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6)
어머니라고...? 우리 엄마가 저렇게 미인이셨다고?
어머니란 말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만, 나는 어린 형 주변에서 벗어날 수 없어 점점 멀어지고 있다.
마치 형에게 묶인 풍선인형이 된 듯 꼬마 구마윤의 주변에서 둥실둥실 떠다니며 곤륜의 풍경과 산새를 보았다.
고향은 굉장히 아름다운 곳이었구나. 천혜의 자연이란 여길 말하는 것이었어.
곤륜을 알고 난 다음부터 하나 씩 찾아보았다.
그곳은 서왕모의 복숭아 전설과 함께 많은 이들이 성산으로 여기는 곳이었다.
실제로 황하의 출원지이기도 하고 에베레스트도 그리 멀지 않았다.
내가 이런 곳에서 태어났구나.
한국도 좋지만... 뭔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기분이다.
그때 어린 형과 아이들 주변으로 큰 곰이 나타났다.
"다들 피해!!"
형은 어려서부터 멋있었구나.
꼬마 구마윤의 의협심에 아이들은 목숨을 구해 도망가지만. 결국 형은 곰의 앞에 퇴로가 막히고 만다.
"으윽 더... 덤벼!!"
형도 피해! 그걸 왜 싸우고 있어?
흐느적 흐느적 마치 꿈 속에서 팔을 뻗듯, 곰의 앞으로 다가가 주먹질을 해보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침을 질질 흘리던 곰이 앞발을 치켜들어 형을 내리치려 할 때였다.
"합!!"
큰 기합소리와 함께 누군가 번개처럼 나타나더니 곰을 한방에 쓰러뜨렸다.
태극 문양이 담긴 옷을 입고 있었다.
설마. 이분이...?
"아버지!!"
"마윤아. 괜찮으냐?"
"네!"
"이 녀석. 그러니 멀리가지 말라고 했는데."
이분이 아버지...
멋있다... 잘 생겼네.
아 씨 뭐야. 다들 인물만 좋은데 왜 나만...
그때 아버지가 허공을 둘러보며 내 쪽에 시선을 두시는데.
"음?"
"왜요 아버지?"
아버지는 무공의 천하제일이라더니, 설마 나를 알아보시는가?
아버지 저에요! 마하요!!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구나. 어서 마을로 돌아가자."
"네."
젠장. 아버지랑 이야기 하고 싶었는데...
둥실둥실 형을 따라 마을로 이동해 집으로 갔다.
어머니가 갓난 아이를 눞혀놓고 형을 혼냈다.
하하! 우리 형도 이럴 때가 있었네. 역시 나이엔 장사 없지.
"하지만, 아버지가 오셔서 곰을 쓰러뜨리셨어요."
"그렇구나. 오늘 밤은 고기를 먹겠구나."
곰을 먹어? 그걸 먹을 수 있어?
아버지가 큰 곰을 들고 오신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잔치 비슷한 분위기가 됐다.
가죽은 벗겨서 횃불에 말리고, 고기는 사람들이 굽거나 끓이거나 그러고 있었다.
곤륜의 음악과 풍경. 생활 모습 등을 어딘가 아련한 모습으로 지켜보았다.
그때 아버지가 형한테 말씀하셨다.
"마윤아. 그럴 땐 재빠르게 몸을 피하라고 내가 말해주지 않았느냐."
"죄송해요. 겁이나서 못 움직였어요."
"아니다. 친구들을 먼저 대피시킨 건 충분히 용감한 행동이었다. 넌 겁을 먹은 게 아니라 수련이 부족할 뿐이다."
오우 이런 분이셨구나... 너무하네 어린 애한테...
아버지는 마을 잔치가 벌어지는 가운데 형을 데리고 어딘가로 이동하셨다.
고기 먹다 어디 가요??
불만을 내뱉어도 둥실둥실 묶여있는 처지에 목소리는 사람들에게 닿지 않고.
"마윤아. 지난 번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에 대해서 알려줬었지?"
"네. 아버지. 하지만 아직 기가 충만하지 못 해 다 익히지 못했습니다."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한번 보여 보거라."
형도 나름 밥 먹다 갑자기 왜 수련이냐며 불만을 터트리지만, 아버지는 적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며, 수련도 기회가 있을 때 해야만 하는 것이란 말씀을 해주셨다.
"오늘 같은 날. 다시한번 배움을 되짚으면 좋을 것 아니냐."
"맞습니다 아버지!"
내가 곤륜에서 자랐으면 형 같이 말을 들었을까?
난 싫어요! 고기 먹을래요! 이랬을 거야...
"신룡선무(神龍旋霧)! 용유자휘(龍遊紫微)!!"
"그래. 그리고 나머지 여섯가지 초식이 이루어져야 운룡대팔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만 익혀두어도 어디가서 목숨이 위험할 일은 없다."
"네! 아버지!!"
형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이유를 알겠다...
아버지는 강하면서 따뜻한 분이셨구나.
그 순간 갑자기 마을 쪽에 펑하는 괴성과 비명 소리가 들렸다.
"음?"
"아버지?"
"마윤아. 여기 있거라!!"
아마 형이 말했던 적들이 쳐들어 왔다는 그 순간인 것 같다.
가만있으라고 하지만, 아버지를 쫓아 달려가는 형 덕분에 나도 마을이 불타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어머니... 친구들..."
형 여기 있으면 안돼. 죽어!!
아무리 경고해봐도 형한테 목소리가 들릴리 없다.
그때 형은 볼 수 없는 각도에서 자객 하나가 지붕 위를 달려와 뛰어들었다.
"어딜 감히 내 아들한테!!"
자객은 어머니가 달려들어 쓰러뜨렸다. 어머니도 엄청난 고수였다.
단지, 나를 안고 있는 바람에 몸 여기저기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고 계셨다.
갑자기 풍경이 변했다.
불타던 마을이 저 멀리있고, 우리는 어디 산 정상 쯤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피를 흘리며 어머니가 울고 계신다.
두 분이 형한테 나를 안겨주고 있었다.
"싫습니다!! 저도 모두와 함께 있겠습니다!!"
"마하를 부탁한다..."
"반드시 데리러 갈게. 마윤아..."
"싫습니다! 싫어요!!!"
형이 울며불며 애원하지만, 아버지가 손을 뻗자 형의 몸이 하늘로 둥둥 떠오른다.
"부탁하네..."
아버지가 나를 보고 그러시는지 아니면 하늘에 대고 비는 건지는 모르겠다.
우리 형제는 아버지의 무공으로 차원을 넘어왔다.
아까와 똑같은 장소였다.
단지, 마을도 사람의 흔적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형은 혼자 한참을 울고불고 소리 지르다 나를 안고 길을 걸었다.
그때부터는 기억이 빠르게 지나갔다.
단편적인 것들만 보여졌다.
그럼에도 참으로 보기 안쓰러운 풍경들이 이어졌다.
"어딜! 거지 새끼가!!"
와... 우리 형... 고생 많이 했다더니... 이러고 살았구나...
구걸을 하기도 하고, 음식을 훔치다 걸려 뚜드려 맛는 일도 많았다.
귀한 소공자 같은 외모는 시커멓고 때가 줄줄 낀 얼굴로 변했다.
그래도 형은 똘똘했다.
머리가 비상한 만큼, 낯선 언어도 금방 익히고 눈치도 빨라 금새 제 앞가림을 하기 시작했다.
"왜 이거밖에 안 돼요...?"
"뭐가! 일 한 만큼 줬잖아!!"
하지만, 애가 어리고 지켜줄 사람이 없어 그런가 제 몫을 받기가 어렵다.
그나마 그렇게 번 돈도 나를 부탁한 사람들한테 주느라 형은 밥도 제대로 못 챙 먹고 배고픔에 혼자 울며 참아 넘겼다.
형도 사람인지라, 가끔 나한테 짜증을 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울고 있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이 계속 되는 가운데, 계속해서 배경이 바뀌었다.
시골에서 작은 소도시 같은 곳으로, 그곳에서도 또 다시 대도시로.
그리고 마침내 형이 말했던 그 순간이 왔다.
"아저씨. 저긴 뭐하는 곳이에요...?"
"저기? 다른 나라 대사관이지."
형이 보는 저 앞에, 한국의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쿨럭! 컥!!!"
"마하야... 마하야!"
어? 뭐지? 방금까지 내가 보던 건??
"어... 어라?"
"마하야 정신 드니? 날 알아보겠어?"
"감독님...?"
어질어질하다.
갑자기 꿈에서 깨어난 듯 모든 것이 기억이 뒤틀린 기분이다.
"어. 어?"
"하하하... 이 자식..."
감독님이 나를 끌어안는데, 보니까 입에서 피가 한 바가지는 쏟아진 것 같다.
"맞다. 나 쓰러졌었지..."
"이제야 알았냐?"
뭔가 인기척이 더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형이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온 몸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형?"
"후우... 망할놈의 자식 같으니라고..."
어린 구마윤의 얼굴이 어렴풋이 남아있는 다 큰 우리 형 구마윤.
형을 보는데, 괜히 눈물이 왈칵 올라온다.
쿵쿵쿵!!!
"한 감독!"
"상률아!! 문 좀 열어 봐!"
"대사부님 아니세요?"
"그래. 야 인마. 너 지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는 있어!! 기적이 벌어졌다고!"
뭔지 몰라도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다.
형은 내가 정신차리는 모습을 보며 그대로 풀썩 쓰러지더니, 헐떡헐떡 숨을 몰아쉬었다.
"선생님... 후우... 후우... 됐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요... 제 동생인데요..."
형이 나를 툭 치면서 말했다.
"적당히 해. 이 미련한 놈아."
"뭘?"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고... 후우 후우... 아 죽겠다..."
방을 나서니, 이두희 감독님과 천병욱 대사부님. 그리고 육상연맹 사람들과 우리 친구들이 걱정어린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너 괜찮은 거 맞어?!"
"네. 괜찮아요."
"아이고 이놈아! 거기서 쓰러지면 어떡하냐!!"
"상률아. 너 이자식 아무리 그래도... 선수를..."
"알겠으니까 나중에 이야기 하시죠. 지금은 저도 정신이 없어서."
"상률아. 저 피는 뭐냐?"
"별 거 아닙니다."
다들 정신 없는 상황에, 그나마 친구들이 내 옷을 보면서 니 피 아냐? 묻는데.
"어. 그런 거 같은데."
"그런 거 같은데라니..."
"너 진짜 괜찮은 거 맞어?"
"어. 괜찮아."
아직은 조금 어지럽지만 아까 같은 추운 기운은 많이 가셨다.
의무진도 혈압이나 체온 눈동자 등을 체크하며, 이 상태면 시합에 나가도 좋다는 판단을 내리지만,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감독님께 추궁을 시작했다.
대화는 주로 영어로 이루어져 이해하기 어려운데, 공부 잘하는 태윤이가 대충 해석해주길.
"뭔가 약물 이런 거 썼으면 바로 실격 된다고... 그러는 거 같은데."
"그렇구나."
"마하야. 너 뭐 이상한 거 아니지?"
"아니야."
어느 정도 상황이 마무리 되길 기다리며 형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형은 좀 어때?"
"어떻긴 뭐가 어때... 너랑 동귀어진 하는 줄 알았지..."
"고생했네. 고마워."
"진짜 어떠냐?"
"괜찮아. 추운 것도 다 갔어."
"아이고... 아이고 이놈아. 진짜 생각할수록 소름이 돋네. 너 나 없었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그러게. 형 없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 했네."
"제발 마하야. 적당히 해. 적당히..."
그제야 음양조화가 뒤틀렸음을 듣고, 금딸도 너무 해서는 안된다는 자각을 가졌다.
"아니 그냥... 주변에 아는 사람도 없고. 먼저도 그랬다가 너무 힘도 없고 해서..."
"이 한심한 놈아... 사람들한텐 부끄러워서 말을 못 하겠네..."
형이 피곤하다는 듯 어깨를 툭툭 거리는데, 마사지 해주겠다며 손을 뻗어 주물주물 해주면서 말했다.
"형."
"왜?"
"나 아버지 봤다."
"...어떻게?"
"어머니도 보고, 아버지도 보고. 그리고 마을도 봤어. 형이 말했던 거 다 봤어."
형도 깜짝 놀라며 그걸 어떻게? 라는 듯 돌아보는데.
"아마 형이 뭔가 하는데 기억이 넘어온 거 아닐까?"
"곤륜을 봤다고...?"
"응. 아버지 멋있더라. 엄마도 되게 예쁘고. 풍경도 되게 멋졌어."
"두... 두 분은 건강하셔...?"
형은 자기가 아는 것 그 이상의 무언가를 듣고 싶어 했지만, 내가 본 건 기억 속의 두 분인지라 형의 만족을 채워줄 순 없었다.
"그보다, 형 장난 아니게 고생했더만."
"대체 뭘 본 거야...?"
"나중에 얘기해 줄 게."
한 감독님과 이두희 감독님이 다가오셨다.
"좀 어떠냐?"
"괜찮아요."
"정말 괜찮은 거 맞지?"
"네. 그럼요."
건재하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방방 뛰었다.
그러자 대사부님이 또 오셔서 무리하지 말라고 혼을 내신다.
"마하야. 이러지 말고 제대로 검사를 받아보는 게 낫지 않겠니?"
"그럼 결승에 못 나가잖아요."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진짜 괜찮아요. 저 뛸 수 있어요."
"무리하지 마라... 선생님 말씀대로 제대로 검사를 받는 게 나을 수도 있어..."
"너 아까 쓰러졌어 이 녀석아!!"
친구들도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바로 옆에서 고요하게 한숨을 내쉬는 형을 돌아보았다.
고개를 끄덕여준다.
형이 그렇다면 괜찮은 거다.
"시합에 갑니다. 다녀올게요."
메달이나 섹스.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한국 최초의 육상 단거리 결승 진출 이런 것도 다 필요없다.
처음으로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승리를 가져오고 싶었다.
우리 형을 위해서. 그런 형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구해 준 태극기를 세상 가장 높은 곳에 띄워 놓고 싶다.
고마우니까. 그냥 그 존재가 너무나도 감사해 뭐라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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