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륜기로 가버렷-63화 (63/401)

〈 63화 〉 비너스와 에로스 (2)

"마음에 드는 사람은 있다고?"

"어. 하나 보긴 봤는데."

미(美)의 여신 비너스.

의문의 금발 테니스 선수가 나에겐 아테네의 비너스다.

머리도 샤랄라한 금발에 눈도 파랗다.

얼굴 몸매는 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콘돔 챙기러 갔다가 두 번이나 마주쳤다는 데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하지만.

"그쪽이 나랑 하고 싶을까?"

"그런 걸 따져?"

"그럼."

"왜?

"야. 마하야 잠깐만. 꼭 그 사람이어야 되는 거냐?"

"어."

"왜?"

"왜가 어딨어? 그 사람이 지금까지 내가 선수촌에서 본 여자들 중에 젤 예쁘니까 그러지."

태윤이와 정석이가 묘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니가 그런 걸 따져?"

"너 아무나랑 막 해도 되는 거 아녔어?"

"미쳤냐! 이 새끼들은 내가 무슨 진짜 짐승인 줄 아나."

"맞잖아. 너 그래서 운동 시작했고, 메달까지 땄고."

"그냥. '여자'면 되는 거 아냐?"

"아니야! 그럼 니들은 뭐 아무나 할 수 있으면 막 하고 다닐거냐?"

"뭐지? 뭔가 존나 이해가 안 되는데...?"

"그러게. 나도 인지부조화가 오는데...?"

어리둥절 거리는 태윤이와 정석이에게 남수가 말했다.

"야. 이 새끼 이미 해봤어. 니네가 알던 섹스에 미친 구마하가 아니야."

"뭐? 진짜!!"

"뭐 씨발??? 언제!!"

많은 논란이 벌어질 뻔했지만, 그조차 금메달 앞에 넘어간다.

"개새끼. 너 진짜 메달 땄으니까 한 번 봐준다."

"진짜 넌 메달한테 감사해라."

"미친놈들. 메달 지들이 줬나. 내가 받았지..."

"하하하! 왜 니들은 외국까지 나와도 똑같냐?"

아무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래서? 선수촌에 마음에 드는 여자는 있는데 말은 못 걸어 봤다?"

"음. 뭔가 좀 다가가기가 어렵더라고."

"사랑엔 국경이 없지만, 언어엔 분명히 장벽이 있지..."

"마하야."

"어. 정석이."

"설마 다빈이냐?"

"아 씨발 진짜... 남수야. 이 새끼 좀!"

"조용히 있어. 내가 나중에 얘기해 줄게."

"와 너 진짜... 너 개새끼 너..."

두 녀석은 그런 애랑도 사귀어 봤으면서,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냐고 묻는데.

"걔는 어쨌든 한국애고. 여긴 외국인이고."

"이 새낀 이런 자신감으로 어떻게 메달을 땄지?"

"뭔 상관인데! 운동이랑 여자를 왜 같이 묶어!"

"생긴 게 아니라, 저 좆같은 성격을 뜯어 고쳐야 돼."

"야 근데 이건 마하가 맞지 않냐? 무턱대고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진짜 외국인인데."

"그러니까. 이 새끼들은 무슨 씨발 금메달 내밀면 여자들이 다 대주는 줄 알어."

남수도 의견에는 동의하나, 그럼에도 전과는 다를 거란 이야기를 해줬다.

"그래도 뭔가는 있겠지. 아까도 봤잖아. 사람들이 너 좋게 보고 지나가는거."

"그건 그거고. 이건 사람대 사람의 관계의 의야기고."

"관계의 이야기는 뭔 씨발..."

"구마하 주제에 관계 이지랄. 좀만한 새끼가."

그때 어떤 사람들이 다가와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Excuse me. are you KOO MA-HA right?"

"예... 예스?"

"Could I have your autograph?"

"태윤아...? 오토그랩이 뭐야?"

"싸인. 싸인 해달라고."

"싸인? 내꺼?"

한 사람이 다가오자 주변에서도 하나둘 사인 좀 해달라는 부탁이 들어왔다.

사인도 없어서 대충 한글로 구마하라고 적어주니 오히려 좋아한다.

"하하. 땡큐 베리머치."

"어우 우리 존나 미친 소리 막 하고 있었는데, 저 사람들 한국 말 못 알아들었겠지?"

"일본도 아니고 한국인데 누가 알겠어... 쫄지말자."

"그러니까 내가 말 조심 하라고 했잖아! 이 새끼 이제 스타라고!!"

"야. 이러지 말고 우리 그냥 선수 휴게실 가서 얘기하자. 거긴 듣는 사람들 없어."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이어갔다.

친구들은 조금 전 사인해준 일을 언급하며, 나도 이제 충분히 유명인의 반열에 들어섰으니 자신감을 가지라는데.

"아 진짜 답답한 새끼들. 유명하고 아니고 그런 레벨이 아니라니까."

"뭐 얼마나 이쁘길래 그래?"

"야. 인터넷 가서 찾아보자. 이름이 뭔데?"

"후우. 그래. 보자. 인터넷 가면 뭐 좀 나오겠지."

휴게실에 있는 컴퓨터로 벨라루스 여자 테니스 선수만 검색을 했는데.

"어! 맞어! 이 사람이야!!"

"진짜? 오... 이쁘긴 하네."

태윤이가 영어로 된 사이트를 슥슥 읽으며 해석을 해준다.

"빅토리아 알렉산드라. 모델로도 활동하며 나이는 23세."

"누나네."

"연상의 금발여인이라... 마하야. 레벨이 있긴 하다."

"그치? 메달이고 자시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까!"

친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쫄지말고 당당하게 가서 이야기를 해보란다.

"다음에 만나면 인사는 걸어볼거야."

"그래. 자신감 갖고. 너 비너스 남편이 누군지는 알어?"

"비너스가 남편이 있어?"

"있어. 헤파이토스라고 존나 못생긴 인간. 대장장인가 그래."

"인간 아니잖아. 신 아냐?"

"이 와중에 김태윤 넌 뭘 따지는데?"

못 생긴 신도 비너스와 부부가 됐다.

남들은 엔조이여도, 이쪽은 문제가 생기면 재산분할과 4주간의 조정기간을 거치는 관계가 된 것이다.

"흠. 헤파이토스와 비너스라."

"남수야. 대장간이면 딜도도 직접 깎냐?"

"몰라 병신아."

"오오~ 오오~ 씨발. 이정석. 역시 장난 아닌데?"

내가 메달리스트가 됐어도 바뀌는 게 없듯 친구들도 발전이 없다.

그곳이 학교 운동장이든 아테네 올림픽 스타디움이든 섹스의 대화는 계속된다.

"근데, 너네 언제가냐?"

"마윤이 형 갈 때. 올 때 비행기표를 그렇게 끊었어."

"그래? 그럼 이제 삼일 더 있나..."

"왜? 너 중거리도 다 보고 가라고?"

"아니. 오늘이나 내일 선수촌가서 밥도 먹고 오락실도 가고 그러고 싶어서."

"우리 들어갈 수 있어?"

"될 걸? 외국 애들은 밖에서 여자들 막 끌고 들어오는데, 친구들 뭐 어때서."

비너스고 선수촌 투어고 일단은 시합이 우선.

슬슬 오후 경기가 열릴 예정이다.

친구들과 잠깐 또 이별하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잘해라 마하야."

"오늘도 메달 따! 또 아냐? 금메달 두 개면 두명이랑 할 수 있을지?"

"하하하! 미친새끼."

"두명이면 쓰리섬이냐?"

"오오! 박남수 너까지?"

"크하하하! 갈게. 이따가 보자."

친구들 덕에 긴장과 부담이 많이 사라진다.

오늘 메달 따면 애들 불러서 같이 놀아야지.

*    *    *

"그렇죠 구마하 선수. 이번에도 여유롭게 준결승에 진출하게 됩니다."

"확실히 표정에 자신감이 보이지 않습니까!!"

"하하하~ 어제 같은 컨디션 이상은 없다고 봐야겠죠?"

"그럼요. 아 우리 구마하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시합을 마친 구마하를 카메라가 잡아주고 있다.

대기실로 이동하는 그가 자메이카의 유진 볼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까요?"

"아무래도, 세계적인 스타를 보면 주변 선수들도 관심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중계석의 말과 다르게 구마하는 유진 볼트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    *    *

"유진. 잇츠 오케이. 유 원. 위 고 투 넥스트 라운드."

"Champ. Fucking nervous I'm going crazy..."

이게 맞나?

아무튼 유진이랑 시합을 뛰었는데, 애가 경기 시작 전부터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꼭 내가 주화입마에 빠지기 전 그런 모습이었는데. 유진이는 다음 라운드를 나간다고 좋아하는 게 아닌, 불안감이 더해지는 것 같다.

"Shit!"

"헤이. 헤이!!"

"What!!"

"컴 다운. 오케이? 플리즈!"

"..."

대기실에 와서는 애가 안절부절 방을 들쑤시고 다니길래 일단 진정하라며 옆에 앉혔다.

앉아서도 다리를 덜덜떨 떨며 손톱을 물어 뜯는 유진 볼트.

밥은 먹었냐고 감독님을 통해 물어보니 아니라고 한다.

"배고파서 그러나? 야 너 햄버거 먹을래?"

"What?? What did you say? Coach?"

"두 녀석이 내가 무슨 지들 통역관인줄 아나..."

감독님이 사다주신 햄버거를 내밀자 녀석도 무슨 뜻인지 Oh~ 감탄사를 내뱉으며 우걱우걱 포장을 벗긴다.

"자메이카에서 뭐라고 안 하시겠죠?"

"이미 먹는 걸 뭐라고 하진 않겠지."

아까 받았던 초코바에 대한 보답으로 건네줬다.

역시 사람 사귀는 데 외국이고 한국이고, 맛있는 거 나눠먹고 같이 운동하면 끝이구나.

"Thanks."

"유 어 웰컴."

그때부터 조금씩 이야기를 나눴다.

"식스 틴? 이 새끼 동생이었네. 키 크길래 형인 줄 알았는데."

되든 안 되는 일단 아는 단어들로 뭐라뭐라 말을 건네니 그래도 대화는 된다.

한국 나이는 외국과 다르게 통용되지만, 그럼에도 유진이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었다.

"에잇티 세븐? 그래. 나 에잇티 식스 본이라고."

"Yo~ Bro."

"새끼 은근 맞먹네?"

"하하하! 그냥 넘어가라 마하야. 외국 앤데 그걸 어떻게 따지냐."

서로 응원도 해주고 긴장되는 거 알지만 걱정말고 뛰라고 위로도 해줬다.

유진이도 자기도 알면서도 잘 안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But, Bro. I want to win..."

"그거는 나도 미투지."

결국 다음 시합에서 유진이는 긴장을 이기지 못 해 제실력을 내지 못하고 5위로 통과. 결승의 문턱에서 멈추고 만다.

이번 올림픽에 200m만 출전한 유진이는 복도에 주저앉아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다.

"유진아?"

"Yo Bro... don' worry. i'm okay..."

하이파이브와 악수를 겸비한 제스츄어를 나누며 애를 일으켜 세웠다.

"으쌰."

"No thanks. I'm realy okay..."

"알겠으니까. 야. 이따가 파티갈래?"

"Party?"

"아까 썸 가이가. 그러니까... 그래! 저 가이가. 댓 가이. 자기네 파티한다고 인비테이션 어스 했었는데."

대충 이해는 되는 것 같다.

"Ah~ Ok. see ya"

"그래. 씨유."

승패를 떠나 함께 땀 흘린 동료에게 건네는 인사. 그것도 올림픽 정신이 아닐까 싶다.

"후우. 어쨌든 또 결승이라... 아우 떨려라."

"왜 이래? 잘 하면서."

"감독님 아니에요. 그래도 결승은 국내 대회나 여기나. 결승만의 그 아우라가 있어요."

"그럼 이렇게 해주면 부담이 좀 덜어질까?"

"뭐요?"

"메달 따면 오늘 밤 자유시간 어떠냐?"

"정말요...?"

"아까 듣자니 파티 간다며?"

"하하하... 그걸 들으셨어요?"

"지면 나랑 영어공부다."

"필사적으로 뛰어야 겠네요."

*   *   *

"구마하!! 구마하!! 이번에도 금메달!!!"

"크윽-!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구마하는 전날 100m에 이어 200m 결승에서도 우승.

19초 68이라는 올림픽 기록을 거두며 그의 실력과 이름 석 자를 세계 육상과 올림픽 역사에 각인시킨다.

"시청해주시는 모든 여러분.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우리 구마하 선수 이름 그대로 속도의 사나이 아니겠습니까!!!"

"아직 끝난 게 아니죠!! 구마하 선수는 중거리 경기가 남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직도 한국 육상의 금빛 레이스는 계속 됩니다!!"

"다음엔 아테네 현지에서 생생한 현장 반응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시청해 주신 국민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100미터와 200미터 단거리를 석권하며 아테네 올림픽 최고스타로 등극한 구마하.

그가 친구들과 함께 다 같이 외국인 파티를 찾아간다.

올림픽의 진정한 밤으로.

오륜기의 영광이 함께하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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