자 그제야 가슴이 조금 진정되는 것 같다.

올림픽은 올림픽이구나...

와 명상훈련을 잘 했네... 그거 없었으면 지금 어휴...

시합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가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형?"

"너 진짜 괜찮아!!?"

"어. 형 애들은 어딨어?"

"..."

"아 진짜 괜찮다니까!!"

괜찮다니까 그러네. 왜 나도 아니라 자기가 긴장해서 저러고 있냐고 더 쫄리게.

"나 대기실 갈게. 이따가 봐."

"그래..."

순서에 맞춰 2차 예선이 시작.

여전히 힘들었지만, 그래도 한번 뛰어봤다고 1차 때보단 조금 나은 컨디션으로 달릴 수 있었다.

준결승을 앞두고 한 차례 사람들이 줄어들은 대기실도 한산해졌다.

한 감독님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엔 여기서 8명만 남겠죠?"

"이제부턴 0.1초로 겨룬다고 봐야겠지. 그리고 결승에선 0.01초로 승패가 갈리고."

"뭔가 살벌하네요."

"그나저나 너랑 있으면서도 믿기가 어렵다. 올림픽 준결승이라니..."

"하하하! 왜 그러세요."

한주 고로 처음 훈련을 나갔을 때 감독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시지 않았느냐며 되물었다.

"감독님. 이정도면 한국 육상의 족적을 남긴 건가요?"

"남기다 마다. 즐기자 마하야. 넌 이미 한국 육상의 별이야."

그러는 한국에선 어떤 반응인지 궁금한데, 감독님은 아마 별 느낌 없을 거라고 해주셨다.

"아까 주영이한테 연락 왔는데, 채널 어디서도 육상을 안 보여주고 있다 그러네."

"왜요?"

"양궁 하고 있어서. 저녁엔 탁구로 잡혀있고."

"하하하! 그거야말로 어쩔 수 없죠 뭐."

양궁은 한국 올림픽의 최고 인기 종목이자 순위의 척추와도 같다.

나부터도 올림픽 하면 양궁에서 금메달 따나 안 따나 그거 보고 있는데, 인기 종목 비인기 종목 차별대우를 따질 수 있겠냐고.

그냥 내 운동이나 열심히 하련다.

남들이 무슨 상관인가. 친구와 가족이 봐주고 있는데.

"그래 맞다. 우리는 우리 시합이나 잘하면 돼."

"알겠습니다."

감독님 말씀대로 나는 한국 선수 가운데 처음으로 10초의 벽을 뚫은 선수가 됐다. 올림픽이란 공식경기에서 낸 성적이다. 메달은 추후의 문제로 미뤄두고 긴장감을 떨쳐냈다.

2차 예선을 마치고 점심시간을 가졌지만, 그닥 또 배가 안 고파 식사를 건너뛰었다.

대신 낮잠을 자고 일어나 오후에 열릴 준결승을 준비하는데.

"음?"

"왜?"

"..."

자다 일어나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데 뭔가 이상하다.

왜 이러지? 갑자기 춥지?

"음..."

"왜? 마하야? 뭔데?"

"감독님. 저 윗도리 하나만 주시겠어요?"

"여기."

자는데 에어컨이 너무 쌨나? 찬바람을 쐬서 그런가?

이상하게 싸한 기분이 등줄기를 스쳐가는 기분이었다.

"아닙니다. 괜찮은 거 같아요."

"무슨 이상 있으면 바로 얘기 해. 의무실 있으니까."

"네."

"근육 떨리냐?"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요. 에어컨 때문에 그랬던 거 같아요."

간혹 너무 긴장된 나머지 경련이 오는 선수들이 있는데, 몸은 진짜 아무 문제가 없었다.

기분 탓인가 준결승이라 쫄았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복도를 가로질러 운동장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어라?"

"왜?"

"..."

또 춥다.

이건 기분 탓이 아니다.

진짜로 뭔가 몸이 추운 거 같다...

"감독님. 지금 더우세요?"

"그럼. 왜? 넌 어떤데?"

"모르겠어요. 추운 거 같은데..."

"춥다고?"

모르겠다. 기분 탓 같기도 한데 몸이 점점 추워진다.

갑자기 왜 이러지? 온 몸의 체온이 사라지는 거 같은 기분인데.

"네 감독님. 추워요..."

"이 날씨에? 어디 봐 봐."

감독님이 이마에 손을 얹고 손과 몸을 만져 보셨다.

그러고도 안심할 수 없어 서둘러 의무실에 가셔서 온도계를 하나 들고 오셨는데.

"괜찮은데?"

"그쵸..."

체온은 36.2도.

시합을 앞두고 긴장감 때문에 그런 거 아니겠냐 밖으로 나왔는데.

"어때? 지금도 추어?"

"음... 햇빛 밑에 있으니 괜찮은 거 같은데."

아폴론의 기운이 깃든 그리스 태양 아래 있어야 몸이 조금 정상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운동장. 특히 트랙 쪽은 관중석에서 넘어오는 그림자로 응달이 져있는데.

역시나 태양을 조금만 피하니 마치 냉장고에 들어온 듯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마하야...?"

"으으... 감독님. 일단 시합부터 뛰고 올 게요."

"야. 너 지금 시합이..."

"빨리 끝내고 올게요..."

진짜 왜 이럴까... 갑자기 왜 이러지? 체온의 문제가 아니라면 대체 뭐지?

머리는 답을 아는데, 마음이 답을 거절하고 있었다.

분명 내공이 뭔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하필 이제와서? 준결승을 앞두고??

A,B,C,D,E,F로 나뉘어진 준결승 시합에서 나는 D조에 배치되었다.

가장 빠른 인간들만 모아놓은 100미터 경기답게 네 번 째 시합은 금방 돌아온다.

감독님을 찾거나 몸을 돌 볼 시간이 없었다.

그냥 경기를 뛰든가 포기하든가 둘 중 하나의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그때였다.

"마하야!!!"

형이 아까보다 더 가까운 관중석 끝에 매달려 소리친다.

걱정어린 형을 보자니 덜컥 겁이 들었다.

"야. 아무리봐도 너 지금 뛰면 안될 거 같애!!!"

역시. 형은 뭔가 알고 있구나.

어떻게 하지... 형 말을 들을까...

"Next?"

그 사이 운영진들이 다가와 다음 조 선수들 준비하라는 말을 해준다.

"형..."

"너 지금 이상해! 그냥 포기하고 빨리 들어와."

"..."

포기하라고? 여기까지 왔는데?

"871?"

"형! 나 일단 뛸게."

"야!"

"걱정하지 마. 난 포기 안 해."

시합을 접을 바에는 차라리 지는 게 낫지. 뛰어보기도 전에 포기가 무슨 말인가.

그러나 대기하는 동안 떨림은 아까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이상 신호는 주변 선수들도 같이 느끼고 있었다.

"Hey Guy. Are you OK?"

암 오케이라고 해주지만 몸에 열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배도 너무 고파진다.

뱃속이 꺼지다 못해 누가 나한테 빨대를 꽂아 체력을 빨아가는 기분이었다.

씨발 내공 개새끼... 이 새끼는 잘 나가다 꼭 한번씩 문제를 일으키는지...

[ON YOUR MARK]

그렇다고 한들 앞서 말한 대로 나는 포기하지 않는 구마하다.

지는 게 낫다고 했지만 지고 싶지도 않다.

이기고 싶다. 그러나 내공 없이 과연 이길 수 있을까?

9초에서 0.1초를 겨루는 이 괴물같은 인간들 속에서 내가?

[GET SET]

아니야. 겁먹지 마. 내공이 아닌 외공. 나의 몸을 믿자.

강인한 육체와 근육이 단지 내공이 있다고 저절로 생긴 건 아니잖아.

내가 노력을 했어. 내가 고통을 이겨내 왔다. 그래서 키도 크고 몸도 강하게 변화시켰다.

못 생기고 뒤틀린 몸뚱아리 구석구석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나 자신이 피땀을 흘려 왔다고.

그러니까 몸아. 제발 나에게 힘을 줘!!

탕!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가슴을 꿰뚫는 기분으로 정신없이 달렸다.

지금껏 한번도 그랬던 적이 없을 정도로 절박한 심정으로 트랙을 뛰었다.

그렇게 맞이한 9.89란 뛰어난 성적으로 준결승 통과.

"허억... 허억..."

하지만, 시합을 끝냄과 동시에 나는 트랙에 고꾸라지고 만다.

서있을 기운이 없었다.

아마도 마지막 힘은 내공이 아닌, 팔다리나 신체에 남아있던 힘의 잔재들을 써서 맞이한 결과였을 것이다.

꺼묵꺼묵한 시선 저편으로 의료진들이 들것을 들고 다가오는 게 보였다.

웅성거리는 관중석의 소음이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다가온 한 감독님이 세상 무너질 것 같은 얼굴로 다급하게 소리치셨다.

"마하야!! 마하야! 정신차려!!"

"가... 감독님... 형... 형 좀 불러주세요..."

*   *   *

동생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구마윤이 성난 황소같은 모습으로 운동장 선수들 구역으로 달려갔다.

"잠깐만요! 제 동생이 지금!!"

경기장 안내요원들이 컴 다운 컴 다운 하면서 그를 진정시키나, 구마윤의 힘을 누르기가 어렵다.

경비요원들이 다가와 그를 끌고가려는 순간. 한상률이 나타나 그를 구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마하가 형님을 모셔오라고 했어요! 무슨 일이죠? 설마 그 내공인가 뭔가 하는 게 잘못 된 건가요?"

"일단, 가서 보겠습니다..."

검은 기운은 역시나 몸이 보내는 마지막 신호.

의무실에 들어간 구마윤과 한상률의 앞에 구마하의 몸이 퍼렇게 질리고 있었다.

"마하야..."

"마하야. 형님 오셨어. 정신들어?"

흔들어 봐도 구마하는 의식이 없다.

외국인 의료진들이 당장 병원으로 보내야 한다고 한상률에게 전해준다.

"형님. 이 사람들은 병원으로 가라는데..."

"가도 별 소용 없을 겁니다..."

"왜요? 뭐가 문제죠?"

"잠시만요..."

마하의 혈맥을 집어본 구마윤은 동생이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대로 두다간 절맥증(絶脈症)의 하나로 번질 가능성이 있어 목숨이 위협했다.

모든 것은 다 양기 때문이다.

배가 고프지 않던 것도 기운이 넘쳤던 것도 다 양기의 힘이었다.

하지만, 풀어내지 못한 기운은 결국 썩기 마련.

쌓이는 기운을 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음양합일이 벌어지지도 않다보니, 체내의 내공이 뒤틀리기 시작한 것이다.

구마윤이 주변을 둘러보며 조용한 공간을 찾는다.

"선생님. 제가 한번 봐보겠습니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부탁드립니다. 저 아니면 동생을 살릴 수가 없어요."

한심한 이유라고도 할 수 있지만, 빠른 시간에 여러 사건을 겪은 동생의 몸이었다.

구마윤은 일단 마하의 막힌 기혈을 뚫어내고자 조용한 공간을 찾는다.

"마하야. 정신 좀 차려봐라. 어!!"

의무실 한쪽에 마련된 방에서 한상률과 구마윤이 마하를 일으켜 앉혔다.

구마하는 비틀비틀 인형같이 흐느적 거리고, 한상률이 눈물을 참아가며 그를 잡아준다.

"형님. 뭡니까 지금? 네?"

"선생님. 마하 좀 앉혀 주세요."

"그리고요?"

"지금부터 운기조식을 할겁니다."

심각한 얼굴로 소설에서나 보던 단어들을 나열하는 구마윤.

한상률은 지금이라도 빨리 병원을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구마윤이 마하의 등에 몇 가지 혈을 집더니 바로 두 손을 뻗어 그를 지탱한다.

그러자.

"읍!!"

흐느적 거리던 구마하의 몸이 반듯이 서지며 두 사람 몸에서 은은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내... 내공?"

"선생님. 아무도 못 들어오게 문 좀 부탁드립니다."

"네!!"

내공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지금 구마윤의 치료에 모든 것이 달려 있음을 직감하는 한상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천금같은 자세로 입구를 수호하는 것이 전부다.

구마윤도 최선을 다하지만, 마하의 기운이 생각보다 너무 강했다.

자신은 이미 옛적에 넘어섰고, 초고수의 상태에 접어든 동생의 몸.

최악의 경우엔 단전을 파괴해야했다.

그래야 동생의 목숨이라도 구할 것 아닌가...

다만, 그리 된다면 마하의 올림픽도 꿈도 여기가 마지막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구마윤도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할 뿐이다.

"정신차려. 넌 강한 놈이잖아..."

"으음..."

*     *     *

여긴 뭐지? 난 쓰러진 거 아녔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푸르다 못 해 청명한 빛이 산과 하늘을 가득 채운 곳에서 눈이 떠졌다.

순간, 죽었나? 싶은 두려움이 일어나는데.

어떤 꼬마 아이들이 눈앞을 뛰어가는 모습에, 다행히 여기가 저승은 아니구나 싶어졌다.

저승에 애들이 왜 놀아. 죽은 건 아닐 거야.

얘들아. 여긴 어디야?

아이들은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냥 자기들끼리 놀기 바쁜데, 옷 차림이나 머리 모양 같은 게 신기했다.

애들 눈에도 나는 안 보이는구나.

그나저나 어딜까? 내가 왜 이런데 있지? 시합은? 경기는 어떻게 된 거지??

그때 선녀 같은 분이 저 멀리 목소리를 내셨다.

"마윤아. 너무 멀리 가지 말고."

"네 어머니."

어머니라고? 저분이?

여기 이 꼬마가 형?

그럼 여기는 곤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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